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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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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47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2.03.05 09:45
조회
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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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글자
9쪽

심화 2

DUMMY

“누구 있어요?”

철문 밖, 지하주차장 쪽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실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하기야 두들겨 패고, 연이어 비명이 터졌는데 모르길 바람이 말도 안 된다.

“운이 좋구나.”

지원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는다. 그가 순순히 물러나는 것 같았기에 소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순간 상실이 옆구리를 걷어찼다.

“크흑.”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그를 발로 밀어 넘어뜨린 상실이 바닥에 떨어진 지원의 스마트폰을 주워들었다.

“내 얘기가 없는 게 좋을 거야.”

지원의 코앞에 액정을 보여준다. 네모난 화면에는 아직도 촬영이 계속되고 있단 표시가 떠있었다. 그의 안색이 굳자, 상실이 비웃음을 남기며 지현과 위로 올라간다.

“촬영이 아주 잘 됐어. 경찰이 보면 좋아하겠는걸.”

둘이 위로 사라지고 얼마 뒤, 밖에서 계속 물어보던 누군가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세상에!”

들어선 남자는 피가 흥건한 상황을 보곤 기겁했다. 그러다 신음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지원을 부축한다.

“학생 괜찮아? 이게 무슨 일이야?”

그의 물음에도 지원은 답할 정신이 없었다. 아까의 흥분이 식어버리고, 속에는 패배감과 좌절감,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상실이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들은 강간 미수로 조사를 받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상실도 폭행죄로 같이 엮을 수 있을 것이지만 자신의 범행이 들어날 경우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웠다. 주변에서 강간범이라고 수군거릴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제기랄.”

스스로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치 작게 중얼거리자 남자가 물었다.

“뭐라고?”

지원은 답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병원을 가야했다. 배는 물론, 복부와 뺨 모두가 아프다. 걷어차인 옆구리에서 쉼 없이 통증이 몰려온다. 잘은 모르겠지만 갈빗대가 부러진 것 같았다.

“벼, 병원 좀.”

“응? 아, 그래그래. 기다려 봐.”

남자가 수선을 떨며 핸드폰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서 시선을 뗀 지원은 다른 세 명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제 저 멍청이들에게 상실에 대해 입을 다물라고 말할 것만 남았다. 만약에 경찰이 오더라도 지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다물어야 했다. 멍청하게 떠벌였다가는 자신들이 벌였던 일도 들통 나는 수가 있다.

맞은 곳에서의 통증과 앞으로 있을 일로 정신이 없던 가운데, 지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혐오감 가득하던 시선. 그렇게나 두들겨 맞았음에도 벌레 보듯 하던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속에서 울컥 격렬한 감정이 치솟았다.

너는 나를 그렇게 보면 안 돼. 너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자신의 잘못보다 상대에 대한 분노가 먼저 일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듯 억울하고 화가 난다. 분명 스스로도 잘못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건 보다 큰 울화에 먹혀 사라졌다.

노기에 부르르 떨고 있을 때, 이번엔 상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한껏 유린하던 기억이 처음부터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래, 네가 문제야. 정말 너만 없었다면, 내가 이런 꼴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든 상실에게 피해를 주고 싶었다. 오늘 받은 모욕감을 해소하고 싶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하고 싶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도는 와중에 그는 시커먼 뭔가가 곁으로 날아드는 것을 언뜻 보았다.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그림자뿐이었다.

말로 설명하지 못할 위화감이 느껴진다. 뭐가 이상하고 어색한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과 뭔가가 달라진 느낌이다. 그게 뭔지를 생각하려는데, 통화를 끝낸 남자가 그를 살폈다.

“조금만 참아. 금방 온다니까.”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몰라 수선만 떨던 남자가 기절한 다른 소년들까지 살피던 사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지원은 놀라 달려올 부모님께 뭐라고 변명할지부터 고심해야했다.


지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 앞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만약 상실이 오지 않았더라면 무슨 꼴을 당했을지 상상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린다.

소녀의 집 앞까지 배웅한 소년은 어딘지 즐거운 낯으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상실이 지원의 핸드폰을 보이자,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것이 공개되어 경찰서에 가게 되는 건 그녀로서도 사양이다. 지원과 일당들을 감옥에 넣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자로서 이런 일에 휘말렸다는 것부터 수치심이 들었다.

“그거 지우면 안 돼?”

치욕스런 모습이 담긴 영상까지 지워서 아예 기억 속에서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상실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까 그 녀석들 때린 거 봤지?”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친 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속이 다 시원했다. 소년이 말을 이었다.

“이게 있어야만 내가 경찰에 신고 당했을 때도 반박할 수 있어.”

“내가 그런……짓을 당할 뻔했는데도?”

지현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간하려던 놈들을 얼마나 패건, 죽이거나 병신만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상실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로서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방금 있었던 일은 과잉방어가 될 수도 있었다. 과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사건에 관한 글을 봤었는데, 강간하려는 놈의 혀를 물어뜯어서 잘라낸 여자조차도 과잉방어로 피의자가 되었던 일이 있다. 그 외에도 강간범을 때려잡았다가 폭행죄로 고소당한 남자들의 일화도 있는 등 법은 일개 개인이 공권력을 대신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있었던 일은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고, 강간미수에 그쳤다. 그 녀석들이 자신들도 피해를 보겠다고 마음먹고 찌르려면 얼마든 찌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지원의 핸드폰에 있는 동영상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귀찮은 일에 얽매이기 싫다면 애초에 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그림자로 화해서 밟아놓았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지원을 비롯한 얼굴을 봤을 때는 그러기 싫었다.

나약하던 시절의 그를 장장 삼 년에 걸쳐 괴롭히던 녀석들이다. 게다가 이 상실이란 모습으로 밟아주기 최적의 상황이었다. 길을 가다가 만났더라면 병원 진단서도 못 끊을 정도로만 만져줬겠다만 무려 강간을 하려던 상황이었다. 그치들도 함부로 신고하지 못할 것이니 마음 놓고 폭행했다.

워낙에 상대가 약해서 속이 시원하지도 않았지만 의미는 있었다. 받은 것이 있다면 돌려주는 게 당연하잖은가. 그게 은혜라면 모를까, 원한이라면 절대로 되돌려줘야 한다. 그런 피라미까지 찾아 나서진 않더라도, 알아서 찾아왔다면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그는 지원의 변화가 기꺼웠다. 전이야 상대할 가치도 못 느껴서 살려뒀다만,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변했다. 사실 가능하다면 죽이고 싶음이 본심이다.

죽여 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기에 살려뒀다만, 지난 시절의 기억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런 나약한 애송이에게 당해서 자살까지 갔던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같잖은 힘으로 패악을 부리던 지원에 대한 살의는 여전했다.

죽이는 건 쉽다. 손만 까딱해도 인간은 억 하고 죽어버리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존심이 있다. 영혼까지 팔아가며 얻은 힘이다. 죽여도 이익이 없는 일개 인간에게 집착하기엔 너무나도 큰 힘.

그래서 털어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지원은 병아리가 아니라 무럭무럭 자라나는 닭이 되었다. 조금만 더 크면 털을 뽑아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이제 정신적, 육체적으로 압박하여 미쳐버리게 만들기만 하면 완성이다. 충분히 잡아먹을 가치가 있어지면 그 때부터가 시작이다.

상실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너는 들어가 쉬어.”

고개를 끄덕인 지현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쭈뼛거리더니, 기습적으로 상실의 뺨에 입을 맞췄다.

“오늘 고마워!”

배시시 웃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지현에게 손을 흔들어준 그는 입술이 닿았던 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따위의 소년다운 감정은 역시나 일지 않는다.

“흥.”

픽 웃은 그의 몸이 어둠에 녹아 사라진다. 설익은 것들을 상대했더니 공복이 심해진 느낌이다. 다른 끼니거리를 찾아봐야겠다.


작가의말

충격적인 의견이 있더군요. 설명하자면 상실이 지현을 성폭행하는 것은 좀 뜬금 없는 감이 있습니다. 지원을 성폭행하면 모를까. 그 상황에서 지현에게 그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잖아요? 말하고보니 나름 매력적인 상황이군요. 지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니까요. 아니, 미처 몰랐던 사랑이 싹틀 수도....
어쨌거나 초반에도 설명을 했었습니다만, 상실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자입니다. 성욕이 없습니다. 성욕이 없으니까 물건도 안 서고요. 뭐, 육체를 자기 맘대로 재구성이 가능하니까, 크고 아름답고 단단한 형상으로 만들 수야 있겠습니다만, 언급했다시피 정신적 고자라서 패스. 지현이건 지원이건 할 수 없습니다. 고자라서 말이죠.
여튼 즐겁게 다음 전개를 기다려주시길. 소제목다운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악의 8화에서 오타 신고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타가 아니군요. '유이한'이라는 단어를 '유일한'이라 신고해주셨는데, 도서관에 있는 고등학생은 지현과 상실 둘 이니까, '유이한'이 맞습니다. 여튼 제가 미처 못 본 오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오타 신고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6

  • 작성자
    Lv.77 술용
    작성일
    12.03.06 23:57
    No. 31

    좋습니다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천호파장문
    작성일
    12.03.08 13:29
    No. 32

    점점 파멸로 흘러가는거같아서 저처럼 깨끗하고 해맑은 독자가...;;
    보기에는 부담이 있네요.
    하지만 저같은 독자만있진 않을테니 소신껏 써주시길 응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후니칸
    작성일
    12.03.09 16:23
    No. 33

    상실이 지현을 강간하면 지원이 패배감보단 오히려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죠. 너도 별볼일 없는 쓰레기였구나 하고요. 복수가 되고 패배감을 주려면 지현이 자진해서 상실에게 안겨야 하는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atnasers
    작성일
    12.03.10 01:52
    No. 34

    미처 몰랐던..... 상실이 고자가 아니더라도 인간과는 종이 달라져서 혹하지도 않을 것 같네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광염소나타
    작성일
    12.03.13 23:50
    No. 35

    고자라도 어차피 이건 아마 [15세 가.] 판정 받을겁니다.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3.15 16:17
    No. 36

    유일한 이란 표현은 있어도 유이한이란 표현은 잘 쓰지 않읍니다..
    '오직 유'라는 한자가 맨 앞에 붙어있거든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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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6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6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3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100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9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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