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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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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932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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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1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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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글자
8쪽

심화 3

DUMMY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한 상실은 얌전히 자리에서 공부에 전념했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공부하는 그를 몇몇이 괴이하게 바라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안녕?”

지각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등교한 지현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얼굴도 발갛고, 몸을 배배 꼬는 것이 아무래도 어제의 일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담담하게 인사를 받아줬다. 그러자 지현은 김이 빠진 모양인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곁에 앉는다.

“걔는?”

주변을 둘러보며 묻는다. 지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안 나왔어.”

지원의 빈자리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소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여자로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고 싶음이 당연하다. 하지만 상실은 그녀의 걱정이 괜한 것이라 여겼다.

입안이 터지고, 갈빗대가 두 개는 나갔을 것인데다 강간 미수다. 제정신이라면 학교에 나올 리 없다. 그보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는 게 먼저겠지. 어쩌면 치료가 다 되고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지도 모르고.

정상적인 수순대로라면 지원은 그렇게 상실의 손을 벗어나려 할 것이었으나, 지현과 자신에 대한 집착이라면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설혹 도망쳐도 상관은 없다. 이미 그 날, 자신의 파편을 지원의 그림자에 심어뒀으니까. 라이온파의 보스, 백 태환과 마찬가지로 지원은 이제 세계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그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 그림자에 심어진 파편을 제거하지 않은 한은. 물론 인간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상실이 공부에 전념하자 지현도 어쩔 수 없이 공부에 동참했다. 솔직히 이번 주는 쉬고 싶었다. 하지만 상실이 질문해오는데 답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데 농땡이 피우기는 성미에 맞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묻고 답하고를 몇 번 반복하자, 아침조회시간이 되었다. 담임이 다소 어두운 낯으로 들어섰다.

“차렷, 경례.”

학생들의 인사를 받은 그는 지원의 빈자리를 보더니,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지원이가 당분간 못 나오게 됐다.”

아이들이 저마다 눈치를 살피며 웅성거렸다. 상실이 돌아온 뒤, 지원은 따돌림 받다시피 했다. 본인의 성미가 있어서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학생들 모두가 상실의 눈치를 보며 어울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은근히 상실에게 향했다. 물론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계단에서 굴러서 크게 다쳤다는구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니, 당분간은 나오지 못할 거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니까, 문병은 가지 말도록 해라. 알았지?”

“네.”

담임의 설명에 아이들은 안도하며 답했다. 문병을 가지 말라는 말도 필요 없었다. 이제 와서는 지원과 친한 아이들도 없었으니까. 가라고해도 대부분 나서지 않았을 거다.

그 속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인 담임은 시험이 끝났다고 헤이해지지 말라는 따위의 말을 하고 조회를 마쳤다. 곧 수업종이 울렸다.


이틀이 지나 수요일. 그 때까지도 상실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공부를 하고, 지현에게 묻고, 엄마와 대화하거나 여기저기 주물러드리고, 남는 시간에 끼니거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패턴이 연이어 반복되었다.

요즘에는 먹을 만한 놈들을 찾기가 힘들어서 점점 더 멀리 나가게 된다. 라이온파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돈을 벌어야하기에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순찰을 돌고, 그 숫자도 하루가 지날 때마다 늘어갔지만, 그런 건 상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직까지 퇴마사 따위의 신기한 인간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나날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에게도 중요한 날이다. 무슨 날인가하면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다.

“잘 나올 거 같아?”

종례시간을 앞두고, 지현이 장난스럽게 묻는다.

“네가 잘 가르쳤으면.”

“나야 당연 잘 가르쳤지!”

발끈해서 말하는 지현에게 지원에게 당했던 때의 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망각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고작 삼 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에 대한 일이 없던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담임이 들어섰다. 조회시간에 예고했던 대로 한 뭉치의 성적표를 들고.

지현 같이 기대에 가득한 표정도 있고, 안색이 좋지 않은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담임의 표정은 밝고도 짓궂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적표다. 노력한 만큼 나오기 마련이니, 현실도피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대다수가 힘없이 답하자, 그는 성적표를 들어 히죽 웃었다. 이 순간만은 마흔 중반의 교사가 아니라, 장난치는 소년 같았다.

“공평하게 성적순으로 나눠주겠다. 호명하면 나와.”

“우우.”

야유가 쏟아졌지만 담임은 그것마저 즐겁게 받아들였다.

“장 지현.”

첫 호명에 자신이 불리자, 지현이 퍼뜩 놀라며 일어선다. 여기저기서 부러움이 섞인 감탄이 인다.

“지현이는 이번에 등수가 많이 올라갔다. 중간고사 때도 잘 했는데, 이번엔 더 올라버렸네? 다들 박수치고, 본 좀 받아라. 참고로 지현이 등수는 우리 반에서 일 등. 전교에서 칠 등이다.”

“감사합니다.”

“이건 상이 아니야.”

성적표를 받아들며 인사하자, 담임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에 작은 웃음이 터졌다. 그런 것엔 아랑곳없이 지현은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돌아갔다. 성적이 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올랐다. 이만하면 집에서도 학원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두말없이 승낙하시겠지. 성적표를 보고 웃고, 상실의 얼굴을 보며 또 웃는 소녀의 얼굴은 화사했다.

이번만은 상실도 지현이 부러웠다. 전교 칠 등이라니. 지금의 그로서는 닿지도 못할 높이다.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정말 기뻐하실 텐데. 아니, 그보다 커닝을 한 건 아닐까 의심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전까지의 성적에 비교하면 전교 칠 등이란 등수는 가당치도 않다.

등수대로 연이어 호명이 이어지고, 뒤로 갈수록 받아드는 아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여학생은 거의 우는 수준이다. 상실의 기준으로선 꽤나 높은 점수였지만 그녀와 그녀의 부모에겐 기준이 못 미치는 점수인 탓이다.

호명이 이어지고, 점수는 평균 구십 밑으로 내려갔다. 팔십 중반을 넘어 초반까지 내려갔을 때, 기어코 상실의 이름이 불렸다.

“이 상실.”

아이들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스친다. 담임조차도 자신이 불러놓고도 놀랍다는 표정이다. 한껏 과장 된 얼굴로 성적표를 내밀자, 그것을 받아든 소년의 얼굴에 보기 드물게 웃음이 피어났다. 준수한 얼굴로 환히 웃자,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까지도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기획사에서 찾아올만한 얼굴이라고.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상실이의 이번 평균은 팔십이 점이다. 평균 오십으로 반 평균을 깎아먹던 녀석이 이렇게 노력하다니. 담임으로서 자랑스럽구나.”

와 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상실도 이번만큼은 관대히 놔두었다. 생각지도 못한 고득점이다. 남에게는 그냥 그런 점수일 수도 있지만, 하위권의 톱을 놓고 경쟁하던 그에게 있어선 상상도 못했던 점수. 이 성적표를 보고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기꺼웠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고, 이후로도 호명이 계속되었다. 물론 불려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다를 바 없었다.

곧 모든 성적표를 나눠준 담임이 홀가분하게 말했다.

“금요일까지 부모님께 사인 받아오도록.”


작가의말

간만입니다. 이 글에선 드물게 밝은 분위기로군요.
연재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요즘엔 게임 안 하고 있습니다. 게임 탓이 아니라 글이 잘 안 풀려서...가 아니라, 이실직고 하자면 게임을 또 했습니다. 대항해시대3라고, 무역과 탐험이 주종인 척 하면서 실상은 포커 게임인 녀석이죠. 시작하자마자 모자란 자본금을 포커로 만 오천까지 끌어올려서 신나게 무역하고, 해적선을 털다보니 시간이 훅 가더군요. 그러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감상란의 후니칸 님의 글을 본 것이 기점이 되어서, 조금은 글을 쓰는데 자극이 될까 싶어 연참대전도 참가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완주한 경력은 없고, 대부분 초반에 폭풍 같이 탈락했으니, 큰 기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반응이 좋으면 또 모르죠. 완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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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권 - 앞면 +3 13.03.20 1,244 1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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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0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5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69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29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2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0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4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4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3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1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3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4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7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7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0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3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7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6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5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2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4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3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6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3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1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1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2 59 10쪽
» 심화 3 +35 12.03.10 5,869 73 8쪽
21 심화 2 +36 12.03.05 6,628 5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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