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6
운동장엔 먹은 점심을 소화시키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골대를 사이에 두고, 공을 쫓아다니며 기를 쓰는 소년들의 사이에 상실은 없었다. 그를 알아본 체육교사의 배려로 스탠드에 앉아있게 된 탓이다. 본래의 그는 체력도 나쁘고, 운동에도 잘 끼지 못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상실로서도 불만은 없었다. 운동하는데 끼어들어봤자 개미들이 툭탁거리는데 끼어든 꼴과 다르지 않았으니.
한쪽에선 여자아이들과 섞여 농구나 피구를 하는 무리도 보였고, 체육선생의 눈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든 아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점심시간 때, 심부름꾼으로 찾아왔던 아이가 아까 봤던 남학생에게 불려가는 모습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고, 맛있는 냄새라곤 찾기도 힘든 학교에 붙들려 있음이 짜증나려하는데, 계속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던 소녀들 중 하나가 다가왔다.
장 지현이란 이름의, 예쁘장한 얼굴에 몸도 늘씬해서 인기가 좋은 아이였다. 발육도 그 나이 대 치곤 괜찮았다. 살짝 떨어진 곳에 앉은 그녀가 고개를 모로 돌려 상실의 얼굴을 뜯어본다.
“너 대단하더라?”
상실은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관없는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 생글생글 웃으며 답이 오지 않는 질문을 계속했다.
“안 나오는 동안 뭐했어?”
“어디서 운동 했니? 막 애들이 날아가던데.”
“여드름은 어떻게 없앤 거야? 가는 피부과 있으면 좀 알려주라.”
“수업 잘 따라올 수 있어? 계속 들은 나도 어렵던데.”
질리지도 않고 이어지는 질문에 무시로 일관하던 상실이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눈길이나마 돌리는데 성공했단 사실에 소녀는 쾌재를 불렀다. 전에야 나약하고, 얼굴도 지저분해서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에 굉장히 관심이 생기고 있었다. 관심 탓인지 평소라면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무시도,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그녀를 향해 창백한 입술이 벌어졌다.
“꺼져.”
“어? 응? 뭐라고?”
상상도 못했던 말에 그녀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지현은 반에서 자신이 제일 예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교에서 꼽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자신이 있었다. 몸매는 어떤가. 아직 어려서 가슴은 조금 작지만, 늘씬하고 비율이 좋아서 남자애들이 대화 한 번 하려고 안달이었다. 사귀어달라는 유치한 편지도 여러 장 받았던 몸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 상관없이 상실은 독설을 토해냈다.
“눈치가 없더라니, 귀도 먹었냐? 꺼지라고.”
소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너, 너, 너…….”
머릿속으로 감히, 감히 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아무리 얼굴이 멀끔해졌더라도, 힘이 세졌더라도 상실은 왕따나 당하던 남자애였다. 얼굴도 변변치 않았고, 몸이 좋은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과분할 정도로 예뻤다. 그런 자신이 호의를 보이는데, 감히 거절해? 너 따위가? 감히 이 상실 따위가?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해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지현이 벌떡 일어났다.
“너무하잖아!”
빽 외치자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소녀는 다른 아이들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뭐가?”
상실이 퉁명스레 말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
“네가 내 뭔데?”
“뭐라고?”
소년의 말을 소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남자아이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은 결단코 없었다.
상실은 새카만 눈동자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네가 뭐라도 되냐? 네가 나에게 뭘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야?”
가뜩이나 배도 고파오는데, 맛도 없어 보이는 계집애가 꺅꺅거리자 매우 거슬렸다.
“네가 나랑 아는 사이던가? 아니면 뭘 준 적 있나? 대화 한 번 나눈 적 있었어?”
“아, 아니.”
물론 그런 적은 없었다.
“하, 하지만…….”
“그러니까 꺼지라고.”
상실은 지현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렸다.
“친교 따위 나눌 생각도 없으니까.”
그에게 있어 인간이란 음식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 지현은 맛도 없고, 약해빠져서 비명도 오래 못 지를 계집애다.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우정이나, 이성으로서의 사랑 따위 생길 리 만무하다.
예전이라면 황송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었겠지만, 영혼을 넘긴 순간부터 자신에게 그런 것이 생길 일이 없어졌음은 알고 있었다. 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일었던 성욕도 일지 않았다. 굳이 일어난다면 첫 식사를 하던 때 느꼈던 식욕과 흥분에 섞였다고 봄이 옳았다. 그에게 있어 여자의 가치라곤, 앞으로 먹을 음식의 생산자 외엔 존재치 않았다.
엄마는 제외다. 상실에게 엄마는 엄마지, 여자가 아니니까.
대대적인 망신에 말도 못하고 창백하게 질려있던 지현은 질끈 입술을 깨물며 돌아갔다. 속으로 몇 번이나 가만두지 않겠다고 되뇌면서.
“눈알 안돌려?”
자신과 지현에게 쏟아진 시선에 으름장을 놓아 흩어버린 상실은 오늘 학교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중간에 나갔다 올 능력은 있지만 엄마와 약속했었다. 학교를 잘 다니겠다고. 살아오며 필요하다 생각했던 대부분의 가치가 무너져버린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뿐이었다. 잠깐 나갔다 온다고 엄마가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사소한 걸로 속이기는 싫었다.
“지루해.”
그에게만은 지루하기 그지없던 체육시간이 끝나고, 마지막 수업까지 끝마쳐 종례시간이 되었다. 담임은 늘 하던 말과 함께, 상실에게 학교 잘 나오라고 하고, 아이들에게 상실과 잘 어울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담임까지 나가자 다들 집으로 돌아갈 준비에 부산한데, 상실이 교실 전체를 향해 말했다.
“어이.”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아무도 무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교실의 권력자인데다, 그의 음성에서 왠지 함부로 넘겨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실은 자신의 책상을 가리켰다.
“낙서 한 놈들은 이거 다 지우고 가라.”
가방을 등에 매며 덧붙였다.
“내일 와서 보겠어.”
그가 유유히 밖으로 나가자 낙서를 해놓았던 아이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칼로 책상을 깊게 파놓아, 울상이 된 정훈도 끼어있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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