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1
아침이 되었다.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한 상실은 아침을 먹은 분량의 밥과 반찬을 변기에 처리해버리고, 학교로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선물을 풀기 전의 아이처럼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던 소년은 여덟시가 좀 넘은 시점에 가방을 챙겼다.
등교 길은 전쟁과 같았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뒤섞인 버스는 콩나물시루였고, 당연히 앉을 자리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상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집을 나선 그는 불쾌한 볕을 피해 그림자에 숨어들었다. 볕을 받는다고 약해지거나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불쾌했다. 오물에서 뒹구는 것처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림자에 녹아든 그는 빠르게 그림자와 그림자의 사이를 뛰어넘었다. 아무도 시커먼 뭔가가 휙휙 지나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뭐가 지나갔나, 돌아볼 때쯤엔 상실의 위치는 한참이나 멀어진 후다.
버스를 타고도 삼십 분은 걸렸을 거리를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주파한 그는 학교의 구석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기대감 어린 가벼운 걸음으로 교실을 찾아가는 동안 그를 알아본 아이들이 수근 거렸다.
“쟤가 걔야? 육 반의 왕따?”
“학교 안 나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며?”
“선생들도 포기한 눈치던데.”
“그런데, 왜 나왔대?”
“그러게. 근데, 기분 좋아 보이네?”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작게 소곤대는 수다들을 들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다. 뭘 알겠는가. 저 어리고 나약한 것들이.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저런 미숙한 인간과 자신은 달랐다. 아니, 모든 인간보다 우월하다.
교실 문을 열며 그가 등장하자 모두가 놀란 시선이다. 당황과 의아함이 섞인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소년은 당당히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교실 구석에 위치한, 절대 햇볕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
책상에 앉으니, 낙서가 보였다.
죽어라, 병신. 비겁한 새끼. 평생 그렇게 살아라. 찐따. 여드름 괴물. 찌질이 상실, 여기 살다 사라짐.
욕설과 함께 상실을 여드름 가득한 얼굴에 마르고 배나오게 그린 그림도 있었다. 소년은 그것을 보며 픽 웃었다. 아주 좋은 기분이었다. 그에게 학교란 이런 곳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두가 적. 누구와 친교를 맺을 이유도, 필요도, 방법도 없는 감옥 같은 장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누구에게 감옥이 될지는 차후 알게 되겠지.
오랜만에 등교한 그로인해 교실 전체가 술렁였다. 어떻게 대할지 감이 안 잡힌 때문이었다. 이전에야 반 전체에서 무시하고 따돌려도 무방한 호구였지만, 지금은 한 달이 넘게 등교거부하다 나온 몸이다. 잘못 건드렸다가 선생님께 불려 가면 고약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 병신 하나 오면 온 거지. 왜 이렇게 시끄럽냐. 연예인이야?”
누군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작은 웃음이 퍼졌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바뀐 일은 없었다. 이전처럼 무시하면 될 일이다. 익숙해지면 또 다시 괴롭히고 따돌리면 그만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만만하니까, 장난삼아, 같이 있기 싫으니까, 나섰다가 같이 따돌림 당하기 싫으니까, 괴롭히고 싶으니까.
모두가 장난이란 한 마디, 신경 쓰지도 않았다는 말로 설명 가능한 이유였다. 가끔 누가 괴롭힘 때문에 죽었다는 기사도 났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에 관심 없었다. 설령 그런 기사를 보더라도 설마 죽을까 생각했다. 상실에 대한 감상은 더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 상실이란 인간은 자살할 용기도 없는 팔푼이다.
사실 용기와 자살은 전혀 상관없다. 자살은 용감히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못 견뎌 도망치는 자의 최종 선택지다. 스스로 상처받기 싫은 극단적인 자기애의 발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까진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기만 아니면 아무래도 됐다.
교실에 번져가는 조롱 섞인 웃음에 상실은 처음 말한 대상을 바라봤다. 장난기 많아 보이는 소년이다. 나서고 주목받기 좋아하는 성격에, 힘 있는 녀석과 어울려, 그 힘이 자기 힘인 것으로 착각하길 즐긴다.
성 정훈이란 이름의 소년은 자신의 말에 분위기가 바뀐 것을 즐기며, 자신을 향한 상실의 시선을 부라린 눈으로 마주 바라봤다.
네까짓 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그간 보아온 상실을 떠올려 보면, 어떻게 대해도 상관없는 멍청이다. 욕하고, 괴롭혀도 그저 바닥만 바라보는 찌질이였다. 눈만 부라려도 조용히 눈 돌리는 겁쟁이였다. 그런데, 저 겁쟁이가 감히 시선을 마주했다. 눈도 돌리지 않고, 입가엔 묘한 미소까지 띠며 계속 눈을 마주쳤다.
자신을 무시했단 생각에 발끈하려던 정훈은 다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섭다. 새카만 눈으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상실이 두려워졌다. 금방이라도 풀려날, 헐거운 목줄에 묶여 사납게 짖어대는 개와 마주한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서웠다. 경험한 적 없는, 이를테면 맹수 앞에 홀로 선 느낌이었다.
바짝 얼어 있던 소년은 갑자기 목덜미에 느껴지는 차가운 손길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으헉!”
벌떡 일어나는 그에게 시선이 몰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뒷자리에 앉은 녀석은 자고 있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옆에 앉은 소년이 뭐가 어쨌냐는 표정으로 힐끔 보더니,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혹해하며 자리에 앉은 그는 힐끔 상실을 바라봤다. 상실은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조심스레 관찰하던 그는 상실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여드름이 더는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었다. 뭔가 달랐다. 이전까지의 만만한 분위기가 아니라,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상실이 고개 돌리자, 정훈은 급히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