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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50,041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2.06.20 22:22
조회
2,098
추천
20
글자
8쪽

3권 7

DUMMY

“짜증나, 짜증나.”

한적한 골목에 주저앉은 괴물은 말하는 내용만큼이나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흐으으.”

밑에 깔린 여자가 바들바들 떨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괴물이 그녀의 뒤통수를 때렸다.

“시끄러.”

여자는 안구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지만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떨리는 몸은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앞에 잔혹하게 사지가 절개 된 시체가 있는데 공포에 질리지 않는다면 그건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여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괴물도 그건 아는지, 혼자 생각에 골몰한 탓인지 떤다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괴물이 중얼거리며 아쉬워했다.

부산에서 경기도의 외곽까지 오는 건 쉬웠다. 무서울 것도, 길을 막는 것도 없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하지만 정작 목적지를 앞에 두니 조금은 두렵다. 잘못 들어가면 그대로 형의 감시에 걸려서 몸이 육편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코앞까지 와서 주저하고 있자니 짜증이 난다.

잔뜩 골이 나있던 터라 밑에서 연신 몸을 떠는 인간의 행동에도 짜증이 났다.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 고개를 젖힌 괴물은 시선을 마주쳤다. 여자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파르르 떨뿐이다. 붉어진 눈에 습막이 어렸다.

“의자가 왜 떨어? 의자가 왜 울어? 너는 의자가 아니야? 대답해봐. 너는 의자가 아니야?”

“의, 의자 맞아요. 맞습니다, 맞으니까 살려주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그건 괴물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그녀를 맞이했다.

“말해? 말했어? 의자가 말을 해? 너는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을 했으니 혼나야지.”

말도 안 돼는 억지를 부린 괴물은 다급히 고개를 흔드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마구 흔들었다.

“꺄악!”

“무슨 벌을 내릴까? 의자한테 무슨 벌을 내려야 좋겠어? 말해봐. 아, 의자라서 말을 못하지? 어? 방금 말했는데? 상관없나? 어쨌거나 벌을 줄 거야. 또 소리를 내면 또 벌을 줄 거야. 의자는 말을 못해야 되거든.”

기분 나쁘게 히죽히죽 웃는 괴물의 눈이 기괴한 열망에 젖어 번득인다.

“그래, 다리를 하나 분질러야지. 그럼 너도 반성하겠지? 응? 그래? 아니야?”

여자는 차마 말은 못하고 눈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 말했다.

“의자는 움직이지 않아.”

“꺄아아아앗!”

검은 뭔가가 움직인 순간 팔이 하나 잘려나간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피에 여자는 고통보다 충격에 휩싸여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리 멀지 않은 골목 끝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비명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는 여자 위에서 재주 좋게 버틴 괴물은 눈을 감고 음악이라도 듣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잔혹한 선고다.

“의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니까.”

발을 들어 남은 팔을 내려찍자 와드득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파열음이 들렸다. 그 끔찍한 고통에 여자는 찢어질 듯 입을 벌려 파들파들 떨었다. 고통에 겨워 비명도 내지 못하는 그녀를 즐거이 보고 있던 괴물이 갑자기 고개를 틀었다. 동쪽에서 어렴풋이 힘의 파동이 느껴진다.

멍청히 입을 벌리고 있던 그는 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만 낄낄거리며 박수를 쳐댔다.

“또 생겼다, 또 생겼어. 형이 또 늘었구나! 어? 아니지. 내가 먼저 나왔으니까 내가 형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바로 입맛을 다신다. 붉은 혀로 입술을 핥는다.

“둘째 형은 큰형보다 약한 거 같은데? 나도 먹을 수 있나?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먹고 싶다. 먹고 싶어. 한 조각도 남김없이 다 씹어 삼키고 싶어.”

“끼야아아아! 아악, 꺄하악! 살려, 사람 살려! 엄마, 엄마!”

뒤늦게 비명을 지르는 여자에게 흥미가 식어버린 괴물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의자네.”

귀찮다는 듯 손을 뻗자 퍽 소리와 함께 비명이 멎는다. 본래 형상을 알아 볼 수 없이 박살 난 머리통의 파편이 여기저기 튀어나갔다. 몸뚱이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사지를 뒤틀며 발발 떨자, 괴물이 벌떡 일어나 척추를 짓밟았다. 뼈가 뒤틀리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밟힌 허리가 움푹 들어간다.

사체에서 튀어나온 영혼을 간식 먹듯 아작아작 씹어 삼킨 괴물은 서쪽과 동쪽을 번갈아보며 궁리했다.

“어쩌지? 큰형도 작은형을 알았으려나? 내가 먹으러 가도 될까?”

잠시 고심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작은 형도 형은 형이니까 세겠지? 안 되겠다. 기다려봐야지. 형이 가면 그때 잠깐 들어가면 되겠지. 아니면 작은 형이 올 거야. 어차피 형들은 싸울 거잖아? 나는 기다릴래.”

스스로 내린 결론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난 그때 늙은 여자를 찾아봐야겠다. 찾아서 큰형이 오기 전에 먹어버려야지. 아주 맛있을 거야. 맛없기만 해봐.”

괴물은 정말 기대 된다는 듯 손을 비볐다.


번화가의 높은 빌딩 꼭대기에 앉은 소년은 밑에 보이는 인파를 유심히 구경했다. 서로를 지나쳐가며 어딘가에 있을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꼬락서니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노라니 개미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발을 들어 한 번 힘껏 밟으면 놀라서 사방으로 달아날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하루살이들.”

비웃음을 머금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선다. 옷자락이 건물풍에 휘말려 격렬히 펄럭거렸다. 소년은 그에 아랑곳없이 우뚝 섰다. 옥상에 선 사람이 아니라, 옥상에 설치 된 동상처럼 흔들림 없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본 그는 아직 한창인 빛에도 불구하고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라도 쓴 듯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피부가 따끔거리는 불쾌감과 눈이 멀어버릴 듯 한 강렬한 빛에도 불구, 그의 얼굴에서 음험한 웃음이 피어난다.

“정했다.”

확고히 선언한 그는 다시 고개를 내려 하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살아가느라 아우성치고 있다. 과거 위대했던 대일본의 위상도, 민족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데 집중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민들아.”

소년은 어리석은 백성들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했다. 평범한 이들은 높은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이득에만 급급하다. 저런 것들에게 보다 높은 이상을 보여주려면 그들을 휘어잡아 이끌어야했다. 그것이 이상향이건, 이득이건, 공포이건.

“내가 이끌어주겠다.”

과거 찬란했던 시절을 일본에 다시 내려주겠다. 동북아시아를 호령하고, 서양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대제국을 건설해주마. 왜 일본이, 일본인이 신의 선택을 받은 신민인지, 새카맣게 덧칠 된 기억을 파헤쳐 상기시켜주겠노라.

“나는 카미다.”

신이라 자칭한 그는 무지몽매한 신민들을 한 번 더 내려 보다 몸을 돌렸다.

생각은 정해졌다. 나는 신이 되어 너희를 이끌 것이니, 우매한 너희는 성심을 다해 나를 섬기라. 다만, 신의 이름으로 약속하노니 눈을 뜨지 못하는 우둔한 종자들은 파멸하리라.

나는 너희들의 신이 되겠다. 원하지 않더라도.

카미의 몸이 검게 물들었다. 빛살 속에 이질적으로 서있던 검은 형상이 꺼지듯 사라졌다.


작가의말

처음 글을 쓸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으로 지역을 한정 지을 것인가,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힐 것인가. 전자는 편하지만 아무래도 재미가 없고, 후자는 재미는 있겠지만 제 능력으로 가능할까 싶었지요. 그리고 결국은 내질렀습니다. 기왕에 글 쓰는 거, 한계에 부닥치더라도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국에서 있을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점점 더 이야기의 판이 커질 겁니다. 뭐, 나중에 나온 결과가 기대만 못해서 뻥포를 쏴댔다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있는 힘껏 달려보겠습니다.
후회는 나동그라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시도하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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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6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6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3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100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 3권 7 +11 12.06.20 2,099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5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3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5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5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5 6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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