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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50,012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3.02.19 03:32
조회
1,070
추천
14
글자
8쪽

4권 - 탐문 9

DUMMY

“오랜만이야, 올빼미.”

만학도가 걸음을 내딛자 앞에 서 있던 두 남자가 황급히 물러났다. 문제집이나 풀고 있을 때와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피부를 찌르는 섬뜩함에 뒷걸음질 치는 이들을 무시하고, 강섭의 앞에 선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이럼 되나?”

만학도의 외형이 일렁이며 변화한다. 찰흙공예처럼 키가 늘어나고 근육이 불거지는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실을 보며 강섭이 경악했다. 제비와 잠옷 사내가 약속이나 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

“맙소사.”

껑충 늘어난 키에 맞춰서 옷의 길이까지 조정되자 소년은 그제야 마음에 드는 듯 자신의 몸을 훑으며 끄덕였다.

“역시 이게 그나마 편해.”

“정말 괴물이로군.”

강섭의 말에 상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괴물이라 부르고 있잖아? 뭐,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왜 날 찾았지.”

나직이 묻는 입가에 가학적인 웃음이 걸렸다.

“다음은 죽는다 했을 텐데.”

강섭은 파리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냄새가 입속 가득 퍼져나갔다.

“나도 당신을 찾을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카미 때문이다.”

“아, 그 녀석 말이군. 하기야 요란하게도 저질렀지. 그럼 날 찾으라고 지시한 놈은 이득수겠지?”

뭐라 말해야 할까 생각한 남자는 다 틀렸다 여기고 끄덕였다. 이렇게 명백한 상황에선 아무것도 소용없었다. 상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미친놈들이야. 너나 그 인간이나 둘 다 미쳤군. 제 한 목숨이나 건사할 것이지 제정신이 아니야. 왜, 시답잖은 애국심이라도 생겼나보지?”

노골적인 비웃음에도 강섭은 아무 말도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으니까. 다만 입술을 꾹 다물고 노려 볼 뿐이었다. 소년이 그를 마주하며 히죽거렸다.

“그래서 어쩔 건데?”

“뭐?”

“찾았잖아. 도대체 날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앞에 있으니 말이나 해보시지. 내게 뭘 부탁할 셈이었지?”

생각지 못한 질문에 강섭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 괴물의 힘이라면 뭐든 가능했다. 일본의 경우만 봐도 카미 단독으로 국가를 전복시키고 군대를 몰살시켰다. 그런 막대한 힘을 지닌 대상에게 뭘 요구했을까? 쿠데타? 아니다. 그가 본 이득수는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럴 위인이었더라면 애초에 이 괴물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으리라.

“……카미를 죽여 달라 했겠지.”

상실이 폭소했다. 과장 되게, 미친 듯 웃어댄 그가 뚝 웃음을 그치더니, 강섭의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아주 재밌는 개그였어. 내게 눈물이 있었다면 분명 눈물도 흘렸을 거야.”

모멸감에도 불구하고, 강섭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상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주지.”

“뭐?”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었단 듯 고개를 치켜드는 그에게 소년이 손을 내밀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 상실은 사무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가로는 뭘 줄 건가? 내가 설마 무상으로 해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

강섭은 맹렬히 머릴 굴렸다. 이 괴물에게 뭐가 필요할까. 돈? 명예? 권력? 아니다. 그런 것 쯤 카미처럼 들고 일어난다면 얼마든 강탈할 수 있었다. 그런 걸 염두에 둘 존재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뭐가 필요할까.

문득 그의 모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인외의 괴물이 되었음에도 모델이 되고, 아파트에 입주하고,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뭘까. 이 괴물이 소중하게 여기는 게 뭐일까. 괴이한 행동의 중심이 이정순을 끼워 넣으면 모든 게 말이 된다. 그 여인은 분명 이놈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다 포기하고 있던 남자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네 어머니에 관한 걸 도와주겠다.”

순간 소년의 얼굴에 명백한 분노가 나타났다.

“감히!”

소년이 강섭의 얼굴을 걷어찼다. 무지막지한 힘에 펄쩍 튀어 올라 떨어진다. 바닥을 구르며 핏물 섞인 침을 뱉어내는 그에게 성큼 다가서서 목을 잡아 들어올린다. 솜인형처럼 가뿐하게 들어 올린 상실이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네깟 놈이 누구를 뭐? 내 어머니를 입에 담아? 죽고 싶은 게로구나.”

강섭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집어던진다. 홱 날아간 몸뚱이가 벽에 걸린 액자를 박살내며 떨어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조각과 찢겨진 그림이 쏟아졌다.

“커헉, 컥.”

기침을 토하는 그의 앞으로 다가온 상실의 손이 시커멓게 물든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칼날처럼 변화했다. 얼음처럼 굳어있던 제비와 잠옷 사내가 기겁해서 현관으로 도망치려다 신영에게 잡혀왔다. 뱀처럼 길게 늘어난 두 팔에 꼼짝도 못하게 묶인 둘은 입이 막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가만히 강섭을 노려보던 상실이 멀쩡한 왼손을 뻗어 멱살을 틀어쥐었다. 코앞으로 그를 끌어와 으르렁거린다.

“다신 내 어머니를 언급하지 마라. 죽는 게 끝이 아니란 걸 알게 해주겠어.”

강섭이 고갤 돌려 피를 뱉었다.

“그럼 뭘 줘야하지? 사람도 아닌 네놈에게 내가 뭘 줄 수 있을까.”

“하나 있지.”

강섭을 놔준 소년이 오른손을 본래 형상으로 되돌려 그의 머리를 가리켰다.

“네 영혼.”

“……정말 악마인가?”

“아무렴 어때. 자아, 계약을 하자. 네 소원을 들어주지. 힘도 주겠다. 서푼 값어치도 없는 네 영과 육을 내게 바치면 카미를 죽여주마.”

“거절하면 죽이겠지?”

“물론.”

강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뒤 다시 눈을 떴을 땐 결심이 섰는지 비장한 표정이었다.

“하겠어.”

“환영한다, 노예야.”

상실의 손이 가슴을 꿰뚫었다. 고통과 의아함에 강섭이 눈을 부릅뜬 순간 영롱한 빛을 흩뿌리는 영혼이 뽑혀 나온다.

“아, 안 돼.”

허우적거리는 그를 무시하며 영혼을 삼킨 소년이 만족스런 얼굴로 재차 가슴에 손을 밀어 넣었다. 몸의 중심에서 시작하여 전신을 침탈해가는 검은 무언가를 느낀 강섭이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이윽고 상실이 손을 뽑아내자 남자의 전신이 검게 물들었다.

“도시락 내와.”

신영이 그의 명을 따라 강섭 앞에 제비를 던져놓는다. 나동그라진 남자가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보곤 비명을 질렀다.

“우아악! 이게 뭐야, 살려줘! 나, 나도 계약 할게. 하면 되잖아!”

“넌 그다지 쓸모없어.”

상실이 냉정하게 말하자마자 그림자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목구비가 없는 검은 덩어리와 얼굴을 마주한 제비가 다급히 뒤로 기었다. 그림자의 입가에 균열이 일고, 그 틈으로 칼날 같은 새하얀 이들이 보였다.

“우, 우앗!”

벌떡 일어나려는 그의 다리를 잡아챈 그림자가 손아귀에 힘을 준다.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털썩 쓰러져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아무도 돕는 이가 없었다. 두 괴물은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고, 두 인간은 비명도 못 지르고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아악! 흐아, 캬아아!”

사지가 절단 나고 피가 튀긴다. 찢겨진 살 조각이 나뒹굴었다. 곧 비명도 멎었다. 제비의 머리를 커다란 입으로 덥썩 깨문 꼴을 보며 신영이 중얼거렸다.

“추잡스럽네요.”

“너도 별 다르지 않았어.”

핀잔에도 신영은 실실 웃기만 했다.



작가의말

예상대로만 흘러가면 안 봤겠죠. 여튼 재밌으시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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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권 - 탐문 12 +3 13.02.21 1,418 14 11쪽
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2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7 12 7쪽
» 4권 - 탐문 9 +5 13.02.19 1,071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2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3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5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5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2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8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5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8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4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3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5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4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4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3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2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3 59 10쪽
22 심화 3 +35 12.03.10 5,870 73 8쪽
21 심화 2 +36 12.03.05 6,629 59 9쪽
20 심화 1 +44 12.03.01 6,837 90 7쪽
19 악의 10 +42 12.02.29 6,517 63 7쪽
18 악의 9 +19 12.02.29 6,065 64 6쪽
17 악의 8 +20 12.02.29 6,582 60 8쪽
16 악의 7 +43 12.02.22 8,194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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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외출 3 +19 11.12.30 12,034 6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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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약 1 +15 11.12.24 24,652 7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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