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 탐문 3
의외로 검소한 내부는 평범한 중소기업의 사장실과 같았다. 아주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물건들로 이루어진 실내는 방의 주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썩 반갑진 않은 표정으로 마주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강섭은 이게 근방에 세를 떨치는 라이온파의 두목인지 의심했다.
얼굴에 기름기가 보이지 않고, 바짝 말라서 초췌한데다 눈 밑에 늘어진 다크서클을 보노라면 정말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사장이라 여겨도 될 법하다. 그 와중에도 번뜩이는 눈동자나 커다란 덩치, 삭막한 인상을 제외한다면.
“알아 볼 게 있는데.”
연장자를 상대함에도 강섭의 어투에 존중은 들어있지 않았다. 상대 역시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
“백태환은 어디 있나?”
“그거 물어보려고 왔습니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묻는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건 비웃음이다. 댁이 더 잘 알지 않겠냐는 표정이었으나 강섭은 그 속에 감춰진 긴장감을 읽었다. 뭔가 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시다시피 실종 됐습니다. 불미스런 일이 있었지요.”
조폭이라도 한 조직의 수장이라 그런지 경찰을 앞에 두고도 여유롭게 의자에 등을 기댄 남자는 여유롭게 손을 으쓱인다.
“설마하니 제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건 다 조사를 마쳤습니다만.”
털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올 거라는 듯 픽 웃는 얼굴에는 어딘지 두려움이 묻어난다. 세세히 신경 쓰지 않는다면, 또 괴물에 대한 일을 몰랐다면 일상에 찌든 중년의 흔한 표정이다.
“오룡파 일은 나도 잘 알고 있지. 그거 말고.”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추켜세우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정말 죽었을 거라 생각하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일은 형님들이 더 잘 알 거 아닙니까?”
아니꼬움을 숨기지 않고 형님을 강조한 남자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니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죠. 설마하니 바지사장으로 보이쇼? 내가?”
“그럼, 아니야?”
강섭의 비웃음에 남자가 눈을 부릅뜬다.
“지금 나 긁으러 왔구만?”
으르렁거리는 남자의 두 눈이 번들거린다. 여차하면 경찰이고 나발이고 없다는 듯 살벌한 시선. 여간한 형사였다면 이런 시선에 몸을 사릴 법도 했으나, 강섭은 여간한 사람이 아니다. 괴물과 마주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사람의 시선쯤은 같잖은 수준이다.
“돈 버는 대로 다 갖다 바치는데, 바지사장이 아니면 또 뭐야? 시다바리?”
“이…….”
울컥하던 남자의 눈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한숨을 내쉬며 강섭에게 손을 내젓는다.
“뭘 의심하는지 몰라도 그런 거 아뇨. 영 뭣하면 조사해 보시던가.”
꿀릴 거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방금 전과는 대비되는 비웃음이 걸려있다. 네까짓 게 감당할 수나 있냐는 표정이다. 그게 뭘 뜻하는지 아는 강섭도 일순 굳은 얼굴이 되었다.
남자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우리 솔직해져 봅시다. 뭣 땜에 온 겁니까? 진짜 백태환이 궁금해서 온 건 아닐 테고. 형편이 나쁘쇼?”
“이 새끼가!”
은근이 묻던 남자는 갑작스런 강섭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았다.
“그럼 뭐요? 여기 근무하는 것도 아닌 양반이 갑자기 나를 찾아오고.”
인상을 찡그린 강섭이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어찌 반응할 시간도 없는 움직임에 전성기가 지난 두목은 몸을 뒤로 빼지도 못하고 강섭의 코앞으로 끌려갔다.
“이 짭새 새끼가, 해보자는…….”
화를 터트리려는 순간 강섭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그 놈 알지?”
“무슨 개소리야?”
멱살을 잡은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강섭은 더욱 단단하게 틀어쥐었다.
“잘 들어 깡패 새끼야. 그 놈 알잖아?”
“뭐, 이 새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백태환이 말하냐?”
강섭이 고개를 저었다.
“괴물.”
남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 몸을 떨었다. 강섭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네가 있는 거 없는 거 다 갖다 바치는 괴물 새끼 말이야.”
“무슨, 무슨 소리요?”
“뻔히 다 알아, 그게 여기서도 몇 놈 잡아먹었지?”
확신에 찬 눈초리에 남자는 시선을 돌렸다.
“뭔 말인지 나는…….”
“왜? 너도 잡아 먹힐까봐? 응? 무섭냐? 경찰도 안 무서워하는 조폭두목이 그건 무섭냐?”
남자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몰라.”
“몰라?”
강섭이 코웃음쳤다.
“모르긴 뭘 몰라, 이 새꺄. 다 알고 왔다니까. 봤지? 그 새끼 봤을 거 아냐.”
멱살을 잡고 흔들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겠냐? 네 대가리에 똥만 찬 게 아니면 생각을 해봐. 나와바리가 넓어지고 두목이 뒈졌는데 주먹 하나 믿고 사는 깡패 새끼들이 권력 다툼도 하지 않더니 네가 두목이 됐어. 반발하던 거 같던 새끼들도 조용히 사라졌고. 네가 그걸 다 했다고? 그럼 백태환이 사라진 것도 네가 했겠네? 그것도 망한 오룡파 잔당들을 써서?”
강섭이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던 걸 확 밀쳐버린다. 남자가 쓰러지듯 의자에 몸을 기댄다.
“그럴 리가 없지. 안 그래? 네가 그럴 새끼였으면 진작 백태환이 담가버리고 집어삼켰겠지. 그럼 누가 그랬을까? 누가 백태환을 사라지게 하고, 오룡파 놈들 다 죽이고, 너 그 자리에 앉혀놓고 딴 새끼들 다 담가버렸을까? 그게 누굴 거 같아?”
남자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돈을 다 갖다 바치고 조폭두목 같잖게 사는 이유가 뭘까? 너희 깡패 놈들이 다 하려는 사치에 계집질도 못하고 얌전히 돈만 쌓아두는 이유가 뭘 거 같아? 통장에 잔뜩 쌓아 둔 돈을 십 원 한 푼 건드리지도 않는 이유가 뭐 같을 거 같냐고, 이 새끼야!”
“그만합시다.”
남자가 한숨처럼 말하더니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붙여 연기를 뿜어낸다. 한동안 담배를 펴대던 그가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껐다.
“보소, 형님.”
천장을 힐끗 쳐다본 남자가 진지하게 물었다.
“죽고 싶으쇼?”
내용은 협박이나 어투는 담담하다.
“댁은 죽으려고 용을 쓰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거든. 나는 좆같아도 살고 싶걸랑. 거 씨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나는 가늘고 길게 살고 싶소. 그리고 말야.”
음 하고 말을 끌던 그가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죽어도 곱게 죽고 싶다고. 댁이 봤어? 개돼지만도 못하게 사람 죽는 꼴이 어떤 건지?”
“그놈 알지?”
“말 못해.”
연기를 빨아들이며 고개를 젓는다. 남자가 희뿌연 담배 연기를 뱉었다.
“더는 캐묻지 마쇼. 댁 건드리는 건 나도 피하고 싶은데, 나도 살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좋게 좋게 갑시다, 우리.”
더는 양보 할 수 없다는 듯 진지하게 말하는 그에게 강섭은 근처의 펜과 종이를 꺼내들고는 연도와 날짜를 써넣었다. 그걸 본 두목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날 누군가 죽었지?”
강섭의 물음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 돌리고 뻐끔뻐끔 연기를 뱉고 마시는 모습에 강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간다.”
“그러시던가.”
시큰둥하게 답한 남자는 강섭이 문고리를 잡을 때 넌지시 말했다.
“댁은 오래 살지 못할 거요.”
“나도 알아.”
강섭이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남자는 필터를 질겅질겅 씹었다.
“미친 새끼.”
- 작가의말
나쁜 일은 몰아서 온다고, 맘 잡고 쓰려니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후우. 여튼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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