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밤 2
회색 승합차 한 대가 도로를 가로지른다. 거리는 어둡다. 간간이 마주 오는 차량들의 헤드라이트를 제외하고, 한적한 도로에는 승합차의 헤드라이트만이 외로이 앞을 비출 뿐이다.
“형님, 어디로 갈까요?”
운전하고 있던 청년이 묻는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떨린다. 그의 물음에 뒷좌석에 앉아있던 사내가 눈을 감은 상대로 답한다.
“남쪽으로 가자.”
기운 없는 답에 운전자는 입을 다물었다. 남쪽이라 듣긴 했지만, 정확히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그로서도 모르겠다. 이미 죽어버린 두목에 대한 의리로 복수를 하겠노라 따라나설 때는 뭔가가 가슴에서 끓어올랐다. 하지만 복수를 마친 지금은 허망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두목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을 라이온파를 피해 다니고, 살인을 저질렀으니 경찰도 피해 다녀야 한다. 남으로 간다지만 과연 어디로, 언제까지 도망을 다녀야할지도 모르겠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조직이 접수 당했을 때, 자신도 항복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정면에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미친 새끼!”
청년이 비명처럼 외치며 핸들을 틀었다. 급격한 선회에 탑승자들이 욕설을 토해낸다.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한 운전자는 순간 차도에 서있던 미친놈과 눈을 마주쳤다.
분명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섬뜩한 감각과 함께 소름이 끼친다. 공황에 빠져 엑셀을 밟는 순간 태환이 손을 들어올린다. 동시에 시커먼 뭔가가 차량의 측면에서 솟아올랐다.
충격과 함께 무거운 승합차가 튀어 오른다. 차량에 들이받히기라도 한 듯 격렬한 충격에 떠오른 차체가 정신없이 도로를 굴렀다.
“으아악!”
내부에서 연신 비명이 들리고,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깨고 가드레일이 튀어나와 창가에 앉은 사람의 머리를 뭉개버린다. 내부에 피가 튀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쓸 수 없었다.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던 차량은 도로 옆의 논두렁에 처박히고서야 멈춰 섰다. 여전히 주변에 인적은 없다. 간간히 보이던 차량들도 보이지 않는다.
“흐으, 흐으으.”
안전벨트 덕분에 살아남은 운전자가 간신히 문을 연다. 어디가 부러졌는지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을 추슬러 밖으로 굴러 떨어지듯 탈출한 청년의 몰골은 자신과 남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를 따라 살아남은 이들이 깨진 창문을 통해 기어 나온다. 누구하나 신음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다. 다들 피투성이였다.
운전하고 있던 청년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데없이 죽은 놈의 허깨비를 보지 않나, 뭔지 모를 거에 치여서 차가 굴러 떨어지다니.
뭐에 들이받혔는지 보기위해 도로를 바라보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깨진 차량의 조각만이 나뒹구는 도로는 가로등불 하나 없이 어두웠다.
“뭐, 뭐였지?”
그가 망연히 중얼거리는데, 곁으로 기어온 행동대장이 물었다.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청년은 험악하게 으르렁거리는 그에게 변명하며 고개를 돌렸다.
“백 사장이 갑자기…….”
“뭐? 미쳤냐?”
사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청년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멍한 얼굴로 사내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남자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소름이 돋는다. 절대 이곳에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의 목소리. 분명히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의 음성이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퍼뜩 고개를 돌린 그는 멀쩡한 모습의 백 태환의 얼굴을 보곤 기겁했다. 창백한 몰골의 사내는 죽을 당시의 옷을 그대로 걸치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 나고 피로 물든 옷.
남자는 자신과 동생들이 몇 번이고 찔렀던 그 사람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백 태환은 죽을 지경까지 다쳤던 사람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멀쩡하다.
“어떻게?”
그의 물음에 태환의 모습을 한 괴물이 웃었다. 그 속에 혼백만이 남겨진 태환이 울부짖었다.
죽여라, 죽여!
괴물이 손을 들었다. 두려움에 질려 그를 바라보는 청년의 밑에서 시커먼 뿔이 치솟았다.
“캬학!”
단말마의 비명. 청년은 단숨에 정수리까지 관통한 검은 쐐기에 절명해버렸다. 불쑥 솟아났던 뿔은 갑작스레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엔 사타구니부터 정수리까지 구멍이 뚫린 시체가 남아 피를 흘렸다.
“뭐야, 이게 뭐야!”
행동대장이 경악하며 허둥지둥 회칼을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흉기를 잡으며 위협을 시도하지만 괴물은 그를 비웃었다.
“너는 죽는다.”
선고와 동시에 괴물의 팔이 늘어났다. 칼을 든 어깨를 두부라도 뚫듯 관통했다. 비명이 터지기도 전에 날카로운 발톱이 몸통과 어깨를 찢어 분리한다. 뜯어낸 팔을 가져온 괴물은 아직 손아귀에 붙들린 회칼을 손가락만으로 부러트리고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을 물어뜯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남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팔 하나가 사라졌다. 얼굴과 손에 피를 가득 묻힌 괴물이 그에게 다가섰다.
“울부짖어라.”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잠시 뒤, 뼛조각도 남김없이 먹어치운 괴물은 쥐죽은 듯 자신을 바라보는 승합차의 생존자들에게 돌아섰다. 이미 배가 가득차서 더 먹을 공간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려두면 재미없다.
그가 고개를 까딱임과 동시에 승합차의 밑에서 무수한 뿔이 돋아났다. 불쑥불쑥 땅에서 솟아난 검은 뿔들에 꿰인 인간들이 비명을 지른다. 살려달라며 목숨과 자비를 구걸하지만 그는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즐겁지 아니한가. 울부짖는 인간의 비명이란. 이런 즐거운 음악이 또 어디 있을까.
죽은 원혼과 죽어가는 자들의 아우성을 동시에 들으며 흥취를 즐기던 괴물이 문득 정색한다. 멀리 북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빙글 뒤돌아섰다.
방금 전까지 차량의 잔해와 시체밖에 없던 곳에 추레한 몰골의 남자가 어느 샌가 나타나 있었다.
“저위에선 한바탕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너도 한바탕 하려고 왔나?”
“아니.”
괴물의 물음에 불청객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뒤, 그가 미친 듯이 웃었다.
“흐흐, 이히히, 나는, 나는 말이야.”
광증으로 뒤덮여 번들거리는 눈으로 괴물의 전신을 훑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먹을 거란다, 동생아. 히힛, 무서운 형이 오기 전에 먹어 치울 거야. 흐하하학!”
불청객의 몸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기가 지독하게 걸려서 좀 아팠습니다. 지금은 다 나았고요. 그 사이에 기쁜 소식이 생겼습니다.
나영팔이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놀랄 노자로군요, 정말. 이 글이 출판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었는데요. 출판사는 뿔미디어 입니다. 수정에 대한 요구가 있을 시에는 그냥 출판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만, 이대로 출판하자고 확답을 주시더군요. 하여 지금까지의 전개 그대로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뿔미디어는 모험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또 하나 희소식이 있습니다. 연재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모든 내용을 연재하지는 못하고, 사분의 일 분량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책이 언제 나올지도 독자분들께서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만 자 쓰면 오천 자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서요. 연재분량으로 대략 3~4만자 정도가 되면 원고를 넘겼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번 '그림자의 밤'을 마치면 2권까지 원고가 넘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기존에 연재 되었던 분량들은 조만간에 각 권의 삼 할 정도 분량만을 남겨놓고 삭제 될 겁니다. 공지도 올릴 것이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조속히 읽으시길.
끝으로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수위가 다소 높은 글임에도 이 글이 출판이 될 수 있었던 건 읽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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