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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멈춘 택시에서 둘이 내리자 등교하던 이들의 시선이 고정 된다. 남여를 불문하고 둘에 대한 이야기를 쑥덕거렸다.
“우와, 상실선배다. 대박 잘생겼어.”
“키 봐. 진짜 모델은 저런 사람이 해야지.”
“근데, 지현선배 말이야. 예쁘긴 한데, 선배한테는 좀 떨어지지 않아? 나무에 매미 붙어있는 거 같은데.”
“그럼 니가 말 걸어 보던가.”
“아니, 됐어. 지현선배 무섭다던데.”
남학생들의 이야기는 또 이러하다.
“존나 크다. 와, 저 형이 학교 짱이라며? 일 학년 때 삼 학년까지 먹어버렸다던데.”
“십대 일로 싸워서 가지고 놀았다던데. 개쩐다.”
“근데, 저 형 왕따였다지 않았냐?”
“구라겠지.”
“아, 부럽다. 키 크지, 잘생겼지, 쌈 잘하지, 공부도 잘하고, 모델에다가……지현누나랑도 사귀고 있잖아? 다 가졌네.”
“……했을까?”
“했겠지.”
“부럽네.”
“부럽다.”
작게 속닥거렸기에 지현은 몰랐지만 상실은 다 듣고 있었다. 떠드는 이들이 알았더라면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다.
아직 지각생을 잡아들이기까진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도 학생들의 무리에 섞여 등교했다.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 시선들을 받으며, 이 학년교실이 자리한 층까지 올라간 그들은 각자의 반으로 나뉘었다. 그래봤자 교실하나 건너면 닿을 거리였으나, 떨어진다는 사실이 아쉬운 건지 지현이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같은 반이면 좋을 텐데.”
“내년엔 되겠지.”
“멀었거든?”
투정을 달래려는 건지 상실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머리칼에 와 닿는 시원한 감촉을 즐기던 지현은 곧 손길이 떠나자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이따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던 소녀는 소년이 교실로 들어서자 자기 반으로 들어섰다. 표정은 방금 전과는 반대로 무표정하게 변했다.
“견우직녀 나셨네.”
“신파극이 따로 없어.”
작게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현은 애써 못들은 척 자기 자리로 향했다. 가방만 걸어놓고 나가면 된다. 남이 뭐라 건 무시하면 돼.
속으로 스스로를 어르며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꺼낸다. 옆자리의 소녀는 그녀가 오건말건 힐끔 곁눈질하곤 자기 할 일에 전념했다.
“재수 없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지현은 이를 악물었다. 매일 듣던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린다.
필기구와 문제집을 들고 나서며 왜 이렇게 되었나 떠올렸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인기인이었다. 남여를 가리지 않고 급우들과 잘 지냈다. 성격도 활발한 편이고, 공부나 운동도 곧잘 했으며 집안도 중산층이었다. 특히나 예쁘고 스타일도 좋았다. 성별을 불문하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아이들이 호감을 가졌고, 모난 성격이 아니었기에 친구들이 주변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주변의 공기가 답답하고 무겁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며 쑥덕거리고 있는 착각이 인다.
난생 처음 겪는 적의에 솔직히 무서웠다. 당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성격을 못 이겨서 언성을 높인 것도 몇 번 있었지만 역시나 일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역시 재수 없는 년이라며 더욱 멀리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악화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학기 초에는 이렇지 않았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갔고,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있었기에 그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외톨이가 되어갔다.
지현의 탓도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상실의 반으로 달려갔으니 다른 애들과 친해질 수가 없었다. 수업만 같이 듣고 있는데 친해지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대감을 갖는 것까지 이해할 순 없었다.
친하지 않다면 서로 소가 닭 보듯 그러려니 지나가면 그뿐이다. 이런 불쾌한 분위기가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이건 흡사 따돌림을 당하는 거나 다름없다.
상실에게 말해볼까 생각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상실에게 자격지심이 있었다.
따돌림을 당하던 때는 관심도 없다가 그가 바뀌고 난 뒤에나 말을 걸었다는 사실.
누구나 따돌림 당하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뭐 하나 잘나지도 않았다면 두 말 할 것도 없다. 허나 상실을 좋아하게 된 뒤부터는 그에 대한 걸 후회했다.
왜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았을까? 다른 애들을 왜 말리지 않았던 걸까?
뒤늦게 생겨난 죄책감은 늘 가슴한구석에 쌓여서 내려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만큼 그 죄책감역시 마음 깊숙이 내려앉아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좋아서 설레일 때마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 네가 그를 좋아하는 게 맞아? 그저 얼굴에만 혹한 속물 같으니라고. 너는 자격이 없어. 그도 기억하고 있을 걸? 따돌림 당하던 때 말도 걸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매달리는 너를 비웃고 있을 걸!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죄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접을까 고민했지만 이미 늦었다. 정체불명의 괴물이라는 걸 알고도 좋아하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고, 손 한 번 잡을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웃어줄 때마다 행복해 죽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상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마음이 안정 되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 안심이 되었었다. 그가 괴물임에도 사랑한다는 사실이 죄책감에서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아직도 가슴 언저리, 심장 근처에 눌러앉아 꼬챙이를 들고 생각 날 때마다 찔러댔다.
옛날의 그를 생각해. 그는 혼자 이겨냈어. 맞고, 울고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지옥 같은 상황을 뚫고 나왔다고. 그런데 너는, 맞은 적도 없고, 함께 해줄 사람도 있는 주제에 고작 따돌림 당하는 걸 가지고 엄살을 부려? 그는 어땠을 거 같아? 네가 그런 걸로 징징거리면 얼마나 우스울 거 같아? 이건 네 죄야. 네가 짊어지고 가야 할 죄. 그러니까 아파하고 무서워해라. 혼자서 감당해야만 해. 이것도 참아내지 못하면 넌 정말 염치도 없는 뻔뻔한 년이야.
결국 지현은 말하지 않았다. 알렸더라도 상실이 뭘 어떻게 해줬을지는 몰랐지만, 그나마 하지 않았기에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다.
처음에는 그네들도 그냥 질투심과 고까운 마음에 작게 떠드는 정도였다. 잘난 남자친구를 둬서 우리와는 얘기도 안하고 무시한다는 생각에 은근히 따돌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면서도 상실은 두려웠기에 크게 소문이 날 일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도 상실이 나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지현의 저항도 뜸해지자 만만히 여기기 시작했다.
은근히 행해지던 따돌림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다 들으라는 듯 모욕했다. 지현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직접적인 폭력과 괴롭힘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밖으로 나서려는 지현에게 또 누군가 비아냥거렸다.
“또 남친 찾아가시네. 제 아빠라도 되나보지.”
그 말을 들은 순간 지현이 고개를 홱 돌렸다. 여학생들 중에선 잘 나간다는 아이였다. 움찔하던 그녀가 곧바로 쏘아보며 대놓고 말했다.
“왜? 그 잘난 남친한테 이르려고? 일러봐! 일러 보라니까?”
파들파들 떨며 그녀를 노려보던 지현은 입술을 깨물다가 밖으로 나갔다.
“흥, 지가 어쩔 건데?”
“너 근데, 정말 이르면 어쩌려고?”
친구에 말에 소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저 년만 아는 남자 있냐? 나도 잘나가는 애인 있거든?”
교실에서 들려오는 소릴 들으며 지현은 힘없이 걸었다. 이르다니, 그런 건 못한다. 할 수 있을 리가.
“내가 이겨내야 돼. 나 혼자서.”
혼잣말하며 걷던 그녀는 상실의 반 앞에 와서 멈춰 섰다. 살짝 열린 틈으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눈물이 흐르려한다.
너는 어떻게 버텨냈니? 나는 이걸로도 이렇게 힘든데, 너는 어떻게 그런 괴롭힘을 버텨냈어?
가만히 바라보던 소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화장실로 걸음을 돌렸다. 이런 꼴로 앞에 나설 수는 없어. 언제나 예쁘고 당당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옆에 서서 부끄럽지 않은 여자가 되어야 해.
소녀는 힘겹게 스스로를 추스르며 걸음을 내딛었다.
- 작가의말
뭔가 얻으면 뭔가 잃기 마련이죠. 하하호호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엔딩은 엿이나 먹으라 그래요.
음,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커플이 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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