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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50,045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1.12.26 00:42
조회
13,406
추천
66
글자
7쪽

등교 2

DUMMY

상실은 자신을 훔쳐보던 정훈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급하게 고개 돌려 책을 보는 척 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몸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방금 정훈의 그림자를 통해 목을 쓰다듬어주길 잘했다 여기며, 조용히 웃는다.

그의 시선이 반 전체를 훑었다. 아쉽게도, 이곳엔 먹을 만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조금 가능성이 보이는 냄새도 있었지만 아직 덜 익었다. 더 검고, 부패한 인간의 향기가 필요하다. 슬슬 어제 먹은 아저씨가 소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은 공복이 오지 않았지만 학교가 끝날 즈음이면 배가 고프리라.

정훈과 무관하게, 반의 학생들 대부분은 상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지만 크게 관심도 없었기에 파고들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놀거나 공부할 뿐이다.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심심했기에, 상실은 교과서를 꺼내봤다. 그리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얻은 힘은 아무래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임만 해온 탓에 내용을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학이라 그런가 생각하며 국어책도 꺼내봤지만 재미없었다.

엄마에게 공부하겠다고 괜한 말을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시진 않았지만, 성적이 오른다면 응당 기뻐하실 거다. 하지만 역시 공부는 정이 가지 않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가 되었다. 하고자 한다면 그깟 돈 쯤 언제라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엄마가 기뻐할까? 어디서 난 돈이냐며 다그치지 않을까?

공부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 자라다오. 다들 많이 들어본 말이다. 보통은 부모님이 아니라, 티브이나 다른 곳에서 본 말이었지만, 상실에겐 실제 자주 들은 말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정순은 다 포기하고,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만, 부모가 되어서 자식이 잘 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이 자랑스러워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상실은 인상을 썼다. 엄마를 호강시켜드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부를 하건 운동을 하건 돈이 생기려면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거다. 지금이라면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현역 선수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육체는 한계에 갇혀 아등바등하는 자들 따위와는 비교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 그에게 엄마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먹지 않더라도, 곁에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당장 돈을 훔쳐 올 힘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얽매여서 돈을 받기는 싫었다.

방도를 찾아야했다. 표면적으로나마 합당히 돈이 생기는 방도를.

고민하고 있는데, 교실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소년이 들어왔다. 시간은 아홉시에 가까웠다. 지각을 한 탓에 벌을 받았는지, 땀이 줄줄 흐른다.

“아후, 죽는 줄 알았네.”

“학주, 오늘따라 더 지랄이야.”

“허리 아파.”

투덜거리며 자리를 찾아가던 그들 중 하나가 상실을 발견했다. 반가운 표정이 된 그가 책상에 가방만 던져놓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인제 나왔냐?”

친한 사이처럼 웃으며 다가온 소년은 다름 아닌,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따라붙은 악연이다. 새 생활을 꿈꾸던 상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자살까지 몰아간 원흉. 박 지원.

상실에게 지원은 두려운 존재였다. 웃으며 장난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모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러한 행동 탓에 다른 녀석들도 쉽게 그를 괴롭혔다. 고등학생이 된 뒤로, 모든 괴롭힘과 무관심의 배후에는 사실상 그가 있었으며, 중학생 때부터 길들여진 상실은 반항도 못했다. 그랬었다. 어제까지는.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지원은 어린애일 뿐이다. 강아지와 같았다. 어제 봤던 아저씨와 마주친다면 눈을 내리깔고 피해갈 애송이에 불과했다.

상실은 슬며시 웃었다. 겨우 이런 꼬마를 그렇게나 무서워했다니. 몽땅 거짓말 같았다. 사실 이전의 자신이라도 악을 쓰며 덤볐다면 이기진 못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못했던 것은 나약하고도 나약한 심성 탓이었다. 몇 년에 걸쳐서 비굴하게 길들여진 탓이었다.

“오랜만이야.”

손을 들어 여유롭게 인사하는 그를 보며, 지원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가 짐짓 놀란 것처럼 상실의 얼굴을 가리켰다.

“너 쉬는 동안 박피라도 했냐? 얼굴이 뽀얘졌다?”

“아니, 그냥 없어지더라고.”

“그래? 하긴, 네 집구석에 피부과 갈 돈이 있기나 하냐.”

웃는 낯으로 빈정거리던 지원이 기습적으로 팔을 휘둘러 상실의 뒤통수를 노렸다. 한참이나 학교를 나오지 않아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꼴같잖게 당당한 척이라니. 전처럼 무릎 꿇려 비웃어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은 헛되이 허공을 가른다. 슬쩍 고개를 틀어 피하자, 지원이 확 인상을 구겼다.

“어쭈, 피해? 뒈지고 싶냐?”

상실은 활짝 웃었다. 바라던 바다.

“해봐.”

교실 전원의 시선이 몰려든 그 순간,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흔 즈음의 교사가 들어서며 지원을 보곤 호통 쳤다.

“박 지원, 뭐하는 짓이야!”

“아, 아뇨. 상실이가 오랜만에 나와서 얘기 좀.”

“상실이? 이 상실?”

교사가 놀라 바라보니, 과연 상실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 꾸벅 인사하는 소년에게 그가 물었다.

“너 언제 온 거냐?”

“오늘 아침에요.”

“아니, 학생주임 그 양반이 네가 온 것도 알리지 않았단 말이야?”

교문을 통하지 않았기에 알 리가 없는 학생주임을 언급하던 그는 상실에게 손짓했다.

“너는 나랑 얘기 좀 하자. 나머지는 수업시작 할 때까지 자습하고 있어라.”

담임이 밖으로 나가자, 상실도 따라 일어섰다. 아이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방금 전의 행동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 사이에 지원을 필두로 한 곱지 못한 눈초리와, 정훈의 두려움 섞인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실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즐거워지리라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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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7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71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4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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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6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6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3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100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9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5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4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6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5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5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3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3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4 5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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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악의 9 +19 12.02.29 6,066 64 6쪽
17 악의 8 +20 12.02.29 6,583 6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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