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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50,016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1.12.26 20:14
조회
13,036
추천
64
글자
8쪽

등교 4

DUMMY

상실은 지원을 보기 전엔 그에게서도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니 생각보다 못했다. 어제 먹은 남자가 닭이라면 지원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에 불과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맛있어질 여지도 있긴 하다. 하지만 당장 먹기에는 나빴다. 어차피 학교에서 잡아먹을 생각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나중에 찾아가 먹을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해서 빨리 끝내기로 했다.

심약한 사람이나 괴롭히는 여물지 못한 힘이 얼마나 볼품없는지만 느끼게 해주면 될 일이었다. 물론 죽이거나 심한 부상을 입혀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학교로 불려 오실 테니까. 없는 살림에 치료비라도 대다간 집밖으로 나앉아야 할지도 몰랐다. 정 죽이고 싶다면 학교가 끝나고 나서. 아무도 그가 그랬다는 걸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야한다.

“이 병신새끼가!”

지원이 분노함과 동시에 상실은 그의 얼굴을 잡았다. 사전에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안면을 한 손에 쥐어 들어올렸다.

“어? 으어?”

힘들이지도 않고, 덩치만은 성인과 비슷한 소년을 들자, 지원의 패거리들이 놀라 물러섰다. 곳곳에서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만이 안면을 잡은 손을 풀기위해 발버둥 쳤지만 상실의 힘은 그의 힘으로 풀 수 없었다.

지원의 머리를 잡은 상실은 충동을 느꼈다. 이대로 머리를 쥐어 터트리면 어떻게 될까? 두개골이 부서지고, 뼈와 뇌가 곤죽이 되어 떨어지면 볼만하겠지?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하고 싶어졌다. 그간 당해왔던 기억이 한 순간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비록 나약한 인간이었을 시절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불쾌했다. 죽이고 싶어졌다. 이 겁 없는 애송이를.

상실은 금방 결정을 내렸다. 죽이기로.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음에. 주변에 아무도 없고, 홀로 있을 때,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가서 자근자근 다져서 죽여야지.

죄송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걸 무시하며 인간에게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공포를, 비명을, 고통을 주겠다. 네가 나에게 주었던 그 이상의 절망을 네게 주겠다. 그리고 무참히 다져진 시체를 그대로 둘 것이다. 자식을 잘못 키운 대가를, 자식의 방종을 방치한 대가를 어미와 아비에게 줄 것이다.

복수를 상상하며 부르르 몸을 떨던 그는 인형이라도 던지듯 지원을 위로 던졌다. 인간의 몸이 비현실적으로 떠올라 추락한다. 그것을 가볍게 밀어 찼다. 내장이 파열하면 큰일 나니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밀어냈다.

지원의 몸이 단번에 창가까지 날아갔다. 벽에 등을 부딪치며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른 그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 상실을 바라봤다. 경악과 공포심이 드러난 눈가에 아픔으로 인한 눈물이 맺혀있었다.

복수하겠다는 독기도, 당장에 일어나 덤벼드는 무모함도 없는 한심한 몰골에 상실은 문득, 계획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영혼을 바쳐 새 생명과 악마의 힘을 얻었다. 그런데 고작 이딴 애송이에게 쓴다고? 과연 그럴 가치가 있나?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흔적도 없이 짓이길 수 있는 벌레에 불과한데? 먹지도 못할 벌레에게 힘을 써서 뭘 하지?

김이 빠진 그는 양손을 뻗어 바짝 얼어있던 지원의 패거리를 밀어버렸다. 저항도 못하고 몇 미터나 나가떨어진 그들은 겁먹어 일어나지도 못했다.

“제자리로 꺼져.”

그제야 쓰러진 둘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상실의 눈치를 보던 그들은 조심스레 지원을 부축해 자리로 돌아갔다. 지원은 등이 저린 것 외에 움직임에 지장은 없었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멍하니 손길을 따랐다.

그를 향해 시선이 쏟아진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혼재 된 눈들. 저들은 모두가 가해자이자 방관자였던 이들이다. 상실은 반 전체가 역겨웠다. 동시에 아무 가치 없었다. 이전까지 벌레 보듯 바라보던 놈들이 갑자기 호의를 가져봤자 내어줄 건 없다.

의자에 앉으며 그가 모두를 훑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거둔다. 그렇지만 대부분 힐끔힐끔 쳐다보고, 수군거렸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호기심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후자는 소녀들이었다. 상실은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눈 치워.”

그가 으르렁거리자 그제야 훔쳐보던 시선들도 거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눈길은 여전했다. 호기심이 어린 눈의 소녀들.

그러고 보면 전부터 그랬다. 남자가 보기에 함부로 대해선 안 될 것 같은 남자에게도 여자들은 잘도 악쓰고 덤벼들었다. 그 호기심인지 적대감인지 모를 것이 중단 되는 시점은 위협과 폭력이 자신에게 돌아온 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호기심도 적대감도 증오라 불릴만한 물건이 되어 타오르기가 태반이었다.

상실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자란 알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니게 된 지금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양이 늑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꼴이라니, 호기심의 대가로 찾아올 파멸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들에 대한 신경을 접으며 소년은 책을 꺼냈다. 종이 울렸다.


상실이 벌인 일에 대한 소문은 쉬는 시간을 거칠 때마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왕따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무술을 수련했다느니, 어디 이종격투 도장에서 키우고 있다느니 하는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장이었다.

교실의 먹이사슬 밑바닥에 있던 놈이 단숨에 최고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는 사실은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소문을 들은 녀석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상실의 반을 찾아왔다. 그를 힐끔 살피면서 아는 친구에게 조용히 물었다. 대부분의 대화가 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정작 소년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친분이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던 아이들도 그와 눈을 마주치면 오금을 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감히 마주 볼 수도 없는 어떤 것을 조금이나마 느낀 모양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면 상실로서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눈치 있는 녀석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뭔가 있다고만 생각했지, 그 속에 숨어있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직접 본 아이들이 신나서 떠드는 말에 소문은 더욱 빨리 퍼져나갔고, 그 여파는 점심시간에 돌아왔다.

다들 밥 먹느라 바쁜 시간. 급식을 먹거나, 도시락을 싸오거나, 매점으로 달려가 인파와 전쟁을 치르며 사먹는 학생들의 사이에서 상실은 멀찍이 떨어졌다.

남들이 먹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식욕이 돋을 법도 했지만, 그들이 먹는 음식들은 취향이 아니었다. 엄마가 해준 밥이라면 나중에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꾸역꾸역 삼켰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냄새도 맡기 싫었다.

하여 상실은 밖으로 나가 천천히 학교를 둘러봤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나 은근히 기대하면서. 일 학년교실이 있는 층에선 설익은 냄새만 가득했다. 이 학년교실이 있는 층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먹고자 한다면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내키지는 않다. 가릴 것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배고프지도 않았다. 삼 학년이 있는 층에서는 오히려 식욕이 떨어지는 냄새가 났다. 반절은 점심시간임에도 사락사락 책을 넘기고 있었고, 아닌 이들도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놀고 있었다. 정확히는 노는 척에 가까웠다.

수능에 찌들어 입맛 떨어지는 냄새만 나기에 상실은 실망하며 운동장으로 나갔다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란 곳은 덜 자란 병아리만 키우는지 죄다 솜털만 보송보송해서 삐약삐약 울고 있었다.

문득 학교가 굉장히 싫어지는 느낌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있는데, 멀리서 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숨을 추스른 소년이 주저하며 다가왔다. 상실이 아는 얼굴이었다. 당연히 친한 것은 아니고, 같은 학급의 학생이다.

“저기, 상실아.”

상실은 대답대신 계속 말하란 듯 바라보았다. 그것이 숨 막혔는지 소년이 심호흡하며 말했다.

“형들이 너 뒤편 수돗가로 오라는데…….”

그에 상실은 즉시 일어났다. 이번엔 먹음직한 인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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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권 - 탐문 12 +3 13.02.21 1,418 14 11쪽
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2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7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71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2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3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5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5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2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8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5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8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4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3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5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4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4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3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3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4 59 10쪽
22 심화 3 +35 12.03.10 5,870 73 8쪽
21 심화 2 +36 12.03.05 6,629 5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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