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2
골몰하는 남자를 뒤에서 바라보며, 상실은 입맛을 다셨다. 씻고 있는 여자에게선 그저 그런 냄새가 났다. 먹을 것으로 비유하자면 흙바닥에 떨어졌던 음식과 같았다. 굳이 먹고자 하면 못 먹을 건 없는데, 먹자니 비위가 상했다. 반면 이 남자는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났다.
두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합쳐져 그리도 맛있는 냄새가 나는 줄 알았던 소년으로서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먹어본 적도 없는 비싼 음식을 앞에 둔 기분이다. 당장에 나약한 몸뚱일 부숴버리고 싶은 것을 자제했다.
이런 건 음미하며 먹어줘야 예의다. 비명도, 발악도, 흩어지는 혈흔까지도 모두 즐기며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가닥 남기지 않고 먹어줘야 했다.
그가 손을 뻗었다. 시커먼 두 손으로 목을 휘감았다. 체취가 느껴진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참아야했다. 타는 듯한 갈증이 일었지만, 인내한다면 그만큼 더 깊은 맛을 즐길 수 있으리라.
목을 감싸오는 서늘한 느낌에 형헌은 여자가 나온 것으로 착각했다. 피부가 차가운 것도 샤워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왔어?”
팔을 쓰다듬던 그는 이것이 여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손에 와 닿는 감촉은 인간도, 짐승의 것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달라붙는 듯한 촉감에 그는 화장실로 홱 고개를 돌렸다. 안에서 더운 김과 노랫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럼, 내 뒤에 있는 건 뭐지?
의문이 일었다. 등골이 싸해졌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돌아봐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팔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은 검었다. 창문도 조명도 없는 밀실에 들어가서야 볼 수 있는 암흑처럼, 지독히도 검었다.
“흐으으.”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살려달라고, 경찰을 불러달라고.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본능적인 공포에 굳어버린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바람 빠지는 소리뿐이었다.
“맛있겠다.”
속삭임이 들려온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에 남자는 발작적으로 벌떡 일어나 달렸다. 그제야 목이 트이며 비명이 나왔다.
“으아악! 사람 살려!”
문으로 뛰어가던 그는 달리던 방향과 반대로 가해진 힘에 볼썽사납게 뒤로 자빠졌다.
“크흑.”
신음을 흘리며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목에는 아까 걸쳐졌던 검정색 팔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분명 몇 미터나 움직였는데도 그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어, 어어.”
놀라 어버버 거리는 그의 눈에 은은한 조명을 가리며 검은 머리가 나타났다. 표정은커녕 이목구비도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형상에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 상상도 못했던 불가해한 존재를 목도하자, 이성이 일시적으로 멎어버렸다.
그것이 그에게 말했다.
“아무데도 못가.”
그것이 킥킥 웃었다.
“넌 내거야.”
그것이 손을 움직였다. 남자의 팔을 들어 제 얼굴로 가져갔다. 지금껏 입도 없이 말하던 그림자에 입이 생겨났다. 상어 같은 이빨과, 시커먼 몸뚱이보다 더 어두운 심연이 아가리를 벌린다. 그 모습은 악마라는 단어가 더없이 어울렸다.
“나를 위해 울어봐.”
날카로운 이빨이 손을 덥썩 물었다.
“히이이익!”
남자가 몸서리치며 기겁했다. 손이 잘려나갔다. 손목 위로 톱날에 잘린 듯 너덜너덜한 절단면이 보였다. 부러진 뼈와 끊어진 핏줄과 근육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와 함께 속살을 내보였다.
“흐아악!”
그림자의 형상을 취한 상실은 우물우물 손을 씹다 뱉으며 비명을 감상했다. 고통에 절규하는 음성이 감미롭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공포의 향기가 고소하다. 썩은 음식과 같은, 부패한 영혼의 냄새가 지독하리만치 유혹적이었다.
“하하, 하하하하!”
소년은 유쾌해졌다. 어제의 식사보다 더 즐거웠다. 지금의 식사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식사가 기대 됐다. 인간은 매우 많았고, 영혼이 썩은 인간의 수는 무수했다. 그가 영원히 먹어도, 먹을 만한 인간은 줄지 않을 것이다.
상실은 다시 손을 뻗어 남자의 팔을 잡았다. 으드득 근육과 뼈가 파열되는 소리가나며 몸뚱이에서 팔이 뽑혀 나왔다.
“살려, 살려줘. 흐악, 아악!”
“자기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형헌의 비명에 채 마르지도 않은 몸으로 나온 여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에 서린 감정은 경악과 공포.
“끼야아아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상실은 여자를 신경도 쓰지 않고, 남자를 해체하는데 집중했다.
팔이 모두 사라지고, 두 다리가 사라졌다. 경련과 비명도 잦아들었다. 과다하게 손실 된 혈액 때문에 창백해진 안색으로 남자가 헐떡였다. 더는 비명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상실은 아쉬워하며, 팔을 휘둘렀다. 머리통이 박살났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시체에서 귀곡성과 함께 혼이 빠져나온다. 그것을 잡아 더는 들어주지 않고 한 입에 삼켜버렸다. 맛이 어떨까 궁금해 기다릴 수 없었다. 그 맛은 과연 훌륭했다. 어제 먹은 것보다 더욱.
뱃속이 요동치는 것을 즐기며 돌아보니, 여자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뒤였다. 소년은, 실신한 여자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사라졌다. 바닥을 뒤덮은 피 웅덩이가 빠르게 여인에게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포만감에 젖은 그는 건물을 빠져나와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림자의 형상이 움직이기야 편했지만, 햇빛이 더욱 곤욕스럽게 느껴진 때문이었다.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오락실을 발견했다. 인간이었을 때, 그에게 친구란 오락기밖에 없었다. 변해버린 지금도 오락에 대한 관심은 남아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었다만, 공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많았다.
내부로 들어가니 아까 봤던 신영과 일당들이 저마다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 신영은 눈치 없는 소녀와 함께 틀린 그림 찾기를 하고 있었다. 별 관심이 없는지 불성실하게 응한다.
“빨랑 찾아보라고! 시간 없잖아.”
소녀가 꺅꺅거리자 신영은 투덜거리며 대충, 화면에서 눈에 띄는 곳을 연필 모양의 기기로 눌렀다. 거슬리는 소리가 나며 엑스 자가 그려졌다.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 씨발!”
“뭐, 이년아. 하기 싫댔잖아.”
“그럼 가만이나 있던가!”
더 줄어든 시간 때문에 그녀는 신영에게 시선도 못 돌리고 욕을 주워섬겨댔다.
상실은 그들을 무시하며 자주 하던 오락기 앞으로 향했다. 학생으로서 그의 주요업무가 MMORPG였다면, 취미는 오락실의 대전격투 게임이었다. 현실에선 나약할지 몰라도, 패턴만 파악하면 화면 속의 분신은 누구보다 강했다.
누군가 기계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맞은편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그에게 있는 천 원 중 오백 원을 써버렸지만 상관은 없었다. 여차하면 오락실 안쪽의 관리실에서 좀 가져오면 될 일이었다.
캐릭터를 고르고, 느긋한 마음으로 스틱과 버튼을 눌러봤다. 손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익숙하게 움직였다. 아니, 그보다 더 정확하게 움직였다.
대전이 시작 되었다. 상실은 건조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손을 움직였다.
그의 전술은 심리전과 허를 찌르는 공격, 적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려서 이어지는 연계기였다. 흔히 말하는 얍삽이다.
상대는 견제에 휘말려 쩔쩔매다가 허를 찌르는 하단공격에 맥을 못 췄다. 그러다 상단을 기습적으로 치고, 다시 상단을 치는 척 하다가 하단. 위아래를 번갈아 찔러오는 공격에 라이프 바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상대의 캐릭터가 바닥에 누웠고, 이어진 판도 마찬가지였다.
“씨발.”
어째 듣던 목소리 같다 생각하며 기계와 대전을 하던 상실은 화면이 멈추며, 대전 상대가 들어옴을 알리는 문구를 봤다. 아까와 똑같은 캐릭터였다. 전술도 똑같았다. 그는 또 무자비한 얍삽이로 무너트렸다.
“으아, 아오!”
졌다는 사실보다, 야비한 공격에 당했음이 화가 났는지 상대는 줄기차게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처참하게 깨져나갔다. 상실의 승수가 두 자리에 도달하자 욕과 함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상대가 벌떡 일어나 기계너머로 그를 노려봤다.
“어떤……."
눈을 마주친 상대가 그대로 굳었다. 역시나 신영의 일당 중 하나였다.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그는 올라왔던 그대로 스르륵 가라앉았다.
“야, 튀자.”
그 소년이 옆의 누군가에게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시하고 게임이나 하려던 상실은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영 시들해진 게임보다 훨씬 영양가 있을 것 같았다.
-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잘 속는 건 우둔하거나, 어리석은 거지 악한 게 아니라 여겨집니다. 사기당하는 사람이 악한 건 아니잖아요? 악한 사람이 사기당할 수는 있지만.
여튼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사람 잡아먹는 주인공이 거북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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