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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49,934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3.02.17 18:22
조회
1,040
추천
9
글자
8쪽

4권 - 탐문 6

DUMMY

삼 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기대를 담은 시선들에 여교사는 교탁 위의 책을 덮는다. 반장이 일어나 인사한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끄덕이며 교실 밖으로 나서려던 그녀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돌아서서 손짓한다. 그 끝엔 상실이 있었다.

“상실이는 잠깐 나오렴. 물어 볼 게 있어.”

소년은 네 하고 일어났다. 담임도 아니고, 대화를 나눈 적도 별로 없는 여선생이라 왜 불렀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설마하니 마흔이 되어가는 여선생이 학생에게 흑심을 품을 리도 없고.

상담실로 향하는 동안 여러 시선들이 쏟아졌다. 여로 모로 학교의 최고 유명인사인 그가 상담실로 가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길 법한 상황이었다.

“와, 쩐다.”

앞에 가는 여교사는 투명인간 취급하고, 오직 상실만을 훔쳐보며 감탄하는 건 선생이나 학생이나 다르지 않았다. 담담하게 시선을 받아 넘기던 그의 눈에 일학년 때의 담임을 맡았던 진혁이 들어왔다. 마흔 즈음의 남교사의 얼굴엔 어쩐지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흠칫 몸을 떤 그는 애써 웃어보이곤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상담실은 한산했다. 자주 쓰일수록 학교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이기에 어지간하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요즘 무슨 일 있니?”

여선생이 의자에 엉덩일 걸치며 물었다. 전날 진혁에게 전화를 넘겨줬던 그녀는 그날 상실의 이름이 언급 되었던 것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왠지 심각한 일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더더욱 궁금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요?”

부정에도 불구하고 여선생은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 태도가 짜증난다고 여기던 소년은 아까 진혁과 마주쳤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원진혁 선생님이 뭐 말해주신 거 있나요?”

허를 찔린 여선생은 뭐라 답해야할까 정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에게서 뭔가 들었다고 판단한 상실은 단호하게 말하며 일어섰다.

“뭔지 몰라도 자세한 건 원진혁 선생님께 물어보세요. 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건방진 태도였으나 켕기는 게 있었던 여교사는 ‘어, 그래.’하며 끄덕일 뿐이다. 정말 진혁에게 물어볼까 고민하는 그녀와 비슷하게, 상실도 그에 대한 호기심을 품었다.

가족과 지현을 제외한다면 그의 변화를 가장 많이, 오래 지켜본 사람이 원진혁이다. 일학년 초에는 요주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니, 담임이라면 더욱 신경써서 확인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이상함을 느꼈대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혁을 추궁해 볼까 고심하며 상담실을 나서니, 웬 여학생이 와락 달려들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팔을 끌어당겨 품에 안아버리자, 놀래어 주려던 지현이 도리어 기겁했다.

“야, 야!”

“어.”

끌어안은 그대로 머리를 쓰다듬자 지현이 얼굴을 붉혔다.

“놔, 놔봐. 다들 보잖아.”

“싫어?”

서늘한 손길이 부드럽게 머리칼을 어지르자 소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동그랗게 뜨인 많은 눈동자들. 남여를 가리지 않고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자, 부끄러움과 동시에 자랑스러워졌는지 소년의 품에 얼굴을 파묻는다.

“뜨겁구나, 뜨거워.”

뒤이어 나온 여교사의 말에 더는 붉어질 수 없을 만큼 익어버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상실은 사과 빛이 된 지현의 뺨을 쓰다듬으며 끄덕였다.

“그러게요.”

지현이 발끈해서 상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소년은 파리가 앉았다는 듯 태연한 기색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이끌었다.

“가자, 어리광쟁이야.”

“누, 누가 어리광쟁이야!”

“그래. 그럼 공주님해라.”

지현은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상실의 인도를 따랐다. 쏟아지는 시선에 피부가 따가웠다.


진혁이 건네 준 자료와 대화를 통해 괴물과 상실이 동일 인물일 것이라 짐작한 강섭은 박지원이란 학생에 대해 조사했다. 내용은 평범했다. 일반적인 중산층 집안의 외동아들. 그럭저럭 상위권 언저리의 성적에 외향적이고, 가끔 말썽을 피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었다. 그 외에 중요한 부분이라면 중학교 때부터 상실과 같은 학교를 다녔었고, 상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싶은 정황이 다소 있었다는 점. 그 중 제일 중요한 건 중학교 때의 친구들과 함께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다가 다쳤는지는 셋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어서 알 수는 없었으나, 의사의 소견서에는 그들의 주장대로 계단에서 굴렀다기보다, 폭행당했을 것이라 적혀있었다.

정황을 확인하며, 그는 현재 상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세 소년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발견 된 장소는 현재 상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계단이다. 뭔가 고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원의 자료를 살폈지만 더 나오는 건 없었다. 끔찍한 살육이 벌어진 병원의 유일한 실종자라는 사실 외에는.

하룻밤 사이에 수십 명이 살해당한 끔찍한 사건이었기에 다른 때라면 뉴스에 시끄럽게 올라왔을 일이었지만 괴물끼리의 싸움 때문에 묻힌 감이 있었다. 또 하필 괴물들이 싸운 장소도 지금 상실이 살고 있는 아파트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이상실이 유력한 용의자라 생각할 수 있다. 그곳으로 이사 간 거야 집값이 폭락해서 그러리라 짐작해도 공교롭다. 하필이면 그 장소로. 하필이면 그 장소에서.

골몰하던 그는 두통이 이는 느낌에 약을 꺼냈다. 물과 함께 삼켜버리고는 다른 것으로 생각을 전환한다. 상실이 괴물이라면, 과연 그 엄마인 김정순은 사람일까, 괴물일까? 사람이라면 상실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이미 살펴 본 결과에 따르면 김정순은 예전에 비해서 바뀐 사항이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난 아들 덕분에 편해진 아줌마에 불과하다. 상실도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또 모르지만 거기까지 파고들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혹시나 재수 없게 상실과 마주하거나, 정순마저 괴물이라면 돌이킬 수도 없이 죽는다. 괴물임에도 사람의 행세를 하는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분명 필요하기에 그리 살고 있을 터. 그걸 캐내고 있음을 알게 되면 매우 불쾌해 할 테지.

정순에 대한 건 보류하기로 결정한 그는 이제 어찌 할 것인가 고민했다. 아마도 상실이 괴물이리라 짐작하지만 그게 백프로 맞는다 장담하진 못했다. 모조리 추측과 심증일 뿐, 물증은 없다. 상실이 괴물이라도 그가 봤던 괴물과 동일인물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예상대로라면 괴물은 한두 마리가 아니다.

당장 보고할 것인가, 더 파고들 것인가 생각하던 강섭은 휴대전화를 들어 득수의 번호를 찾았다.


“아, 김요원. 오랜만이네.”

전화를 받은 이득수는 과하게 반가워했다. 죽을지도 모를 일에 떠밀어 넣었음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는 탓일까, 평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매우 드문 모습이었다.

“조사는 얼마나 진행 되었나? 잘 되어 가고…….”

강섭의 말에 득수의 표정이 급격히 변화했다. 기뻐하는 건지, 우려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이 되어버린 그는 보고가 끝났음에도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잘 해주었네. 관련 자료는 따로 보내도록 하고, 아직 확실하진 않으니,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더 알아보도록 하게.”

떨떠름한 답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이득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괴물의 뒤를 캐는데 위험하지 않은 범위가 있을 리 없지. 고개를 내저은 그는 상실에게 어떻게 접근할지를 두고 골몰에 빠졌다.



작가의말

잘 쓰고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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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권 - 앞면 +3 13.03.20 1,244 13 16쪽
50 4권 - 탐문 12 +3 13.02.21 1,417 14 11쪽
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0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5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69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29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2 11 8쪽
» 4권 - 탐문 6 +3 13.02.17 1,041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4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4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3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1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3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4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7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7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1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3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7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6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5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2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4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3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6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3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1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1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2 59 10쪽
22 심화 3 +35 12.03.10 5,869 73 8쪽
21 심화 2 +36 12.03.05 6,628 59 9쪽
20 심화 1 +44 12.03.01 6,836 90 7쪽
19 악의 10 +42 12.02.29 6,515 63 7쪽
18 악의 9 +19 12.02.29 6,064 64 6쪽
17 악의 8 +20 12.02.29 6,581 60 8쪽
16 악의 7 +43 12.02.22 8,193 71 13쪽
15 [2권] 악의 6 +31 12.02.22 7,831 65 6쪽
14 외출 3 +19 11.12.30 12,033 67 9쪽
13 외출 2 +25 11.12.29 12,165 7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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