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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5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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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2.06.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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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9쪽

3권 3

DUMMY

공부는 이력이 붙었는지 이전에 비해 훨씬 수월해졌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소비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모르는 것을 체크하며 풀어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정순이 들어온다.

“밥 먹어야지.”

“네.”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자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이 반긴다.

“잘 먹겠습니다.”

소년은 수저를 들며 말하곤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정순도 수저를 들었다. 하지만 먹기보다 아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들에게 여러모로 미안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미안했던 것은 일을 다니느라 제대로 끼니를 챙겨주지 못했던 게 컸다.

아침에 나가서 해가 떨어진 뒤에나 들어오니 반찬을 준비할 시간도, 정신도 없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탓에 상실이 자라지 못했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요즘 그녀의 가장 큰 낙은 아들을 위해 요리하고, 그걸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인스턴트식품이나 먹고, 정작 밥을 먹을 때는 깨작거리던 예전과 달리 복스럽게 먹어치우는 아들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반면 상실은 먹을 필요도, 먹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넘기느라 고역이다. 아무리 좋은 냄새가 나고, 영양소가 많고, 맛이 좋더라도 그건 인간의 기준이다. 물질적인 영양소를 소화하는 기관이 없는 그로서는 대충 한 입에 넘겨버리고 싶었다만 엄마 앞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맛있게 먹는 연기까지 하노라면 피곤해지는 착각까지 일었다.

“잘 먹었습니다.”

엄마의 정성 때문이라도 최대한 성의껏 먹어치운 그는 바로 양치질하겠노라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양치질은 물론 핑계고, 먹은 것들을 토해내기 위함이 본론이다.

뒤섞여서 변기에 쏟아진 음식물들은 처참한 형상이었으나 가차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에 휩쓸려 이내 사라진다.

양치질까지 끝내고 나와 시간을 보니 여덟시 조금 전이다. 문제집과 필기구 따위를 가방에 챙겨 넣고, 교복을 입는다. 방 한 쪽에 놓인 전신거울에 반사된 모습은 교복광고모델이라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그의 성격상 사놓을 리가 없는 물건이었지만, 모델이라면 전신거울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들여놓게 되었다.

“교복광고 하나쯤 들어올 법 한데.”

본인이 보기에도 그럴듯했는지 거울을 보며 중얼거린 그는 모델학원에서 배운 대로 몇 가지 자세를 취해봤다.

남이 본다면 자아도취가 중증이라 여겼을지 몰라도 상실은 진지했다. 인지도만 더 올라간다면 교복광고 하나 따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은 인지도도 낮고, 광고모델들은 십대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가수가 선호되는 탓에 카탈로그에 나열할 인물들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더 컸지만.

어쨌든 엄마를 위해서라도 돈이 될 건수가 하나라도 늘면 좋기에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고 있자니, 부르르 핸드폰의 진동음이 들려왔다.

얼마 전에 매니저인 영의 권고로 바꾼 최신 스마트폰을 켜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쫌만 기달’

지현이 보낸 문자였다. 시계를 보니 여덟시를 조금 넘겼다. 매일 칼 같이 여덟시 정각에 쳐들어오던 것을 생각하면 드문 일이었으나 소년은 그러려니 넘겼다.

여자애가 매일 먼저 찾아와서 법석을 떠는 게 유별난 일이다. 아니, 애초에 등교하는데 이성이 집까지 찾아와서 기다리는 일이 실제 벌어진다는 건 지현 때문에 알게 되었다. 계약을 맺기 전까진 그런 일은 하이틴 드라마, 소설, 만화에서만 나오는 일로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ㅇ’라고 답문을 보낸 그는 오늘은 자신이 먼저 가 있을까 생각하곤 가방을 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가 의아해한다.

“지현이 아직 안 왔는데?”

“늦는대요.”

“그래도 기다려줘라. 매정하게 그냥 가지 말고.”

“내가 찾아갈 건데?”

신발을 신으며 말하자 정순이 고무장갑도 벗지 않고 나와서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래? 잘 해라. 지현이 엄마한테 안부도 전해주고.”

“어차피 옆집이잖아요. 좀 있다가 같이 요리교실 가실 거면서.”

픽 웃으며 말하자 엄마가 손을 저었다.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야. 가까이 있을수록 잘해야지.”

“예에, 알겠습니다. 나갈게요.”

손을 흔들며 나간 그는 곧바로 옆집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벨소리가 몇 번 울리자 바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세요?”

“상실인데요, 지현이 멀었나요?”

“아, 상실학생.”

반가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현의 엄마가 웃으며 반긴다.

“어서 와요. 우리 애는 지금 옷 입고 있거든? 조금만 기다려요.”

잘 왔다는 듯 손을 잡아당기자 소년은 순순히 따라 들어갔다.

“얘, 남자친구 왔다.”

상실을 거실로 데려가며 지현의 방을 향해 말하자 문 너머에서 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지도 여자라고 부끄러워한다니까.”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따라 상실도 웃었다. 지현의 엄마는 자식 놀리는 걸 재밌어하는 듯 했다.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 뭐 마실 거 가져다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의자에 앉으며 정중하게 사양하노라니, 방문이 벌컥 열리며 지현이 뛰쳐나온다. 머리칼도 덜 마른 게 늦잠을 자서 급하게 말린 것 같았다.

“엄마는 무슨 말을……아, 안녕?”

버럭 외치던 그녀가 상실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살짝 손을 들어 인사하는 걸 손을 마주 들어 답하니, 설거지를 하려던 지현의 엄마가 핀잔한다.

“남자 앞이라고 내숭 떠는 거 봐라. 평소에도 그러면 얼마나 좋니.”

“엄마!”

소녀가 상실의 눈치를 보며 언성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못하고 있자니 모친이 시계를 가리켰다.

“그러다 지각한다?”

시계는 어느새 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각까지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으아, 얼른 가자.”

마음이 급해진 지현이 상실의 손을 잡아끌었다. 뒤늦게 손을 잡았단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금세 본래 안색을 되찾는다. 뭐 어때, 처음 잡는 것도 아니고.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차 조심하고.”

둘의 인사에 답한 여인은 혼자 웃으며 설거지를 개시했다.

“기집애, 나 닮아서 눈은 높아가지고.”

부엌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밖으로 나온 둘은 정류장을 향해 다급히 달렸다. 하지만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늦고, 정류장에 거의 닿았을 무렵에는 마침 버스도 떠나가 버렸다.

“아,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는 지현을 보며 상실은 작게 웃었다. 매일 보고는 있다만 이 활달하고 맹랑한 소녀는 질리지가 않는다. 처음에야 뭘 하건, 무슨 생각을 하건 관심도 없었다만 내 것이란 인식이 생긴 뒤부터는 애완동물 관찰 하듯 하는 행동들에 눈이 간다.

“택시타자.”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지각보다야 낫지 않은가. 어차피 둘이 같이 타면 요금도 큰 차이는 없고.

지나는 택시를 잡아탄 둘이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기사는 넉살좋게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물었다.

“이야, 선남선녀구만. 둘이 사귀나 봐요?”

“어, 음. 친한 친구에요.”

지현이 상실의 눈치를 살피며 더듬더듬 말한다. 상실은 대답대신 눈을 한 번 맞추고는 미소할 따름이다.

그녀는 그런 모호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이서만 다닌 지도 벌써 일 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나간 진도는 작년에 한 번 뽀뽀한 게 전부다. 남들은 그렇고 그런 관계까지 가기도 하던데, 관심이 없는 건지 뭔지, 상실은 먼저 유혹해오는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고작이다. 그마저도 어쩌다가 한 번 해주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상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자기 가슴이 작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했다. 상실도 모델이니 일하러 나가면 그런 사람들을 매일 볼 거 아닌가. 그에 비교하면 자신은 애나 다름없고.

그래서 가슴을 키우는 운동도 해보고, 브래지어를 사기도 해봤지만 아무리 용을 쓰고 모아도 가슴은 에이 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다른 건 다 악쓰며 부딪치면 됐지만 타고난 신체조건은 그런 걸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에휴.”

그녀가 상심하거나말거나 기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떠들었다.

“우리 아들도 고등학생인데, 이 녀석이 공부는 안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지 뭐야. 그런 건 대학 가서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지. 학생들도 연애보단 공부에 신경 써요. 공부 안하면 나중에 후회한다니깐.”

“알아서 할 거거든요? 그리고 저 공부 잘해요.”

어째 연애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돌아가자 지현이 뱀눈을 뜨고 쏘아붙인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그래, 그러시겠지.’라는 식으로 실실 웃을 뿐이었다.

성적표라도 꺼내 들어서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차가운 손길이 손등에 닿자 지현의 표정이 확 풀어진다. 두 손으로 상실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소년과 눈을 마주치고는 헤하고 웃었다.


작가의말

이번 장은 현재 상황에 대한 정리 겸 쉬어가는 부분입니다.
이 권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시간이 휙휙 지나가버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벌여서 정리가 좀 필요했거든요. 물론 이런 느슨한 전개는 이번 장에 한하고, 다음 장부터는 다시...
그나저나 연애비스무리한 장면까지 나와버렸네요. 배가 아프군요. 원래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글이 굴러가면서 지들 멋대로 사귀다니. 하기야 글의 인물들이 제 멋대로 구는 건 이것만이 아니니 상관 없습니다. 이들을 위해 제가 준비한 게 따로 있으니까말이죠. 흐흐흐.
슬슬 제가 글을 굴리는 게 아니라, 인물들이 멋대로 굴려가고 있습니다. 재밌는데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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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4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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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6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6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3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100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9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5 20 9쪽
» 3권 3 +5 12.06.17 1,939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4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6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5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5 6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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