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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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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1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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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심화 6

DUMMY

“흐흐, 으흐흐.”

라이온파의 보스. 백 태환은 지하주차장의 구석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이다. 경호를 위해 항시 따라다니는 부하 둘이 피투성이가 되어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있다. 가늘게 이어지는 숨이 아직 죽지는 않았음을 알려왔지만 곧 죽을 것이다. 칼로 몇 번이고 배가 쑤셔졌으니 시간문제일 뿐이다.

돕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태환 본인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전화는커녕, 119에 전화 할 힘도 없었다. 주변바닥은 몸에서 빠져나온 피가 융단처럼 깔려있다. 배에서 몇 번이나 칼이 박혔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위기감이 간신히 명줄을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알았다. 이대로 가면 한 시간을 넘기지도 못하고 자신을 포함한 부하들 모두가 죽는다.

“여, 염병할, 새끼들.”

기침하며 간신히 말한 그는 간절히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지금 딱 한 개비만 입에 물면 더 바랄 것 없이 얌전히 죽을 마음도 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까 앞 다투어 회칼을 쑤셔대던 놈들이 어딜 잘못 건드렸는지,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숨 쉬기도 버겁고, 말 하는 데도 속이 울려서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은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자, 유…….”

힘겹게 말을 내뱉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습격자들이 조치를 취했는지 시커멓다.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하던 그 괴물과 같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 죽는 지금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 괴물에게 잡아먹히기 보다야 칼 맞아 죽는 게 조폭답고 어울리지 않나. 본심을 말하자면 뭐가 어쨌건 살고 싶었지만, 어차피 죽을 것이라 확신이 서니 될 대로 되라 여겼다.

과하게 욕심을 부리면 되겠습니까, 백 사장님.

습격한 놈들의 대장이 한 말이다. 태환도 잘 아는 녀석이었다. 조직은 다르지만, 어쩌다 마주치면 선배대접을 깎듯이 해주던 녀석이었다. 본래 그 놈의 보스와는 좋은 사이도, 나쁜 사이도 아니었다. 관할구역이 다르니, 피차 소가 닭 보듯 가끔 눈인사나 하던 사이였다. 이 관계를 깬 것은 자신의 욕심 탓이다. 살려는 욕심. 괴물에게 죽기 싫다는 욕심은 결국, 지금 이렇게 돌아왔다. 서서히 죽어가는 현실로.

어디서 잘못 됐더라.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추슬러 지금까지의 일을 회상해 본다. 처음에는 옆 동네를 빼앗을 작전을 짜라고 했었다. 그래, 그래서 작전이 나왔지. 내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용역으로 부려먹던 놈들을 간부 몇 놈에게 딸려서 명목상으로만 독립시켰다.

그 외에도 두 개의 가짜 조직을 더 만들어서 총 세 개의 조직을 만들어냈다. 어차피 필요하면 돈 주고 부리던 양아치들을 동원했기에 라이온파의 전력은 크게 약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녀석들에게 명령해서 목적한 조직의 주요 사업장에서 난장을 피우게 했다. 당연히 여기저기 분산되어서 잔챙이들을 잡으려고 난리가 벌어졌고, 적의 주력이 분산된 다음에는 행동대장을 필두로 한 주력 조직원들을 투입했다. 적의 간부와 보스만 족치면 깨끗하게 해결 될 일이라 생각했었다.

일은 생각대로 진행 되었다. 대가리들 대부분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서 파묻었다. 사업장은 성공적으로 확장 되었고, 기존에 있던 놈들도 품에 끌어들였다. 어차피 이 바닥은 의리 따윈 개나 줘버리고, 돈과 힘이 있는 놈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었으니까.

다만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그 와중에 의리를 찾는 미친놈도 있었다는 점이다. 집어삼킨 조직의 행동대장의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얘길 듣고도 무시했던 게 멍청한 짓이었다. 당연히 조용히 숨어 살 것이라 짐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늘 습격당하고 말았다.

간만에 마음 편하게 첩의 집에 가서 회포나 풀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부하 몇 놈만 데리고 왔던 것이 화근이다.

차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도중 습격을 당했다. 일선에서는 옛날에 물러난 몸이라 한창 젊은 것들이 연장을 들고 덤비니 수가 없었다. 연장도 없고, 숫자도 모자라니 당할 수밖에.

부하들도 쓰러지고, 자신도 몇 번이나 칼에 찔려 이 지경이 되었다. 돌아보니 대단히 멍청한 짓을 연거푸 저질렀다. 괴물의 독촉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여차를 찾아왔던 것부터가 실책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데.

“인생, 좆……같네.”

헐떡거리며 말한 그는 정말 담배 한 모금만 빨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이제 쉴 시간이다. 손가락질 받는 인생이었다. 죽는 마당이 되자 조금은 후회 될 일도 떠올랐다. 하지만 뒈지면 똑같이 썩겠지. 사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천국도 지옥도 없는 곳이면 좋겠다. 나는 필히 지옥에 떨어질 테니까.

가만히 눈을 감던 그는 서늘한 감각에 번쩍 눈을 떴다. 익숙한 느낌이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본능에 각인 된 끔찍한 기분. 그 놈이다. 그 놈이 나타날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냉기가 약해진 몸을 침투해 온다.

“그륵, 크륵, 그르륵.”

과연 새까만 그림자 같은 것이 눈앞에 있었다. 짐승처럼 목을 울리며 코앞으로 대가리를 들이민다.

이제 죽을 것이라 만사를 포기했었는데도 몸이 떨린다. 낙인처럼 새겨진 공포에 오한이 인다. 턱이 멋대로 부닥치고, 체온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몸뚱이가 새삼 오한에 달달 떨어댄다.

죽이려고 왔는가 생각하던 태환은 앞의 놈이 이전의 그것과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와 같은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두려움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끔찍한 위용을 과시하던 괴물에 비할 수는 없다.

이놈은 도대체 뭔가. 그 괴물과 같은 동족일까? 그럼 왜 내게 온 거지? 죽이러? 잡아먹기 위해? 그도 아니라면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당장이라도 멈출 것 같은 뇌를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이 말을 걸어왔다.

“힘을, 그륵. 주겠다.”

짐승의 울음과 뒤섞여 듣기 싫은 목소리로 그것이 말을 잇는다.

“크르륵. 영혼……다오. 육체, 크륵, 를 다오.”

점차 괴물의 형상이 뚜렷해진다. 검은 덩어리 같던 것의 형태가 또렷해진다. 여섯 개의 다리가 달려있고, 각각에는 칼날 같은 발톱이 붙어있다. 대가리는 늑대나 곰 따위와 비슷하게 생겼고, 그 덩치 또한 어마어마하다. 말 역시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하면 힘을 주마.”

도깨비장난 같은 상황에 말을 잊고 있던 태환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놈의 말이 사실일지, 내게 손해가 없을 것인지, 과연 놈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

그 결론은 어차피 자신의 손해는 없다는 것으로 귀결 된다.

어차피 죽을 몸이니, 영혼이고 육신이고 줘버리면 그만이다. 주지 않는다고 해봤자, 이 괴물이 ‘어, 그래.’하고 지나갈 리는 없다. 만약에 그냥 가버린다고 치면, 그리고 저것이 만약에, 아주 만약에 악마 같은 종류라면 어차피 그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악마가 있다면 지옥도 있다는 말이 되니까. 그럼 천국도 있겠지만, 스스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 천국을 가기엔 글러도 진즉에 글러먹은 몸이다.

무엇보다 그의 지론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괴물 같은 몰골로 돌아다니게 되더라도 뭐가 있을지 모를 사후세계로 끌려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어떻게 모은 돈이고, 어떻게 일군 조직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마. 그러니.”

그가 고통을 참으며 애써 웃는다.

“힘을……내놔.”

계약이 성립 되었다.


엄마와의 대화를 끝마친 상실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대화는 잘 풀렸다. 혹시나 걱정했던 반대는 없었다. 외려 기쁜 일이 겹으로 왔다고 좋아하셨을 뿐이다. 일이 피곤했는지 엄마는 저녁을 드시고는 성적표와 계약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옆방에서 들리는 숨소리로 보아, 지금은 주무시고 계신다. 본래대로라면 이대로 날이 샐 때까지 공부를 했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왔어, 왔구나.”

소년이 음산하게 웃는다. 정말 기쁜 듯,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원에게 심어 두었던 파편을 통해 신호가 왔다. 매우 기쁘게도 그날, 미친놈을 가로챈 녀석과 흡사한 놈이다.

기다려, 빚을 갚아주마. 천 갈래로, 만 갈래로 찢어 먹어치워 주겠다. 감히 누구의 먹이를 건드렸는지 후회해라. 내 뱃속에서 녹아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그의 몸이 검게 물든다. 당장이라도 목표를 향해 내달리려던 순간, 멈춰 선다. 얼굴을 알아볼 수없이 검게 물든 상태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둘?”

지원 하나만이 아니었다. 어느 놈부터 잡아 죽여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지원 쪽이 먼저다. 진작부터 노리던 먹이를 훔쳐간 놈부터 찢어발겨야 뒤끝이 개운할 테지.

결론은 내려졌다. 그렇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인다. 목표는 둘.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 단 하나도.


작가의말

몸 상태가 최악이군요.
어제 써 놓은 글이 있어서 오늘까진 버티겠지만, 내일도 이렇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음,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아프면 집중을 할 수가 없거든요.
악마들의 등급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읽으시다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실 겁니다. 미리 알면 재미 없잖아요? 아마 다음 화나, 다다음 화나, 그도 아니면 다다다음 화나..... 어쨌거나 언젠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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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권 - 탐문 7 +5 13.02.17 873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5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5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2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8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5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8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4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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