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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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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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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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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그림자의 밤 5

DUMMY

충격에 튕겨나간 괴물이 담벼락에 아무렇게나 처박혀버렸다. 몸의 상태도 만신창이다. 가슴 한복판에 구멍이 뚫렸고, 몸에서 뽑아냈던 팔들도 사라져버렸다.

기세등등하고 날뛰던 괴물치고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사람이라면 거듭 죽어도 모자랐을 공격을 받고도 재생하고 있는 모습은 굉장하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일어나!

지원의 혼이 악을 지른다. 이에 반응했는지, 본래 일어날 생각이었는지 괴물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직 죽지 않았다. 근원의 작은 조각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의 종족은 불멸이다. 잡아먹히거나, 태양이나 불길에 타오르기 전까지는.

그가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면전에 상실이 갑작스레 나타났다. 공간도약이다.

“누워.”

친절하게 말하며 그가 괴물의 머리를 잡아 땅에 내려찍는다. 담벼락의 잔해가 박살나고, 그 밑의 땅이 쩍쩍 갈라진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뻗쳐나간다.

괴물이 어떻게든 반격을 해보려 손을 들었다. 먹히는 게 내정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잡아먹히는 건 취미가 아니다.

그 순간 상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사람을 통째로 삼킬 만큼 크게 벌어진 입이 단번에 괴물의 팔과 어깻죽지를 물어뜯는다. 강인한 신체도 소용없다. 흉험한 이빨이 통째로 신체를 뜯어내 씹어 삼킨다.

으아아아!

자신의 몸이 뜯어 먹히기라도 한 듯 지원이 비명을 질렀다. 반면 괴물은 담담하다. 그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놈은 나보다 강하다. 월등하게. 지금까지 싸웠던 것도 이상한 일이다. 작정을 했더라면 몇 수 나누기도 전에 그는 이미 잡아먹혔다. 왜 이렇게 치고받으며 싸웠느냐면…….

“재밌는 여흥이었어.”

상실의 말에 괴물이 끄덕인다. 말 그대로. 여흥일 뿐이었다. 정말 죽이고자 했더라면 언제든 그는 죽었다.

“과연 너는 그분의 적자로구나.”

괴물은 이제 반항도 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한다. 그에 상실이 의문을 표했다.

“그분? 적자?”

하지만 괴물은 상실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았다.

“이 비루한 세계는 곧 무너지고, 우리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너와 네 형제들, 우리 동족이 먹고 먹히며 하나가 되어 갈 것이니, 모두가 하나의 어둠이 될 때, 그분께서 강림하시리라.”

무슨 말인가 생각하던 상실은 꿈에서 봤던 악마를 떠올렸다. 이 괴물이 말하는 그분이란 그 악마 외엔 없다. 하지만 그 외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내 형제? 우리 동족? 하나의 어둠? 강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이 욱신거린다. 빼앗긴, 팔아버린 영혼의 빈자리가 숨을 옥죄어 온다. 불길함이 끊임없이 고개를 쳐들었다.

일순간 그의 눈에 환상이 보였다.

하늘이 갈라진다. 유리창이 깨지듯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의 곳곳에 시커먼 균열이 일어났다. 커다란 충격에 깨진 것처럼 거미줄 같은 금이 그어진 하늘의 틈새를 비집고, 괴물의 동족들이 무수히 뛰쳐나왔다.

가깝고도 큰 균열을 중심으로 자신과 닮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괴물을 잡아먹는다. 덩치를 불린 그림자들이 서로를 상잔하고 물어뜯었다.

그 과정에 세계가 불타오른다.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며 포탄을 쏟아내고, 미사일이 여기저기 처박혀 굉음을 일으켰다. 기갑과 병사가 군대를 이뤄 전쟁이 벌어진다. 인간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뒤에서 그림자들이 광소하고 있었다. 불길이 사방에 치솟아 오르고, 무수한 인간이 잡아먹힌다. 울음과 절규가 전 세계에 걸쳐 울려 퍼졌다.

지옥이라 칭할 수밖에 없는 아비규환의 세상의 끝에 거대한 그림자가 온 땅을 뒤덮는다. 어둠 그 자체라 여겨지는 끔찍하고도 거대한 존재가 지구를 지배하고, 폭정을 휘둘렀다.

인간은 그저 숨죽여 흐느끼는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들은 그저 그림자의 먹이일 뿐.

가축과 다름없어진 무수한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상실은 한 사람을 보았다. 주름진 얼굴, 펑퍼짐한 몸으로 울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늙은 여자를.

“엄마?”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목소리에 환상이 깨어진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두렵다. 아직 놓지 못한 인성이 외친다. 지옥이다. 세상이 지옥이 될 것이다.

또한 동시에 기쁘다. 영혼의 빈자리를 잠식한 시커먼 것이 환희에 부르짖었다. 왕께서 오신다, 나의 신께서 오실 것이다. 너희 벌레들은 엎드려 경배하고, 공포에 질린 절규로서 그분을 찬미하라.

환희와 공포. 정 반대 되는 두 가지 감정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의 눈에 마지막에 보았던 환상이 아른거린다.

지저분한 몰골, 늙어버린 몸으로 악다구니를 지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헤매며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외치던 엄마의 모습.

“엄마라니, 개소릴 하는군.”

그의 밑에 깔린 괴물이 비아냥거린다. 순간 격렬한 감정이 치솟았다.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증식한 분노에 시야가 검게 물드는 착각이 인다.

소년의 손아귀에서 기다란 발톱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그것이 괴물의 몸뚱이를 파고들어 헤집는다. 허나, 괴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길게 찢어진 입가에 조롱이 담긴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하나가 되자, 이로서 그분의 강림은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다음 순간 괴물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단번에 상반신을 물어뜯은 소년이 그를 잘근잘근 씹는다. 아직 죽지 않은 괴물의 몸뚱이가 펄떡이지만 잡아먹힌 상반신의 재생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의 사지를 하나하나 잡아 뜯어 탐식하며 상실은 방금 전의 환상을 되새겼다.

균열, 그림자, 파멸, 어둠.

그리고 엄마.

까드득 이가 맞물려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다. 어둠이 강림하고, 그림자가 날뛰어도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아무도 내게서 엄마를 앗아갈 순 없어.”

설령 신이라도.

그가 남은 괴물의 신체를 집어 삼키며 다짐했다.

모두 죽여주겠다. 엄마를 위협하는 대상이 무엇이건 찢어죽이고 말겠어.

괴물과 함께 뱃속으로 들어간 지원의 혼이 뭐라 외쳤지만, 소년은 그를 무시했다. 아직 죽일 놈이 더 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지.


수도권 외곽의 한적한 도로는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곳곳에 균열이 생겨나있고, 쓰러진 가로등이 무수하다. 인근의 논밭은 뭉개지고 불타올라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참상이다.

그 중심에 두 개의 그림자가 대치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자는 팔을 하나 잃은 처참한 몰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와 대비되어 쌩쌩해 보인다.

신나서 상대를 압도하며 검은 영기를 사방에 흩뿌리던 그림자의 움직임이 일순 멎는다.

북쪽과 상대를 번갈아 응시하던 그것이 아쉬운 듯 말했다.

“벌써 끝나버려? 안 돼! 제기랄. 난 아직 멀었는데!”

중얼거리던 그림자는 곧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히죽 웃더니 방금 전까지 죽일 기세로 몰아붙이던 상대에게 손을 흔들었다.

“흐히힛, 나는 먼저 갈게. 형이 오고 있거든.”

그 말을 끝으로 그림자의 형상이 순식간에 남으로 멀어진다. 자리에 남아있던 그림자, 백 태환을 잠식한 괴물도 힐끔 북을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잠시 고민한 그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쪽으로 가기엔 방금 전의 미친놈이 걸리고, 북쪽으로 가기엔 이곳으로 내려오고 있는 괴물이 걸린다.

그렇다면 바다를 건넌다. 다행히 밤이 다 가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태양이 뜨기 전까지는 중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하면 태양광에 타죽겠지만.


작가의말

이 권의 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실 출판사와 이야기 한 분량보다 많이 연재 되어서 좀 그렇네요. 며칠 놔뒀다가 책이 나오기 전에 그림자의 밤 분량은 지우겠습니다.
다음 연재는 삼 권 분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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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권 - 탐문 12 +3 13.02.21 1,418 14 11쪽
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2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7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71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4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3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6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6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3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100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9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5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4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6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5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5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3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3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4 5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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