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 심연
온통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악마는 홀로 존재했다. 아무런 사물도, 하늘도, 땅도 없이 오직 빛을 빨아들이는 심연의 중심에 오롯이 앉아 모든 감각과 능력을 동원하여 자식들이 날뛰고 있는 지상의 일에 주의를 집중했다.
둘째 녀석이 날뛰며 지구의 안팎을 감싼 결계가 무너져감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동시에 스스로의 몸을 쪼개 균열이 벌어진 결계의 틈으로 분신들을 밀어 넣었다.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벌어진 균열로 밀려들어간 씨앗들은 머잖아 부화하여 더욱 큰 혼란을 만들 것이다. 중국에서도 하나의 분신이 힘을 키우며 결계의 균열에 한 손을 보태고 있었고, 지루하게 버티던 첫째 역시 둘째의 등장에 자극을 받았는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움직여라. 날뛰어라. 인간을 잡아먹고, 너희 끼리 물어뜯고 상잔해라. 그리하면 종국에 내가 내려설 것이다. 같잖은 결계를 깨부수며 지상으로 강림 할 것이다.
자식과 분신들의 행태에 악마는 즐거이 웃었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지루하고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얼마 만에 돌아온 고향이던가. 그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떠나와 있던 고향이었던가. 하루가 일 년 같던 끔찍한 시간을 지나 나는 결국 이 자리에 돌아왔다. 내가 태어나 자랐던 곳으로 나는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모든 것을 돌려받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과 고통 받은 세월을 보상 받을 것이다. 모든 인류를 집어 삼켜서라도 내 모든 것을 되돌려 받고야 말겠다.
이제 머지않았다. 첫째와 둘째의 상잔이 끝나는 순간, 더 많은 자식들을 지상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 아이들로 비롯한 혼란이 내가 지상에 강림할 균열을 만들어 내리라.
악마는 입으로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주시했다.
지상과 대지를 감싼 결계가 서서히 부스러지고 있었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찾아 뵙습니다. 어젠가 그젠가 드디어 3권이 발매 되었군요.
4권의 서장으로 인사를 올리도록 하고, 제대로 된 내용으로는 월요일부터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굉장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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