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3
앞장 선 담임교사가 향한 곳은 상담실이었다. 교무실 근처에 만들어 둔 공간으로, 자연히 상실은 다른 교사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보렴.”
따돌림 받는 아이란 말이 돌았기에 교사들이 제법 친절히 말해주었다. 그에 상실은 밝게 웃으며 알겠다고 인사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기에, 위로를 한답시고 말 걸었던 교사들은 저 아이가 다른 이유로 무단결석을 했던 것이 아니었나, 갸웃거렸다.
“앉아라.”
자리를 권하며 맞은편에 앉은 담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있는 소년을 보며 내심 한숨지었다. 그도 괴롭힘이 있음은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나 눈치로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그가 나설 수는 없었다. 요즘 애들은 영악하고 고집이 세서, 선생이 뭐라고 해봤자 잘 들어먹지도 않았다. 착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학교에는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배움은 학원이나 과외로 옮겨가 버렸고, 그나마 있던 교권도 체벌금지로 무너져버렸다. 사실, 체벌금지 이전부터 무너져 있었다. 학부모가 학교로 달려와 선생의 따귀를 올려붙이던 시절부터.
하여, 그는 지켜보면서 상실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랐었다. 아이들의 일은 어지간하면 아이들이 해결해야지, 어른이 나서봤자 겉으로만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서선 그대로 행동했다. 아직 학기 초이니 심해봐야 얼마나 더 심하겠냐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상실이 무단결석하기 전까지는.
이후에 어떻게 해결해보려 했지만, 아이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조리 벌점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명확한 주동자도 알 수 없었다. 그제야 자신을 질책했지만 이미 떠난 배였다. 상실이 학교로 나오지 않는 동안 그의 어머니께 전화도 해보고, 따로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상실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작스레 상실이 등교했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의 문제를 바로잡아야만 한다.
“학교는 잘 나왔다. 힘든 결정이었지?”
“아뇨, 그냥 오고 싶어서 왔어요.”
상실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 불려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에 앉은 담임에게선 맛있는 냄새는커녕, 유별난 냄새도 나지 않는다. 지금껏 대화도 많이 나눈 적이 없던 상대인데, 맛도 없어 보이니 흥미가 생길 리 없다.
담임은 상실의 말을 오해했다. 너무 괴롭힘을 당해서 숨긴다고 판단했다. 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너를 도와주겠노라고.
“내게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 따돌림 받고 있었지? 애들이 무서워서 그렇다면 선생님이 도와주마. 나를 믿어다오, 상실아.”
“선생님이 무슨 말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어머님과도 이야기 해봤는데. 네 학교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으시다. 앞으로 걱정 끼쳐드리지 않아야지 않겠어?”
“저도 엄마랑 얘기 했는데요.”
그 말에 담임이 귀 기울였다.
“괜찮아요. 아무 일 없었어요. 그냥 나오기 싫어서 안 나왔던 거고, 오늘부터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너…….”
아니라고만 하는 상실을 답답해하며 담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 잡고 있어봐야 말하지 않을 것이라 직감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앞으로 학교는 계속 나올 게냐?”
“예. 졸업은 해야죠. 공부도 해야 하고요.”
그는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말은 안하더라도 강하게 마음먹은 모양이라 생각했다. 당분간은 잘못 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니 지켜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래, 앞으로 만약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고.”
“네.”
“가 봐라. 수업 받아야지.”
“예,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며 나온 상실은 문을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찮은 남자였다. 그놈의 관심은 좀 일찍 가져줬으면 좋았겠다만, 이제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앞으로 겁 모르고 덤벼드는 애송이들을 손봐줘야 하는데,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귀찮아지지 않은가.
교실로 돌아온 소년은 이미 수업하고 있는 교사에게 인사하며 자리로 갔다. 뭘 하고 왔는지 아는 눈치였기에 그녀도 수업을 계속했다. 상실이 책을 펼쳐 수업을 들어보려 했지만, 들어오는 내용은 없었다. 죄다 못 알아먹을 소리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틀렸다고 판단한 그는 학급의 인원들 중 공부를 잘 한다는 몇 명을 훑었다.
공부가 안 되면, 잘 하는 놈에게 배우면 되겠지.
희생자를 물색하던 사이, 종이 울렸다. 선생이 나가자 교실에 긴장감이 흐른다. 지원이 패거리들과 함께 상실의 자리로 몰려왔다. 다들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과연 상실의 반항이 성공리에 끝날 것인가, 짓밟혀 무너질 것인가.
대부분은 금세 꼬리를 말 것이라 여겼지만, 관심 없는 척 곁눈질 하는 정훈은 묘한 기대를 가졌다. 어쩐지 지원과 패거리가 밀릴 것 같았다. 아까 상실이 보여준 시선과 분위기는 이전과 극명히 달랐다.
“고개가 빳빳해 졌더라, 너.”
지원이 이전과 달리 성난 얼굴로 말했다.
“어디서 깔짝 운동 좀 배워왔냐?”
“이 새끼가, 오랜만에 보니까 만만해 보이나, 눈 안 깔아?”
“간댕이가 부었냐?”
함께 온 소년들이 위협했지만, 안타깝게도 상실에겐 전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에게 이들은 강아지만도 못했다. 병아리가 몰려들어 짹짹 댄다고 두려워 할 사람이 없듯, 상실도 그랬다. 인간 따위가 몇 백이 몰려온대도 두렵지 않았다. 군대가 온대도 상대해 멸절 시킬 자신이 있었다. 악마가 준 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걱정 되는 것이라곤, 잘못 쳐서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안하다.”
그 말에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식었다.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이어질 괴롭힘을 기다리거나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정훈도 실망했다. 아까 잘못 봤던 거라 생각하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지원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럼 꿇어.”
상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원과 패거리는 그가 무릎 꿇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상실은 무릎을 꿇는 대신 한 걸음 나서 말했다.
“죽이진 않을게.”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지원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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