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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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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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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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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1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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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권 5

DUMMY

지현과 잠시 헤어지고 교실에 들어선 상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눈에 누가 들어와도 관심을 두지 않으며 무심히 자리로 향할 뿐이다. 간혹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까딱이거나 손을 들어 답해주는 것으로 끝. 그 외에는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상실에 관한 풍문과 어쩐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 탓에 접근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할 뿐임에도 어린 나이의 충동적인 호기에 시비를 거는 이도, 경외감이나 호의로 말 거는 이들조차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저 녀석에겐 뭔가 있다고 느끼고 모두가 접근을 꺼려했다. 물론 이건 상실이 의도한 상황이었다.

그는 굳이 타인과 친교를 맺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건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다. 소속사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도 비교적 유하게 구는 것도 필요에 의해서일 뿐이다. 그 외에 전혀 관련 없는 이들과는 접점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포식자다. 인간이라는 종을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탈피한 규격 외의 괴물이다. 인간이 풍기는 향취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지만 어쨌건 그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맛있는 먹이와 맛없는 먹이로 구분 될 뿐이다. 선인이라 살려두는 게 아니라, 선인이 맛이 없기에 살려두는 거다. 맛있는 것들이 조금만 발품을 팔면 널려있는데, 구태여 맛없는 것들을 물어 입맛을 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이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오직 엄마다. 나름대로 재미를 느끼고 있는 공부도 엄마가 아니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계약한 시점에서 학교를 졸업했었다면 공부에 손도 대지 않았겠지.

그도 가끔은 왜 엄마에게 집착하고 있는가 고심했다. 인간으로서의 본능 대부분이 사라지고, 감정도 상당부분 상실했음에도 왜 엄마에 집착하는가?

악마와 계약을 했고, 악마나 다름없는 몸이 되었다. 인간을 산채로 찢어발겨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왜일까? 왜 그렇지?

그냥 엄마가 좋았고, 그 체취가 좋았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날뛰는 본능이 가라앉았다. 어째서인가 생각하던 그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는 엄마에 대한 채무감과 죄책감, 연민이 남아있다.

나는 쓰레기였다. 엄마의 하나뿐인 희망이며 동시에 엄마의 짐덩이다. 등골에 달라붙어 고혈을 빨아먹는 거머리였다. 나로 인해 엄마는 새 출발을 하지도, 스스로를 위해 살지도 못했다. 벌레같이 순간의 위안을 위해 게임에 몰두해서 주변을 돌아보지도, 고난을 뚫고 나가지도 못하는 머저리. 그대로 살았더라면 죽는 그 날까지 엄마는 나를 먹여 살리려 등골이 휘도록 일터를 전전했으리라.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집안의 경제력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자식새끼는 발끝만 보고 사는 장님이다. 평생에 걸친 노고에도 죽는 그 날까지 보답 받지 못했을 인생이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모자란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눈도 감지 못했을 그런 사람이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생각이 정리 된 순간 소년은 깨달았다.

왜 엄마에게 집착하느냐가 아니다. 엄마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없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길바닥에 쓰러져 굴러다니더라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폐인에 불과했다. 그런 그를 이만큼이나 보듬고 키워온 엄마가 없다면 영혼까지 팔아치우고도 이상실이란 자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가 아직도 흩어지고 깨어진 영혼의 조각을 부여잡고 있음은, 이상실이란 이름의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엄마를 위함이었다.

버러지 같은 인간이 한 번 죽었던 날, 그 날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엄마의 고통과 사랑을 마음속 깊은 곳 어디선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거대한 빚을 졌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져온 빚은 죽는 그 날까지 갚아도 이자조차 돌려주지 못할 만큼이나 크다. 그러니 영혼을 팔아치운 지금도 나는 나로서 남아있어야 했다. 모두는 엄마를 위해서. 받을 자격이 없었던 너무나 큰 애정에 보은하기 위함이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느꼈던 균열, 하늘이 부서지고 있다는 감각은 지금에 와서는 더욱 커졌다. 그 때문일까, 며칠 간격으로 밤이 되면 그림자가 일어선다. 끊임없는 공복으로 날뛰며 사람을 잡아먹는 것들.

그치들이 사람을 잡아먹건 말건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인간의 혼백 대신 그것들을 잡아먹으면 되었으니까. 왕이 강림한대도 상관은 없었다. 세상이 파괴되는 게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인간이 가축이 되는 게 뭐가 대수인가? 이미 그에게 있어 인간은 가축이나 다름없는데.

하지만 그에겐 관련이 없어도 엄마에겐 관련이 있다. 단지 엄마 홀로 안전하게 살아남는다고 행복할까? 세상이 박살나고 인간들이 잡아먹히는 지옥 속에서? 그럴 리가. 엄마는 평범한 아줌마다. 괴물들이 날뛰는 상황만으로도 견디지 못할 것이고, 아들이 그것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불행해 질 거다. 영원히.

그러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그는 왕의 강림을 막을 심산이었다. 감히 인근에서 시끄럽게 날뛰는 그림자 놈들을 모조리 잡아먹을 테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의 위에 내 어머니가 계시다.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두를 내가 쳐부수리라.

“밖에 뭐 있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문제집을 든 지현이 곁에 서있었다.

“아니, 생각 좀 하느라고.”

“흐응.”

고개를 끄덕인 지현이 가까운 곳의 의자를 빼왔다. 그 자리의 주인은 이미 등교해 있었지만 일부러 다른 곳에가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마다. 상실을 무서워해서 알아서 비켜주는 것이었다. 그 소년도 자기 자리에 앉아있고 싶은 때가 있었지만 상실에게 따질 바에야 자기가 비키고 말았다.

불쌍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상실은 그를 무시했다. 자신과 관계없는 이종의 생물이 불편하다고 배려해주는 인간은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소년도 관계없는 인간을 배려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헤어질 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로 책을 펼치는 지현을 보며 상실은 꽤나 기묘하다고 여겼다.

인간은 음식이다. 이 소녀역시 그와 취급은 같았었다. 다만 쓸모가 있었기에 가까이 두었고, 그러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정이라고 할 만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 탓에 억지로 끌어다 공부를 가르치라 윽박지른 것에 대한 채무감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빚을 졌다는 것으로 끝날 내용은 아니었다.

보다 인간적인 감정.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우습다 여겼지만 그 말고는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감정의 상당부분이 거세되고, 가학적이고 파괴적인 충동과 감정만이 발달되어 버린 그에게도 나름대로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예전 주차장에서 자식의 보험료를 요구하던 어미를 찢어발길 때, 그 죽은 녀석에 대한 연민이 치밀었던 것도 그와 같은 선상의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 지현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그에게 큰 비중을 가졌다. 나름대로 애정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소녀가 바라는 사랑과는 다른 감정이란 것 정도는 그도 알았다. 굳이 따진다면 사랑보다는 소유욕에 가까우리라.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그의 곁에 있을 거였다. 도망가려 한대도 놔주지 않을 속셈이다. 이미 소년은 이 소녀를 자신의 것이라 찍어두었으니까. 달리 그림자에 파편을 심어둔 게 아니다. 세상 끝까지 가버리더라도 그는 지현을 잡아올 거다.

그녀는 세상에 단 둘 뿐인 상실이 집착하는 인간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인간 남녀 간의 애정이라면 그 역시 줄 것이다. 물론 진심으로 그리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연기를 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엄마에게 해가되지 않는 선에서라면 뭐든 들어주리라. 무가치한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의미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있어 그녀는 나머지 모든 무가치한 것들의 합보다 더 가치 있었다.

“뭐해?”

상실이 뚫어져라 바라보자, 지현은 얼굴을 붉혔다. 드물게 장난기가 샘솟은 소년이 고개를 기울여 말했다.

“예뻐서.”

“진짜?”

“농담.”

지현이 달려들 듯 묻자, 기다렸다는 듯 빠져나간 그는 삐진 기색의 소녀를 달랬다. 예전에 봤던 영화와 잡다한 소설, 만화에서나 나올 방법이었지만 역시나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 문제였는지 잘만 먹혀들었다.


작가의말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죠. 어쨌거나 커플은 커플입니다.
지현에 대한 주인공의 감상은 이정도면 되겠지요. 아, 끔찍하게 불규칙한 연재에도 불구 재밌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삼 권은 이번주 목요일까지 원고를 보내기로 했으니, 다음주 월요일에 나올 겁니다. 음, 아마도요. 그런 고로 새 글은 제가 잠들기 전까지 내킬 때마다 올라옵니다. 오늘 하루동안 몇 개가 올라올지는 저도 몰라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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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12.06.18 05:44
    No. 1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음속소원
    작성일
    12.06.18 06:35
    No. 2

    커플굴리는것까지만올리신다면......후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6.18 10:57
    No. 3

    괴물에게도 나름의 애정이 있다는건가요??
    엄마는 이해하지만 여자친구는????
    좀 이해가 안가는 면이지만 감정이라는게 마음대로 돼는것도 아니고 괴물이라고 해서 모친으로인해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로맨스는 안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악마라고 할수 있고 인육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으면서 같은 인간에게 로맨스를 느끼다니...... 이상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領天華
    작성일
    12.06.18 13:12
    No. 4

    감사합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뿔따귀
    작성일
    12.06.18 14:03
    No. 5

    잘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12.06.25 12:59
    No. 6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gf****
    작성일
    12.06.30 14:15
    No. 7

    건필하세요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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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4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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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3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1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3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4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7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7 27 8쪽
» 3권 5 +7 12.06.18 1,921 2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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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권 3 +5 12.06.17 1,937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6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5 2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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