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 탐문 10
제비를 고깃덩이로 만들고 영혼까지 먹어치운 뒤에야 갈증을 해갈한 그림자가 상실에게 다가와 엎드렸다.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그를 이리저리 훑은 소년이 고개를 까딱였다.
“일어나.”
소리 없이 일어선 강섭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명을 기다렸다.
“너 말고도 날 찾던 놈들이 있겠지?”
“예. 조사팀도 꾸려졌고, 윗선에서도 알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인간과 싸우는 건 두렵지 않지만 정체가 밝혀지는 건 다른 문제다. 상실은 그것이 매우 싫었고, 지나온 길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는 놈들이 불쾌했다. 선택은 간단했다. 엄마의 행복에 방해가 될 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
“다 죽여.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누구를 막론하고 말살해라.”
“이득수는 어찌 할까요?”
“그자는 따로 쓸모가 있어.”
소년의 얼굴에 음험한 표정이 떠올랐다.
“동생 놈이 하는 짓을 보고 깨달았지. 숨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나는 놈과 다른 방식으로 이 나라를 장악 할 거다. 그자는 첨병으로 사용하겠어.”
“제가 잡아올까요?”
“그건 내 일이지. 네 일이나 실행해.”
꾸벅 고개 숙인 강섭의 몸이 그림자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릴 바라보던 상실이 처참하게 변한 시체를 향해 손을 내젓자 피륙과 뼈가 순식간에 풍화되어 가루가 되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이 모두를 지켜보고 있던 진혁이 그제야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숨이 가쁘다. 힐끗 돌아본 신영이 고개를 까딱였지만 답하지 못했다. 한 학교에 괴물이 둘이나 있었다니. 게다가 방금 하나가 더 늘어났다.
두려움에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뭐가 뭔지, 왜 저런 괴물이 나왔는지, 왜 사람을 죽이는지, 나는 왜 이런 곳에 끌려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멍하니 고개를 든 진혁은 코앞에 있는 상실을 바라보며 맥없이 물었다.
“이제 나도 죽일 거냐?”
“글쎄.”
그게 고민이라는 듯 한손으로 턱을 괴며 되묻는다.
“댁은 어떻게 생각해? 죽거나 계약을 맺는 중에.”
진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다니. 그럴 수는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차라리 죽겠다. 그런 괴물이 되긴 싫어.”
담담하게 죽음을 얘기하는 남자를 보며 소년은 역시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다. 여기서 죽이면 차후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만 그렇다고 살려둘 수도 없다. 엄마의 행복은 단 한 명의 폭로에도 무너질 수 있으니. 진혁이 나중에 전화 한 통만 넣어도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을 수는 없었다.
“편히 보내드리지, 선생.”
팔이 움직이고, 소리 없이 진혁의 목이 떨어졌다. 생기 잃은 눈동자가 몇 번 움직이다 활동을 멎었다. 그에게서 나는 냄새는 굉장히 입맛이 떨어졌기에 주저 없이 시체를 가루로 만들자, 신영이 물었다.
“이건 어쩌죠?”
입맛을 다시는 게 꽤 마음에 든 눈치다. 상실로서도 발품을 좀 팔아서 잡아온 놈들이었기에 그냥 버리긴 아까웠다. 무엇보다 방금 전 상황을 모두 목격한 놈이다. 살려둘 순 없었다.
“원래는 선생과도 계약 할 생각이었는데.”
“그럼 제가 먹어도?”
“네 건 네가 찾아 먹어.”
신영이 시무룩한 기색으로 잠옷 사내를 바라본다. 상실은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밤은 아직 남아있었다.
“기왕 잡았으니, 써먹어야지.”
끔찍한 대화에 남자가 발버둥 쳤다. 소년이 비웃음을 던졌다.
“억울할 거 없어, 아저씨. 오늘이 아니라도 머잖아 잡혔을 테니까.”
상실은 눈을 감아 이득수에게 심어둔 파편을 탐지했다.
“찾았다.”
멀리 있는 뭔가를 바라보듯 가늘게 눈을 뜨더니, 연기처럼 사라진다. 신영은 불만스럽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배고픈데.”
파랗게 질려서 고개를 흔들자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막고 있던 손을 풀었다.
“아저씨, 비명 잘 질러?”
남자가 목청이 터질 듯 울부짖어 답을 대신했다.
잠들어 있던 득수는 온 몸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누가 창문을 열었나 싶었는데, 밑으로 고층빌딩이 지나가는 걸 보고 비몽사몽 하던 정신이 말끔해졌다.
꿈인가 생각했지만 폭포 떨어지듯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건물과 도로의 모습과 밀려오는 바람이 너무도 생생하다. 문득 목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기억 속에 각인 된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형상과 대비되는 하얀 이빨이 섬뜩하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꿈이 아니고, 도시가 폭포처럼 흘러내려가는 것도 아니었다. 괴물에게 붙잡혀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 줄기 바람처럼 호텔방으로 돌아온 상실이 득수를 내던졌다. 데굴데굴 구르는 그를 신영이 축구공 잡듯 발끝으로 정지시키고서야 어지러운 정신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내부를 파악하고 자신을 멈춰 세운 자가 누군지 확인하던 그는 신영이 뱀처럼 늘어난 팔로 건장한 남자를 속박하고 있는 광경을 보곤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이거 먹지도 못할 놈인데요?”
“못 먹을 놈이니 써먹기라도 해야지. 그건 또 뭐야?”
상실이 잠옷 입은 남자가 혼이 빠질 듯한 얼굴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걸 두고 묻자, 별 거 아니란 투의 답이 돌아왔다.
“배가 고파서 간단하게 좀…….”
상실이 어색하게 웃는 신영에게 혀를 찼다.
“식욕도 못 참겠으면 죽던가.”
“죄송합니다.”
꾸벅 허리 숙이는 그에게 손을 내저으며 득수에게 다가선다. 이득수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두, 둘? 저게 당신의 부하인가?”
“질문은 안 받아, 차장.”
상실이 인간의 형상을 취하자 득수가 입을 쩍 벌렸다.
“분명 나를 찾지 말라 했을 텐데?”
“……내 목숨은 상관없다.”
비장하게 말하는 사내를 보며 상실이 픽 웃었다.
“역시 쌍으로 제정신이 아니야.”
“김요원도 알고 있나?”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내가 요즘 너무 신사적으로 변했나?”
상실이 득수의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 속의 무언가가 요동친다. 한기가 전신을 감싸며 전신에 소름이 돋아나고, 당장이라도 목이 날아갈 듯 위기감에 식은땀이 솟아났다.
“질문은 내가 한다, 이득수.”
머리털이 곤두서는,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속에 울리는 거대한 맹수의 포효와 같은 그것은 고막을 찢고 뇌를 파고들 것처럼 살벌했다.
자포자기하고 있어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앞에 있는 건 사람의 형상을 취했을 뿐인 불가해한 괴물이었다.
- 작가의말
오늘 하루만 일만 자 조금 넘게 썼군요. 자축자축.
상실이 성격의 변화는 저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랫동안 손을 놔서 그런가 감이 잘 안 잡히네요. 다른 연유로는 제가 이 글을 시작할 때, 속에 악이 있었습니다. 욕구불만이나 짜증 비슷한 감정이었죠. 그런데, 그게 해결되어서 그런지 묘사를 할 때도 그 때만큼의 감각이 안 살아나고 있네요.
대신에 글이 풀리기 시작했으니, 나쁘기만 한 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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