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7
소년이 들어서자 카페 내부의 이목이 쏠린다. 기획사 관계자들은 물론, 그와 관계없는 일반인들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시선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담담하게 다가온 그가 세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 상실입니다.”
“예, 반가워요. 상실 학생.”
동길이 끄덕이며 손을 내밀자 뒤따라 다른 이들도 인사한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임 혁수입니다.”
“케이유의 권 용찬입니다. 반갑습니다.”
뭔가 말하려던 권 영은 불만스런 기색으로 뒤로 물러났다. 자신 같은 로드매니저가 끼일 자리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 해두셨나요?”
서로를 견제하며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자, 상실이 먼저 말했다. 이 모두가 의도적이었다는 말이기에, 일동의 시선이 묘해진다. 당차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건방지다 여기는 이도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어요.”
동길이 불퉁하게 말했다. 그가 상실을 찾아갔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자면 분명 자신이 제일 먼저 찾아왔을 것이라 추측한 그는 뒤늦게 찾아온 이들과 같은 취급으로 묶이는 것에 대해 불편한 것이 솔직한 속내다.
“하지만, 약속하죠. 저와 계약을 한다면 가능한 좋은 조건으로 대우해 줄 겁니다.”
그러자 권 용찬이 엷게 웃었다.
“에스지에서요? 성 실장님은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노골적인 비아냥에 동길이 노려봤지만 용찬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상실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전에도 봤었지만 확실히 훌륭한 상품이다. 키는 훤칠하니 크고, 요즘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어필 할 수 있도록 보기 좋은 형태의 근육질이다. 얼굴의 선 또한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 잘만 이미지를 만들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인기 있을 재목이었다. 꼭 데려가서 키워보고 싶었다.
“저는 여기 말만 앞서는 분과는 다릅니다. 아주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겠다고는 못하지만, 상실 군을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케이유에서 관리를 받게 되면, 분명 톱스타가 될 겁니다. 보증할 수도 있어요.”
용찬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동길은 주눅이 들었다. 사실 케이유 엔터테인먼트가 그의 소속사보다 더 큰 덩치를 지녔다. 분명 케이유로 가면 더 빨리, 더 큰 대접을 받는 연예인이 될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에스지에서 그렇게 못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상실이라는 인재가 지닌 가치자체가 매우 크다.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스타로서 발돋움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약속은 나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상실 군은 어느 곳을 가도 결국엔 스타가 될 거에요. 하지만 시간과 그 과정에서의 대우가 다르겠죠.”
조용히 있던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임 혁수가 말했다.
“우리 드림에서는 다른 곳과는 차별화 된 교육과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실 군이 가수를 원하건, 연기자를 원하건 어떤 것에도 맞춰서 교육해 줄 수 있어요. 어차피 스타가 될 것이라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으로 정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런 거라면 우리도 가능합니다만.”
용찬이 핀잔하자, 혁수가 비웃는다.
“가수는 전자음으로 목소릴 뭉개고, 연기자는 발연기로 유명한 케이유에서요? 농담이시겠죠.”
“가르친다고 교육에만 오 년도 넘게 잡고 있는 그쪽 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혁수와 용찬의 신경전을 보며, 동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속 연예인에 대한 지원은 케이유에 비해 밀리고, 트레이닝의 경우는 드림에게 밀린다. 게다가 동길 자신이 밀어주던 아이들도 줄줄이 망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잃어버린 상황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어필하기가 힘들었다. 내세울 것이라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우밖에 없지만, 이는 다른 곳에서도 마음만 먹는다면 제시 할 수 있는 조건에 불과했다.
세 실장의 다툼을 보며 상실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가 원하는 건 스타가 되거나,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필요한 것이라곤 연예인이라는 감투뿐이다. 그것을 핑계로 엄마에게 돈을 가져다 드릴 수 있는 눈속임이면 족하다. 많은 활동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다. 당연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가수나 연기자가 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법적 미성년자가 합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몇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많은 수익을 만들어 낼 방도는 한 손으로 꼽기에도 많다. 그 한 손에 꼽히는 일들 중, 조건만 맞는다면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여타 일들에 비해서 빠르게 많은 수익을 만들 수 있기에 연예인을 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예인이라면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 들어와도 엄마가 의심할 여지가 줄어든다. 기껏 갈취한 돈을 성년이 될 때까지, 마냥 묵혀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제시한 조건을 보면 케이유와 드림 엔터테인먼트는 불합격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타로 만들어주겠노라 선전하는 이들과 계약을 맺었다간 모든 시간을 톱스타가 되기 위한 교육이나 방송에 끌려 다녀야 할 것이 뻔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좋은 조건이었겠지만, 상실에게는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수입도 아주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자신이 성년이 될 때까지 엄마가 일을 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벌면 족하다. 성년이 된 이후에야 뭘 하건 돈을 만들어 낼 능력은 차고도 넘쳤다. 불법적인 일이 될 확률이 높겠지만, 법 따위 알게 뭐란 말인가.
“저는 모든 시간을 연예인이 되기 위한 것에 투자 할 수 없습니다.”
다투던 이들의 눈이 소년에게 모여들었다. 다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눈치다. 상실이 말을 이었다.
“저는 최우선적으로 공부에 매진할 겁니다. 기획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럼 뭘 하고 싶다는 겁니까?”
용찬이 묻자 어깨를 으쓱인다.
“되도록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 쪽이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모델 같은 거?”
그러자 실장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모델도 나쁘진 않은 수입원이지만 가수나 배우가 벌어들이는 것에 비하면 적다. 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이라면 대부분 화려한 조명을 받는 가수나 배우가 기본이기 마련이다.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데 마다하다니. 특이한 경우였다.
“그럼 수능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오래 할 생각은 없어요.”
세 남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상실 군은 가능성이 큽니다. 공부를 좀 소홀히 하더라도…….”
“어머니께서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용찬의 말을 끊어버리자 다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분명 매력적인 인재이긴 한데, 당사자가 시큰둥한 눈치다. 대박 연예인을 키워내겠다는 생각으로 온 이들로선 실망감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럼 연예인은 왜 하려는 겁니까?”
혁수의 말에 상실이 픽 웃었다.
“돈이 필요해서요. 집이 가난하거든요.”
점점 더 매니저들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 그 말인즉슨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돈이 되는 일을 원한다는 건데, 굉장히 건방지면서도 이기적인 말이었다. 전력으로 뛰어들어도 성공하기 힘든 것이 연예계인데, 이런 안하무인적인 태도라니.
이리저리 계산을 재보던 임 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우리 회사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군요. 먼저 일어나지요.”
볼 일이 끝났다는 듯 고개를 까딱인 그가 휑하니 나서자, 용찬도 상실을 달리 봤다. 외모야 충분하니, 노래를 못하거나 연기를 못해도 상품성이 있는데,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업계를 우습게 보는 애송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뛰어들었다간 분명 후회할 겁니다. 혹시나 생각이 바뀌면 연락 줘요.”
여지를 남기며 용찬마저 떠나자, 남는 건 동길 뿐이다. 그로서도 상실의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지금 눈앞의 소년 말고는 잡을 동아줄이 없었다. 다른 녀석들이 뜨려면 얼마나 걸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반응이 시큰둥한 이 애송이라도 데려다가 모델부터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미루어 분명히 뭔가 사고를 칠 것이 뻔했지만, 어쨌거나 모델로서의 신체조건은 훌륭했으니까. 그리고 연예계란 곳이 한 번 발을 담그면 자신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는 장소다. 나중에 잘 구슬리면 또 모를 일이기도 하고.
“성 실장님은 어떻습니까?”
한 곳만 남았지만 상실은 여유로웠다. 아직 남아있다는 건 미련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이를 빌미로 조건을 수정하려 들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인간이 무엇에 약한지 매우 잘 알았다.
숨도 못 쉴 만큼의 공포. 감히 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허튼 생각은 하지도 못하도록 압박해주면 그만이다. 굳이 폭력을 쓰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능을 자극해 위축되게 만드는 것쯤은 손쉬운 일에 불과했다.
예상대로 동길은 상실의 가치를 낮추려는 시도를 했다. 세세한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는 문외한인 그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어투에서 느껴지는 우월감은 훤히 알 수 있었다. 허나, 그 시도는 상실이 진지하게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어긋나버렸다.
계약서를 꺼내들고는 신나서 가치를 낮춰 부르던 그는 소년과 눈을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다. 일전에도 만만치 않다 여기긴 했지만, 지금에 와 닿는 느낌은 상대가 인간이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위기감에 등골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자꾸 말을 더듬고, 시선을 피하던 그는 종국에 가서는 한껏 위축되어서 스스로 말했던 최대한의 대우를 써 넣을 수밖에 없었다.
눈길이 닿을 때마다 흠칫 떨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에 도망도 치지 못하고, 교섭하는 내내 상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계약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 소년은 동길이 꺼내 놓았던 계약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일단 이 계약서는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예? 아니, 서명은…….”
“제가 미성년이라 어머니께서 동의하셔야 하거든요.”
“아.”
동길은 그제야 상대가 미성년자임을 상기하곤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교섭하는 내내 끌려다녀서 상대의 연령을 순간 착각하고 있었다. 힐끔 곁을 보니,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영은 파랗게 질려서 한껏 움츠리고 있다.
“그럼 빠르게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계약서는…….”
확정 된 계약도 아닌데, 가져가려는 행동에 제재를 하려했지만,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나오려던 말이 쑥 들어간다.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다음에 어머니와 함께 뵙죠.”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그가 카페 밖으로 나가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두 남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늘어져버렸다.
“무슨 놈의 눈이…….”
“저는 오줌 싸는 줄 알았어요. 흐아.”
영이 몸서리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어져가는 상실의 뒷모습을 보던 그가 아직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굉장히 수상한데요. 위험한 일을 하는 거 아닐까요? 조폭이라거나, 살인청부업자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몰라, 임마.”
지금 이게 잘한 짓인가 후회하며, 동길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들었다. 흡연이 가능한 장소로 걸음을 옮기며 계약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저런 놈을 매일 만나며 관리할 걸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다고 계약을 해지하겠노라 말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랬다간 정말 가만두지 않을 느낌이다.
“뒷조사 좀 해볼까요?”
영이 따라나서며 묻자, 담배에 불을 붙인 동길은 연기를 뿜어내며 손을 저었다.
“아서라, 그랬다가 걸리면 파묻힐 분위기다.”
연예기획사 일을 하면서 조폭들과 마주한 적도 있었지만, 저런 분위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 겪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난 손 뗄 거니까, 네가 전담해.”
“예?”
영이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한 얼굴이 되어 말했지만, 동길은 정말 관여하기 싫었다. 계약을 맺게 되면, 모든 관리를 영에게 맡기고, 자신은 조언이나 해주며 최대한 피해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정말 그럴 수는 없다는 거지만.
“염병.”
그가 연기와 함께 한탄처럼 말했다.
- 작가의말
분량이 좀 많군요. 매우 많아요. 두 개로 나눌까 하다가, 복불복이니까 그냥 올립니다.
이전 글에 달린 댓글의 충고 덕분에 좀 흥분을 했었는데요, 재차 말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만 넘겨짚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혐오감이 굉장히 큽니다. 제가 싫어하는 상황과 비슷하게 엮어서 짐작하는 것에 민감하죠. 단순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식으로 이야기 하시는 건 상관 없습니다만,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황까지 예상해서 비하적으로 말하시는 건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하신대로 흘러가진 않습니다.
흥분을 식히고 롤에 관해 말하자면, 못해도 덜 죽으면서 탱커의 살을 찌우면 중간은 가더군요. 그래서 볼베나, 가렌, 스카너, 나서스를 좋아합니다. 심심하신 분들은 친추 환영하구요. 전적은 fow.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네, 도전도 환영합니다. 몸빵이 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댓글, 추천, 선작, 선삭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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