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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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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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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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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권 - 탐문 4

DUMMY

라이온파에 방문한 뒤로 강섭은 정신없이 조사를 시작했다. 며칠은 단서를 더 찾겠다고 발품을 팔아도 봤지만 연쇄살인의 공백을 파악했다고, 새로운 단서가 나오는 것도 아닌지라 결국 주먹구구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터다. 베테랑 형사였더라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와는 연관이 없는 보직에서 근무했던 한계 탓이다.

“거, 괜찮아요? 상태가 말이 아닌데.”

조사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안경 쓴 남자의 말에 강섭은 초췌해진 얼굴을 들어 ‘네?’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답했다. 낙하산으로 들어온 탓에 겉도는 그가 안쓰러웠던 모양인지, 팀장은 각을 세웠던 초기와는 달리 웃으며 캔 커피를 건넸다.

“이거 좀 들어요. 그러다 초상 치를라.”

“감사합니다.”

갑자기 친근하게 구는 게 이상했던지 강섭은 어색해하며 받아들었다. 뚜껑을 따서 꼴꼴꼴 마시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팀장이 책상에 널브러진 문서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해서 될 거 같습니까? 이런 건 우리도 다 했는데 말요.”

“별 수 있나요. 수가 안 보이니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야지.”

조금 살아난 표정으로 어쩔 수 없단 듯 말하자 팀장은 ‘무식한 인간일세.’ 혼잣말한다. 그걸 못 들을 리 없는 강섭이 시비 걸러 왔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팀장은 손을 내저었다.

“찔러보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 마요. 뭐가 어쨌건, 그쪽이 낙하산으로 끼어든 것도 높으신 나리가 기대하는 게 있으니 그런 거 아닙니까?”

강섭은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긍정도 부정도 않았다. 남자는 알만 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단서도 없이 조사하는데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던 데다가, 내 지휘도 받지 않는 사람이 난데없이 뚝 떨어져서 좀 그랬지. 아닌 말로, 윗대가리들은 무슨 생각인지 모를 경우가 왕왕 있거든. 밑에서 열통이 터지건 어쨌건 자기들 편의만 생각하니까.”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기에 강섭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난 며칠 동안 무식하게 조사에 매달리는 사이, 수사란 게 쉽지 않음을 뼛속까지 새긴 상황이었다. 지금 팀장이 보내는 화해의 손짓을 받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나도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닙니다.”

이득수를 떠올리며 끄덕인다. 팀장도 고개를 끄덕여 동감했다.

“우리 같은 밑 선이야 다 똑같지. 피차 고생하는 처지에 이제부턴 각 세우지 말고 협력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가 내민 손에 강섭은 잠깐 주저하다가 마주잡았다. 그야말로 맨땅에 연신 머리 찧던 상황이라 팀장이 내민 손은 구명줄이나 다름없었다. 팀장이 손을 흔들며 씩 웃는다.

“그럼 편하게 하지. 나이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내가 위니까 말 놓을게. 그래도 되나?”

이전부터 평어와 존대를 혼용하고 있었던 데다가, 지금은 말이 의향을 묻는 거지, 이미 말을 놓은 상황이다. 물론 강섭은 멍청하게 그 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그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터라 삐딱하게 나갔을 뿐이지,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괜찮습니다, 팀장님.”

강섭의 말에 위계가 잡히자 팀장은 보다 환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들겼다.

“이거 화통한 친구였잖아?”

그러더니 지켜보고 있던 팀원들에게 말한다.

“잠깐 강섭이랑 얘기하고 올 테니, 일들 하고 있어.”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강섭이 따랐다. 휴게실에 앉은 둘의 대화는 별 거 없었다. 몇 기로 들어왔냐, 가족은 어떻게 되냐, 어느 대학 출신인지, 군대는 어딜 나왔냐는 등 한국 남자들이라면 흔히 하는 호구조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친분을 다진다는 점에서 영양가가 있기도, 수사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 영양가가 없기도 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팀장이 불쑥 물었다.

“조사는 잘 되어가나?”

“아시다시피…….”

강섭이 허탈하게 웃었다.

“특공대에만 있어놔서 수사는 영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될 것도 같았는데, 뚜렷한 단서도 없고, 제대로 수사를 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뭘 알아야죠.”

“그지, 이게 추리소설처럼 쉽게 돌아가는 게 아냐. 거기서처럼 용의자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으면 나도 탐정하고 있겠지. 지금처럼 표적이 넓고, 그나마도 그 안에 있다고 확언하지 못하면 깨진 독에 물 붓는 거 같다니까.”

“그런 거 같습니다. 깨진 독에 물 붓기.”

힘 빠진 얼굴로 주억대는 그에게 팀장이 손을 흔들었다. 뭔가 하고 바라보니, 그냥 손버릇인 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을 늘어놓는다.

“봐봐, 자네는 전에 그 괴물을 봤었다고 했지?”

“그렇죠.”

“감상이 어땠어?”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하던 강섭은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기억을 더듬었다.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소름 끼치는 놈이었죠.”

“얼마나?”

“그런 건 평생 본 적도 없어요. 악몽에서나 나올 것 같은 놈이었으니까.”

고개를 내젓는 그에게 팀장은 이를 보이며 미소했다.

“좋아, 그럼 가정을 세우자고. 우리가 찾는 그 놈은 굉장한 놈이야. 놈이 벌인 사건들은 젖혀두고서라도 일단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존재란 말이지. 그럼 여기서 그 새끼가 지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악마라던가, 난데없이 허공에서 떨어진 괴생명체라는 가정은 없애고 생각해보자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에 팀장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 놈이라면 우리의 조사는 불필요하거든. 엉뚱한 데를 파고 있는 거지. 금광을 찾겠답시고 우물 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가 찾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정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강섭이 끄덕이자, 팀장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놈이 인간이라고 치자고. 그런 힘을 지닌 놈이 어떻게 인간이냐는 생각은 방금 말했던 대로 찾는 게 불가능하니까 치워두고. 놈이 사람이야. 그리고 진짜 정체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괴물이고. 평소에는 다른 인간들처럼 행동한다고 쳐. 이게 헛다리짚는 수가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경우는 싹 무시하고 말이지. 그럼 아무리 사람 흉내를 내고 산다고 해도 그런 괴물의 본성이 어디로 갈까? 남다른 능력을 지닌 보통의 인간이더라도 뭐가 되었건 재능이 있다면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하물며 괴물이야. 그게 티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튀겠군요.”

강섭이 그럴듯하다며 끄덕이자 팀장의 손가락이 신나서 움직인다. 보고 있자니 신경에 거슬리는 버릇이었지만 궁한 놈이 우물 판다고, 강섭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뭐가 되었건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게 표가 나기 마련이야. 놈이 아무리 연기의 달인이더라도 드러날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간단하잖아? 특출나거나 이상한 놈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면 되는 거야.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고 튀어나오는 법이거든. 조사대상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거지.”

가만히 듣고 있던 강섭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알고 계시는데, 왜 찾지 못하셨습니까?”

그가 알기로 이 수사팀은 만들어진지 한 달이 넘었다. 밖으로 공표하지 않았기에 자세한 정보를 알진 못했지만 그 전부터 조사하고 있던 정보도 있었을 터. 여태껏 꼬리도 잡지 못했다는 게 이상할 법도 했다.

팀장이 넌 아직 멀었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인다.

“짐작을 해봤자 표적이 너무 많아. 당시에 거기 살았던 주민들의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대상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데, 게다가 실종 된 이들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사 간 사람도 있다고. 그 많은 사람을 훑어보는 것도 아니고, 그 전엔 뭘 했고 지금은 또 뭘 하고 사는지 조사하는 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 되나?”

그의 말대로 용의자는 표적지에 살던 모든 사람이다. 예외가 있다면 확실히 등록 된 사망자 뿐. 그 외의 모든 인원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용의자의 선상에 올라있는 일이었다. 극도로 평범해서 수상한 기색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을 제외하고서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방금 전까지도 그 문서와 데이터의 파도 속에서 씨름하던 기억이 떠오르자 강섭은 절로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럼 얼마나 걸릴까요?”

“나도 모르지.”

팀장은 당연하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일견 무책임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강섭은 이 사람이 그렇게 방만한 위인은 아니라 생각했다. 뭔가 더 말할 것 없냐는 눈빛에 남자가 픽 웃는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곳에 살았던 자들 중에서 수상한 이들을 선별하고, 그들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조사하는 일이란 말이지. 사실 그런 일에 전문가도 아닌 자네가 끼어들 여지도 없고, 자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자료만 끼고 있긴 안 맞잖아?”

“그렇긴 하지만, 달리 할 것도 없잖습니까.”

자신 없이 말하는 그에게 팀장이 그럴 줄 알았다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라이온파에 쳐들어갔었다면서?”

“예, 그거야 뭐.”

그 일이 비밀이 될 수는 없었음을 알기에 강섭이 뭐가 어쨌냐는 표정이자, 팀장이 두 손을 마주친다.

“역시, 특공대 출신이라 겁이 없어. 요즘 그 놈들이 뭐에 쫓기는 것 마냥 날이 서 있어서 형사들도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형사가 폭력배들을 쥐 잡듯 잡는 것도 일망타진 할 작전이 있다던가, 조직 자체가 무너지진 않을 일에서나 가능하다. 군소조직이라면 그럴 것도 없이 설설 기지만 큰 조직들의 경우는 일선 형사들이라도 함부로 나섰다간 목숨이 위태로운 수가 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보기에 자네는 직접 움직이는 일이 좋겠어. 조사 대상이 너무 많으면 적성에도 맞지 않고, 효율도 나쁘니까 적당한 항목으로 압축해서 보내주지. 여차하면 몸으로 뛰어서 파고들어도 되니까 적성에도 맞겠지. 해보겠나?”

자신의 지휘에 따르겠냐는 말이었다. 강섭은 고민도 없이 끄덕였다. 이대로 있으면 일본의 카미가 쳐들어 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할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가능성이 낮아도 움직이는 게 나을 터였다.

강섭이 긍정하자 팀장은 잘해보자며 어깨를 두들겼다.

“이게 자네가 맡을 일이야.”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단 듯 팀장이 자료를 건넨다. 그걸 읽어보던 강섭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진다.

세세한 자료가 아니라, 대략적인 조사 내역이 적힌 보고서였는데, 연쇄살인이 벌어진 뒤에 이사한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타지로 간 주민들을 제외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주거지를 옮긴이들에 관한.



작가의말

드디어 뚫렸습니다! 당분간은 막힘 없이 술술 써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군요.는 곧 설이 온다는 게 함정.

불민한 글쟁이를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확실히 연재는 해롭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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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8 2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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