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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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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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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2.05.3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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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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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8쪽

3권 1

DUMMY

“으음.”

길상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복도로 나왔다. 점심시간답게 종알종알 떠드는 소녀들과 운동장으로 달려가거나 장난치는 소년들로 북새통이다. 그를 의식한 한둘이 돌연 뛰는 걸 멈추자 다른 녀석들도 빠르게 눈치 채고 잰걸음으로 바꾼다.

그를 보며 피식 웃어준 교사는 손에 든 커피를 홀짝이며 걸음을 옮겼다. 밥도 먹었고 커피도 들었겠다, 담배가 당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오래된 습관을 따라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던 그는 곧바로 손을 털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교내 금연의 기치와 안사람의 바가지에 끊은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손은 있지도 않은 담배를 찾아간다.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슬그머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이 아닌, 학교 뒤편이다.

몰래 숨어서 피는 녀석들에게서 압수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어 털어낸다.

어디서 피는지는 알아도 누가 피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군대도 안 간 꼬마들이 경계까지 세워놓고 잽싸게 튀면 마흔이 넘은 몸으로는 따라잡기 버거웠다.

정 추적하자면 못할 것이야 없겠지만 요즘에 와서는 피거나 말거나 놔두고 싶은 심정이다. 학부모들과 얼굴을 마주치면 껄끄러울 뿐이고, 나중 되면 끊지 못해 안달할 자기들 손해지, 그의 손해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담배가 고파도 애들 걸 압수해 피다니, 교사 실격이다.

길상은 아쉬운 대로 커피를 홀짝이며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오가는 아이들은 활발하다. 눈치를 살피는 녀석들도 있지만 명랑하게 인사하는 녀석들도 있고, 분위기가 대체로 밝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예년에 비해 적은 숫자다.

다시 한 번 커피를 홀짝이며 작년을 떠올린다. 불과 반 년 전.

등교하지 않거나 전학 가는 학생들로 인해 학생의 수가 급감했다. 북적대던 교실도 거의 반수만 남았고,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다.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는지, 아이들의 대화도 살인사건과 괴물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 나오지 않는 급우들과 도시 곳곳을 순찰하는 경찰, 전경들로 인해서 수업분위기도 조용했다. 어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아이들 역시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수업하기에는 쉬웠지만 길상으로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하게 날뛰는 녀석들을 제외한다면 애들은 애들다워야 한다. 공부에 찌들었대도 쉬는 시간이면 떠들고, 뛰어다녀야 애들답게 보이는 법이다.

쉬는 시간에도 가라앉아서 조용하면 그게 고등학교 교실인가. 고시생들이 가득한 강의실이지.

상념에 젖어 거닐던 그는 문득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이 학년 교실이 있는 곳이다. 그가 담당하는 일 학년 교실과는 층이 다르기에 올 필요가 없었다.

어째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며 끄덕인 그는 슬며시 바로 앞의 반을 창문으로 들여다봤다. 아직 이 학년이라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 떠드는 녀석들이 대다수다. 그 와중에도 교실 한쪽에서 공부에 여념이 없는 두 학생이 있었다.

상실과 지현이었다.

길상은 둘을 유심히 바라보며 미지근해진 커피로 입술을 축였다. 둘 다 작년에 담임으로 맡았던 아이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바뀐 상실의 모습이 보기 좋았었다.

자살하지나 않을까 염려되던 녀석이었는데, 돌아온 뒤론 몰라보게 달라졌다. 바닥을 기던 성적도 껑충 뛰었고, 따돌림 받지도 않게 되었다. 무슨 영문인지 인기가 좋던 지현이 늘 곁에 붙어서 함께 공부를 하니, 교사로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었다.

더 이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학생이 되어 기뻤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분위기였지만 딱히 누구와 싸우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넘어갔었다. 언젠가는 꽤 유명한 기획사에 들어가서 모델을 하겠다고도 했었다.

분명 담임으로서, 선생으로서 기뻐할 상황이었지만 길상은 뭔가 꺼림칙했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뭘 놓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직전, 출석부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다가 깨달았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출석부에 남은 사진은 옛날 상실의 모습이었다. 여드름으로 지저분하고,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못생긴 소년.

반면 그날 종례까지 그가 보고 있던 상실은 달랐다. 키가 훌쩍 크고, 무척 잘생겨졌다. 모델하기로 계약을 맺었노라 말하던 순간에도 순순히 끄덕일 만큼.

가만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따돌림 당하던 작은 아이가 등교를 시작하고 난 뒤에는 따돌림 당했다는 흔적도 없었다. 외려 한동안 다른 아이들이 주눅이 들었었다. 그때는 상실에 대해 신경 쓰느라 왜인지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아이들까지 조용해질 이유가 없다.

얼굴의 변화도 이상하다. 잘생겨진 건 좋다. 하지만 지나쳤다. 본래의 얼굴과 비슷한 흔적은 남았지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의 얼굴이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벌어졌다면 몰라도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그날 길상은 상실의 키에 대해서도 찾아봤다. 154센티. 중학교 때의 마지막 신체검사자료에 적힌 내용이다. 반면 지금의 상실은 180은 훌쩍 넘어 보였다. 작년의 신체검사는 등교거부로 측정하지 못했었지만 길상은 그게 의미 없음을 잘 알았다.

상실의 키는 재등교 할 때도 160센티 밑으로 보였으니까. 지금까지 일 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만에 거의 30센티미터나 자란 거다.

아무리 성장기의 남자애라고 해도 일 년 만에 자라는 키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까지는 그로서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키가 쑥쑥 자라면서 얼굴이 바뀌는 경우가 없지 않았고, 그 나이에는 많이 자라도 수상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상실의 성격이 변했다. 자신감이 없고, 눈도 못 마주치고, 뭔가 물으면 어물거리던 녀석이 또박또박 말하고, 얼굴을 똑바로 마주봤다. 두 눈은 뭔지 모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외형이야 성장기에 변할 수 있지만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상실은 다시 학교에 나온 첫날부터 바뀌어 있었다.

그 때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이 역시 이상하다. 한 달이 좀 넘는 시간으로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는가? 성인도 아니고 사춘기의 소년이? 따돌림 당해서 등교거부를 하던 아이가?

뿐만 아니다.

그의 등교 뒤로 반에서 활달하게 행동하던 지원이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까불거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던 녀석이었는데, 상실이 돌아온 뒤부터는 쥐죽은 듯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괴물들의 등장이 뉴스를 타던 날 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들, 그를 관리하던 직원들과 함께 죽어버렸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굉장히 꺼림칙하다.

상실이 돌아오고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낮에 벌어지기 시작하던 살인사건은 상실이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심야로 시간이 옮겨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기획사와 계약을 맺을 즈음에는 살인사건이 다른 도시로 옮겨갔다.

그는 여기까지 인지한 순간 소름이 돋았었다.

꺼림칙하다 못해 수상했다.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여길 수 있지만 한 학생이 돌아와 보인 변화와 시기에 맞물려 벌어진 사건들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던가.

경찰의 발표 중 가장 먼저 벌어진 살인사건의 추정 날짜는 상실이 등교하기 바로 전 날이었다.

어느새 안색이 굳어버린 그는 남은 커피를 마셔버리곤 흠칫 몸을 떨었다. 어느새 상실이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구분할 수 있는, 남다른 새카만 눈동자 한 쌍이 무심히 그를 응시한다.

팔뚝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길상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이곤 몸을 돌렸다.

담배가 당겼다.


작가의말

간만에 뵙습니다.
책으로 나온 내용은 잘 보였는지요.
저는 오타를 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만 말이죠.

음, 저도 남들처럼 이벤트를 해서 책도 나눠드리고 그러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1, 2권만 나눠드리면 3권부터는 받은 분들 외에는 별 필요가 없을 것 같더군요. 해서 완결을 다 지으면 한 방에 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완결 지을 쯤에 받고 싶은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출판사에서 7권까지는 꼭 쓰고, 안 되더라도 6권 분량까지는 써달라고 계약을 했으니, 이 글이 중간에 끊길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원래 다섯 권에서 여섯 권 정도로 가닥을 잡은 글이니, 죽어도 조기종결은 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만에 하나 잘 팔려서 글이 늘어나도 저는 생각한 이상을 늘이는 재주가 없어서 8권을 넘어가는 일은 벌어질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빨리 완결 짓고 다음 글을 쓰고 싶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일주일에 한 권씩 써버리고 싶지만 먹고 자야하는 인간인 이상 그건 불가능하기에....

여튼 매우 오랜만에 뵈어서 반갑습니다.
그럼 2권까지 보신 분들, 뭔가 말 좀 해주세요.
책 나온 뒤로 댓글을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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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권 - 앞면 +3 13.03.20 1,245 13 16쪽
50 4권 - 탐문 12 +3 13.02.21 1,418 14 11쪽
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2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7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70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2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3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43 4권 - 탐문 5 +2 13.02.16 1,175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5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2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098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5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8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4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3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5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4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7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4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2 5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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