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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나는 영혼을 팔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큰불
작품등록일 :
2012.08.11 00:15
최근연재일 :
2013.04.19 04:23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50,040
추천수 :
2,275
글자수 :
193,430

작성
13.02.16 22:17
조회
1,175
추천
11
글자
8쪽

4권 - 탐문 5

DUMMY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건 학생뿐만 아니다. 교사역시 마찬가지. 교무실에서 도시락을 늘어놓은 원진혁은 가격대비 성능을 최대로 맞춘 내용물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봉인 내 잘못인가.”

다른 선생들의 도시락을 훑어보니 비슷한 나이대의 교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그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수저를 움직였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배를 채울 즈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네, 맞습니다. 네, 네. 아. 잠시만요.”

처음엔 귀찮음이 역력하던 여선생이 금세 다소곳이 답하다가 고개 들어 외쳤다.

“이상실 학생 일학년 때, 누가 담임 맡으셨죠?”

진혁이 손을 들었다.

“접니다.”

“전화 받으세요.”

“누구죠?”

여선생은 수화기를 떠넘겼다.

“받으시면 아실 거예요.”

진혁이 조심스레 말하고 떠나는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실.”

아주 신경 쓰이는 이름을 되뇌며 머뭇거린 뒤에야 수화기를 들어올린다.

“원진혁입니다. 누구십니까?”

상대의 답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무슨 일로…….”

전화 너머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시시각각 표정을 변화시키던 그는 몇 번인가 안 된다는 말을 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층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가져가죠. 어, 그쪽도 가져오셔야 합니다. 네. 시간은 여덟시로.”


서류가방을 든 진혁이 카페에 들어선 건 여덟시가 되기 십여 분 전. 좀 일찍 왔나 싶어 두리번거리는 찰나, 구석에 있던 강섭이 그에게 다가왔다.

“원진혁 선생님이십니까?”

“김강섭씨?”

강섭이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아, 예.”

“여기는 좀 그렇군요. 장소를 옮기죠. 차 가져오셨나요?”

“아뇨, 안 가져왔습니다.”

강섭이 끄덕이며 앞장섰다.

“가시죠.”

뭔가 물으려던 진혁은 벌써 밖으로 나간 강섭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강섭의 차 앞에 도달한 진혁이 그의 손짓에 조수석에 앉았다. 곧바로 운전석에 들어선 강섭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제 신분증입니다.”

그걸 받아든 진혁이 세심하게 살핀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가짜는 아닐 거란 확신이 든 듯 끄덕이며 신분증을 돌려주며 물었다.

“여기서 확인하실 겁니까?”

“……이상실군은 선생님이 나오신 걸 모르고 있습니까?”

“아마도.”

끄덕이는 모습이 못미더웠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제 숙소로 가도 괜찮을까요?”

“으음. 그러죠.”

진혁이 동의하자 강섭은 즉시 시동을 켰다. 차량이 엔진소리만을 뿜으며 달렸다.


침대와 미니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인 방에 들어선 진혁이 어색해하자 강섭이 힘없이 웃으며 손짓했다.

“휑해보여도 보기보단 괜찮습니다. 들어오시죠.”

끄덕이며 신발을 벗는 그에게 앉으란 듯 바닥을 가리킨다. 어색한 듯 뻣뻣하게 앉아있는 그에게 강섭이 냉장고에서 갓 꺼낸 캔맥주를 권했다.

“방석도 없고, 손님 대접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아닙니다. 괜찮아요.”

손을 내젓던 진혁은 받아든 맥주를 얌전히 옆에 내려놓았다. 가져온 서류가방을 품에 안으며 강섭의 눈치를 살핀다.

“왜 상실이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조사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상실군이 꼭 용의자라는 것도 아니고요.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자세한 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강섭은 알아서 좋을 게 없단 말을 속으로 삼켰다. 진혁은 진혁대로 의심의 눈초릴 보냈다. 그 또한 상실에 대해 수상함을 느꼈었기에 지금의 조사가 괴물과 관련 있지는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던 진혁이 곧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강섭이 내용물을 확인하는 동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불쑥 말했다.

“왜 상실이에 대해 조사하는지, 저는 알 것 같군요.”

읽던 자세 그대로 시선만 돌려 바라보는 강섭에게 엷게 웃어준 그는 더 보란 듯 서류에 대고 손을 내밀었다. 강섭이 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서류로 시선을 옮긴다. 그동안 진혁은 곁에 놓인 맥주캔을 따서 홀짝였다.

일학년 기록은 물론, 현재까지 기록 된 이학년 때와 중학교 시절까지 확인한 강섭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매우 수상하다.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와 최근 신체검사의 차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좋았다. 키, 체중, 시력, 체력 어느 면에서 급이 다르다. 성적 또한 밑바닥을 박박 기던 이전과 달리, 일학년 이학기부터 상위권에 진입하기 시작해서 이학년인 현재는 완전히 상위권이다. 성적이야 독하게 공부하면 가능하다지만 앞의 변화와 함께 생각하면 역시나 이상했다. 사람이 이렇게나 바뀔 수가 있을까? 사진으로 보이는 얼굴도 닮았다 여길 수는 있지만 진화했대도 믿을 만큼 변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모델도 겸하고 있다. 교사가 판단한 생활태도와 성격적인 부분역시 확 달라졌다.

중학교 때만해도 숫기가 없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집중력이 부족하고, 소극적이라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었건만 고일 때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등교거부를 했던 시기. 연쇄살인의 첫 번째 피살자가 살해당했을 추정 날짜와 상실이 등교를 시작한 날짜가 겹친다. 전문가가 예상한 날짜와 이삼일 전후의 차이.

강섭은 깊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조사가 시작되고, 헛고생만 한 것도 수십 건. 그러던 중에 발견한 한 모자의 기록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수입 없이 반지하 월세를 살던 이들이 멀지 않은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단 점부터가 수상했는데, 갑자기 모델이 되었다던 그 아들의 기록까지 확인하니, 수상함을 넘어서 확신이 일었다.

그를 보고 있던 진혁 또한 뭔가 결심이 선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애가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연쇄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의 발표로는 대부분 늦지 않은 오후에 벌어진 일이었죠. 그러다 그녀석이 야자를 시작하고는 살해당했다는 추정 시각이 변했어요. 간혹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깊은 밤에, 자율학습이 끝난 뒤였죠.”

입이 마르는지 남은 맥주를 모두 마셔버린 진혁이 침을 삼켰다.

“저는 선생입니다. 보다시피 애들 가르치는 일을 하죠. 이런 일을 하다보면 난폭한 애들도 있지만 아주 글러먹은 녀석들이 아니라면 그래봤자 애려니 합니다.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고, 선생이 살펴야하고. 뭐, 그렇게 여기죠. 손도 못 댈 녀석이라도 에이, 망나니 같은 놈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강섭이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았으나 혓바닥마저 깔깔하다. 입술은 여전히 건조했다. 진혁이 말을 잇는다.

“저는 그녀석이, 상실이가 무섭습니다. 어떤 때는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부르르 떨려요. 가끔 그 애는 사람이 아닌, 다른 뭔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아무런 위협도 않는데도 말이죠.”

“……모르는 척하시는 게 좋습니다.”

“역시, 맞나보군요.”

씁쓸하니 끄덕인 진혁이 일어났다.

“모셔다드릴까요?”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진혁이 고개 내젓자, 강섭은 순순히 끄덕였다.

“확실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현관문을 열려던 진혁은 문득 떠오르는 사건에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에게 말해도 좋을까 생각도 들지만 이미 다 말한 뒤다. 하나 더 말한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박지원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강섭은 가만히 들었다.

“상실이를 무던히 괴롭혔었죠. 등교거불 하게 된 건, 아마 지원이 탓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상실인 돌아왔죠. 그 뒤로 지원인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했지요. 괴물들이 싸우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사내가 끄덕였다. 선생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날 지원이가 죽었습니다. 어디서도 시체를 찾지 못했다더군요.”



작가의말

글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는데,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힘 빼고, 최소한으로 최대한을 쓰면 되는 것 같네요. 아직 먼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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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권 - 앞면2 +4 13.03.26 1,329 11 11쪽
51 5권 - 앞면 +3 13.03.20 1,245 13 16쪽
50 4권 - 탐문 12 +3 13.02.21 1,418 14 11쪽
49 4권 - 탐문 11 +4 13.02.20 1,062 13 7쪽
48 4권 - 탐문 10 +3 13.02.19 897 12 7쪽
47 4권 - 탐문 9 +5 13.02.19 1,071 14 8쪽
46 4권 - 탐문 8 +3 13.02.19 1,433 14 9쪽
45 4권 - 탐문 7 +5 13.02.17 873 11 8쪽
44 4권 - 탐문 6 +3 13.02.17 1,042 9 8쪽
» 4권 - 탐문 5 +2 13.02.16 1,176 11 8쪽
42 4권 - 탐문 4 +1 13.02.05 1,326 12 11쪽
41 4권 - 탐문 3 +4 13.01.24 1,135 12 8쪽
40 4권 - 탐문 2 +1 12.12.31 1,443 10 13쪽
39 4권 - 탐문 +3 12.12.30 2,100 14 12쪽
38 4권 - 심연 +6 12.08.11 2,066 12 2쪽
37 3권 7 +11 12.06.20 2,098 20 8쪽
36 3권 6 +6 12.06.18 1,808 27 8쪽
35 3권 5 +7 12.06.18 1,922 23 9쪽
34 3권 4 +7 12.06.17 1,795 20 9쪽
33 3권 3 +5 12.06.17 1,938 20 9쪽
32 3권 2 +7 12.06.15 2,208 21 7쪽
31 3권 1 +12 12.05.30 2,727 24 8쪽
30 그림자의 밤 5 +13 12.04.30 3,223 37 8쪽
29 그림자의 밤 4 +15 12.04.26 2,815 39 6쪽
28 그림자의 밤 3 +23 12.04.17 3,425 40 9쪽
27 그림자의 밤 2 +36 12.03.25 4,328 45 7쪽
26 그림자의 밤 1 +34 12.03.15 5,135 62 9쪽
25 심화 6 +30 12.03.14 5,203 55 9쪽
24 심화 5 +33 12.03.13 5,263 61 7쪽
23 심화 4 +34 12.03.12 5,524 5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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