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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395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작성
23.09.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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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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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4쪽

EP 3. 호구엔터

DUMMY

모두에게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킨 후 곧장 나지안을 지목했다.

영원밴드를 지켜보던 모두는 내 의도를 간파하고 일제히 나지안을 쳐다봤다.


레코딩 때 배효빈과 백보컬을 넣긴 했지만 그녀는 연주를 즐기며 입을 벙긋거렸다.

지금까지 나의 고민을 잘 알고 있던 이지후까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미치겠네.”


그런데 연거푸 한숨을 내쉬던 박호우가 갑자기 연주실을 나갔다.

동시에 영원밴드의 연주도 멈췄다.


“노노노! 왜 멈춰? 계속해야지!”

“대표님 갑자기 왜 나간 거예요?”

“신경 쓰지 마. 잘 부르고 있다가 왜 멈춘 거야?”

“하지만···?”

“모르겠어? 나지안이 실수 안 하고 잘하고 있었단 말이야! ”


내 말에 영원밴드도 그 사실을 인지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지안에게 꽂혔다.


“헤헤, 화장해서 그런가? 이상하게 자신감이 붙네?”


비로소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다.


“정도야! 한 곡 더 시켜. 전부 나지안 죽일 듯이 노려보세요!”

“알았어.”

“난 잠시만.”


연주실에서 나와 박호우를 찾았다.

녀석은 호구엔터 사무실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호우야? 너 갑자기 왜 그래?”

“······.”


박호우는 잔뜩 심각해져 있었다.


“나지안 긴장 안 하고 연주하는 거 놀랍지 않았어? 근데 왜 미치겠다면서 나갔어?”

“돌아 버릴 거 같아. 나 어떡하면 좋지?”

“왜···? 무슨 일인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를 불편한 눈빛으로 보는 녀석이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 나지안이 누군지 이제 알았어. 아까 갑자기 떠올랐어···.”

“너 설마?”

“아무래도 나영은 동생인 거 같아···.”

“헐?”

“전혀 생각도 못 했어.”


박호우가 짝사랑했던 나영은.

녀석은 그녀의 여동생인 줄 모르고 꽃다발을 들고 온 나지안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자신의 실수로 준우승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화살을 돌려버린 것이었다.

박호우는 그날의 화풀이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나영은이 녀석을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었다.

그 후부터 박호우는 극심한 슬럼프에 더는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막말에 대한 대가로 녀석의 피아노 인생은 끝장났다.


“백아, 너 혹시 알고 있었어?”

“응?”

“나지안이 나영은 동생인 거 알았냐고?”

“미안. 나도 사실 얼마 전에 알았어.”

“젠장···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앞으로 쟤를 어떻게 봐?”


그렇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지안의 웃는 모습은 언니를 빼다 박았다. 하긴 동생이 언니를 닮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박호우의 여동생만 빼고.

조금 전 진심으로 베이스를 즐기며 연주하는 나지안을 보며 박호우는 나영은을 떠올린 것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줄 거야.”


절망하는 박호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받아줄 거라고?”

“나지안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뒤에 너인 거 눈치챘다나 봐.”

“근데 지금까지 모른 체 했다고?”

“착하잖아. 하지만 그때 너한테 크게 상처받은 건 사실인 거 같다.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 틀림없어 보여.”

“젠장! 진짜 죽어버리고 싶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완전 악연이잖아!”


이대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마정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 갔어? 나지안 진짜 잘하고 있어!

“정도야. 끝나면 나지안 혼자 청음실에 오라고 해.”

-엉? 왜! 너 호우 찾으러···.


통화를 끊고 다시 박호우를 쳐다봤다.

녀석은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눈치채고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배, 백아···?”

“살려는 줄게. 따라와!”

“안돼, 하지 마! 제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박호우의 목덜미를 잡아 청음실에 집어넣고 감금시켰다.

그리고 나지안이 청음실로 찾아왔다.


“오빠···.”

“호우도 조금 전에 눈치챘어. 네가 그때 그 꽃다발 소녀라는 거.”

“이제 어떡하죠···?”


나지안도 곤란한 얼굴이었다.

눈만 깜빡거리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앞으로 계속 볼 사이잖아? 들어가서 얘기해봐. 나도 녀석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

“예···.”


나지안을 청음실로 들여보내고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나···. 하하”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사람의 인연이란 건 묘한 거 같다.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만나다니.

엄마와 영원이 과거 인연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박호우와 나지안까지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어쨌든 과거로 돌아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한참 문 앞을 지켜도 두 사람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사무실로 돌아갔다.



***



TIGER 9클럽은 무사히 인테리어를 마쳤고 직원 채용도 마감 직전이다.

하지만 클럽 오픈을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원밴드의 먹고사는 일이 달렸다며 조바심을 냈지만, 모든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숙식부터 생활을 위해 법인카드를 지원했기에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일은 없었다.

오크로드는 영원밴드와 달리 클럽에서 공연하며 수입이 있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다행인 건 만복성 빌딩 1층에 대형 커피전문점이 입점하게 된 점이다.

영원밴드의 EP 앨범은 무사히 발매되었다. 그리고 오크로드의 EP 앨범을 영원과 김성현이 열심히 준비 중이다.


나지안은 대학교 학사 일정과 연습을 번갈아 가며 노력 중이다.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자신의 결점도 완벽히 이겨내며 완벽한 연주를 보여줬다.

그날 박호우와 나지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걱정과 달리 무사히 화해한 거 같긴 한데···.


‘문호와 선우현에 이어 새로운 커플 탄생인가?’


아무리 봐도 최근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결국, 박호우에게 꼭 붙어있는 나지안의 팔을 잡아당겼다.


“앗?”


그녀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야! 너희 사귀는 거 아냐?”

“뭐!? 마마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마, 맞아요! 대표님과 소속 아티스트가 어떻게 사귀어요?”


박호우와 나지안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발끈했다.

두 사람을 보니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그래? 뭐 그렇게 발뺌해야지 너희 맘이 편하다면 그러도록 해.”

“뭐! 그게 뭐야!?”

“맞아요! 저희는 사실을 말한 거라구욧!”

“지랄 옆차기하네. 빽빽거리지 말고 빨리 타기나 해!”

“힝···.”


나지안은 마지막으로 내 차에 탑승했다.


“망우공원 입구로 와.”

“알았어.”

“팀장님도 운전 조심하시고요.”

“그래. 알았어.”


박호우와 이지후는 각자 차에 올랐다.

클럽 오픈전 야유회 겸 등산을 계획했다.

박호우는 호구엔터를 이지후는 스튜디오 식구들을 태웠다.

내 차에는 당연히 영원밴드와 오크로드가 타고 있었다.

카니발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인데 왜 망우공원으로 가요?”


조수석에 앉은 영원은 호기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넌 몰라도 돼.”

“엑!?”


등산을 계획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단합과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다.

나는 예정에 없던 문호와 그의 친구 임철환과 최규봉을 영입했고, 오크로드와 이유주와 이민경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이들은 처음 호구엔터와 시작하는 구성원들이니만큼 오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망우공원을 찾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망우산은 과거에도 힘들 때마다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했다.


“아저씨, 꽃폈어요.”

“매화꽃이네?”


공원 입구에는 벚꽃은 아직이지만, 봄을 알리는 백매화가 피어 있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 공원을 둘러보는 사이 호구엔터 팀이 도착했다.


“우리 여기 등산하는 건가요?”

“우와 봄이 오니 등산도 하고.”


문호와 환장의 콤비는 박호우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켰다.

이내 이지후의 차가 도착하고 스튜디오 식구들이 내렸다.


우리는 망우산을 올랐다.

그리고 입구를 조금 올라 외진 곳에 있는 돌탑 앞에 멈춰 섰다.

나는 가방에서 준비한 청하를 꺼냈다.


“아저씨, 술 안 마시기로 했잖아요!?”


영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괜찮으니까 그냥 있어.”

“예?”


박호우는 영원에게 끼어들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만 이곳에 온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 작은 돌탑이 할아버지의 묘지이자, 아버지께서 산분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돌탑에 뿌렸다.


‘제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아시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 친구들과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게 기도했다.

아버지께서 보고 계신다면 이번 생은 다 잘될 거라고 말씀하셨을 거 같다.


“자! 이제 다시 내려갑시다!”

“엉?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이지후의 물음에 모두를 돌아봤다.


“이 동네가 왜 망우리인지 아세요?”

“아니?”

“조선 태조가 모든 근심 걱정을 이곳에 두고 간다고 망우리라고 지었어요.”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뭔 소리야?”

“지금까지의 근심 걱정을 모두 여기 두고 가는 겁니다.”

“우리 등산하러 온 거 아니에요?”

“맞아요. 상무님이 도시락도 싸줬잖아요.”


결국, 손으로 산 너머를 가리켰다.


“망우산은 됐고, 이제 용마산으로 갑시다. 용마산을 등산하는 겁니다.”

“잉 모지?”

“그냥 다 같이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박호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백이 오빠 이상한데요?”

“그냥 둬. 백이한테 의미 있는 곳이야.”


나지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



우리는 용마산을 올랐다.

박호우는 등산하는 모습을 촬영하며 브이로그처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흑심을 드러냈다.


“지안이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어?”

“저··· 저는 수술 덕분에···.”

“앞트임이랑 쌍수는 수술이 아니야.”


박호우를 보니 주먹이 울었다.


“그게 수술이지 새끼야. 너 변태냐? 나영은 좋··· 읍읍!”


박호우는 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백이가 오늘 입이 좀 험하네? 하하”

“읍?”


‘나지안, 속지마! 이 자식은 너희 언니를 짝사랑했던 놈이야!’


이라고 자칫 밝힐 뻔했다.

하지만 박호우와 나지안이 속삭이는 모습을 보니 다시 배알이 틀렸다.


“호우랑 지안이 연애한다. 200%! 나랑 내기할 사람 여기 모여라!”

“아니라고!”

“정말 아니에요!”


두 사람은 부인했으나 이미 늦었다.

내 말에 모두 눈을 반짝였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아니야!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구요.”

“당장 이실직고해라.”


마정도는 바보답게 전혀 몰랐다는 듯 두 사람을 추궁했다.

관심을 돌린 덕에 영원에게 다가갔다.

영원은 김성현과 신곡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마침 나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요즘 들어 부쩍 친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김성현이 밉상이다.


“아저씨, 왜요?”


영원이 웃으며 물었다.


“오크로드 신곡 준비 잘 돼 가?”

“예. 근데 왜 망우산 말고 여길 등산하는 거예요?”

“용마산은 왕의 말을 키우던 곳이거든.”

“아···?”

“전부 우리 식구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그렇구나! 저도 힘낼게요.”

“대표님, 저도 잘 준비하겠습니다.”


김성현도 다소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러시던지···.”

“아저씨! 아저씨!”


영원은 그제야 평소처럼 엉겨 붙었다.


“아저씨라 하지 말고 나도 오빠라 불러주면 안 돼?”

“싫은데요?”

“그럼 그냥 김성현이랑 놀아라.”

“헉! 왜 그러세요?”


영원도 놀랐지만 따라오던 김성현이 더 놀랐다.


“대표님,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런 거 없습니다.”

“대표님···?”


그냥 단순한 질투였지만 김성현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눈치를 살폈다.

이러면 안 되지만 내심 즐거웠다.


우리는 용마산 정상에 올라 김상무가 싸준 도시락을 까먹었다.


“아저씨가 그러는데 용마산이 왕의 말을 키우던 곳이래요.”

“우와 그렇구나?”

“전혀 몰랐어.”


모두 영원의 입을 주목했다.

나는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면목동을 손으로 가리켰다.


“면목동은 말 목장 입구라서 면목동이야.”

“우와!”

“우와? 아저씨 진짜 박학다식하시네요.”

“잔바리가 참 많이 컸다.”

“으이구···”


마정도를 제외한 모두 나를 주목했다.

그런데 하필 환장의 콤비와 누리의 눈이 반짝였다.


“형님, 개포동은요?”

“형님? 그럼 쌍문동은 뭐냐?”

“형님, 흑석동은요?”


녀석들을 보니 분노가 솟구쳤다.


“인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헉! 죄송합니다.”


환장의 콤비는 바로 눈을 깔았다.

하지만 누리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를 쳐다봤다.


“형님은 왜 맨날 성질이야? 하루라도 성질을 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누리 이새끼, 너 사실은 한국말 잘하는 거 맞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새끼 진짜 수상해!”

“형님, 오해다! 잘못했다.”

“누리는 앞으로 초원정식 가지 마!”

“우와! 치사하게 먹는 거! 헉? 왜 때리느냐?”


보다 못한 김성현이 누리를 말렸다.


“대표님, 제가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이미 포털 사이트에는 국민밴드 카페가 개설되어 참가를 희망하는 밴드끼리 정보를 주고받았다.


“모두 잘 들으세요.”


모두에게 이곳 용마산을 오른 이유를 설명했다.

앞으로 오픈하게 될 클럽과 식구들끼리의 단합, 그리고 국민밴드에 대해.


“다들 잘 아셨죠?”

“네!”

“스튜디오 식구랑 호구엔터도 앞으로 열심히 합시다.”

“파이팅!”


모두 파이팅 넘치게 소리를 질렀다.

식구들은 각자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영원밴드와 오크로드.

영원에게 사심이 있어 이들을 동일 선상에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국민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다.


‘우승까지 생각하는 건 욕심이겠지?’


영원은 마치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옆에 앉아서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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