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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422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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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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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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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EP 2. 영원밴드

DUMMY

나는 맞은 편에 앉은 차지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여유 넘치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미소가 내게는 ‘너희 따위가 읽어본 들?’이라고 느껴졌다.


“원래 수익 배분은 5:5인가요?”

“그렇습니다.”

“하하하, 이거 해볼 만 하군요. 너희 모두 잘할 수 있지?”

“예예···.”


아이들은 내게 장단을 맞춰주지 않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

나는 영원과 선우현, 나지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각자 핸드폰을 만지고, 턱을 괸 채 하품을 하고, 거울을 보고 있다.

배효빈만이 이를 보이며 웃어 보였다.

관심도 없는 아이들을 보던 중 김현욱이 팔꿈치로 나를 건드렸다.


“난 다 읽었는데?”

“저도 다 읽었어요”


김현욱은 안경을 고쳐 쓰며 쓴웃음 지었다.


“그럼 저희는 가봐도 되죠?”


선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머지도 따라 일어났다.

여유 있게 앉아 잇던 차지연은 흠칫 놀라며 아이들을 쳐다봤다.


“점심시간 다 돼가서요.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 이따 뵐게요.”

“효빈이도 안뇽.”


배효빈을 제외한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보면담실을 나갔다.

차지연은 당황한 듯 입을 손으로 가리고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

놀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랑컴퍼니에서 계약제의가 왔다며 좋아할 때는 언제고, 방금 보인 다소 건방진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들 부모님과 상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뭐 그러시죠.”


차지연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도 도서관을 나와 그대로 동이 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나와 배효빈은 김현욱의 차에 타 박호우의 집으로 향했다.


“자문료 내놔.”

“공짜 아니었어요?”

“이 양반아,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어차피 별로 바쁘지도 않잖아요?”

“사무실 지키는 거도 일이야! 아니, 생각해보니 기분 나쁘네. 내가 왜 안 바빠?”


김현욱은 조수석에 앉은 나를 갈궜다.


“홍예화는 어떻게 됐어요?”

“잘하고 있겠지.”

“혹시 의심하거나 하진 않던가요?”

“당연히 의심하지. 혹시 네가 부탁한 거 아니냐고 바로 묻던데?”

“그래서요?”

“아니라고 했지. 근데 역시 네가 부탁한 거라고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던데?”

“맙소사···.”


나는 창밖을 보다 눈을 감았다.


“잔뜩 기대하던데? 남자는 원래 좋아하는 티 내는 걸 싫어하냐면서.”

“겨우 쓸데없는 생각 안 하게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 좋아하는 거 맞잖아?”

“아니라고 했죠?”


다행히 배효빈은 뒷좌석에서 늘어진 채 자고 있었다.


우리는 박호우의 집에 도착해 지하실을 찾았다.


“인사드려. 김현욱 변호사님이셔.”

“아이고,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환장의 콤비는 김현욱을 반갑게 맞았다.


“변호사님, 앞으로 모든 자문료는 이 친구가 지급할 겁니다.”

“어? 아예, 제가 지급합니다.”


박호우는 살짝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김현욱은 나와 읽었던 계약서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계약 해지에 관한 것과 계약 기간 중 지적 재산권을 갑이 갖는 건 문제가 있어.”

“독소조항이란 말씀이죠?”

“그래. 2항에 역량 부족과 질병으로 인한 것을 계약 해지 사유로 본다면 버틸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해지 사유가 너무 주관적이야.”

“아··· 질병도 있었군요.”

“감기도 질병인데···.”


배효빈도 심각하게 김현욱을 쳐다봤다.


“내 생각에는 계약 수정을 요청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아니요. 그냥 계약 자체를 엎어야 해요.”

“왜 점 찍어둔 밴드라며? 좋은 기횐데.”

“우리랑 계약할 거니까요.”


김현욱은 그제야 내 계획을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복지재단 이사장 아들은 역시 계획이 다 있구만.”

“우와, 오빠? 재단 이사장 아들이었어!?”

“넌 닥쳐!”

“흑?”

“뭐 그럼 계약은 엎어. 애들은 네가 잘 설득하면 되겠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


박호우는 따로 할 말이 있다며 김현욱과 연주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오빠, 저 배고파요.”

“그래. 뭐라도 먹자. 정도야 뭐 먹을래?”

“난 호우랑 짬뽕 먹었는데? 지하실 새로 단장했으니 냄새 풍기지 말고 나가서 사 먹여라.”

“참나···.”


나는 결국 배효빈을 데리고 나와 국밥집을 찾았다.


“나 국밥 별론데···.”

“어휴 초딩 입맛. 난 내장탕 먹을래요.”

“음···. 그럼 난 순대국밥.”

“이모! 여기 내장탕이랑 순대국밥이요!”


배효빈은 머리를 질끈 묶고 잘도 내장탕을 먹었다.


“오빠! 좀 팍팍 드세요! 다대기도 풀고.”

“다대기?”

“아, 제 고향에서는 이거 다대기라고 해요.”


그녀는 빨간 양념통을 흔들었다.


“핑뚝이 고향이 어디야?”

“부산이요.”

“그렇구나. 학교는 왜 안 다녀?”

“그냥! 뭐··· 지루해서요.”


배효빈은 박호우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아이다.

왠지 이 아이의 밝고 씩씩한 모습이 본 모습 같지 않았다.

그녀의 내면에는 드러낼 수 없는 슬픔과 아픈 사정이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당당하게 꺼낼 수 있다면 이 아이는 더 크게 성장한다.

지금 박호우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한 걸음 전진한 것처럼.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얼른 드세요.”

“너··· 내가 왜 좋아?”

“예? 음··· 모르겠어요. 또라이 같긴 한데 츤데레 같아요.”

“또라이는 너무 심한데?”


배효빈은 코를 찡그리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근데 저 오빠를 그냥 오빠로만 좋아하기로 했어요.”

“응? 왜?”

“원이 오빠 좋아하잖아요.”

“뭐!?”


나는 숟가락을 놓고 그녀를 응시했다.

배효빈은 뚝배기를 손으로 들고 국물을 비우고는 휴지로 입을 닦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저 그날 다 봤어요. 오빠랑 원이가 안고 있는 거···.”

“아···? 그건 내가 넘어지는 거 붙잡으려다 같이 넘어진 거야.”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오빠도 분명히 원이 안아줬어요. 등도 쓰다듬어주고···.”


배효빈은 마치 모든 걸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녀에게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다 알고 있어요. 오빠는 취해서 그런 거. 하지만···.”

“하지만?”


치부가 모두 밝혀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에 다소 안심했다.


“원이가 울면서 가게로 들어올 때 저는 느꼈어요. 얘도 오빠한테 반했다는 걸···. 저는 주저 없이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원이한테 양보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못하겠데요. 전 당연히 양보할 거가 생각했거든요. 걔는 늘 그랬으니까. 리더는 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이가 리더예요. 언제나 우릴 위해 모든 걸 양보해줬으니까.”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기고 있네.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는데 자기들끼리 양보라니.”

“흥!”

“그래서 결론이 뭔데?”


배효빈은 그제야 어두워진 표정을 피고 웃어 보였다.


“저는 원이라면 무조건 만사 오케이에요. 원이도, 현이도, 지안이까지.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요. 그래서 그냥 오빠로서만 좋아할래요.”


아이들은 영원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뭉쳐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우정에 금이 가게 만든 그랑컴퍼니와의 계약을 나는 막아야 한다.


“오빠가 믹싱 가르쳐 줄게.”

“정말요!?”


모든 건 영원과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다.



***



지하실로 돌아왔을 때 김현욱은 돌아가고 없었다.

박호우에게 어떤 법률 조언을 얻었냐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배효빈에게 믹싱을 알려주려 했으나 정작 우리는 따로 노는 중이다.


“모노랑 폴리 활용은 하실 줄 알죠?”

“아니?”

“에에? 완전 몰라요?”


그녀는 신디사이저 사용법을 박호우에게 전수 중이었다.

나는 마정도에게 레코딩과 장비 세팅에 관한 노하우를 가르치는 중이고.


“노이즈게이트로 잡아도 미세한 잡음이 있네.”

“아마 영원이 무선 마이크를 사용해서 그런 거 같아.”

“전체적으로 들을 땐 괜찮은데 보컬만 따로 들으니 확실히 거슬려.”

“예민한 자식.”


우리는 동이제 때 영원밴드가 공연했던 영상을 아직 유튜브에 업로드 하지 못했다.

레코딩한 파일은 내가 믹싱해 하나의 곡으로 일찌감치 완성한 상태였다.

박호우와 촬영한 영상에서 관객들의 소음을 최소화하고 곡의 싱크도 완벽히 맞춘 상태였다.


이대로 업로드해도 전혀 무리 없었다.

문제는 내가 마정도에게 영원의 보컬에 노이즈가 있다고 말한 후 시작됐다.

이 녀석이 거기에 꽂혀서 노이즈 제거 방법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잡음은 어떻게 보면 그 환경에서는 정상적인 상황이야.”

“아니, 다음에 녹음할 일이 생기기 전에 문제를 처리해야 될 거 아냐?”

“라이브 딸 일이 또 있을까···.”

“혹시 모르잖아?”


마정도는 이 일을 적당히 넘기려 하지 않았다.


노이즈가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다.

장비 세팅에서의 접지, 혹은 근본적인 마이크, 케이블, 인터페이스의 문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하나씩 테스트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문제를 못 찾으면?”

“오실로스코프로 파형을 분석해서 이상 신호를 감지해야 돼.”

“오실로스코프? 그건 또 뭐야.”


오실로스코프란 전기 파동의 주기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장비다.

주로 전압을 관찰하기 위해 전자기기업체에서 사용하지만, 사운드 엔지니어도 문제가 생기면 간혹 사용한다.

문제는 이 오실로스코프가 막상 사용할 일이 적다는 것이다.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는 비싼 가격과 조작이 어려워 잘 사용하지 않는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 그러다 짱구 터져서 일찌감치 포기한다.”

“음···. 그럼 이대로 업로드 해?”

“애들 오면 한번 들려주고 올리지 뭐.”


마정도는 틈만 나면 혼자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영원이 잉베이 맘스틴을 커버한 영상을 보고서는 자신도 해보겠다며 기타를 연주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심지어 공부와 담을 쌓은 녀석이 레코딩과 장비에 대한 서적까지 구입해 읽고 있다.

마정도도 박호우처럼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나만의 소리를 만든다?”

“예. ADSR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따라 소리가 바뀌거든요.”


박호우는 신디사이저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효빈, 너 오늘은 세션 없냐?”

“없는데요? 히힛!”


배효빈은 나를 보며 귀엽게 손가락 브이를 만들었다.


“어머? 애들 왔나 봐요. 문 열어달래요.”

“아, 어머니 외출 하셨나 보네.”


박호우는 지하실 입구로 가 대문을 열어줬다. 이내 교복을 입은 세 아이가 내려오고 영원밴드가 모두 모였다.


“오늘 알바는?”

“목요일은 쉬어요.”

“나지안은 학원 안 가도 돼?”

“저 학원 그만뒀는데요?”

“그래···.”


나는 소파에 앉은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진지한 표정이었다.


“변호사님과 그랑컴퍼니 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아쉽게도 독소조항이 있었어.”

“독소조항이 뭔데요···?”

“계약 해지에 관한 것과 지적 재산권에 문제가 좀 있어. 특히 계약 해지는 주관적인 해석이라 사실상 자기 마음대로···.”

“상관없어요.”


내가 말이 끝나기 전도 선우현이 끼어들었다.


“뭐? 왜 상관이 없어? 그럼 그냥 이대로 계약하겠다는 거야?”

“아니요? 저희 어차피 그랑컴퍼니와 계약 안 해요.”

“뭐?”


선우현의 말에 나는 놀라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저희는 이미 구두로 계약해버린 상태거든요.”

“뭐!? 누구 마음대로 구두계약을 해?”

“타이거 나인이랑 했는데요?”

“타이거···?”


나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할 수 있었다.

박호우가 그랑컴퍼니의 계약제의에 별 반응 없이 축하한다고 했던 것과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이 보였던 태도까지.

나만 모르고 자기들끼리 시계태엽처럼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 새끼···?”


나는 눈알이 빠질 거처럼 박호우를 노려봤다.


“안 물어봤잖아?”

“구두 계약해도 얘들이 그랑컴퍼니랑 계약할 수도 있었잖아!?”

“인생사 속고만 살았나?”


박호우는 뻔뻔하게 어깨를 들썩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때 배효빈이 건방지게 다리를 꼬며 나를 쳐다봤다.


“오빠! 영상으로 다 찍어놨어요.”

“언제···?”

“오빠 완전 기절했을 때!”

“이··· 이런 씨!?”


박호우와 마정도, 영원밴드.

모두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나는 완전히 속아서 혼자 설레발치고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왜 웃는 거야!? 내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고 있어!?”

“아니요!”

“뭐야···? 대체 왜 그런 거야? 단체로 나 속이니 즐거웠어?”

“아니요!”


나는 심각한데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다.

화가 나는 것도 잠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불현듯 축제 공연을 끝낸 그 날 바로 구두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아니, 호우를 뭘 믿고 덜컥 계약한 거야?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이들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동시에 소리쳤다.


“저희 앞으로 개같이 굴려주신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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