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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446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작성
23.08.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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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4쪽

EP 1. 과거와 현재

DUMMY

엄마는 진지하게 한참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떨구며 웃으셨다.


“아들, 혹시 돈 필요하니?”

“아니요!”


나는 교도소에서 성인이 되었다.

출소하고 나니 박호우와 마정도는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이후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처음 독립을 할 때 천만 원을 빌린 걸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손을 내민 적이 없었다.


“그럼 뭔데? 들어는 줄게.”


엄마는 진지하게 나를 응시했다.


내가 29살 되던 해니까 2020년 봄.

갑작스럽게 다수의 시민단체가 라온복지재단에 대한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라온복지재단을 음해하는 뉴스 보도가 시작됐다.

엄마는 비리는 터무니없다며 투명함을 증명하기 위해 외부회계감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 후원금 집행과 시설 운영에서 부동산 임대수익금 횡령, 시설종사자 수당 미지급, 퇴직금 정산 누락, 회계 절차 및 규정 미준수 등 다수의 비리가 드러났다.


엄마는 충격으로 쓰러졌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뇌졸중 수술을 마친 상태였고 눈도 뜨고 계셨다. 하지만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심은 물론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틀을 눈만 깜빡이던 엄마는 이내 내 곁을 영원히 떠났다.

하나뿐인 아들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말이 좋아 이사장이지 평생 후원금을 위해 발로 뛰셨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나서 봉사하신 분이셨다.

그런 엄마가 온갖 비리 혐의를 뒤집어쓴 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라온복지재단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사회와 임원 몰래 엄마만 통할 수 있는 회계사를 고용하세요.”

“회계사는 지금도 있거든?”

“아니요. 엄마만을 위한 회계사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요.”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왜 그러니? 엄마 불안하게···.”

“아니요. 엄마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엄마는 걱정 말고 평소처럼 일하세요.”

“······알았어.”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뜬금없는 말에 놀랄 법도 하지만,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하셨다. 마치 엄마도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고 계셨던 것처럼.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요즘도 재단에 오이 비누만 써요?”

“응? 그렇지 뭐···.”

“후원이 오이 비누만 들어와요?”

“아니. 근데 갑자기 오이 비누는 왜?”

“그냥요. 혹시, 우리 재단에서 의료비 지원 같은 거도 하죠?”


엄마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아들 진짜 이상하네···. 자꾸 뜬금없는 소리만 해.”

“그러게요. 하하”

“솔직히 말해. 대체 뭐야?”


엄마의 집요한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결국 더 깊이 파고들기 전에 이 정도에서 멈춰야 했다.


“엄마! 혈압은 괜찮아요?”

“갑자기 말 돌릴래?”

“건강 관리하라고요!”

“왜 소릴 질러!?”


더는 철없는 아들로 살 수 없다.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게 두고 볼 수도 없다.



***



라온복지재단을 이용해 병원비를 해결해볼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박호우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박호우는 왜 자기 이름으로 병원비를 내느냐고, 이렇게 큰돈이 어디서 났냐고 내게 따져 물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보고 맨날 호구 짓 한다고 뭐라 하더니 너 대체 뭐 하는 건데?”

“뭐가?”

“왜 병원비를 네가 내주는데? 네가 호구냐? 요즘 진짜 이상해!”

“쓰읍!? 뒤진다?”


그걸로 충분했다.

박호우는 더는 내게 병원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과거로 돌아온 지금 삶에 빠르게 적응했다.

하루 두 시간만 주식을 보는 게 가능해졌다. 장이 열리기 30분 전부터 거의 두 시간만 나는 모니터를 주시했다.

그러다 재미있는 종목을 찾았다.


‘화원상선이랑 MMM···?’


MMM(Mines Merchant Marine)이란 해운 회사였다.

현재는 시장가 4100원대지만 화원상선이란 인천의 해운 회사를 인수하며 주식이 뻥튀기된다.

지금부터 주식은 소폭 하락한다.

그러다 인수 소식과 함께 시장가 2300원에서 19배 올라 화제가 된 종목.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식이 요동치다 이유 없이 급락하고 갑자기 반등한다. 조만간 기회가 오겠군.’


나의 시드머니는 어느새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MMM이 2000원대로 떨어지면 기회를 포착해 몰빵한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주식을 하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과연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계획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모든 신경은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오직 영원.


나는 하루하루 초조했다.

다섯 살의 나이 차.

지금 영원은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한창 민감할 나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누군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을 앞두고 있을 거고, 누군가는 사회에 발을 들이기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조금만 견디면 20세의 성인이 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초조하겠지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10대의 끝자락인 그들은 모두 고군분투로 일상을 보냄이 틀림없었다.


‘영원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영원에게 모습을 드러낼지를 매일 상상했다. 하지만 매번 내리는 결론은 모습을 드러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저 한걸음 뒤에서 그녀가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을 지켜본다.

내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고, 그게 옳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에 지은 잘못을 덮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은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니까.


‘너무 보고 싶어 미칠 거 같아.’


물론 결론을 내린 것과 반대로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때 박호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집이지? 내려와.

“네가 올라와.”

-영원이라는 애 찾았다.

“뭐!?”


나는 곧장 집에서 내려와 박호우의 차에 올라탔다.


“어떻게 찾았어?”


박호우는 해냈다는 표정으로 바보처럼 웃었다.


“정말 힘들었어. 지금 목이 좀 마르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기는데?”

“가자. 사줄게!”


근처 카페로 온 박호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휴, 좀 살 거 같네.”

“······.”


나는 얼른 말하라는 표정으로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

박호우는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고3이라길래 저녁 늦게 방과 후 수업 마치길 기다렸는데, 엄마들이 대부분 픽업 와서 물어보기도 힘들더라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2학년들한테 물어봤지.”

“그래서?”

“영원밴드라고 하니까 몇 명이 알더라고.”


박호우는 태블릿으로 촬영된 영상을 재생했다.


“핸드폰으로 찍은 게 아닌데?”

“네가 언제 뭐 빌려 가서 돌려준 적 있어? 그냥 새로 샀지.”


그런데 영상에는 단추가 터질듯한 교복 상의만 보였다.


“변태 새끼, 가슴 찍는 취미 있었냐?”

“아 미안, 소리를 안 켰네.”


-영원 선배요? 알아요.

-알아요. 그 언니 엄청 귀여워요.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쳐요.

-영원? 그게 누군데요?


각기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

마치 박호우가 인터뷰하듯이 촬영된 영상에는 가슴에 포커스가 맞춰진 채 여학생의 목소리만 나왔다.


“야, 이 자식아. 대체 왜 가슴에 초점을 맞춘 건데!?”

“어, 얼굴을 찍기는 미안하잖아. 초상권도 있고.”

“가슴엔 초상권이 없냐?”

“내가 팬티를 찍은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이거 어떻게 찍은거야?”

“매거진 에디터라고 하고 찍은거야. 영원밴드 취재라고.”


나는 박호우의 과감함에 놀랐다.

씹덕다운 생각이었지만 다소 위험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가 좋았으면 다행한 일이다.


-영원 선배요? 방과 후 수업 안 해요. 아마 알바할걸요?

-그 선배 단짝이 있거든요. 선우현이라고 밴드 드러머에요. 그 언니 되게 멋있어요.

-영원 선배? 저기 뒤에 나오고 있네요.


그리고 영상은 멀리서 교문에서 나오는 두 여학생으로 향했다.


“좀 불량하지 않냐? 고3이 당당하게 파마머리라니···.”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멀리서 찍힌 영상은 영원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틀림없이 영원이다.’


나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왜 여기까지 찍은 거야?”

“찾았으면 된 거 아냐? 그냥 인터뷰 시도 해보려다 막상 찾으니 겁도 나고···.”

“잘했다. 호우야···. 진짜 감사한다! 이 파일 클라우드에 공유해줘.”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깍지를 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박호우에게 맡기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녀를 찾을 줄이야.

이제 어떻게든 영원을 도와주면 된다.


“근데 이 애는 왜 찾은 거야?”

“으, 으응?”

“너 설마···?”


박호우는 내 옆에 앉아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의 녀석을 보니 얼른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네.”

-안녕하세요. 강남소방서 종합상황실입니다.

“네, 무슨 일로···.”

-일전에 119안전센터로 전화주셨죠? 선생님의 응급처치로 소중한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서장님이 표창을 수여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네!?”

-선생님이 표창 대상자라고요. 그래서 알림 차 전화드렸습니다.

“아··· 아니요. 표창, 그런 거 사양할게요. 저 말고 그때 제 전화 받은 직원분께 드리세요.”

-아 당연히 그분께도 표창을···.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표창을 거론하는 걸 보니 아저씨는 다행히 별 탈 없이 퇴원한 거 같았다.


“뭐야? 표창이라니?”

“아··· 아무것도 아니다.”

“너 혹시 병원비 낸 거 때문에?”

“병원비는 네가 냈잖아?”


박호우는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표창을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받는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표창을 수여하면 사진도 찍히고 지역신문 같은 곳에 기사가 실린다. 자연히 나를 아는 사람 몇몇은 기사를 읽게 된다.


엄마가 누누이 ‘당당 하라’고 하신 말과 마현도가 ‘뻔뻔하라’고 한 말이 정답인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 변하겠다고 다짐했고, 주위 사람도 변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 영원을 둘러싼 폭로로 그랑컴퍼니와의 재판. 그 과정에서 나는 기자들에게 과거 학폭부터 모든 신상이 탈탈 털렸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두렵다.



***



그 후에도 몇 번이나 표창과 관련된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한사코 표창을 거절했다.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남경찰서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평온하던 나의 멘탈이 무너졌다.


심장이 요동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가 절도라고요!?”

-네, 시간 되면 서에 한 번 들리세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더니.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은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치가 떨렸다.


“그··· 그 아저씨가 그러던가요?”

-네네. 억울하시겠지만 요즘 이런 일이 흔해서요.

“마··· 말도 안 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오셔도 됩니다.


얼마나 억울한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당장 가죠.”

-뚝섬 유원지 쪽에 사시죠? 가까우니 저희가 태우러 갈 수도 있는데?


내가 사는 동네까지 꿰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제 신원도 조회했습니까!? 제가 무슨 범죄자입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갑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경찰서를 간다고 해서 특별하게 차려입지도 않았다.

평소에 입던 옷과 슬리퍼가 전부였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영원을 알고 있는 노가다 아저씨.

그런 그를 구해줘 소방서장 표창을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절도라니.

더군다나 그를 위해 병원비까지 냈는데 결론이 겨우 이거라니.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잠깐만요!”


넋을 놓고 걷는 사이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끌어당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양이 인형 탈과 폭신한 옷을 입은 사람 앞에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물컹한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인형 탈 알바를 일으켜 세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서둘러 지하철역 입구로 달려갔다.



***



인형 탈 알바는 쓰러진 채 넋을 놓고 멀어지는 남자를 쳐다봤다.


“괜찮아요?”

“아··· 네.”


그녀는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휴, 인도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 신고를 하든지 해야지.”

“감사합니다.”

“영원아! 괜찮아?”


그때 다른 고양이 인형 탈을 쓴 동료가 달려왔다.


“아··· 응.”

“뭐야? 왜 남자랑 넘어진 거야?”

“그 사람··· 맞은편에 자전거가 오는 줄도 모르고 걷길래···.”

“어휴, 착해 빠져서. 괜찮은 거 맞아?”


영원, 19세, 동이 여자고등학교 3학년.

대다수의 고3이라면 불과 한 달여 남은 수능을 긴장하며 준비 중일 것이다.

언감생심 대학 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한 그녀는 방과 후 친구와 고양이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두 사람은 고양이 인형 탈을 쓴 채 전단지를 돌리고 막 가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근데··· 현아. 그 사람 내 가슴 만져놓고 그냥 갔어.”

“설마 슴만튀!?”

“왜 그냥 갔지?”

“너무 작아서 가슴인지 몰랐나 봐?”

“그래서 그냥 가버린 거야?”


영원, 그녀는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주근깨, 곱슬머리, 작은 키, 볼륨 없는 몸매.

그중 빈약한 가슴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아마 남자였다고 생각했을 거야.”

“진짜 그런가?”


그리고 선우현이 놀리는 것도 모를 정도로 순진한 소녀였다.


작가의말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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