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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434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작성
23.08.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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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EP 1. 과거와 현재

DUMMY

삼성역에서 강남경찰서로 걸어가는 길.

나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두 번 다시 경찰서에 가는 일 따윈 없을 줄 알았던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당당 하라.’


엄마 말씀이 떠올랐지만 그뿐이었다.

요동치는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 추처럼 무거웠다.

그렇게 어느덧 강남경찰서가 보이기 시작하던 때 박호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응.”

-백아! 경찰서에서 전화 왔었어.

“너는 왜!?”

-병원비 때문에···. 그래서 돈은 네가 낸 거고 난 대신 낸 거라고 말했어. 너 뭐 잘못했어?

“아 진짜··· 그걸 말하면 어떡해?”

-아니, 경찰서라니까 왠지 겁나서···

“휴, 일단 끊어. 나 지금 강남경찰서 앞이야.”

-아니, 무슨 일!


박호우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대체 경찰이 뭐길래 병원비를 낸 것까지 꼬치꼬치 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경찰서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전화 받고 왔습니다.”

“성함이요?”

“공백입니다···.”

“신분증 좀 주시죠.”


신분증을 받아 인터폰을 하던 경찰관이 내게 출입증을 건넸다.


“2층에 형사 2팀으로 가시면 됩니다.”


출입증을 받자 지금 상황이 장난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구나 경찰서 방문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름 좋은 일을 하고도 절도의 누명을 뒤집어썼다.

과거로 돌아와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나를 억까하는 기분이었다.


2층으로 올라간 나는 이내 형사 2팀을 찾았다.


“이야, 자네였어? 빨리 이리와!”


기다렸다는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구해준 은인을 절도죄로 몬 배은망덕한 인간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아저씨!”


나는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보던 꾀죄죄한 모습이 아닌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말끔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아저씨? 장난하세요? 제가 무슨 절도를 했다고 이러세요”

“아니, 장난 아닌데? 자네가 내 마음을 절도했잖아.”

“네?”


이 양반이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릴 하나 하던 사이 형사로 보이는 이가 앉으라는 듯 손을 가리켰다.


“고민성 경위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단 앉으세요!”

“헐?”


나는 자리에 앉아 여전히 웃고 있는 아저씨를 흘겨보다 고민성을 쳐다봤다.

아저씨는 둘째치고 이 형사에게도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다.


“뭐죠? 왜 제 신상정보 봤습니까?”

“음, 그거야 뭐. 이 사람이 절도로 신고를 했으니까.”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요? 마음을 절도해요!? 그걸 형사라는 사람이 받아들인다? 미친거 아니에요?”


고민성은 나를 응시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눈빛 한번 살벌하네···.”

“왜요? 혹시 제 전과도 조회하셨습니까?”

“전과!?”


옆에 있던 아저씨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아저씨는 신경 쓰지 않고 고민성을 노려봤다.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 뭐··· 솔직히 해보긴 했죠.”

“그럼 제가 어떤 놈인지 잘 아셨겠네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상황이면 충분히 그랬을 거 같은데요?”

“네?”


고민성의 말에 나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9개월 동안 무려 100차례가 넘게 이천만 원 가까운 금품을 갈취한다? 누가 나쁜 놈이죠?”

“······지금 무슨 말씀을?”

“거기다 다른 친구까지 십여 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상황, 11대 1로 싸우는 용기와 배짱은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거 아닐까요?”

“···네?”

“나라도 친구가 그런 상황이면 눈이 돌아버릴 거 같은데?”

“판결문은 왜 보셨어요···?”


전혀 예상 밖의 고민성의 반응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촉촉해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때 같이 왔던 그 친구들인가?”


아저씨는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됐어요···.”


나는 그가 내민 손수건을 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보는 형사였지만 내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눈물 닦아.”

“눈물은 무슨 눈물요.”


나는 내가 경찰서에 방문한 목적도 잃어버린 채 감상에 젖었다.

잠시 후 정말 뻘쭘한 상황인 걸 눈치챘을 때 아저씨와 고민성 형사는 말없이 그저 나를 응시했다.


“근데 이 사람들은 부른지가 언젠데 왜 이리 늦어?”


뻘쭘한 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인듯했다.

그때 형사 2팀에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예화야! 여기!”

“예화?”


고민성의 말에 기자들이 내게 달려왔다.

나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왜 강남소방서장 표창을 거부하셨나요?”

“병원비도 대납한 게 사실입니까?”

“선우민씨와 일면식이 없는 게 사실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당황한 나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에요?”


촬영 기자들은 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렀다.


“하하, 이 친구랑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처음 본 게 맞습니다.”


아저씨는 능구렁이처럼 당황하지 않고 기자들을 대했다. 그리고 내 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선행은 알려지는 게 맞거든. 그게 바로 세상 이치지.”

“···네?”

“뭐해? 일어나. 당당하게 함께 사진 찍자고.”

“당당하게···?”


아저씨는 내 어깨를 감싸 일으켜 세웠다.


“기사 잘 써주세요. 인물도 좋죠?”

“보기 좋습니다. 선생님도 웃어주세요.”

“웃으세요. 좋은 일 하신 거잖아요.”


기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촬영에 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인터뷰에 그날의 일을 설명했다.


“표창은 왜 거부하신 겁니까?”

“그저 119 상황센터 직원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표창은 그분이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너무 겸손하신데요? 병원비 대납도 사실인가요?”

“이야기가 와전됐습니다. 병원비는 친구가 냈습니다.”


내 과거를 들추고 흠집 내기 위해 카메라와 펜으로 나를 물어뜯던 기자. 그런 그들이 지금은 나의 선행을 칭찬하기 바빴다.

웃음기 가득한 기자들, 그들의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며, 그 시절 위태롭게 살아가던 것과는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저씨와 사진 촬영까지 마쳤다.


“너랑 따로 할 말이 있으니 로비에서 기다려. 알았지?”

“네···.”


아저씨는 뭐가 그리 바쁜지 촬영을 마치자마자 바쁘게 자리를 떴다.


“공백 씨, 수고하셨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기자들은 볼일을 끝내자마자 빠르게 사라졌다. 그들에게 나는 한낱 취잿거리에 불과하단 걸 잘 알고 있다.

이 흉흉한 세상에 위급한 사람을 심폐소생술로 살린 의인. 그런 이가 소방서장의 표창을 몇 차례나 거절했다.

이 시대의 양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인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저널리즘’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 아닌 핑계로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낸다고 생각한 그들이 선행을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기사로 작성되고 사람들의 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당연히 내가 죽도로 두들겨 패 뚝배기가 깨진 녀석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의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폭으로 고등학교 중퇴한 녀석.’


나는 여전히 두려웠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란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당하고 뻔뻔하게···.’


기자들과 함께 고민성 형사도 사라졌다.

선행놀이도 끝이라는 생각에 나는 형사 2팀 사무실을 나섰다.


그때 복도 자판기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고민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여자는 아무래도 낯이 익었다.


‘예화라고, 설마···? 홍예화는 아니겠지?’


패션 센스는 찾아볼 수도 없는 옷차림, 단발머리, 어질어질할 정도로 도수가 높은 뱅뱅이 안경.

겉모습만 보면 너무나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다르다.


“기사 올렸는데 데스크에서 잘렸어.”

“뒷배가 얼마나 큰 거야?”

“몰라. 내 사회부 취재는 여기까지야. 연예부로 발령 났어. 그냥 죽으란 소리지.”

“휴, 여기도 꼬리만 자르고, 사건 축소하는 분위기야.”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홍예화’였다.

내게 유일하게 진심으로 다가왔고, 영원을 진심으로 걱정했던 연예부 기자.


‘원래 사회부였구나. 근데 데스크에서 잘려? 사건 축소는 또 뭐고?’


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냥 클럽에서 철없는 부유층 자녀의 일탈로 끝날 거야. 정작 중요한 인물들은 다 빠지고.”

“거기에 몇몇 연예인들이 포함되겠지.”

“걔들만 죽어나는 거지.”

“근데 그 차준석이라는 인간 좀 이상하지 않아?”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길래 여기저기서 압박이 들어와? 우리 서장이 대놓고 덮으라고 하더라고. 검찰도 뒤집힌 거 같아.”


홍예화의 입에서 차준석이 언급되자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마 그 유력정치인 혼외자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아무튼, 난 바빠서 이만. 공백 씨 기사나 잘 써줘.”

“너도 조심해···. 너까지 피해갈라.”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준석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차준석은 이때부터 악당이었나?’


고민성은 모르겠지만, 홍예화는 그로 인해 사회부에서 연예부로 쫓겨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과거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차준석의 내막을 엿들었다.


형사 2팀으로 돌아가던 고민성이 날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공백 씨, 가려고요?”

“아, 네···.”

“당황스러우셨죠? 아무튼, 이런 일로 경찰서까지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고민성은 내게 짧게 묵례한 후 사라졌다.

나는 곧장 경찰서 로비를 벗어나는 홍예화에게 달려갔다.


“기자님!”


어찌나 빠르게 걷던지 나는 결국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다급하게 불렀다.


“네?”

“잠시만요.”


홍예화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준석··· 그랑컴퍼니 대표.”

“네? 그걸 어떻게···?”


홍예화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타요.”

“네.”


나는 그녀의 차에서 사실을 고백했다.


“죄송합니다. 들으려고 들은 게 아니라.”

“차준석이 그랑컴퍼니 대표인 건 어떻게 아셨나요?”

“그게 중요한가요? 클럽에서 그 일탈이라는 건 대체 뭔가요?”


홍예화는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안경을 벗은 걸 보니 내가 생각한 사람과 동일 인물이 틀림없었다.


“그건 취재윤리에 어긋나서 말할 수 없어요.”


그녀가 취재윤리를 언급하자 나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취재윤리 그런 건 개나 줘버려요!”

“에에?”

“기자들이 말하는 그 취재윤리강령! 대중들의 알 권리라면서 사실 여부는 제대로 확인도 않고 폭로기사부터 내는 게 취재윤리 아닙니까?”

“에에에?”

“특종이랍시고 권력과 대기업에 붙어먹어서 힘없는 약자들이 물어뜯기는 건 아랑곳 하지 않잖아요!?”

“공백 씨···?”


깜짝 놀란 홍예화는 안경을 쓰더니 나를 아래위로 몇 번이나 훑었다.


“기자들이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몰라서 그러세요? 지금 취재한 거 잘리고 사회부에서 연예부로 좌천된 거잖아요. 사실상 나가라는 말 아닌가요?”

“다 들으셨군요···.”


그녀는 자포자기 한 듯 헛웃음 지었다.


“맞아요. 취재윤리 그런 게 어딨어요. 제대로 취재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데스크에서 잘리고, 하이에나처럼 기사를 덮는 조건을 거래하죠.”

“잘도 말씀하시네요? 그럼 이제 말씀하시죠. 차준석이 한 일탈이라는 게 뭔지.”


홍예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마약이에요. 클럽 VIP에서 마약 파티.”

“마약이라···.”

“폭로하려면 하세요. 차준석의 배후가 어느 정도 인지 저도 알고 싶으니까요.”


나도 궁금하다. 그의 배후가 누군지.

특종을 언론사 데스크에서 막고, 경찰서에 입김을 불어 넣어 사건을 축소하는.

홍예화가 언급한 대로 그가 유력정치인의 혼외자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렇게 당한 것이 일견 이해가 간다.

내가 제시한 증거가 모조리 무력화되고 증언을 약속한 증인까지 매수, 공익제보자 선정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릴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

그 힘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언론은 물론이고 권익위, 사법부까지 쥐락펴락할 정도라면 도저히 나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증거는 가지고 계신가요?”

“저랑 아까 그 형사 친구가 가지고 있어요. 카피본이지만.”

“고민성 형사요?”

“휴우···.”


홍예화는 기자로 썩히기는 아깝다.

본인 입으로 군인이 체질에 맞았을 거라고 할 정도로 강단 있는 여자.


“기자님, 그냥 기자 그만두시죠.”

“네? 갑자기요?”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무슨···?”


홍예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어질어질한 뱅뱅이 안경에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의 나는 아직 힘이 없다.

붉은 달을 구경하다 나는 괴한에게 난도질당한 채 사망했고, 뜬금없이 과거로 돌아왔다.

우연히 찾아온 새로운 기회, 덕분에 나는 나와 영원의 삶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차준석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원과 나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해버린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존재.


휴암스튜디오, 박호우, 마정도, 엄마.

이번에는 이 여자의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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