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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412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작성
23.08.3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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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EP 1. 과거와 현재

DUMMY

내가 영원과 그랑컴퍼니 간에 발생했던 불공정계약을 폭로했을 때 여론은 우리 편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불씨는 오래가지 않았고 어느새 언론은 영원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랑컴퍼니와 먼저 소송전을 벌인 것은 영원이었다. 당연히 영원의 팬클럽 ‘제로원’은 집단 반발했고 그랑컴퍼니와 쓸데없는 소모전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원이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멀쩡히 잘 있다가도 말문을 닫고 우는가 하면 심할 때는 일주일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영원과 거의 함께 살다시피 한 것이.

정신착란은 우울증과 조현병으로 발전했고, 나와 24시간 함께 있으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고 죽이려 한다며 불안해했다.

그렇게 영원의 정신병이 심각해져 재판이 지연되자 그랑컴퍼니가 내게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왔다.

언론의 화살은 나에게 향했다.

영원과의 연인관계 이전에 나의 사생활을 캐며 문란한 이미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내 발목을 붙잡던 학폭도 터졌다.


처음 선임했던 변호사는 각종 TV에 출연하고 인지도도 있던 이재연이였다.

이재연 변호사는 유능했고 반드시 승소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폭로의 목적도 그랑컴퍼니를 비방하는 것이 아닌 영원을 위한 것이었기에 승소를 확신했다.

나는 많은 증거와 증인을 확보하고 있었고 승소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불어 승소 후 수많은 언론과 악플러 들을 고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패소했고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때 내게 연락이 온 사람이 김현욱 변호사였다.

그는 내게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당신 완전 놀아난 거야.’


그때부터 아마 나도 정신적으로 조금씩 맛이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차준석과 이재연 변호사, 둘 다 시궁창에 처박아서 똥돼지처럼 사육시켜버리겠어.’


카페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이를 갈던 중 창밖으로 홍예화가 보였다.

내가 알던 그녀는 저런 도수 높은 안경을 쓰지도 않았고 옷도 상당히 잘 입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저 모양인지, 아무리 과거라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후드티에 통바지, 그리고 크룩스를 신은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남은 커피를 마셨다.


“예화 씨.”


나는 그녀를 부르며 손을 들었다.

홍예화는 나를 확인하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런데.


찰싹!


“에···?”


홍혜화가 내 뺨을 갈겼다.

여자에게 처음 맞아본다.

엄마에게도 영원에게도 맞아 본 적 없다.그리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왜··· 왜 때려요?”


홍예화는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다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자기도 놀랐는지 뺨을 갈긴 손을 쳐다봤다.


“아···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너무한 거 아님?”

“공백 씨가 너무하죠? 전화기도 꺼놓고, 문자는 읽었을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문자를 보고 뭐라고 답해요?”


홍예화와 만난 다음 날 핸드폰을 켰을 때 수 많은 문자가 와 있었다.

수많은 전화 알림과 그녀의 문자.

이러지 말라며 타 이르듯 한 문자 내용은 점점 과격해지고 급기야 광기 어린 저주를 퍼부었다.

처음 알았다. 홍예화가 이렇게 불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란 걸.


“나 갖고 놀면 재밌어요?”

“갖고 논 적 없는데요?”

“왜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연락한 거죠? 또 갖고 놀려고요?”

“저랑 싸우러 온 거 아니잖아요?”

“네! 근데 자꾸 화가 나요!”

“차분히 얘기하죠. 저 바로 약속 있어서 시간 없어요.”

“참나, 알았어요···.”


나는 자꾸만 언성이 높아지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혹시 사직서는 내셨나요?”

“사직서는 늘 갖고 다니죠.”


홍예화는 가방에서 사직서 봉투를 꺼내서 보여줬다.

사직서를 제출하진 않았지만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증거였다.

나는 준비한 종이가방을 테이블에 얹었다.


“이게 뭐죠?”

“선물입니다.”


그녀는 내 종이가방을 호기심 넘친 표정으로 살펴봤다.


“밥풀 인형이랑 찹쌀떡이에요. 검사 임명되셔서 꼭 갚으세요.”

“네? 제가 검사하고 싶어 하는 건 어떻게 아시고···?”

“사회정의라면서요. 사시 합격하면 정의 구현하셔야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홍예화가 다급하게 내 손을 붙잡았다.


“이··· 이렇게 가는 거예요?”

“놔요, 좀. 저 바쁜 사람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여··· 연락해도 되죠? 꼭 받으세요.”

“안 받을 거!”

“네?”


나는 그대로 카페를 나왔다.

예쁘게 포장된 찹쌀떡 아래에는 악필이지만 나름 정성을 들여 적은 편지와 함께 오만원권 다발 4개가 들어있다.

지금 홍예화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아마 돈을 확인하면 난리가 나서 날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차단한다.


‘수신차단.’


나는 곧장 김현욱 변호사를 만나러 법무법인 노들로 향했다.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자면 이렇다.

김현욱이 완전히 놀아났다고 한 이유는 이재연 변호사가 애초에 내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증거를 제시할지, 어떤 증인을 내세울지 모든 정보가 이재연을 통해 그랑컴퍼니로 전해졌다.

물론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김현욱은 합리적인 이유를 댔고 나는 바보같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이 바닥이 좀 그렇거든.’


그의 말은 그렇지 않아도 재판과정에서 석연치 않다고 느낀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자네가 바보가 아니고, 그 사람들이 나쁜 거야.’


김현욱 변호사는 행정 소송 전문가로 각종 기업의 인허가, 특허 관련 분야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대체 왜 내게 먼저 연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찌감치 그를 알았더라면 내 삶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검사 출신으로 소신과 뚝심을 가진 그는 외골수로 유명했다.

다만 아재 개그를 남발하고 갑자기 운을 띄워달라며 이행시, 삼행시를 강행했다.

그때는 전혀 웃기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니 내 기분을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법무법인 노들의 로비를 지나 안내 데스크로 갔다.


“김현욱 변호사 찾아왔습니다. 공백이라고 합니다.”

“예약하셨나요?”


나는 고개를 끄떡이며 신분증을 건넸다.

안내 직원은 신분증을 확인하고 인터폰을 수화기를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어? 공백 씨, 안녕하세요.”


내가 돌아보자 광채가 날 정도로 잘생긴 남자가 미소 짓고 있었다.


“문호 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아 네.”

“그럼 다음에 봬요.”


문호는 옅은 미소로 내게 인사하고 로비로 향했다.

그랑컴퍼니의 ‘파이브 스틸러’ 문호.

훗날 연기자로 대성공을 거두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될 남자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문호···. 내가 문호랑 이 시점에 알고 있던 사이였나?’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현시점에서 나와 문호가 만났을 리 없다.


‘분명 2020년은 돼야 만나는 게 정상인데? 어떻게 날 알고 있지?’


문호가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고 제작했던 싱글 앨범.

그 앨범 제작에 내가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하게 됐고, 그게 작곡가인 영원을 만나게 된 계기였다.

나는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와 그의 뒤통수에다 소리쳤다.


“문호 씨!”


문호는 나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네.”


나는 그에게 달려갔다.


“죄송한데 저희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네? 휴암스튜디오 믹싱 엔지니어잖아요? 그때 윤지연 작곡가님이랑 인사드렸었는데?”

“아···. 윤지연 작곡가···.”

“워낙 특이한 이름이고 얼굴도 잘생기셔서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분이 왜 엔지니어를 하고 있지? 하고···.”

“아 네.”

“그럼 이만.”


문호는 다시 내게 짧게 묵례했다.

멀어지는 문호의 뒷모습에 넋을 잃고 있던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네.”

-법무법인 노들인데요.

“아 네. 지금 갑니다.”


나는 안내 데스크에서 출입증을 받아 김현욱의 사무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김현욱은 내 인사를 받는 대신 손가락으로 시계를 가리켰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게 했다는 듯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나는 피식 웃으며 오만원권 한 다발을 꺼내 책상에 던졌다.


“뭐 하는 짓입니까?”


김현욱은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안경을 고쳐 썼다.


“변호사님, 돈지랄하는 거 싫어하시죠?”

“물론입니다.”

“돈지랄로 삼행시를 하죠. 운을 띄워주세요.”

“뭐라고요!?”


내 건방진 행동에 화를 낼 만도 했지만, 김현욱은 이내 콧방귀를 꼈다.


“돈!”

“돈이 최고다.”

“지!”

“지랄하네.”

“랄!”

“랄··· 랄라라···.”


내 삼행시 공격을 받은 김현욱은 농락당한 듯이 얼굴이 울긋불긋 붉어졌다.

이어서 그의 반격이 시작됐다.


“선생님이 운을 띄워주십시오!”

“돈!”

“돈을 던지네?”

“지!”

“지금 뭐 하는 거지?”

“랄!”

“랄 대체 뭐로 보고?”


김현욱의 삼행시 공격을 받는 나는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김현욱 변호사님,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왜 절 만나고 싶었나요? 아무리 봐도 법률 상담하러 온 거 같진 않네요.”


김현욱은 일어나 소파를 가리켰다.

내가 소파에 앉자 그도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뭡니까? 다짜고짜 돈을 던지고, 이유나 들어봅시다.”


김현욱의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은 어느새 진정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친분이나 쌓을 생각이었습니다. 두고두고 신세를 질 거 같아서요.”

“친분 쌓자고 오셨습니까?”

“근데 생각이 바꼈어요.”

“본인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군요?”


행정 소송 전문 변호사 김현욱은 형사나 가사소송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런 그가 형사소송 중인 내게 관심을 보인 것은 늦둥이 딸이 영원의 팬이라는 이유였다.

김현욱은 영원과 나의 소송이 분명한 진실은 외면한 채 메신저를 물어뜯는 전형적인 권력과 언론 유착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내가 1심에서 패소하자 참을 수 없어 연락한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저 이 강직하고 믿을 수 있는 변호사와 친분을 쌓고 덤으로 믿을 수 있는 회계사를 소개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홍예화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이 깐깐하고 고지식한 변호사는 홍예화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변호사님은 한국법대 출신이시죠?”

“그렇습니다만?”

“평소 후배를 잘 챙겨서 많은 존경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은 무슨··· 그냥 술 잘 사주는 선배 아닌가요?


김현욱은 머쓱한지 웃으며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나는 홍예화의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분이 누군가요? 기자네요?”

“아시다시피 사법고시는 2017년이면 폐지죠.”

“존폐 논란이 있지만 아마 폐지될 겁니다.”

“이 기자는 한국법대 출신입니다. 변호사님은 후배들에게 일타강사로도 유명하더군요. 변호사님 도움받은 검사, 판사가 수두룩하죠?”


김현욱은 내가 건넨 명함을 넌지시 바라봤다.


“음···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말합시다. 이 기자에게 도움을 주라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음··· 뭐지? 여자친구입니까?”

“아닌데요?”

“그럼 키다리 아저씨?”

“그것도 아님.”

“흥, 거래하자 이거군요. 성공보수는 얼마입니까?”

“맙소사!?”

“맙소사? 왜 맙소사?”


김현욱은 팔짱을 끼고 나를 응시했다.

당연히 흔쾌히 승낙하고 저 돈은 다시 가져가라고 할 줄 알았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성공하면 같은 금액으로 또 드릴게요. 대신 우연을 가장해서 접근해 주세요. 제가 부탁했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해서요.”

“그 정도야 뭐.”

“그리고 변호사님이 정말 믿을 수 있는 회계사 한 분만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현욱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물었다.


“회계사는 왜요?”

“저희 어머니가 복지재단 이사장인데 믿을만한 회계사가 필요합니다.”

“복지재단 이사장 아들이 돈지랄을 하더니 회계사를 소개해달라?”

“투명한 회계가 필요해서요. 엄마가 비리를 저지르는지 두고 봐야겠어요.”

“저런? 호로자식이?”

“말씀이 좀···? 후레자식이죠.”

“완전 호랑말코네요?”

“너무하시네요···.”


김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더니 명함을 꺼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언제든 연락해요. 성함이?”

“공백이라고 합니다.”

“재밌는 친구군. 명함 가진 거 있나?”

“여기···.”

“사운드 엔지니어 공백이라···. 재밌어.”

“근데 왜 갑자기 반말이십니까?”


김현욱은 책상에 앉아 오만원권 다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이 돈 가져가! 기자 친구 사시 합격하면 다시 돌려주던가!”


김현욱이 던진 돈다발을 나는 얼떨결에 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바쁘니까 얼른 돌아가! 어휴, 돈도 안 되는 게 와서는 되지도 않는 삼행시나 하고.”

“아, 그럼 이만···.”


나는 김현욱 변호사 사무실에서 쫓겨나듯 나왔다.

좋은 변호사를 알게 됐다는 사실에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데스크에 출입증을 돌려주고 로비를 나오며 다시 문호가 떠올랐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눈이 좋은 친구인가?’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이지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공백.

“지후 실장님, 아니 팀장님. 예전에 그 윤지연 작가랑 파이브 스틸러에 리더가 저희 스튜디오 방문했었죠?”

-그랬지? 이름이 문호였지 아마?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짧게 심호흡한 뒤 물었다.


“팀장님, 혹시 그때 저도 함께 있었나요?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서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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