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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398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작성
23.08.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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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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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EP 1. 과거와 현재

DUMMY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울을 쳐다봤다.

입술이 터지고 여기저기 욱신거렸지만, 크게 상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이 꼴로는 도저히 무리다.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달려가 칭얼거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조금 더 참기로 했다.


사운드 엔지니어.

언뜻 들으면 있어 보이고 거창하다.

그러나 현실은 사운드 엔지니어 일은 기술직이지만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어시스트부터 레코딩을 거쳐 믹싱 엔지니어로 일한 3년 6개월 동안 수도 없이 바뀌는 직원들을 지켜봤다.

아마추어부터 지망생, 프로까지 음반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는 널리고 널렸고, 나름 예술 계통이라 희망하는 사운드 엔지니어가 많아 대체 인력도 충분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운드 엔지니어는 그저 한낱 소모품처럼 취급됐다.

정말 눈에 띄는 엔지니어는 대형 기획사나 자회사 스튜디오로 스카웃되거나 이직하기 바빴다.

부푼 꿈을 안고 어시스트로 오는 아이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엄청난 업무량에 비해 보장되지 않는 페이와 열악한 환경에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대부분이었다.

과거에는 경력과 포트폴리오, 커리어를 쌓기위해 버텼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다.

사운드 엔지니어로 능력은 충분하고 회사는 내가 차려버리면 그만이니.


그때 핸드폰 문자 알람이 울렸다.


[Web발신]

한국 입금500,000,000원

09/29 17:45 759-02-****71 박승우

잔액 509,084,594원


‘꿀꺽’하는 침 넘기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은 처음이다.

마치 내가 기다리던 걸 아는 것처럼 약속대로 아버님은 5억을 빌려주셨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이 소중한 시드머니를 불리는 것이다.

나는 바로 새 노트의 비닐을 뜯고 PC를 켜 홀린 듯 채우기 시작했다.


애초에 미래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내용을 순서대로 추려서 정리하려니까 힘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었지, 저런 일도 있었구나. 아 참, 이걸 잊고 있었네, 등등의 이런저런 내용을 추리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이틀이 지났다.


동이 트기도 전 눈을 뜬 나는 어찌나 초조한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8시가 되자마자 씻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증권사 영업점으로 향했다.


“고객님, 영업은 8시 30분부터입니다.”

“네? 홈페이지에는 분명 8시라고···.”

“20분만 기다려주세요.”


마음이 급해 너무 일찍 왔다.

그러나 친절한 여직원은 앉아서 기다리던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8시 20분에 계좌를 개설해주었다.



***



세상 등 따시고 속 편한 백수가 있고, 어딘가 초조하고 불안한 백수가 있다.

전자는 박호우고 후자는 마정도다.


“정도야. 우리 오랜만에 이자카야 갈래?”

“닥쳐! 씨발···.”

“왜 욕해···?”


초조하고 불안한 백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마정도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박호우를 쳐다보다 손톱을 깨물었다.


“PC방···. 왠지 대박 조짐이 보였는데 공백 새끼 때문에···.”

“음···. 뭔가 생각이 있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연락 한번 없잖아. 우리가 자기 빼고 사업하려니 배 아파서 파투 놓은 거 아냐?”

“에이, 그런 거 아냐. 내가 전화 한번 해볼게.”


박호우는 핸드폰을 꺼냈다.


-어, 왜?

“백아, 어디야? 오늘 시간 돼?”

-기다려. 안 그래도 볼일 보고 가려고 했어.

“진짜? 여기 정도랑···.”



박호우가 뭔가 말을 이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의도치 않게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아주머니, 잊은 게 있습니다.”

“뭔데?”

“포인트 적립 해주십시오.”


나는 마트에서 과일과 음료수를 잔뜩 샀다. 담배 한 보루도 잊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금요일까지 인 게 원망스러웠다. 모든 게 착착 진행되다 보니 차트의 세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탐욕이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던 3일이 지나고,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낙원상가를 찾았다.


기타히어로, 낙원상가 2층에 마현도가 운영하는 악기점이다.

오랜만에 기타히어로를 찾은 나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현도 형, 안녕하세요.”

“푸핫!”


컵라면을 먹던 마현도는 날 보고 놀란 듯 기침을 했다.


“형? 괜찮으세요?”

“켁켁, 왜··· 웬일이냐? 깜짝 놀랐잖아.”

“형 보러 왔죠. 헤헤,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만난 마현도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형, 컵라면 불어요. 마저 드세요.”

“됐어. 손님 왔는데 불던지 말든지, 하하”

“아니요. 저 기타 좀 보고 있을게요. 얼른 마저 드세요.”


오후 4시가 넘은 이 시간에 컵라면이라니. 그것도 배가 많이 고팠던 듯 라면을 마시고 있다.

마현도의 삶도 녹록지 않은 거 같다.


‘이럴 거면 김밥이라도 사 올걸···.’


내가 악기를 둘러보는 사이 마현도는 컵라면을 급하게 비웠다.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응? 기타 보려고?”

“아뇨. 그냥 형 보고 싶어서 왔죠.”

“진짜? 반갑긴 한데, 너 되게 낯설다? 엔지니어 일은 잘하고 있고?”


내가 마현도를 찾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휴암 스튜디오에서 김영수 팀장을 참교육하고 그만둔 것에 대한 사과.

두 번째는 형제의 화해를 위해서였다. 아니, 화해랄 것도 없다. 형제의 불화는 마정도 혼자 장작을 지피고 있으니까.


두 형제는 많이 닮았다.

남자답고 강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두 사람은 두뇌 회전도 좋고, 무엇보다 손재주가 남달랐다. 그러나 마현도와 달리 마정도는 마음이 삐뚤어져 있다.

마정도가 형처럼 악기를 다루거나 엔지니어의 길로 가지 않은 건 열등감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형제라면 우애 좋고, 다복한 게 대부분이지만, 다섯살 형인 마현도는 마정도에게 친구가 아닌 경쟁 상대였다.

마정도는 형의 존재가 불편했다.

자라면서 무의식적으로 자란 부정적인 감정은 열등감으로 표출됐고, 형과 같은 길을 가길 거부했다.

취미로 하라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복싱으로 체육고에 진학한 것도, 제대 후 약속대로 나와 같은 사운드 엔지니어의 길을 걷지 않은 것도 모두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형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땐 몰랐다. 그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지.


“형, 정말 죄송합니다. 저 김영수 팀장한테 들이받고 휴암 스튜디오 그만뒀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현도에게 허리를 숙였다.


“드··· 들이받아? 어떻게? 대체 왜?”

“······스튜디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몇 대 줘버렸어요. 3대 맞고 기절하던데요.”

“아이고···. 내가 미친다.”


마현도는 눈을 질끔 감더니 몇 번이나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그렇게 그만두면 어떡해!? 너 사운드 엔지니어 안 할 거야? 업계에 소문 금방 퍼진다고!”

“죄송합니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게 해결하고 그만뒀어야지. 그래도 네가 그런 건 그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형이 들어줄 테니 말해봐.”


많이 혼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마현도는 내 사정을 물었다.

나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고, 마현도는 말없이 경청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떡였다.


“개새끼네? 안 그래도 네가 이직 안 하고 거기 오래 붙어 있는 게 신기하긴 했어.”

“형, 김영수 팀장 그런 인간인지 알고 계셨어요?”

“아니? 그 인간이 어떤지 내가 알 게 뭐야. 원래 어시스트에서 엔지니어 달면 이직하거나 하는데, 넌 레코딩에 믹싱까지 배우면서도 안 하더라? 보통은 이직해서 다른 스튜디오도 경험하는 게 맞거든.”

“그렇군요.”

“난 그래서 거기 직원들이랑 잘 맞는가 보다 했지.”


마현도는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 뻔뻔하게 나가. 업계 소문? 그런 거 별거 아니야. 알았지?”


마현도의 말이 뼈를 때렸다.

뻔뻔하게 나가라는 마현도와 당당하라는 엄마 말씀을 왜 과거에는 흘려들었던 걸까.


“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말씀? 너 오랜만에 보니 완전 다른 사람 같은데?”

“아니에요. 정도 얘기니까 형이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해요···.”

“내 동생?”


나는 마현도에게 최대한 쉽게 풀어서 얘기했다. 예를 들거나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게 아닌 요점만 간단하게 설명했다.

마현도는 내 얘기를 들으며 한숨을 쉬고, 천장을 보고, 간혹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얘기 해줘서 고맙다. 형이 돼서 동생이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고···.”

“아니에요···.”


결국, 마현도는 안경을 벗고 한참 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아직 철이 없어 반항하는 줄 알았는데···. 형이 한번 잘 얘기해볼게···.”

“네···.”

“정도한테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말끝을 흐린 마현도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인지 내가 마트에서 사 온 물건을 살폈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그냥 형 오랜만에 뵙는데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요.”

“이건 가져가.”


마현도는 비닐봉투에서 담배 한 보루를 꺼냈다.


“왜요? 담배 바꿨어요?”

“아니, 나 담배 끊었다.”

“네에!?”


마현도는 독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내가 박호우의 지하실 문을 열자 베이스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왔어?”

“쉿!”


나는 반겨주는 박호우를 뒤로하고 연주실로 향했다.

때마침 빠르게 트윈페달을 밟던 마정도의 스트로크가 시작됐다.

마치 기관총이 발사되는 듯한 소리에 나의 귀가 열렸다.

마정도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스네어를 두들겼다.

박호우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냅둬. 오늘 좀 별로네.”

“저 자식 최근에도 드럼 연주했어?”

“아니, 갑자기 저러네. 저기압이야 오늘.”


6 연음에 4 연음, 중간중간 이어지는 더블, 다시 6 연음에 4 연음 싱글 악센트.

박자를 쪼개는 연주 실력은 여전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마정도가 연주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챙-


한참 연주를 하던 마정도가 심벌즈를 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왔어?”

“좀 전에···.”


마정도는 머쓱한지 혀를 내밀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마정도, 아직 살아있네?”

“그럼 내가 살아있지 죽어있냐?”


내가 손바닥을 내밀자 마정도는 시선을 피하며 애써 하이파이브했다.


“정도야, 넌 왜 드럼 배웠냐?”

“그냥···. 형이 기타 쳤으니까, 난 딴 거 배우고 싶어서.”


박호우야 호구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마정도도 참 뻔뻔하게 솔직하다.

삐딱하긴 하지만 표정을 숨길 줄도 모르는 순수한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며 그 시절처럼 마정도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켁, 왜 그래? 나 땀났단 말이야.”

“땀 좀 묻으면 어때? 친구끼리.”

“냄새난다고!”

“안나 새끼야!”


내 팔을 뿌리친 마정도는 티를 벗어 몸을 닦았다.


“우리 오랜만에 이자카야 가자. 호우가 쏜 데.”

“그래. 오랜만에 참치 어때?”


두 녀석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냥 배달시켜 먹자. 내가 쏠 테니까.”

“네가···?”

“대신 나도 맥주 한 모금만 할게.”


맥주 얘기를 꺼내자 두 녀석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안돼!”


동시에 외치는 두 녀석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잠시 후, 참치회가 배달오고 소박한 만찬이 시작됐다.


“공백이 사주니까 왠지 더 맛있네.”

“많이 먹어. 앞으로 많이 사줄테니까.”


내 말에 마정도가 힐끗 눈치를 보더니 박호우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상하지?”

“많이···.”


귀여운 녀석들.

두 녀석이 낯설어하는 반응은 당연하다.


나는 그 시절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도 그 시절과는 달라질 것이다.


“정도야. 미안한데, 앞으로 호우한테 뭐 얻어먹을 생각하지 마라.”

“뭐!? 갑자기 기분 잡치게 개소리야?”


발끈한 마정도와 깜짝 놀란 박호우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나를 쳐다봤다.


“앞으로 호우 대신 내가 다 사줄테니까.”

“네··· 네가?”

“그래···. 대신 앞으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다. 박호우 너도.”

“나도?”

“대체 뭔 소리야···.”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두 녀석을 쳐다보다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김영수 팀장 휴암 스튜디오 사직했다.

“그렇군요.”


그만뒀던 이지후 실장이었다.


-나 다시 휴암 스튜디오에서 일하기로 했어. 그것도 팀장으로!

“잘됐군요. 축하합니다.”

-너도 다시 와. 사장님께 내가 잘 말해뒀어.


무엇을 어떻게 잘 말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휴암 스튜디오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죄송하지만 전 안 가요. 대신 조만간 우리 다시 만날 겁니다.”

-왜? 조만간은 또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야지?

“그냥 그렇게 아세요. 잘 지내고 계세요. 아셨죠?”

“그··· 그래.


내가 통화를 끊자마자 동시에 맥주를 비운 두 녀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져 물었다.


“너 스튜디오 그만뒀어!?”

“대, 대박! 백수 돼서 이거 쏘는 거야?”

“야! 공백! 너도 인생 막살기로 한 거야?”


두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천장으로 시선이 갔다.

긴 한숨을 쉬던 내가 실없이 웃고 있자, 마정도가 빈 잔에 맥주를 채웠다.


“마··· 마셔! 씨발, 인생 뭐 있냐?”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마정도가 건네준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크아! 이 맛이지!”


마치 감전된 듯 찌릿찌릿함이 온몸으로 퍼지자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 기분 최고!”


두 녀석은 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개 소름···.”

“나도···.”


이 시절의 나는 정말 알콜 쓰레기였다.

나중에도 그리 주량이 늘진 않았지만, 맥주 한잔에 뿅 가는 기분이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는 걸 인지했을 때 나의 온몸은 이미 붉어진 후였다.

그런 내가 두 녀석을 다시 쳐다보자, 망했다는 걸 직감한 것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쉰 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백수 된 기념으로 우리 내일 다 같이 노가다나 하러 가자. 내 버킷리스트야!”

“뭐?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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