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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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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38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작성
23.08.2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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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EP 1. 과거와 현재

DUMMY

<영원의 사운드 엔지니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하고 감사한 것을 잊고 살아간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소한 것부터 감사하다.

공기, 밝은 햇살, 고요한 밤, 가끔 오는 게 반가운 촉촉한 비. 그리고 언제나 고지식하게 사랑과 응원을 주는 부모님과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왠지 밑 보이면 안 될 거 같은 친구까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 무수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당연한 듯 그 존재를 망각한 채 존재하지도 않는 허기와 갈증을 채우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반복한다.

진보가 아닌 퇴보를 위한 답습.

수 세기 전부터 철학자들이 주구장창 외치고 수없이 검증된 진리를 무시한 채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다신 그러지 않겠노라 맹세하고, 또다시 그 짓을 반복한다.


미루기 시작한 습관은 어느새 나의 온 신경을 지배했다.

술을 마시면 잠을 이룰 수 있지만, 구정물 같은 삶을 바꿔보기 위해 버텼다.

자정이 넘어 겨우 잠이 들 뻔했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비가 내렸다.

그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해가 뜨고서야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창밖은 어느새 캄캄한 어둠이 내렸다.


눈은 떴지만, 이불을 못 벗어나고 있다.

재판을 앞두고 며칠동안 잠을 못 이루고 피폐한 채로 오랜만에 한 외출.

외출 때 입었던 수트는 침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씻기 위해 방문을 열고 거실을 거쳐 화장실로 가야 하지만, 방문을 열고 싶지 않다.

방문을 여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 집에서 온전한 곳은 이곳뿐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어둑시니가 나올 거 같은 거실을 지나 화장실 문을 열고 얼굴을 대충 헹군다.

꿉꿉한 냄새.

결국, 수건을 외면하고 물기 가득 머금은 채 거실로 향한다.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와 나뒹구는 술병.

그나마 온전한 소파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는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켠다.


나는 사운드 엔지니어다.

사운드 엔지니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예능이나 프로그램, 애니, 드라마, 영화 같은 소리를 삽입하는 방송 엔지니어.

앨범을 레코딩하고 믹싱, 마스터링하는 음반 제작 엔지니어.

시스템 설계부터 컨설팅과 설치와 렌탈까지 하는 인스톨 엔지니어.

그중 나는 음반 제작 전문 사운드 엔지니어다.


내 나이 92년생, 어느새 서른셋.

누군가에게는 아저씨고, 누군가에게는 한창 일 나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너무 지쳤다.


‘믹싱 엔지니어 공백.’


귀가 좋은 덕에 업계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인정받았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 만큼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 인정받던 사운드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는 어느새 사라지고, 사랑하는 여자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병실에 누워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눌 친구조차 내 곁에는 없다.

나는 세상 모든 걸 잃어버렸다.

믹싱 엔지니어로서 녹음을 딴 각자의 트랙은 조화롭게 만들었지만 정작 내 삶은 이기적이었고 엉망진창이었다.

이번 생은 그야말로 완전 실패했다.


멍하니 리모컨으로 티비채널을 돌리던 중, 마침 뉴스 채널에서 나오는 기자의 말.


『그랑컴퍼니와 믹싱 엔지니어 공백 씨의 명예훼손 소송 항소심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3부는 어제인 24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공백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비록 피고인의 목적이 공익을 위해 한 행동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그랑컴퍼니 차준석 대표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있음을 인정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공백 씨는 항소 의지가 없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이로써 싱어송라이터 영원과 전 소속사 그랑컴퍼니를 둘러싼 공백 씨의 폭로로 시작된 법정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씨발···.”


몸이 타는 듯한 심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이내 긴 한숨과 함께 내뿜었다.

성공한 인생이다. 공백이라고 대놓고 공중파 뉴스에도 이름이 언급됐으니.

대한민국의 법은 대체 누구를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전관 변호사를 써 돈으로 주무르면 나 같은 약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수많은 녹취 증거를 제시했지만, 불법 수집한 녹취 자료라며 모두 묵살.

나를 위해 증언을 약속한 증인들의 석연치 않은 재판 출소 거부.

권익위에서 공익제보자 판정을 받았다가 재번복까지 재판은 무엇 하나도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재판에서 패소한 나는 당연히 사법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고 새로운 증거를 확보해 항소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2심도 패소했다.

변호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판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거 같다고 했다.


바로 권력과 언론.

권력은 나와 다른 세계 일이라고 모르겠다 치더라도 언론은 용서할 수 없다.

국민의 알 권리라면서 15년 전 나의 치부까지 모조리 파헤치는 집요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덕분에 나의 15년 전 학폭사건까지 밝혀지며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난 모든 걸 잃어버렸다.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직업과 명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오늘 저녁 지구 그림자에 달이 가려져 ‘레드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개기월식은 날이 대체로 맑아 전국에서 관측이 가능할 전망이며 오후 6시 15분부터 부분월식이 시작됩니다. 이후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들어가는 개기식이 오후 7시 4분부터 시작되며 7시 52분까지 '레드문'을 볼 수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그동안 무식하게 살았다.

개기일식은 들어서 알지만, 개기월식은 생경하다. 더군다나 레드문이라는 말은 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으로 ‘레드문’에 대해 검색했다.

레드문, 혹은 블러드문이라고 불리는 흉조의 상징.

현재 시각 오후 7시 15분.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해 창문을 열었다. 3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싸늘한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밤하늘은 캄캄하기만 했지 달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베란다에서 나온 나는 담배꽁초를 변기에 버린 후 현관문을 열었다.


재건축 심사 중인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목을 빼고 서쪽 하늘을 쳐다봤지만, 역시 달은 보이지 않았다.


“에휴”


불길한 징조라는데 봐서 뭐하겠냐는 생각에 집에 들어가려는 찰나.

보이지 않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은 아주 커다란 모습이었다.

슈퍼문, 그것도 아주 엄청나게 붉은 달 그 자체였다.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참 신비하면서도 뭔가 불길한 느낌이다.


그때 복도에 누군가 걸어왔다.

헬멧을 쓴 채 반투명한 봉지를 든 그를 보던 나는 다시 달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고소한 후라이드 치킨 향이 나를 스쳐 가던 순간.

왼쪽 옆구리가 따끔하더니 뜨거워졌다.

치킨 배달부가 뜬금없이 나를 찔렀다.


“뭐? 아악!”


내 옆구리가 난도질당하고 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하는 거지?

나는 그저 저항한답시고 배달부의 팔을 붙잡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놈은 내 저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짓을 계속했다.


“그, 그만···.”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흐르던 순간, 배달부는 하던 짓을 멈추고 칼을 바닥에 떨궜다.


“영원···.”

“······!?”

“영원을 버린 죄···.”

“그··· 그걸 어떻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던 순간.

헬멧을 쓴 놈은 그대로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꼭대기 층인 15층에서 뛰어내리다니.


쿵!


놈이 추락한 듯 묵직한 소리가 고요하던 아파트 단지에 울렸다. 추락한 인간의 최후를 확인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붉게 물든 달을 쳐다보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영원을 버린 죄··· 라고···?”


지혈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던 나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불길한 거 알고 있었잖아?’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내 캄캄한 어둠 속을 기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 좁은 터널을 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먼발치에 빛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마 저곳이 사후세계인 나락일 것이다.

천국과 지옥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그냥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한참을 빛을 향해 기어가던 그때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았다.

겨우 출구를 찾았는데 왔던 곳으로 누군가 잡아당기고 있다.

먼발치에 보이던 빛이 점점 멀어지고, 다시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 그런데 아무 의미 없이 오직 출구를 향하던 나는···.

대체 왜 웃고 있는 거지?



EP 1. 과거와 현재



“어쭈, 이게 처자고 있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공백. 일어나 이 새끼야!”


죽었다고 생각한 나를 누군가 흔들어 깨우고 있다.


“일어나라고!”


내가 눈을 비비며 깨어나자 어디서 본 거 같은 한 인간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 인간 어디서 봤더라’라는 의문도 잠시. 배 나오고 찐따 같은 녀석이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야···.”

“믹싱 다 해놓고 자냐?”

“뭐? 믹싱?”

“뭐···? 나 참 기가 막혀서.”


이 인간은 내 반응에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안경을 벗더니 소매를 걷었다.

이제 생각났다. 이 인간은 예전에 일했던 휴암 스튜디오 팀장이었다.


“너 이 새끼 오늘 뒈졌다.”

“혀··· 형님 말로 합시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놈의 두툼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형님? 이 새끼가 오늘 제대로 미쳤네?”

“아니, 팀장님!”

“공백, 너는 새끼야. 말로 하면 안 돼.”


무자비한 폭력.

그렇다. 나는 한때 맞으면서 일했다.

이제 이 인간 이름이 생각났다.

김영수 팀장.


“아쭈, 카바를 쳐? 손 안 내려?”

“말로 하세요. 제발!”

“좆까는 소리 하네!”


주먹을 막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꿈이라면 대체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확 들이받아 버려?’라는 생각도 잠시.

김영수 팀장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안경을 썼다.


“내일 저녁까지 3.1까지 완료해놔! 알았어?”

“······.”

“이 씨발 놈이?”

“네! 알겠습니다!”


김영수는 씩씩대며 방을 나갔다.

어리둥절한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주위를 둘러봤다.

작은 방엔 모니터와 함께 오디오 믹서와 다수의 조를 이룬 모니터 스피커가 보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이곳은 틀림없이 내가 믹싱 엔지니어로 일할 때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탁상달력에는 놀랍게도 2015년 9월이 펼쳐져 있었다.


“2015년!?”


나는 급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분명 한참 과거에 썼었던 원피스 루피 케이스가 씌워진 구형 핸드폰이었다.


[2015년 9월 28일 MON]


‘대체 뭐야?’


항소심 재판이 24일이었으니 오늘은 틀림없이 2024년 3월 25일이었다.

나는 레드문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아파트 복도를 나섰고, 붉게 물든 달을 보던 중 헬멧을 쓴 정체 모를 녀석에게 급습당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2015년 9월 28일이지? 이런 일은 보통 영화에서나 일어나지 않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냥 확 떠나서 절간이나 산에 가서 자연인으로 살아버릴까 하는. 그러나 그런 것은 현실과 타협한 생각이고, 제대로 된 망상은 이런 거다.

다시 새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것 말이다.


꿈이라면 답은 단순하다.

꿈인 걸 인지하고 눈을 뜨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 역시 꿈이었구나’라며 안심하겠지.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망상이란 말인데···.


그때 코에서 뭔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피!?”


떠올랐다.

이 시절의 나는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퇴근이 늦어지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작업실에서 자는 일도 다반사였다.

특히 음향 관련 일은 열정페이라는 명목하에 혹사당하는 게 당연시됐다.

웃긴 건 나도 당시에 이런 근무환경에 큰 불만이 없었다는 것이다.

배우고 학습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불합리함을 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물론 맞는 거는 진짜 싫었지만···.


코피를 닦으며 확신이 들었다. 이것은 꿈도 망상도 아닌 현실이라고.

아니, 현실이 아닌 꿈이라도 상관없다.

그야말로 재미있는 상황이다.

내가 살았던 과거를 아니, 미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게임 체인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곧장 믹싱하던 자료가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랑컴퍼니의 ‘파이브 스틸러’라는 아이돌 데뷔 싱글 앨범이었다.

당연히 이 시절에는 몰랐다. 이 그랑컴퍼니가 날 제대로 망가트릴 줄은.

믹싱한 자료를 모니터한 결과는 버전 1.0부터 2.9까지 있다. 팀장은 내일까지 3.1까지 완료하라고 지시한 상태.


‘세븐 스틸러’라는 이 아이돌의 미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싱글 앨범 발매 후 정규 1집도 발표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장된 녀석들.

멤버 중 단 한 명 ‘문호’라는 아이만 연기자로 전향해 크게 성공했다.


“으흐흐”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났다.

애초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했다.

이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인생의 쓴맛을 좀 더 일찍 보여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김영수 팀장은 제대로 된 참교육이 필요하다.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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