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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9,447
추천수 :
677
글자수 :
3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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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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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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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EP 3. 호구엔터

DUMMY

굳이 티는 내지 않았지만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나만의 집과 스튜디오가 생겼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뭐가 그리 좋으니?”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넌지시 물었다.


“그냥 엄마랑 카페와서요.”

“뜬금없이 연락 와서 걱정했잖아.”

“걱정 마세요. 사실은 저 스튜디오 옮길 거 같아요.”

“그래? 좋은 곳이니?”

“당연하죠. 헤헤”


엄마는 다행이라며 기뻐하셨다.

아들이 상가를 사들였고 법인을 3개나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아직은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아직 사실을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엄마가 그 사실을 못 받아들일 거 같았다.


“열심히 해. 꾸준히 한 우물만 파야지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그래야죠. 명심할게요.”

“엄마 이제 가봐야 해. 이번 설에는 꼭 집에 와. 알았지?”

“네, 엄마 운전 조심하세요.”

“그래.”


엄마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나는 ‘블랭크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등록했다.

오롯이 내 개인 단독명의로 법인을 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테라스로 나왔다.

나는 테라스에서 보이는 전경을 눈에 담았다.

어젯밤부터 오전까지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도로를 제외하고 고층 빌딩과 건물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꺄, 하지 마.”

“악! 배효빈, 너 죽어!”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영원과 선우현, 배효빈은 앞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내게는 무엇보다 즐거운 것이 있었다.

바로 아랫집에 영원이 살고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점에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누군가 테라스 문을 열었다.


“형, 오늘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응? 뭐···.”


나는 문호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 녀석이 제일 문제다.

내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있다.


“문호 왔어?”

“정도 형, 안녕히 주무셨어요?”


마정도까지 테라스로 나왔다.

어느새 2월이 되었다.

문호를 만난 지 한 달 가까이 되어간다.

이대로 이 녀석을 더는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춥다. 들어가자.”

“저는 애들 노는 거 좀 보고 싶은데.”

“지랄하지 말고 들어와.”


나는 두 녀석을 데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문호야. 형이 누누이 말했잖아. 형은 너랑 계약할 생각 없어.”

“저도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호구엔터랑 계약하고 싶다고요.”

“너는 크게 될 놈이야.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형!? 저는 형이 왜 제 말을 이해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미치겠네.”


내가 아예 이 녀석을 몰랐다면 진념과 끈기에 감탄해 벌써 계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호는 크게 성장할 인물이다.

DJ 비니, 배효빈처럼 엄청난 커리어를 보여줄 인물이란 말이다.


내가 문호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녀석이 계획한 그림은 고작 유튜브를 통한 콩트였다.

나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입지를 굳히던 녀석이 나랑 계약하자니.

더불어 유럽의 각종 명품 브랜드의 협찬과 후원을 받는 녀석이 고작 콩트라니.


‘그건 코미디언이잖아?’


이 녀석이 복덩이인 걸 잘 알지만 절대 곱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욕심과는 별개로 이 녀석은 우리가 관리할 그릇에 담을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데 소개해줄 테니까, 우리 인제 그만 보자.”

“공백 형!? 흐엉!”

“울먹이는 척 그만해. 소름 끼치니까.”


나는 이 녀석이 이럴 때마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극장 스크린이나 티비가 아닌 대배우의 라이브 연기는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히잉···. 호우형. 공백형 진짜 설득 좀 해주세요.”

“······.”


박호우는 말없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정도형은 저 반대 안 하시잖아요?”

“솔직히 나도 네가 좀 질린다. 잘생긴 놈은 공백 하나면 족해.”

“정도형까지···. 진짜 다들 너무하십니다! 저 진짜 잘할 수 있다고요!”

“아휴, 저 감질나는 연기.”

“연기라뇨!?”


문호는 마정도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실망한 듯한 그를 보며 나도 묻고 싶었다.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호야···. 왜 형 말을 이해 못 해? 우리는 인디밴드 음반 회사야.”

“형! 형은 왜 제가 말한 기획에 동의를 못 하세요?”

“미쳤냐? 너처럼 잘 생긴 놈이 무슨 콩트야?”

“진짜 잘 할 수 있다고요!”


문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배우였어도 나를 속일 순 없다. 그의 표정에는 정말로 간절한 절박함이 느껴졌다.


“너 선우현 때문에 우리랑 계약하려고 하는 거지?”

“네! 아니, 아니에요! 절대 네버!”


문호는 절대 아니라는 듯 소리쳤다.


“그냥 형이 현이한테 말해줄게. 네가 정말 사랑한다고.”

“형! 제발요! 그러지 말아 주세요.”

“내가 제발이다! 그냥 제발 꺼져. 너는 우리 같은 잔바리랑 놀 레벨이 아니야!?”

“형···? 형이 왜 잔바리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문호는 내게 급기야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박호우가 입을 열었다.


“문호 그냥 우리가 영입하자.”

“호우야!? 너 내 말 귓등으로 들었어?”

“아니? 근데 당사자가 저렇게 원하잖아?”

“···그래도. 내가 말했잖아···.”

“문호, 그만 일어나.”

“형···?”


박호우는 무릎을 꿇고 있는 문호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박호우에게 분명히 말했다.

우리가 호구엔터로 법인을 설립하긴 했지만, 목표는 음반 기획이라고.

문호는 절대 우리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고.


물론 문호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유튜브를 통한 콩트는 틀림없이 먹힌다.

그것도 이렇게 잘생긴 인간이 한다면.


“문호야! 내가 된다고 했지?”

“정도 형!”


우리 말을 들은 마정도는 문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문호! 우리 식구 된 걸 환영한다!”

“형···. 저 너무 좋아요.”


나는 인상을 구기며 박호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결심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마침 이지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그를 스튜디오로 영입할 계획이었는데 잘 됐다.


“네, 지후 팀장님.”

-어, 공백아. 잘 지내?”

“뭐, 그냥 그렇죠. 안 그래도 전화 한번 드리려고 했어요.”

-그래? 근데 음, 이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전화했는데···.

“뭔데요? 말씀하세요.”

-휴암 스튜디오 폐업한단다.

“네!?”



***



애초 4주로 약속했지만, 스튜디오 공사는 지체되었다.

인테리어 대표는 내게 구정이 지나서야 공사가 마무리 될 거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지하 라이브클럽은 약속했던 대로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됐다.


공사 중인 스튜디오 입구에서 영원은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봤다.


“영원아, 부탁할게.”

“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그러지 말고 아저씨 한 번만 봐 주면 안 돼?”

“싫어요.”


나는 입이 툭 튀어나온 영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아저씨 한 번만 봐주라.”

“싫어요. 아저씨는 효빈이랑 믹싱이나 하세요.”

“어휴, 그럼 스테이크 사줄까?”

“헤에, 스테키?”


그제야 영원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곡으로 하나만 부탁해. 응?”

“하지만···. 제가 어떻게 발라드 노래를 작곡해요?”

“넌 할 수 있어.”

“그럼··· 스테이크 먹으러 저랑 아저씨만 가면 안 돼요?”

“그래! 그러지 뭐.”


나는 겨우 설득당한 영원을 데리고 스테이크집에 들렀다.

영원은 스테이크를 썰어 한입에 넣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와인도 시켜줄까?”

“와인이요?”

“그래. 한잔해.”

“아··· 그럼 한 잔만?”


나는 와인을 주문했고 영원은 만찬을 즐겼다. 그녀는 무려 스테이크 3접시와 와인 두 잔을 비웠다.

나는 그녀의 배를 불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연상의 여인을 울리는 선율?”

“응.”

“잔잔한 발라드로?”

“그래그래!”

“음···.”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녀는 이내 냅킨에다 알 수 없는 음표를 적었다.


“너 화성학 공부했어?”

“재즈 화성학이요. 현이도 함께 공부했어요.”

“그렇구나. 역시 선우민 아저씨구나.”


선우현의 아버지 선우민은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만능 플레이어였다.

그는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색소폰까지 다양한 악기를 다뤘다. 하지만 의외로 성격 좋아 보이던 선우민은 외골수 성향으로 사람을 상당히 가린다고 했다.

즉, 자기가 싫으면 레슨을 하지 않는 똥배짱(?)을 부린다고 했다.


“그래서 네 연주가 필이 충만했구나. 어쩐지 그 뭐지? 블루토니? 아무튼, 그런 걸 많이 쓴다 했어.”

“블루노트요.”

“아, 아무튼. 하하하핫!”

“좀 작게 웃으세요. 맨날 저렇게 웃어···.”


영원은 나를 보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60도 안 되던 작은 키는 어느새 훌쩍 자랐고 분위기도 묘하게 달라졌다.

내 앞에 있는 그녀는 더는 내가 알던 영원이 아니었다.


“왜요?”

“너··· 혹시 살찌지 않았니?”

“헛?”

“살이 좀 많이 쪘지?”

“아저씨!”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는 성숙해져 있었다.


“저 45킬로밖에 안 나간다고요!”

“농담이야 농담.”

“농담 아니고 진담인 표정인데?”

“아니야. 너무 보기 좋아. 진심으로”


나지안이 변신한 것처럼 영원도 많이 달라졌다. 주근깨 가득하던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이 맑아지고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무엇보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씩씩해졌다.


“딴딴따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비 오 트에, 로벤 하임 따다 다라.”


나는 음율을 잡는 그녀를 쳐다봤다.


“따단딴! 따다다다다··· 따당! 띠디딩? 냐르떼 베숑.”


나는 눈알을 굴려 우리를 쳐다보는 손님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마치 ‘저 인간들 뭐 하는 짓이야?’라는 표정이었다.


“음··· 영원아. 이제 다 먹었으니 우리 집에 가서 작곡하자.”

“예?”


영원은 나를 보며 입이 툭 튀어나왔다.


“아저씨! 설마 제가 부끄러우세요?”

“아니!? 하나도 안 부끄러운데? 하하핫!”

“칫··· 표정이 완전···. 암튼 미워요!”

“미안, 그럼 계속해. 떠오를 때 해야지.”


솔직히 부끄러웠다.

작곡가들은 모두 이런 식인 걸까?

영원은 다시 손가락을 허공에 휘저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흥얼거렸다.


문호는 호구엔터와 정식으로 계약했다.

나는 그에게 파격적인 7:3 조건을 내걸었고, 당연히 박호우도 동의했다.

보통 5:5 계약이 정석이지만 미래의 톱스타에게 7을 주는 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박호우는 마정도를 캐스팅해 문호와 콩트를 찍었다. 프리뷰를 본 감상평을 솔직히 하자면 하나도 재미없다.

그렇지만 모두 문호와 똘똘 뭉쳐 콩트에 진심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문호를 위해 다른 계획을 세웠다.

바로 싱글앨범을 먼저 발표하는 것.


‘노래도 곧 잘하니까, 싱글앨범부터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문호가 콩트를 찍던 말던 관계없이 나는 나만의 프로모션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



“오랜만입니다.”

“공백 씨···? 맞아요?”

“오빠, 완전 다른 사람 같아요.”


나는 만복성 빌딩 근처 카페에서 휴암 스튜디오 식구를 만났다.

이유주 실장과 이민경 엔지니어는 나를 보며 낯설어했다.


“아, 아무 생각 없어서 요즘 머리도 안 잘랐네. 많이 이상해?”

“아니요. 분위기··· 분위기가 완전 다른 사람 같아요.”

“그··· 그래?”

“예, 오빠 원래 저한테 존대하셨잖아요.”

“그랬나? 미안···. 이왕 말 튼 거 그냥 말 놓을게.”


이민경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근데 공백 씨,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는지?”

“그래요, 오빠. 연락 한번 없다가···.”

“지후 실장, 아니 팀장님 오시면 말하죠.”


이들을 만나는 건 나도 예정에 없었다.

계획대로면 내가 스튜디오를 차리고 이지후만 스카웃 할 생각이었다.


‘나 때문에 또 역사가 바꼈어.’


휴암 스튜디오 사장님은 폐업을 선언했다.

예정대로면 그랑컴퍼니 자회사로 편입되는 게 정상인데 모든 게 어그러졌다.

아마 김영수가 내게 모욕을 당하고 그만뒀기 때문인 거 같았다.


‘원래 그랑컴퍼니에 인수되면서 지후 실장이 나를 스카웃하는 건데···.’


말 그대로 반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유주와 이민경까지 스카웃 할 계획이다.

애초에 휴암 스튜디오 사장은 음향 관계자도 아니었다. 그저 김영수 팀장 하나만 믿고 사업을 꾸린 인간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환기시설도 꾸리지 않은 채 지하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것이다.


어쨌든 나로 인해 휴암 스튜디오는 명맥이 끊기게 됐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 다시 손발을 맞추는 것보다 아는 사람이 편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문제지만.


“다들 기다렸지? 주차할 곳이 없어서 빙빙 돌았네.”


마침 이지후가 카페에 도착했다.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내 옆에 앉았다.


“공백이 전에 나한테 금세 보게 될 거라고 말하더니 일이 또 이렇게 되네. 하하.”

“지후 팀장···. 대체 무슨 말이에요?”

“팀장님이랑 공백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이유주와 이민경은 나와 이지후를 번갈아 쳐다봤다.


“백아, 그냥 네가 말해.”

“그럴게요 형.”


내가 이지후를 형이라고 부르자 두 여자는 아연해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바로 말씀드릴게요. 두 분도 저랑 함께 일하시죠.”

“예?”

“이유주 실장, 이민경, 두 분을 제 스튜디오에 영입하겠습니다.”

“예!? 제 스튜디오라고요?”


두 사람은 내가 말한 스튜디오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그대로 굳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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