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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혹은 망상가

2회차 사운드 엔지니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남궁건
작품등록일 :
2023.08.03 04:12
최근연재일 :
2023.10.15 12:25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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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37
추천수 :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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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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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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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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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20쪽

EP 2. 영원밴드

DUMMY

‘최근 국내에서 성공한 락 밴드?’


대한민국은 밴드 음악의 불모지다.

2015년은 한류가 태동하던 시기다.

조금만 지나면 한류 붐이 일어나며 전 세계는 K-POP에 열광한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해외에 진출하고 빌보드까지 석권하는 쾌거를 이룬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한류 콘텐츠가 사랑받고 대한민국을 공부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이 찾게 된다.

90년대 일본 문화가 개방되고 그에 열광하던 대한민국은 어느새 J-POP을 넘어섰다고 자화자찬했다.

실제로 그랬다.

과거 국내 아이돌 그룹이 일본 오리콘차트에 진입만 해도 언론은 난리가 났었다.

그게 바이럴 이든 말든 언론은 어떻게든 그런 사실을 띄웠다.

그런데 빌보드 차트 진입도 모자라 몇 번이나 1위를 하는 꿈만 같은 일이 벌어지고 오히려 일본에서 K-POP에 열광하는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음을 넘어 추월하는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일본에 열등감을 드러내는 게 바로 싱어송라이터와 밴드 문화였다.

스스로 곡을 만들고 노래하며 연주한다.

일본은 싱어송라이터와 밴드에 상당한 존경을 표하며 엄청난 팬덤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오리콘차트 100에 아이돌이 아닌 싱어송라이터와 밴드의 비율이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차트에는 방송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밴드도 있다.

대체 일본의 기획사는 밴드에 어떤 프로모션을 하길래 이렇게 팬덤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너무 궁금해 몇 번이나 일본을 방문했고, 공연을 관람했었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보컬과 연주력도 그저 그런 밴드인데 우리나라보다 2-3배 비싼 CD를 구입하고 100명도 못 들어가는 소극장에 비싼 공연료를 지불하는 일본의 팬덤문화를 보고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장르도 너무 다양해서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일본은 박호우 같은 씹덕들이 많은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밴드의 현실은 이렇다.


‘그걸 왜 해요?’

‘머리는 왜 길러요?’

‘구려요.’

‘밥은 먹고 살아요?’


간략하게 이정도 설명으로 끝이다.

깊이 파고들면 절망스럽기 때문이다.


차지연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랑컴퍼니는 지금은 떠오르는 신생 기획사지만 훗날 엄청나게 성장한다.

뮤지션, 아이돌, 배우, 희극인, 심지어 자체 프로덕션까지 진행하는 이 회사는 거대 엔터기업으로 성장한다.

이 회사에서 밴드를 섭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리 만무하다. 물론 영원밴드의 멤버들의 연주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저 보컬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순수한 ‘여성밴드’라는 걸 내 세워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연주력 따위는 세션으로 때울 수 있다.’


불확실성에 모험을 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밴드가 성장하는 과정 따위 상관없이 오직 빠르게 상업화해서 성공할 수 있는 모델.


‘독특하고 안정된 보컬과 작곡 능력을 보유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지금 차지연이 이 축제에 방문한 목적이 영원 때문이라면, 그녀는 자기 역할에 충실한 선택을 한 것이고 결론적으로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영원은 단독으로 픽업됐고, 그랑컴퍼니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날 내가 노가다를 하러 가지 않았더라면 영원이 말한 영혼의 단짝 선우현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영원이 멤버를 버리면서 혼자 계약에 응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 그녀를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지연의 선택은 근본적으로 밴드라는 문화를 전혀 이해 못 한 발상이다.


‘밴드는 하나다.’


프론트맨이나 리더를 중심으로 뭉친 하나의 집단이 밴드다.

기량이 부족한 멤버가 해고당하거나 개인적인 이득으로 돌출행동을 해도 엄청난 파급력을 미친다.


만약 이대로 영원 혼자 계약이 성사돼 밴드가 해체되면 나지안은 성공한 작사가이자 라디오 진행자로 성공하고, 배효빈은 싸이트랜스 아티스트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지만, 마약에 찌들고, 영원도 엄청난 인지도와 인기를 얻지만 결국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한다.

선우현은 내 기억 속에 없다.


영원이 나와 연인관계가 됐던 시점부터 그녀의 정신은 이미 온전하지 않았다.

가장 답답한 것이 그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내게 풀어준 적이 없었다.


“야, 드럼 처진다.”

“힘들어 보이네.”


마정도와 박호우의 말을 들은 나는 선우현을 쳐다봤다.


“연달아 네 곡이야. 지칠 만도 하지.”


마정도의 말처럼 선우현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안정적인 드럼 연주로 중심을 잡던 그녀의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달리는 사운드에 투베이스 트윈페달을 밟던 그녀는 급기야 허리가 꺾여버렸다.


‘안돼! 어떻게든 버텨!’


나도 모르게 선우현을 응원했다.

드럼이든 베이스든 둘 중 하나만 망가져도 밴드의 사운드는 끝장난다.


그렇게 조마조마하던 순간.

선우현이 마주 보며 연주하던 나지안의 무엇에 반응했는지 밝게 웃으며 페이스를 끓어 올렸다.


‘갑자기?’


선우현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렇게 곡을 끝마쳤다.


“끝까지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앵콜곡을 마무리한 영원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동이제는 끝났다.



***



영원에 대한 사심을 제외하더라도 이들의 공연은 훌륭했다.

자잘한 실수가 있었지만, 라이브 콘서트에서 완벽한 연주는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적인 밴드도 보컬과 기타의 삑사리는 귀여운 애교 수준이니까.


칭찬만 해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특히 마지막 앵콜곡은 미완성이었지만, 구성부터 연주까지 모든 것이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이 밴드의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 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는 스스로 악역을 자처해야 한다.


“아저씨? 히히.”

“웃지 마.”

“왜용?”


축제를 무사히 마친 영원은 내 눈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나는 영원을 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밴드의 문제를 말하기가 꺼려졌다.


“오빠, 왜 안 드세요?”


옆에 앉은 배효빈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우린 뒤풀이를 위해 양곱창집에 왔다.

정작 나는 곱창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영원과 선우현이 양곱창을 먹고 싶다고 했기 대문이다.

하필 오크로드는 공연이 있다며 후일을 기약했다. 그들이 있었다면 이 핑크색으로 염색한 기집애를 어떻게든 떼어놓을 텐데.


“그냥 놔둬. 공백이 곱창 못 먹어.”

“어머, 그런 게 어딨어요? 먹어봐요. 얼마나 고소한데···.”


배효빈은 잘 구워진 양곱창을 집어 마늘장에 찍은 후 내 입에 갖다 댔다.


“아아, 먹어봐요. 얼른!”


순간 여자고 뭐고, 한대 칠 뻔했다.

짜증 섞인 내 표정을 보던 그녀는 결국 자기 입에 곱창을 넣었다.


“극혐하는 모습도 졸귀···. 오빠? 집에 라면 있죠?”

“닥치고 너 절로 가.”

“아, 싫어어어!”

“가라고 핑뚝아!”

“싫다고요.”


나는 배효빈의 얼굴을 밀어냈으나 막무가내로 버텼다.


내 맞은편에는 나지안과 선우현, 영원.

우리는 박호우, 마정도와 내가 마주 보고 있다.

맞은편의 영원이 있는데 왜 배효빈이 내 옆에 찰싹 달라붙게 된 것일까.


“효빈아, 조심해. 엔지니어님 변태니까.”

“맞아. 완전 나빠.”


선우현과 영원은 나와 배효빈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우리 오빠가 왜 변태야?”

“저 아저씨, 아니 엔지니어님이 영원이 가슴 슴만튀했어. 완전 변태야.”

“왜 아저씨보고 우리 오빠라 그래?”


배효빈의 말에 영원이 발끈했다.

그러나 배효빈은 그저 깔깔 웃었다.


“오빠, 내 가슴 만져 볼래요? 원이하고 비교도 안 돼요. 만져봐요, 얼른?”

“너 진짜 뒤진다?”

“히힛, 이모! 여기 삼겹살 1인분만 안 될까요? 부탁드릴게요!”


배효빈은 삼겹살을 주문했다.

아무래도 나를 배려한 거 같았다.


“어쨌든 굉장했어.”

“맞아. 솔직히 이정도 레벨일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박호우와 마정도는 아이들을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적당히 유행가나 연주할 거라는 우리의 예상을 영원밴드는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오리지널 곡도 좋았어.”

“그래, 누가 작곡한 거야?”

“어떻게 그런 곡을 만들었어? 응!?”


이어지는 박호우와 마정도의 물음에 영원과 아이들은 몸들 바를 몰라했다.


“영원이요.”


나지안의 대답에 두 녀석의 시선이 영원에게 쏠렸다.

영원은 시선을 의식한 듯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헤헤, 괜찮으셨나요?”

“진짜 좋았어! 근데 너무 짧았어.”

“맞아.”

“그게··· 어떡하다 보니 뚝딱 만들어진 노래라서요.”


박호우는 영원을 보며 웃음꽃이 피었다.


“근데 너 화장하니 다른 사람 같아.”

“아··· 화장 안 하면 별로란 말씀이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장점이야.”


대화가 이어지던 중 내가 끼어들었다.


“Fallen angel 가사 누가 쓴 거야?”


나는 당연히 가사를 나지안이 썼을 거라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 상태였다.

대화에 낀 이유는 두 녀석이 영원에게 관심 보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제가 썼어요.”


나지안은 예상대로 웃으며 손을 들었다.


“좋은 가사였어. 내용도 심플하고. 근데 왜 영어로 쓴 거지?”

“아, 그건 원이가 너무 유치하다고 영어로 하자고 해서···.”

“헙!?”


영원은 마치 자신이 잘못이라도 저지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다시 나지안을 아래위로 훑었다.


“가사 다시 한글로 만들어. 영어 가사랑 일치 안 해도 돼.”

“아예···. 그러겠습니당.”

“근데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옷은 뭐지?”


내 물음에 나지안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이건. 사실은 말이죠.”

“말해봐. 너도 씹덕이지?”


옆에 있던 배효빈이 내 팔을 붙잡았다.


“오빠? 그러지 마!”

“나 알고 있어! 토키사키 쿠루미잖아!”


때마침 박호우가 자신은 잘 알고 있다는 듯 끼어들었다.


“쿠루미를 아세요?”

“잘 알지. 데이트 어 라이브잖아!”


두 사람의 말을 듣던 나는 하필 마정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녀석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장님! 여기 소주랑 맥주 좀 주세요!”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마정도가 시동이 걸렸는지 술을 주문했다.


“나 쟤한테 할 말 있으니 자리 좀 바꿔.”


마정도는 박호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결국, 박호우와 선우현은 자리를 바꿨다.


“헤헤, 나도 쿠루미 킬러 좋아해.”

“정말요? 에디터님 저랑 마음이 맞네요?”

“의상 너무 좋아. 사진 좀 찍어도 될까?”

“부··· 부끄러운데···.”

“제발, 응? 나만 볼게.”

“에디터님만 보기에요···.”


박호우는 나지안과 씹덕다운 대화를 나누며 사진을 찍어댔다.

마정도도 선우현과 드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일단 네가 나보다 드럼을 잘 치는 거 같아.”

“에이, 말도 안 돼요.”

“근데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스냅을 좀 더 쓰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투 베이스 달릴 때 허리 숙이는 것도 좀 안 좋은 버릇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연주할 때 표정이 너무 진지해.”

“원이한테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선우현은 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 듯 마정도를 쳐다봤다.


“오빠는 연주할 때 슈즈 신으세요? 전 맨발로 하거든요.”

“맨발은 안돼. 무릎 나가거든. 난 나이키 와플레이서 신는데 호우 보고 사달라고 할까?”

“아··· 그건 좀···.”


마치 소개팅에 온 것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녀석들을 보며 짜증이 솟구쳤다.


“오빠, 삼겹살 드셔보세요. 아-.”


마침 배효빈이 내게 잘 구운 삼겹살을 입에 가져다 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제비새끼 마냥 입을 벌려 삼겹살을 받아먹었다.


“히히, 우리 오빠 삼겹살은 잘 먹네?”

“헐···?”


삼겹살을 씹던 나는 오른쪽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영원을 쳐다봤다. 모두 짝을 이루고 있는데 내 건너편에 있는 그녀만 혼자였다.

하지만 영원은 배가 고팠는지 양곱창에 비빈 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효빈아, 나 김치말이 국수 먹을래.”

“이모! 여기 김치말이 국수 곱빼기랑 맥주 하나만 주실래요!?”


영원의 말을 들은 배효빈은 씩씩하게 잘도 주문했다.


“원아, 나도 조금만 줘. 히히”

“그래!”

“야, 고삐리가 무슨 맥주야?”

“저 학생 아닌데요?”

“에휴···.”


이내 맥주가 먼저 나오자 나는 굳이 배효빈을 말리지 않았다. 이 즐거운 분위기를 굳이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효빈아, 백이는 절대 술 주지마.”

“왜요?”

“저 새끼 완전 알콜 쓰레기야. 맥주 한 잔만 해도 그냥 기절이거든.”

“오홍?”


박호우와 마정도는 배효빈에게 내게 술을 먹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두 환장의 콤비와 영원밴드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릿속으로 정리했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오빠, 또 드세요. 아- 해요.”

“됐어. 나도 손 있어.”


나는 배효빈이 또 삼겹살을 입에 가져다 대는 걸 거부했다.


“너 왜 내가 꽃다발 받을 때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어? 말해봐.”

“아, 그거? 오빠는 내껀데 왠지 다들 공유하는 거 같아서 기분 나빴어요.”


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꿈 깨. 나 절대 니꺼 될 생각 없으니까.”

“흥,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죠?”


이내 김치말이 국수가 나오자 영원과 배효빈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영원밴드 멤버는 사이가 좋아 보였다.

나는 밴드 멤버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그저 뒤에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영원과 만나서 이러고 있는 건지.

처음에는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이제 다행히 조금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사람의 인생은 순간의 선택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된다.

나는 이들의 인생을 바꾸려 하고 있고 그 미래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두렵다.


‘영원.’


그저 이 아이가 행복했으면.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금세 국수를 다 비운 영원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잠시 다른 생각 했어.”

“그래요?”

“오늘 공연 정말 좋았어. 기타 연주도 보컬도 너무 훌륭했고.”

“···다른 하실 말씀은 없으세요?”


영원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응시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던 나는 순간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고··· 곡을 좀 가볍게 써도 될 거 같아. 첫 번째 오리지널 곡처럼···.”

“더 하실 말씀은요?”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영원의 진지한 눈빛에 숨이 막혀왔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없어! 무슨 말이 듣고 싶은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앞에 보이는 맥주를 비우고 가게를 나섰다.


“저 새끼, 왜 소릴 질러?”

“백이, 갑자기 왜 저래···?”


마정도와 박호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그때 배효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 났어요!”

“왜?”

“공백 오빠··· 제가 말아 놓은 소맥 마시고 나갔어요!”

“뭐!?”



***



“카로미오 벤, 크레디미 알멘”


마치 어린 여자가 부르는 동요처럼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센차디테-, 랑- 귀 세일르코-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가곡, 까로미오벤?


꿈인 줄 알았으나 분명히 내가 무릎을 베고 있는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로미오 벤, 센차디테- 랑귀- 셰일코-르.”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앗, 깨셨어요?”


노래를 부르던 아이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응···?”

“이제 괜찮으세요?”

“영원!?”


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와 떨어져 앉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아저씨, 아니 엔지니어님··· 에디터님이랑 친구가 끌고 왔는데, 계속 내버려 두라고 소리 지르다가 잠드셔서.”

“그냥 아저씨라고 해.”

“예···. 아무튼 좀 자다가 깰 거라며 가게 들어가시길래, 혼자 두기 뭐해서 그냥 있었어요.”

“이렇게 얼마나 있었어?”

“한 시간 정도? 헤헤···.”


영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무리 알콜 쓰레기라도 맥주 한잔에 맛이 가버리다니.

그것도 하필 영원의 무릎에 누운 채, 이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한 시간이나 이렇게 있었어?”

“예···.”

“미안···.”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제법 쌀쌀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찬 바람에 정신이 들만도 한데, 이상하게 어지럽고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앉아 있던 영원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이제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놀아.”

“아뇨, 괜찮아요. 아저씨랑 있고 싶어요.”

“그러시던지···.”

“예···.”


다시 침묵이 이어지자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축제를 보러온 그랑컴퍼니의 차지연이 떠올랐다.


‘불길하다. 이대로 얘들을 놔두면 안 되는데··· 뭐라고 말하지?’


밴드가 깨지는 건 쉬운 일이다.

밴드 안에서도 다양한 정치가 존재한다.

실력, 성격, 외모 다양한 이유로 분쟁이 발생하고 멤버가 교체된다.


“넌 앞으로 어떡할 생각이지?”

“예?”

“영원밴드 말이야.”

“일단 프로가 목표긴 한데.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


영원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대로 두면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그랑컴퍼니와는 절대 계약하지 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네 이름을 걸고 만든 밴드야. 너는 거기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해.”

“책임감이요?”

“네가 흔들리면 밴드는 끝이야. 네가 없으면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거야.”

“리더는 현인데···.”

“밴드는 프론트맨이 좌지우지하는 거야.”

“예···.”

“그리고 밴드 멤버이기 이전에 친구잖아. 그렇지?”

“무슨 말씀인지 알 거 같습니다.”


영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도와줄게. 호우는 좋은 녀석이야. 절대로 너희한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짓은 안 할 거야. 네가 밴드로 프로를 노린다면 호우는 든든한 파트너가 돼 줄 거야.”

“파트너···.”

“그리고 나도 있잖아.”

“아저씨요?”

“사운드 엔지니어. 그중 나는 믹싱 엔지니어야. 믹싱 엔지니어가 하는 일이 뭔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사운드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거야. 부족한 부분은 살리고, 넘치는 부분은 죽여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거지. 난 너한테 사운드 뿐 아니라 삶의 밸런스도 잡아주고 싶어.”

“삶의 밸런스?”

“널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야.”


나는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각나는 대로 횡설수설 거렸다.

그런데 영원은 넋 나간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저씨···.”

“하하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난 갈 테니까 다음에 보자.”

“아저씨!”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았았다. 이내 휘청이던 순간 영원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가까스로 나를 안은 채 부들부들 떨며 버티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꺅!”


나는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영원도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쓰러졌다.


“영원아···.”

“아저씨?”


이대로 널 데리고 멀리 도망가고 싶다.

오키나와가 됐든 괌이 됐든,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섬, 아니면 어느 곳이라도.

설사 우리를 안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없다. 지금 우리는 평범한 일반인이니까.


“다시는 너 놓치지 않아.”

“예? 아저씨···?”

“우리 도망가자.”

“에에···?”


나는 영원을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마치 그 시절처럼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칠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며 동시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곱창집 안에서 배효빈이 나를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추가 수정하고 나니 글자 수가 2300자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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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10.05 348 10 16쪽
44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10.04 351 9 14쪽
43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10.03 372 8 16쪽
42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10.02 388 8 15쪽
41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10.01 414 8 14쪽
40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09.28 416 9 13쪽
39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1 23.09.27 425 9 15쪽
38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09.26 447 10 13쪽
37 EP 4. 서바이벌 오디션 국민밴드 23.09.25 502 10 13쪽
36 EP 3. 호구엔터 23.09.24 509 10 14쪽
35 EP 3. 호구엔터 23.09.23 506 8 14쪽
34 EP 3. 호구엔터 23.09.22 530 10 14쪽
33 EP 3. 호구엔터 23.09.21 552 9 17쪽
32 EP 3. 호구엔터 +2 23.09.20 580 9 13쪽
31 EP 3. 호구엔터 23.09.19 607 8 14쪽
30 EP 3. 호구엔터 23.09.18 586 9 15쪽
29 EP 3. 호구엔터 23.09.17 593 11 14쪽
28 EP 3. 호구엔터 23.09.16 597 8 16쪽
27 EP 3. 호구엔터 23.09.15 594 8 15쪽
26 EP 3. 호구엔터 23.09.14 606 10 16쪽
25 EP 3. 호구엔터 23.09.13 645 11 13쪽
24 EP 2. 영원밴드 23.09.12 620 10 13쪽
23 EP 2. 영원밴드 23.09.11 604 11 16쪽
22 EP 2. 영원밴드 23.09.10 608 13 13쪽
21 EP 2. 영원밴드 23.09.09 641 11 13쪽
20 EP 2. 영원밴드 23.09.08 675 9 14쪽
19 EP 2. 영원밴드 23.09.07 698 12 17쪽
» EP 2. 영원밴드 23.09.06 734 13 20쪽
17 EP 2. 영원밴드 23.09.05 747 11 14쪽
16 EP 2. 영원밴드 23.09.04 778 13 13쪽
15 EP 2. 영원밴드 23.09.03 853 13 15쪽
14 EP 2. 영원밴드 +1 23.09.02 958 15 15쪽
13 EP 1. 과거와 현재 +1 23.09.01 988 16 13쪽
12 EP 1. 과거와 현재 +1 23.08.31 975 19 14쪽
11 EP 1. 과거와 현재 +1 23.08.30 1,019 15 14쪽
10 EP 1. 과거와 현재 +1 23.08.29 1,110 16 13쪽
9 EP 1. 과거와 현재 +1 23.08.28 1,186 19 14쪽
8 EP 1. 과거와 현재 +2 23.08.27 1,263 21 14쪽
7 EP 1. 과거와 현재 +1 23.08.26 1,306 22 14쪽
6 EP 1. 과거와 현재 +1 23.08.25 1,424 17 15쪽
5 EP 1. 과거와 현재 +1 23.08.24 1,514 23 14쪽
4 EP 1. 과거와 현재 +1 23.08.23 1,582 27 14쪽
3 EP 1. 과거와 현재 +4 23.08.22 1,681 28 16쪽
2 EP 1. 과거와 현재 +2 23.08.22 1,824 27 15쪽
1 EP 1. 과거와 현재 +4 23.08.22 2,364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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