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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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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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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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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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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8쪽

358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6)

DUMMY

업성의 향방이 이상해졌다.


정확히는 업성에 들어선 흑산의 지도부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병력이라니?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 더러 자네들이 뚫린 구간까지 다 보호하라 이 말인가?”


“애초에 전력을 털어 공통된 목표를 위해 나아가자 벌인 합작이었으니, 미욱하나마 내게 이 이상의 전력은 없소. 그렇다고 예 남지 않는다면 공통의 목표를 이룰 수 없으니.......”


“하, 이 업성 다 점령한 이 마당에 어떻게든 남아서 더 많이 뜯으려고, 너무 속 보이지 않소?”


업성 점거라는 1차적인 목표는 거진 달성한 상황 속에 마치 모든 것이라도 이루어진 양, 자화자찬하는 이들의 분위기 속에 물을 끼얹은 것은 다름이 아닌 장연의 원군 요청이었다.


“속이 보인다라? 아닌 말로, 이러한 계획과 흑산의 합작이라는 유래 없는 결과를 이끌어낸 내게 그대들이 정녕 이러해도 되는지 의문이군.”


“크흠, 그거야 뭐.......”


“흥, 어차피 그쪽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어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을 수순 아닌가? 결국 이 모든 것은 순리대로의 흐름일지니, 우리 장우각 대두령께서 이 땅을 점거하실 운명인 게지.”


“뭐야? 감히 은혜도 모르는 잡것들이 이 판에 직접 끼워주니까 이제와 주제도 모르고, 거 노친네들끼리 너무 속 보이는 것 아닌가!”


“주제? 이 근본도 없는 도적 새끼 나부랭이가 진짜, 야! 너 어디 출신이야! 무슨 년에 흑산에 들어왔어? 어디 위아래도 없이, 젓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장연 밑에서 간부라고....., 쯧! 이래서 애송이들이 안 되는 게야. 임마, 우리가 적통이야! 우리가 정통! 니네는 아류, 잔가지! 어?”


그 와중에 장우각을 모시는 이들의 틱틱거림은 계속되었고 이에 참지 못한 장연 밑의 이들이 튀어나오면서 마찰이 극대화되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그만-!”


그래도 현 상황에 제일가는 위치에 자리한 장우각이 소뿔마냥 튀어나온 한쪽 머리뼈를 긁적이며 언성을 높이자 분위기는 짐짓 가라앉게 되었으나, 문제는 그 와중에 여전히 요지부동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장연이었으니, 그에 인상을 찌푸린 장우각이 단도직입적으로 장연을 향해 물었다.


“짠 게야?”


“.........!”


“말이 없으면 더 곤란하다는 것을 몰라?”


“지금 내 표정이 안 보이시오? 이젠 너무 늙어서 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이 얼굴도 안 보이시나 보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진 장연이었으나 별들과 불꽃이 자리한 하늘 아래 짙어지는 어둠과 그림자 덕택에 겨우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저, 저 장병종사 저 새끼가 지금 대두령한테........!”


“그만-!”


“그러는 나도 대두령인데? 장우각 대두령께선 제 수하 관리도 못하시오?”


“지금 돌아가는 상황 파악을 못하는 모양인데, 이 좋은 분위기 잡친 게 바로 자네야. 그것도 최고의 적기인데 이 따위 일이 벌어지면 뭐가 되었든 의심부터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니까 그 의심 어린 사고로 잘 판단해보란 말이요, 내 노림수가 뭔지. 그것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내 이전 같지도 않은 전력 중에, 그것도 내 새끼들 2만을 저 기주 놈들에게 헌납해서 내가 얻는 게 뭔지? 또 그저 내 병력이 없고, 근거지로의 정문이 뚫렸으니 우리 애들 어떻게든 보호해달라고 청하는 게, 대저 작금에 내가 무슨 노림수가 있어서 그러는지.”


그 와중에 어설픈 것들이 물고 늘어져 시간을 번 덕택에 굴러간 머리가 물고 늘어질 건덕지도 찾았겠다, 당장에 어설프게 조여오는 압박의 탈출구도 확인했겠다 되려 돌아가는 상황에 이점을 느낀 장양은 반격을 개시했다.


“기주 것들과 협력했을 수도 있지.”


“하! 기주? 하하하하하! 아, 그래서 그 기주의 이들은 뭐 병신이라 저들의 사는 터전의 중심이요, 이 하북의 주도인 업을 헌납한 게요? 고작해야 뭐, 2만의 흑산적 죽이겠다고 수십만 백성을 비롯한 수천, 수만의 족혈들이 사는 이 고결한 터전을 버리면서까지? 그게 저들의 이득인가? 진정으로 도적 2만 잡겠다고 쪽팔리게 이 땅의 근간인 호족이, 저 겁쟁이 사족들마냥 이 땅의 백성들과 도적들을 두려워해 몽진하고 도망치는 게 그게 정녕 계산이 맞다고 생각하오?”


“나를 치워내려는 것일 수도 있지, 홀로 흑산을 차지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 고로 이 모든 게 네놈의 계락일 수도 있지 않더냐?”


“허 참, 이제보니 정신병도 대단하시구려. 해서 내가 득세하면 그런 나는 뭐, 흑산적이 아니어서 앞으로도 저 기주를 침략하지 않겠다 약속이라도 하게 되는 건가? 해서 기주의 이들이 나를 도와준 건가? 설마, 그 의미 없을 종이 쪼가리 요식행위가 이뤄진다고 진정 내가 저 기주를 뜯어먹지 않겠소? 아닌 말로 당장에 내가 먹여 살려야 할 군입이 몇인데, 내 밑에 자리한 놈들이 몇인데, 해서 설령 내 장우각 대두령 그대를 제끼고 흑산의 모든 것을 차지한다고 한들 그 몸집이 더 불어나는데, 허면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당장에, 아니 앞으로도! 이 하북 땅에 제일 부유하고 드넓은 터전이요, 화수분의 식량과 재물이 나오는 기주를 털어먹지 않는다는 게, 그게 정녕 말이나 돼! 어? 그리고 저 기주의 똑똑하다는 이들이 고작해야 그 정도인가? 시간벌기도 모자라 둘로 분열된 흑산적이 하나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알면서도 나와 손을 잡고 그대를 담근다고? 그게 정녕 말이나 되느냔 말이야! 이 정신 나간 미친 작자야-!”


웅성웅성-


그리고 이러한 반격은 예상 외의 성과를 거둬들였다.


가뜩이나 둘로 분열된 이후 장연이나 장우각이나 크나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 장연이 먼저 큰 일감을 물어온 것도 그렇고, 그 와중에 과거의 원한을 잊고 함께 더 큰 일을 도모하자 흑산의 합작마저 일궈낸 상황 속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으니, 설령 그것이 처음에야 장연의 수상한 간청에서 벌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정작 그런 장연의 과거만 붙들고 늘어지는 모습에, 그것도 애초에 합리적인 의구심도 아닌 모습들에 되려 실망과 혼란을 느낀 두령들 사이에 여러 말들이 새어 나왔다.


“제법 준비를 많이 했구나. 허나........”


“그리 의구심이 많은 걸 보아하니 이제 나이가 들어 그 머리도 굵어지고 노회한 것도 알겠소, 근데 늙어도 너무 늙은 모양이요? 아직 노인장이 되려면 한참이 남았음에도 그 정신이 나가 노망이 드신 게지. 그러니까 업의 탈환이라는 이 기적적인 일을 벌였음에도, 하여 공통의 이득을 추구하였음에도 심지어 그 덕에 대한 감사함은 잊은 채, 이조차도 자신에 대한 위협이라 여기고 있으니, 그리 모든 것에 겁을 집어먹고 세상을 향한 걸음을 내딛지 못할 거면 그냥 그 대두령 자리 내게 넘겨줌이 어떻소?”


물론,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장우각이 다급히 이를 뒤집기 위해 말을 이으려 하였으나 이를 막아버릴 그 순발력은 장연이 더 빨랐다.


이미 제게 넘어온 분위기를 그냥 넘겨줄 이유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계속 저를 의심할 것이 뻔한 장우각이 더는 저를 걸고 넘어지지 못하도록, 아예 그런 자신을 걸고 넘어지는 것 자체가 노망이 난 행동으로 규정될 수 있도록, 더 이상 장우각에게는 기댈 미래가 없도록 보다 노골적인 힐난과 그에 반대되는 입지를 지닌 자신의 강점과 당위성을 홍보했다.


“다들 아실 게요. 이 판, 내가 준비한 것이라는 걸. 그래, 나도 아오. 우리는 분열되었었다는 걸. 설령 그게 내 욕심이든, 과거 평난중랑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다툼이든 본디 여러 소두령들이 모인 우리가 각축전을 벌이다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악감정이 생겨 서로 좋기만 할 수 없다는 걸. 허나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 여겼으니, 그 이유는 바로 이 난세가 진정 전국이 되었기 때문이요. 허울뿐인 전국이야, 그 전국에 대한 예고와 예언이야 실상 저 동탁과 포홍이 난을 일으킬 적부터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던 일이나 그럼에도 황제가 살아있고, 동한이 건재하다 못해 합종군이 창설된 이래 천하대전이라는 관동과 관서의 충돌이라는 동서의 대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엎치락뒤치락하는 정국에 진정한 전국은 오지 않는 듯 보였소. 그러나 그 끝이 어찌 되었소?”


그리고 그 당위성은 실로 그간의 흑산적의 이들이 잊고 있던, 그간의 세월 도적으로 살아온 이들이 단 한 번도 꾸지 못한 미래요, 이상이자, 꿈을 자극하는 것이었으니,


“임금의 목이 잘리고 백성이 들고 일어나 우리와 같은 도적이자 역적이 되었소. 기존의 질서에 반하고 체제에 반하며 나라에 반하고 계급에 반하며 자신들을 위하지 않는 세상에 반하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본디, 그러한 역천의 명을 타고난 이들이니, 애초에 우리는 이 그릇된 세상에 내쳐지고 그에 상처를 입어 그 세상을 상처 입히겠다 이 산에 들어와 스스로 이 세상을 뒤엎을 난적이 되겠다 선언한 이들이올시다! 고로 우리는 이제 우리들의 세상을 향해 진정으로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있소! 일찍이 우리가 힘을 가졌을 때, 우리는 한 왕조의 지배 속에서 우리의 독자적 영역을 다스리는 자치권을 부여받은 평난중랑장이 되었고, 그 한 왕조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저 난세의 한 귀퉁이를 쥐고 각자 멋대로 날뛰는 제후와 군벌들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고 있지.”


“장연....., 설마 네놈이 이 업을 털자고 한 게, 정녕.......!”


그 화려한 말솜씨에 저도 모르게 홀리듯 그에 빠져들어 있는 두령들 너머 이를 듣고 있던 장우각이 그 속에 담긴 본질을 눈치챘을 땐 이미 상황은 늦어버린 뒤였다.


“이 저 비연이가! 장연으로 그 이름을 바꿔가면서까지 당신을 따랐던 것은 당신에게 우리 모두의 운명을 타길 수 있는 안목이, 힘이, 꿈이 있었다 믿었기 때문이야! 당신이야말로 이 지독한 난세 속에 허우적거리는 우리 모두를 이 도적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구원자요, 선지자라 여겼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처럼, 저리 전국의 세기를 당당히 살아가는 이들처럼 우리도 그 지역에 속한, 그 세상에 속한 구성원 모두가 각자 자신들을 위한 세상을, 이상을, 미래를 그려나가 우리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달과 별이 자리하고 거대한 불길이 하늘 높이 솟구쳐 일렁이는 불타는 대도시의 전경 아래, 구시대의 잔재라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린 이들을 휘감은 것은 반딧불이의 불빛과 같은 불씨들을 품은 반짝이는 바람이었다.


그 영롱한 아름다움에 취해, 기어코 하북 제일의 주도를 차지한 자신들의 힘에 취해 스스로를 돌아본 이들이 느꼈을 감정은 그 원대한 꿈과 이상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나, 나라......”


“우리의 나라?”


“도적에 불과한 우리가 우리의 나라를 세운다고?”


“지금 당장 그 입 닥쳐라, 장연!”


물론, 그 몽롱한 술렁임 속에 이에 반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온 것도 사실이었다.


장우각이라고 난세의 조각을 품었던 그라고 어찌 이를 모르지 않으랴?


그의 심간 한 켠에, 분명 정형화되지 않았으나 그에 대한 야망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요원한 일이요, 당장에 이룩하기 어려운 꿈이었다.


꿈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 그 꿈을 밝히지 않은 것도 그 꿈을 세세히 꾸지 않은 것도 그저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안주할 수 없는 현실에 당장에 이 업은커녕, 기주의 삼분지일이라도 차지하고서야 겨우 꺼내볼까 말까 한 이야기였다.


“아니! 기왕 이리된 거 나는 이를 멈추지 않는다!”


한데 이를 도둑맞았다.


“헛된 꿈이야! 꾸어서는 안 될 꿈이다!”


상황이 다급하기 이를 데 없으니, 부족한 부분을 채워내지 않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꿈조차 꾸지 못하느냐! 도적인 우리는 그저 이대로 살다 생을 마감해야 하느냐? 우리의 두령인 네가, 모두를 책임지고 이끌다 못해 그 모두를 구원할 대두령인 네가 어찌 이리 나오느냐!”


“더 이상의 혹세무민은 허락지 않겠다, 장연! 그건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꿈이야!”


“죽고자 꾸는 꿈이 어디 있다더냐! 나는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살기 위해 꿈을 꾼다! 결국 적당에 무리에 불과한 우리는 이 난세의 틈바구니에 토벌당해야 할 난적에 불과하니, 그 당위성이, 그 정체성이 주변의 제후들과 군벌을 자극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겠지! 그리 멸망당할 것이 빤하니, 애초에 그 꿈이 아니어도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렇기에 더더욱 살고자 이리 발버둥 치는 것 아니냐!”


그러나 이미 그 스스로도 멈출 수 없다 여긴 흐름 그 끝에 그저 의식이 흐르는 대로, 그 운명이 이끄는 대로, 그칠 줄 모르고 부르짖기 시작한 장연의 외침은 그곳에 자리한 수십의 두령들과 수백에 달하는 부두령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었다.


“애초에, 여기 자리한 이들 중에 과거가 구리지 않은 이들이 어디 있나? 그 원한이 구천을 수 차례 떠돌아도 지워지지 않을 사이로 굳어져 서로 원수라 여기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있나? 애초에 제 살겠다고 남의 것 빼앗겠다고 칼 차고 일어난 놈들끼리 겸양 떨 필요도 없지. 그 주댕이로 매양 같은 밥 먹는 식구다, 형제다, 가족이다 해도 언제 뒤통수칠지 모르는 놈들 이리 묶어두고 사는 꼬라지 대저 언제까지 지속할 셈이야! 발버둥 칠수록 더더욱 진해져만 가는 도적이라는 낙인을, 나아갈수록 더더욱 우리에게 반감을 가지는 세상을, 벗어날 수 없는 그 운명의 굴레를 모조리 끊어낼 수 있는 그 하나의 기회였던 것이 바로 평난중랑장의 자리였다! 해서 욕심냈고, 그럼에도 당시에는 내가 부족하다 여겨 그 자리를 양보했지. 내가 아닌 그대의 것이라 이를 인정코자 했다! 그대도 모르지 않을 이상, 그 대업을 그대의 손으로 이뤄도 상관없다 여겼다!”


더 이상 어긋난 장우각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존재치 않았고 모두가 일장춘몽과 같은 장양의 꿈 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여 나는 그다음을 준비했다. 그것이 바로 작금에 이른 분열의 통합이자 그간 우리가 꾸지 못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그간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저 높고 평평하며 널찍한 하늘의 문을 열기 위한 또다른 개창(開敞)을 위한 업의 공략이었다. 일평생을 도적으로 살며 언제까지 남의 집 곡창의 문만을 열어젖힐 생각인가? 도적이 되어 매양 하는 것이 그러한 개창(開倉)이요, 그에 사들이는 것이 원한이라면 모두의 미움을 받고 사는 우리는 언젠가 소멸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한조가 사라진 작금에 모두가 그 빈 틈바구니를 쥐고 각자가 자신들을 위한 하늘을 열어젖히려 함에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존재를 위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 땅의 역적들조차 나라를 훔치기 위해 이 땅에 자리한 이들의 곳집 문을 열어 식량과 물자를 얻고 그리 힘을 비축해 하늘문을 열어 저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데, 우리라고!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연유가 무엇이 있으랴! 더 이상 이 땅의 이들이 아닌 저들만이 쥐고 있던 하늘을 훔치기 위해 그 문을 열고자 개창을 꿈꿨다! 그래, 이를 위한 업의 공략이다! 왜! 이 업은 과거 위나라의 수도였던 곳이자 그 이후 조나라의 수도였던 한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끝에서 장양이 마지막으로 내비친 장렬한 외침은 가히 그곳에 속한 모두의 눈을 뜨이게 만들었다.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고,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전국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과거 조나라의 강역이나 다름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울림을 주는 외침이 가히 있었을까?


그것도 그 출신이 한미하며 일생을 천하디 천한 사고와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비록 찰나지만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만들어주며 깨고 싶지 않은 꿈을 선사한 이의 외침은 실로 그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을 도태되어야 할 이전 시대의 객인들이 아닌 새 시대의 주인으로 탈바꿈시켜버렸다.


“장평대전 이후 그 진나라조차 함락지 못한 한단이 지척이니, 저 장연이 작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조나라의 혼을 일깨울 줄이야.”


그렇게 일은 틀어지고 장우각은 성을 냈다.


원군은 거부되었으며, 장연은 제 근거지가 뻥 뚫렸으니 당장에 수습할 수 있는 병력만이라도 데리고 돌아가 제 근거지를 지키겠다며 떠나갔다.


허나 장연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향취가 짙은 꿈은 여전히 그에 속한 이들의 심장을 지속적으로 격동하게 만들었다.


“실로 깨고 싶지 않은 꿈이군.”


“뭐, 부정할 수 없지.”


“개국(開國), 아니 개창(開創)인가? 고작해야 개창(開倉)에 불과하던 우리가 이제는 저 진국의, 전국의 이들처럼 천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채, 그 세상에 속한 주인이라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면 더는 우리도 도적이 아니게 되겠지.”


그리고 이는 업을 공략한 흑산적들이 더더욱 업을 비롯해 자신들이 점거한 인근을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니, 하북에 도래한 이 전국의 난세는 모든 이들의 엇나간 계산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향한 마지막 질주요, 경주를 위한 마지막 순번의 참가자들을 알리는 마지막 신호탄이 되었다.


작가의말

이것으로 하북 편도 슬슬 끝이 임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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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9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9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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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6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8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0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5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9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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