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종교행사[3]
"너네 너무 소란스러운 거 아니냐?"
순간 율라 중사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마치 섬광처럼 파고드는 칼날같은 목소리였기에 순간 움찔한 내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후후. 그렇다고 고개는 왜 숙이니, 다 큰 사내녀석이."
말이 마침과 동시에 검지와 엄지로 내 턱끝을 끌어올리며 얼굴을 들이대는 율라 중사였다.
순간 그 모습이 너무 관능적이여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대 이지스 교에 입교할 사람은 고개를 함부로 숙이는 거 아니야. 알겠니?"
"이, 이등병 아르펜입니다아..."
당황스러워 저절로 관등성명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풋, 이거 너무 군기를 잡았나 보네."
냉기를 풀풀 날리던 율라 중사는 어느순간 표정을 풀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곤 다시 제 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지스 교의 종교행사장은 좀 떨어져 있나 봅니다?"
묵묵히 뒤를 따르던 안젤리카 일등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율라 중사에게 물었다. 따라가면서 긴가민가하던 나도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마스칸의 종교행사에 간 이들은 중대막사 내부를 향했기 때문이다. 율라 중사가 대답했다.
"이지스 교는 워낙 사람이 적어서 말이야. 따로 지어놓은 곳이 있어."
"그, 그렇습니까."
말투가 마치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라는 뜻으로 느껴졌기에, 나와 안젤리카 일등병은 더이상 군말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머지않아 작은 오두막집 하나가 등장했다. 들어가는 문 앞에는 이지스교를 상징하는 시스의 문장이 나무로 양각되어 있었다.
"이 안부터는 위대한 콴타를 모시고 있는 신당이니 신발 벗고 공손하게 들어와라."
"아, 알겠습니다."
워낙 엄숙한 말투였기에, 나와 안젤리카 일등병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신발을 벗고 율라 중사를 따랐다.
오두막 안은 단촐했다. 전면의 벽에는 처음의 문에서 보았던 나무문장과 함께 여인의 초상화 한폭이 그려져 있었고, 우측 한켠에는 책이 빼곡히 꽂힌 작은 책장이 있는게 다였다.
턱.
구석에 있는 발화도구를 이용해 순식간에 불을 피운 율라 중사가 초상화 앞 작은 나무단상에 서있는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의식을 행하기 시작했다. 자세는 라이오상등병이 보여줬던 것처럼, 접은 오른팔이 수평을 이루고 왼손이 뒤의 허리를 향한 상태였다.
"태초의 지존. 인류의 수호자 카이안 콴타가 다시 이 땅에 현신하시기를."
그 말을 마침과 함께 살짝 고개를 숙여 5초간을 묵념한 율라 중사는 의식을 마친 듯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구석에 있던 의자를 꺼내어 앉으며 나와 안젤리카 일등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간 우리는 이걸 따라해야할지, 아니면 잠자코 있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거리고 있었다.
율라 중사가 손사래를 치지 않았다면 계속 그러고 있었을 것이리라.
"걱정 마. 아직 너네가 입교하려고 온건지, 호기심에 온건지는 확인하지도 않았으니깐. 우린 라마스칸처럼 쵸쿄파이 따위로 교인 꼬시진 않는다."
끝의 말은 뭔가 뼈가 있는 듯, 한없는 혐오스러움이 느껴졌다. 잠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나는 이내 손을 들며 말했다.
"저는 입교하려고 왔습니다."
"어디의 누구한테 들었지?"
"사실 분대선임이신 라이오 상등병에게서 들었습니다."
"라이오? 아하. 그 멸치 녀석 말인가?"
턱을 짚은 채 그게 누군지 생각하던 율라 중사가 고개를 주억거리고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멸치? 아아, 그러고보니 칼라 병사장이 이등병때의 라이오 상등병은 무척 말랐었다고 들은 것 같다.
"지금은 저보다 덩치가 두배는 더 큰 편이지요."
"녀석. 쪼그만 게 무슨 방패를 드냐며 핀잔을 주었더니 정신없이 벌크업한 모양이구만."
그 말을 들은 나와 안젤리카 일등병은 서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정이 들은 고참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후임병 입장에선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입교하려고 왔다니 다행이구나. 의식을 시작해야지?"
말을 마친 율라 중사는 내게 다가와 간단히 입교의식에 대해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조용히 카이안 콴타의 초상화 앞에 선 채 이지스 교 특유의 예를 취했다.
"격동의 방패. 눈보라 수호자. 요마의 천적 카이안 콴타의 이름 아래 나, 아르펜 헤임달은 오늘부로 이지스 교에 귀의하겠습니다. 내 팔은 적을 막는 방패가 될 것이며, 다리는 기둥이 되어 가족과 동료를 지탱할 것이요, 내 정신은 인류수호의 의지로 이 목숨이 다 하는 그 날까지 뒤의 후예들을 지키겠습니다."
가장 신성한 의식이라 신신당부했었기에, 나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힘을 주며 담담하게 말을 해나갔다. 의식의 내용이 워낙 비장해서였을까. 말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짐이 느껴졌다.
짝짝짝
"이지스 교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따분하지는 않을 테니깐 기대하렴."
박수를 치던 율라 중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은 참 마른 침이 꿀꺽 삼켜질 정도로 아름다웠으니,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가면이라도 쓴 듯 무표정하다 태도가 급변하는 걸 보면 같은 종교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강력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정식으로 이지스 교인이 되었으니 기초적인 건 알려줘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던 율라 중사의 시선이 안젤리카 일등병을 향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의 의미는 단 한가지였다.
넌 아직 교인이 아니잖아.
"하, 할게요! 저도."
뒤에서 넋 놓고 지켜보던 안젤리카 일등병이 움찔하며 소리쳤다.
잠깐, 이렇게 되면 그녀가 오게 된 원인인 내가 좀 난처해진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똥 마려운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라. 나도 들고 싶어서 드는 거니깐!"
그렇다면 이 한겨울에 땀은 왜 흘리고 계십니까...
"그런데 저는 라마스칸교에 입교했었는데 배신 때려도 됩니까?
"다른 종교라면 이단이겠지만 라마스칸은 예외야."
손가락 하나를 집어든 율라 중사가 그것을 먹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먹을 건 먹고 살아야 되니깐."
"헤에.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젤리카 일등병도 입교의식을 해버리게 되었다. 의식이 끝난 후, 한켠에 있는 의자를 꺼내어 앉은 율라 중사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이지스 교는 대외적으론 수호의 신 이지스를 믿고 있는 작은 종교단체로 인식되고 있지. 하지만 본질은 요마전쟁 때의 영웅 카이안 콴타를 숭상하며 그분이 남긴 흔적을 찾아 생전의 모든 기록을 완성 시키는 것에 의의가 있지."
"그래서 중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거였군요."
"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다들 그분을 전래동화의 주인공같은 느낌으로 생각하지 실존인물이라곤 잘 생각안하니깐."
율라 중사의 말대로였다. 워낙 과장되었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많아서 사실 요마전쟁도 왕을 신격화하기 위한 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건 함구해야되는 부분이지만, 우린 왕실과는 독자적으로 아르고니아의 안녕을 위해 활동하는 비밀결사이기도 하지."
말을 마친 그녀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었다. 의아해하며 우윳빛 단검의 검신을 지켜보던 나와 안젤리카 일등병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이, 이건?"
"오러 슬러그?"
"후.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인가."
마치 놀란 꼬마아이를 내려다보는 어른의 시선같았다. 율라 중사는 은빛 아지랑이를 뿜어내는 오러 슬러그가 맺힌 단검을 나무토막에 찔러넣었다. 작은 굉음과 함께 사람 머리통만한 나무토막이 산산조각났다.
나는 박살나버린 나무토막과 율라 중사를 번갈아보며 경악했다.
오러 사용자(Aura User). 그 칭호가 가지는 힘은 어마무시하다. 내가 알기론 아르고니아에서도 오러사용자는 확인된 이가 백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들은 오러 슬러그라 불리는 오러의 힘을 신체 일부분이나 무기에 일회성으로 부여해 전투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 면에 부여하면 파괴력을, 선에 부여하면 절삭력을, 점에 부여하면 관통력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물론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어 대규모 전쟁에선 빛이 바래겠지만, 소수대 소수의 싸움에서 교전했을 때 그들의 전력이 절대적일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오러 유저를 뛰어 넘으면 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가 있다는 소리가 있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된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호사가들이 재미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들 한다.
"기록상으로 카이안 콴타는 최강의 오러 유저였지. 그래서 수많은 요마들이 그녀의 시스에 으깨졌다고 전해 내려온단다."
처음 듣는 소리였기에 나와 안젤리카 일등병은 어릴적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에 빠진 아이들처럼 율라 중사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가진 오러 능력 중 제일 백미가 뭐였는지 아느냐?"
"...무엇입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어보던 나는 문득, 어제 라이오 상등병과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율라 중사는 대답 대신 벽에 걸려 있던 한자루의 방패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의구심을 가지기도 전에 우리 눈앞에서 은빛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아. 역시. 그거였다.
"카이안 콴타의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요마는 아무도 없었지. 그분은 실로 방패의 신이셨다."
율라 중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지금 이지스교를 전도했던 라이오상등병을 몸뚱이를 쥐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이건 대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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