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괴담 이야기[3]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사실이냐?"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실 바로 어제 겪은 나조차도 꿈이었을까, 하고 착각을 할 정도니 말이다. 손을 턱에 짚는 베일 일등병의 모습은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하는 형상이었다.
"네. 사실입니다."
"흐음. 그래서 둘 다 안색이 파리했었구만. 그래, 좋아. 일단 믿겠어."
일단은 믿는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듣는 나조차도 헷갈렸다.
"그런데 용케도 도망치진 않았네?"
"근무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으니까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도망칠 정신도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크크크."
느닷없이 웃는 베일 일등병이었다. 순간 나는 이 양반이 유령에 씌였나? 하는 착각에 빠졌다.
"너는 그렇다 쳐도 샨티 일등병도 대단한 쫄보네. 명색이 유령 잡는 블리저드 가드가 유령에 놀라면 어쩌잔 거야?"
"베일 일등병님은 유령이 무섭지 않으십니까?"
"당연하지. 그거보다 참 재밌네. 근무 똑바로 서라고 훈계하는 유령이라니? 참 보고 싶다."
뒤이어진 그의 태도는 호기였다. 달리 해석하자면 허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허세 부리지 마십시오.'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직접 만나 봐야 어떨지 알 일인데.'
놀리는 대상은 이 자리에 없는 샨티 일등병이었지만, 덩달아 놀랜 입장이었기에 어느새 내 머릿속은 유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대신 베일 일등병을 방패 삼을 생각으로 가득찼다.
이른 바 화살받이.
"그럼 나중에 유령 나타나면 베일 일등병님께서 수하 좀 해 주시겠습니까?"
"왜, 겁나냐?"
"네. 겁납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다시 웃던 그가 내 등을 팡팡 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이 유령 잡는 베일 님께서 암구호 틀리면 바로 엉덩이를 걷어차며 꺼지라고 말할 테니깐 말이야."
금세 급조한 칭호를 자칭하는 나의 사수를 보며 걱정 반, 기대 반이 어렸다.
아, 물론 그 기대는 놀라 거품을 물 것에 대한 기대이다.
아무튼 이렇게 나와 베일 일등병은 30분을 교대로 번갈아가며 외초근무를 서게 되었다. 극심한 추위가 엄습해 왔지만, 어제의 끔찍한(?) 꼴을 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먼저 나와 외초 근무를 서고 있던 나는 마치 생체기를 낼 것 마냥 쏟아지는 냉기의 폭풍을 느끼며 나는 2경5 초소의 꼭대기에 꼿꼿이 선 채 어둠이 짙게 깔려 철책선의 불빛만 은은하게 빛나는 최전방의 풍경을 감상했다.
벌써 전입온 지도 두달 가까이 되어 가는 탓에 익숙할 법도 하건만 여전히 낯설었다. 더욱이 철책 바깥의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뿐만이 아니라, 철책 안의 숨 쉬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들다 보니, 왜 최전방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들이 미쳐서 동료를 살해하곤 하는 사고가 생기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나와 베일 일등병의 30분 교대근무는 수차례 번갈아 이루어졌고, 처음 투입으로부터 대략 5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맥박이 빨리 지는 게 느껴졌다. 어제의 그 망할 유령 할아범이 나타난 시간은 자정이 다 되갈 이 무렵이었으니까.
"!"
최전방 180도를 번갈아보며 외초를 서고 있던 내 시선이 한쪽에서 고정되었다. 동공이 확장되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나는 바라보고 있는 광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왔다!'
멀리서 보니 확실히 파악이 빨랐다. 경계로를 태연히 걸으면서 오고 있는 유령은 과연 평범한 병사의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걸으며 자연히 일으키는 상체의 율동도 없이 일직선으로 이 곳 초소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급하게 초소 안의 문을 두드린 내가 낮게 소리쳤다.
"왔습니다!"
"그, 그래?!"
속으론 정말 못 믿었던 건지, 베일 일등병의 목소리는 꽤나 상기된 느낌이었다. 다급하게 나와 함께 외초로 나간 그가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내가 비추는 '순찰하는 유령'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수하를 실시했다.
"정지."
사실 무시하고 올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정지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이쪽을 바라보는데 챙이 긴 군모 때문에 각도 상 육안이 확인 되진 않았다.
베일 일등병이 조금은 떨리는 어조로 문어를 던졌다.
"나무."
"도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암구호는 정확했다. 그리고 아무리 되뇌어 봐도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번엔 정말 사람인가? 내가 잘못 본 걸까?
절차상 틀리진 않았기에 베일 일등병은 올라오란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GP에서의 근무는 경계든 순찰이든 2인1조를 원칙으로 한다.
내게서 마법등을 가져간 베일 일등병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의문의 순찰병을 비추었다.
"확인되었습니다."
베일 일등병이 말하며 비추는 인영의 모습은 영락없는 블리저드 가드의 모습이었다. 아이스 고블린의 가죽을 벗겨 만든, 털옷. 활과 단검이 자리 잡은 무장. 그리고 상등병을 상징하는 세줄의 화살.
잠깐만, 군모?
"어떻게 혼자 찾아오셨습니까?"
베일 일등병도 그 부분이 의아했는지 물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상등병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훈계를 늘어놓았다.
"멍청한 소리 하네. 언제부터 블리저드 가드가 혼자 가니 짝 지어 가니 이런 거 따졌냐?"
"네?"
반문하는 베일 일등병의 목소리엔 당황함이 역력했다.
"씨발 그런 거 따지다가 어제도 고블린 새끼들한테 내 후임들 모가지 따였잖아. 가뜩이나 인원도 부족해서 비번도 없는데 씨발."
말의 시작점과 끝점이 다 욕이니 나는 눈 앞의 이 상등병이 사람인지 유령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너 새끼, 걔 좋아하긴 하냐?"
"네?"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소릴 하니 당황함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베일 일등병의 목소리였다.
"씨발 후회 할 짓거리 쳐 하지 말고 좋아한다 싶으면 고백해. 이 병신 같은 새끼야."
"..."
순간 베일 일등병이 침묵했다. 지켜 보고 있던 나는 묘한 의아함에 빠졌다. 핀트는 다른 데 정곡을 찔린 느낌? 안젤리카 일등병과의 대화를 들었던 나였기에 나는 눈앞의 이 의문의 상등병이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비록 전입을 온지 두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간접적인 타 분대와의 활동을 통해서 소초 내에서 웬만한 고참의 목소리는 다 들어봤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 의문의 상등병은 베일 일등병의 대답이 없자 재차 말을 꺼내었다.
"아무튼 그딴 소리 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고, 철책선 상태 좀 보러 왔다. 오늘 몇일이냐?"
"12월 3일입니다."
"아니 병신아 연도까지 말해야지."
의문의 상등병은 말 끝마다 욕이 입에 달려 있었다. 그의 말에 나는 의아했지만 그 말을 듣는 당사자인 베일 일등병은 아니었나 보다.
"LD 905년 입니다."
"하아, 벌써?"
문제의 상등병은 어처구니 없다는 탄성을 토해내더니, 베일 일등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초소가 아직 멀쩡한 거 보면 별 일은 없는 가보네. 영감님 모시고 올 테니 내일 보자, 후배 새끼야."
자기 할 말만 마친 문제의 상등병은 말을 마치고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말 한 마디 잇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베일 일등병을 조용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그가 쥐고 있던 마법등을 뺏었다.
그리고 사다리 아래를 비추었다.
"참 나."
무서운 걸 떠나서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어제의 그 유령 할아범 처럼 문제의 상등병은 마치 로프를 타고 내려오듯 빠르게 사다리를 내려오더니 쏜살같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멀어져가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내 마법등의 불빛이 베일 일등병을 향했다.
"베일 일등병님?"
아무런 대답이 없어 의아해 한 내가 그의 어깨를 흔들어보았다.
털썩.
"어라?"
목석 같이 가만히 서 있던 베일 일등병은 내가 어깨를 흔들자 마자 갑자기 쓰러졌다. 고개를 갸웃거린 내가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하하..."
온 몸의 털이 곤두 서 있던 나조차도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베일 일등병이 거품을 물며 기절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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