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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하임의 서재^^

Blizard 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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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enhime
작품등록일 :
2019.08.04 20:41
최근연재일 :
2020.06.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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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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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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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ep0. 아르펜 헤임달, 입대하다[4]

DUMMY

마침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칼라 병사장이 앞장섰고, 그 뒤를 줄줄이 이어나갔다. 일일이 확인하면서 움직이는게 아마 서열순으로 가는 것 같았다.

"넌... 내 뒤로오... 오면 되에~"

아까 내 짐을 정리해주었던 비쩍 마른 고참이 말했다. 아마도 그가 내 바로 직고참인 듯 싶었다. 처음 들어올 때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

그런데 유난히 말이 느리다고 느껴지는 건 내 기분탓일까?

식당은 소초의 제일 끝에 있었다. 분대의 생활관보다는 두배 정도 넓은 공간이었으며 식탁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정원수는 20명 정도 되어보였다.

왼쪽에는 취사장이 있었는데 식당과 취사장 사이에는 음식을 담은 함을 얹을 수 있는 취사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라파. 준비 다 됬냐?"

칼라 병사장이 취사대에 팔을 얹인 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안에는 하얀 옷에 위생모를 쓴 남자가 있었는데, 키가 꽤 큰 것에 비해 체형이 매우 호리호리했다.

"이제 막 다 됬죠. 기가 막히게 냄새 맡고 오셨습니다?"

"이 정도 냄새도 못맡으면 경계는 어떻게 서겠냐? 이 외딴 곳에서 유일한 낙이 먹는 건데 말이야."

"하하하. 그건 그렇죠."

헤맑게 웃는 모습이 순수해 보였다. 얘기를 나누던 그의 시선이 어느덧 나를 향했다.

"오늘이 신병 오는 날이었나 보네요?"

"그래. 우리도 이제 막 받았어. 이리와 막내야."

후미에 있다 손짓하는 칼라 병사장을 보고선 금세 발걸음을 옮겼다.

"단결! 이등병 아르펜입니다."

"단결. 상등병 라파다. 취사병이지. 이 소초 사람들의 먹는 문제는 전부 내가 책임지지."

그러면서 내 귓가에 얼굴을 들이댄 채 속삭이듯 말했다.

"즉, 네가 이 소초에서 젤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프레카 상등병이 팔로 내 어깨를 감싸며 자기쪽으로 살짝 당겼다. 앙칼지게 한마디했다.

"음흉한 표정 짓기는, 넌 우리 막내 보자마자 그런 소릴 하냐?"

'으헙.'

속으로 움찔했다. 가볍게 당긴거 같은데 속절없이 딸려갔다. 과연 여자라고 해도 화살 세개짜리 계급은 무시못하나보다.

물론 그전에, 성에 눈을 뜬 이후로 여자와 직접 살이 닿은 적이 처음이라는 사실도 한몫했지만.

"어쭈, 프레카. 부분대장 됬다고 엄청 챙긴다?"

"원래 잘 챙겼어 임마."

혀를 내미는 프레카 상등병. 대화로 보아 동기인 듯 싶었다.

잠깐의 실랑이가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차례차례 한명씩 식판에 배식을 받아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받고 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문득 훈련소 때가 생각났다.

'우리가 먹는 이 음식은 라틸신과 왕과 귀족의 땀, 백성들의 피로 만들어졌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도록.'

'단결!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그냥 앉으려니 불안해서 식탁에 식판을 올리고 오른손을 올렸다.

"단결!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

"음..."

아홉 고참들이 나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순간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은 충동이 들었다.

다행히 칼라 병사장이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었다.

짝짝짝

"그래 맛나게 먹어야지! 우리 막내랑 먹는 첫끼니깐 말이야. 오랜만에 경례도 받고 좋네."

그러면서 나에게 손을 뻗어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막내야.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렇게 딱딱하게 행동 안해도 돼. 밥 먹을 때는 그냥."

손가락을 튕기며 음식을 한숟갈 입으로 떠먹었다.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많이 드세요."

이렇게 제각각 말하고선 식사를 시작했다. 우걱우걱 음식을 씹고 있던 칼라 병사장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딱 하나. 기본예의만 지키면 돼.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긴 최전방이고 철책선 바깥으론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니깐 말이야."

위계질서는 지켜져야된다는 말이었다. 순간 칼라 병사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라만."

"이등병 라만."

아까의 그 비쩍 마른 고참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방금 전부터 수저를 살짝 내려놓고, 입안의 음식물을 다 삼킨 상태였다.

"너 오늘부터 막내 뗀 거다. 막내 교육 똑바로 시켜라."

"알겠습니다."

"내 성격 알지? 긴 말은 안한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오한이 들 정도로, 칼라 병사장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몇몇 낮은 계급의 고참들도 살짝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다들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네."

소초장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옆에는 리오가 함께 있었다.

"하하. 소초장님이 늦으신 겁니다."

"아니, 네가 너무 빠른 거겠지. 섬광의 밥도둑 녀석아. 페바에 있을때도 네녀석 분대가 항상 먼저 가있더라."

"기분탓입니다. 그나저나 신병이 한명 더 있었군요."

"그래, 5분대로 갈 녀석이다."

"단결! 이등병 리오입니다."

"그래, 우리 막내 동기구나. 똘똘하게 생겼는걸."

소초장의 등장으로 인해 분위기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그 틈을 타 고참 한명이 나에게 물어왔다.

그녀는 분대의 여고참 중에서 체구가 제일 작고 말랐는데, 헤어스타일마저 갈색의 땋은 양갈래머리라 성인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막내는 나이가 어떻게 돼?"

"열아홉입니다."

"열아홉? 87년생이야?"

"네. 87년생입니다."

올해는 LD(라틸력)705년이다. 그리고 우리 아르고니아인은 0살에서 출발하는 타국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한살을 가지고 태어난다. 듣기론 귀천을 떠나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와아. 87년생이 입대하긴 하는구나."

"제가 좀 일찍 입대했습니다."

"밖에서 뭐하고 왔길래 그렇게 일찍 온 거야? 이제 딱 술 마실 나이일텐데."

호기심 가득 한 표정이었다. 무심코 있는 그대로 말하려던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아르고니아군에서 관등성명을 댈 때는 성을 빼고 이름만 쓰도록 되어 있다. 성까지 붙여서 본인의 신분까지 노출되지 않게 하는 의도이기도 했고, 괜히 병사간에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무리 아르고니아가 타국에 비해 평민과 귀족간의 간극이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분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깐 말이다.

내 경우 비록 평민 고아로 커왔지만 헤임달 가문의 양자가 된 지금은 사실상 귀족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내가 곧이곧대로 말해서 '아, 헤임달 가문의 귀족 도련님이네?'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앞으로의 군생활에 긍정적일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괜한 위화감을 조성해서 고참들과의 가까워질 수 없는 벽이 세워질 수도 있다.

이 경우엔 꾸미는 게 옳다.

"라이칼 영지에서 사냥만 하고 지내다 너무 배가 고파서 일찍 입대했습니다."

난 민망하다는 듯 말하다말고 살짝 먼산을 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가 최고의 모범답안이었다. 어차피 내 정체는 소초장이 알고 있기 때문에 최상위의 고참들에게 흘러들어 갔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것과 간부에게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아, 그랬구나. 내가 너무 아픈 부분을 물어봤네. 나도 그랬거든."

공교롭게도 선의의 거짓말(?)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울상을 지은 그녀는 밥먹다 말고 손으로 자신의 몸을 매만지며 한탄했다.

"어릴 때 하도 못먹어서 발육이 이래. 내가 살던 영지도 먹을 게 귀했거든."

매만지며 올라가던 그녀의 두손이 평평한 가슴에서 멈춰진 채 부르르 떨렸다.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져 느닷없이 긴장되었다.

그러던 중, 오른손에 쥔 숟가락이 누군가를 향했다.

"내가 어릴 때 잘 먹기만 했어도 너보단 빵빵했을 거야!"

숟가락이 가리키던 방향을 보던 나는 흠칫했다. 계속 의식하고 있었던 여고참이었기 때문이다.

프레카 상등병보다 키는 조금 작았지만 충분히 늘씬했다. 전체적으로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갔으면서도 각잡힌 탄력이 느껴지는 몸매였다. 은빛이 감도는 머리칼은 뒤로 둥글게 땋아올려놨는데, 덕분에 훤히 드러난 하얀 목덜미는 심장을 두들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잡티 하나 없이 갸름한 얼굴에선 사나움과 고집스러움이 살짝 느껴졌으나 자연적으로 길게 빠져있는 예쁜 속눈썹이 그런 날선 부분을 완화시켜 주고 있었다.

고향인 라이칼 영지에서도 보기 드문 미녀였다.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을 향해 뻗어있는 숟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한마디 했다.

"아따, 샨티 일등병님은 원래 체질이 그런거 아닙니까. 고마 부러워 하이소."

...입을 여는 순간 나오는 찰진 사투리에 이미지가 살짝 깼다. 그래도 목소리는 고왔다.

"우씨, 두고 봐. 아직 안늦었으니까."

"척후병 하시는데 말라꼬 굳이...이거 얼마나 무거운지 못느껴봤다 아닙니까?"

고개를 살짝 치켜올린채 봉긋한 자기 가슴을 툭툭 치는 은발의 여고참. 민망함에 고개를 돌리는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너 고참마다 특징이 뚜렷하니까 이름 외우기는 쉽겠다 응?"

아까 보았던 금발의 미남 고참이었다. 아마 남고참 중에선 라만이라는 내 직고참보다 위일 것이다.

"저기 절벽 고참은 우리 분대 척후병을 맡고 있는 샨티 일등병님이고, 저쪽에 사투리 걸쭉한 애는 안젤리카 일등병이야."

그리곤 자신을 가리켰다.

"내 이름은 베일이고 말이야. 이렇게 세명이 우리 분대의 일등병 라인이지. 경계근무할 차례가 되면 2인1조로 근무를 서게 될텐데, 아마 우리랑 가장 많이 설 거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이었다. 붙임성이 좋은 편이 아니라 대놓고 물어보기 힘들었는데, 덕분에 서열파악이 더 쉬워졌다.

점이 선으로 그어진 기분이라고나 할까.

식사시간이 끝나고, 다같이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개인정비시간이라고 쓰고 자유시간이라고 읽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고참들은 책을 읽거나, 잡담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의 여가를 보냈다.

아직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가져온 물품 중 빠진 것이 없나 일일이 확인하고 고참이 관물함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눈동냥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 막내야."

고개를 돌려 보았다. 라만이라 불린 직고참이었다.

"이등병 아르펜."

"자암깐, 나가서... 얘기좀 하자."

예의 숨이 살짝 막힐 정도로 느릿느릿한 말투. 무심코 미간이 찌푸려질 뻔했지만 겨우 표정관리를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시, 신발 신고... 있어."

말을 마친 라만 이등병의 발걸음이 칼라 병사장을 향했다.

"부, 분대장님... 막내랑 나가서, 잠깐, 얘기좀...하고 오겠습니다."

칼라 병사장은 이미 라만 이등병의 이 말투가 익숙한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활관 문 위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적당히 가르치고 청소시간 전에 와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라만이 나에게 눈짓하며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잠자코 보고 있던 베일 일등병이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야 너 쓸데없는 말 하지말고 알려줄거만 얘기해라. 우리 막내 전입 첫날부터 듣다가 질식사하겠다."

"푸하하. 진짜 그렇겠다. 라만 너는 말만 빠르면 좋은 선임이 될 것 같아."

"하하. 아, 알겠습니다."

...내 말이 그말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이 답답한 말투의 직고참을 따라 소초 밖을 나섰다. 처음 올 때만 해도 푸르렀던 하늘은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오로지 라만 이등병이 들고온 자그마한 등잔이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널, 여기에... 따로 불러낸 건 다른 게 아니고... 알아야 할 게, 있어서 부울~ 렀어."

"...예."

안그래도 앙상한 얼굴의 남자가 등잔에 얼굴만 비친 채 느릿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 마치 영지에서 한번씩 보던 호러 경극을 보는 듯했다.

"생활관...안에서 얘기해도 되지만... 네가 선임들...누운치 보일...까봐 여기까지...온 거어야."

...이건 좀 내가 아니라 본인 얘기하는 것 같다.

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잠자코 듣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직고참과는 제일 가까워져야 한다고 들었으니까. 어디가 부족하든 인성이 더러워 날 괴롭히는 놈만 아니면, 그걸로 되었다.

나는 집중력을 평소의 두배로 끌어올린 채 라만 이등병의 얘기를 들었다. 내용은 주로 분대 안의 서열관계. 각 고참들의 대략적인 성격, 타 분대와 접촉시 조심해야 할 점. 경계근무에 관한 것들 등등 내가 내 위치에서 해야될 핵심적인 것들이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아... 나, 나도 너처러엄... 든든한 후임이, 생겨서... 다행이라고오.. 생각해."

나는 그쪽처럼 답답한 선임을 직고참으로 만나서 살짝 걱정은 됩니다...

"자, 이제에 청소할 시이간이...됬을 거야아... 어서어 가자아."

"알겠습니다."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냉큼 일어나 라만 이등병과 함께 소초를 향했다.

"요 일주일간은 신병 열외기간이니깐, 막내 너는 가서 보고 어떻게 하는 지 배우기만 해."

칼라 병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고 대답을 한 나는 윗고참들과 함께 담당된 청소구역에 갔다.

"구경만 해. 일주일 뒤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니깐."

밝게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이름은 세레나 이등병. 처음 생활관에 들어왔을 때 내 짐을 정리해주던, 라만 바로 위의 고참이었다. 첫인상이라고 해야 할까, 분대원들 중에선 그녀가 가장 성격이 착해보였다.

뭐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고참들이 열심히 청소하는데 가만히 있자니 뻘쭘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짐 정리를 당했을 때(?)의 기분을 또 다시 느꼈다.

청소가 끝나고 나서 잠시 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점호시간이 되었다.

점호는 인원파악 및 특이사항의 유무를 확인하고 전달사항이 있으면 전달하는 등 하루일과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다음날의 일과를 브리핑하는 시간이다. 칼라 병사장이 생활관 복도에 서있었고, 나머지 인원이 침상위에 열을 맞춰 앉아 있었다.

이윽고 소초장이 도착했다.

"단결!"

"단결."

"총원 10명. 환자0명, 경상0명, 중상0명, 휴가0명 이상 점호준비 끝."

"그래. 한달만에 인원이 금방 채워지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구나 다들."

"비번은 소중하니까요."

"그래, 비번은 소중하지. 그리고 내일은..."

소초장이 고개를 들어 잠깐 생각하다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전투훈련이랑 사격 연습이 있을 거다."

그러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보통 전입오고 그 다음날부터 전투훈련하는 일은 드문데, 많이 헤멜 거야. 그러니까 분대원들이 전부 우리 신병 잘 돌봐야 한다. 알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 건 제가 전문이지요. 하하."

베일 일등병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소초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갈구는 거?"

"푸하하."

생활관 안에 살짝 웃음기가 감돌았다. 피식 웃은 소초장이 화제를 돌렸다.

"농담이고, 아무튼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 저기 꼬맹이 하품하려는 거 같으니까 빨리 끝내자."

"아, 소초장님까지 그러시기에요?"

입을 가리고 있던 샨티 일등병이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발끈했다.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한 소초장이 금세 점호를 끝마치고 생활관 밖을 나섰다.

점호가 끝나자 다들 취침준비를 서둘렀다. 나를 비롯한 일이등병들은 두꺼운 요를 깔고 이불과 베게를 부지런히 깔았고, 칼라 병사장을 비롯한 몇몇 고참들은 손에 길쭉한 무언가를 쥐고 밖을 나갔다.

"뭔지 아냐 저거?"

이채를 띄운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향해 베일 일등병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피우는 데 쓰는 곰방대 아닙니까? 영지에서 몇몇 귀족분들이 피시는 것 봤습니다."

정확히는 자주 보았다. 고아원을 직접적으로 관리하시는 헤임달 백작부인, 이제 내 양어머니 되는 분이 애연가였으니깐 말이다.

"저걸 맛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다더라. 공급이 한정되 있어서 상등병 이상만 필 수 있는 특권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 베일 일등병의 표정은 무척 피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내 한탄했다.

"에휴. 빨리 상등병 되고 싶다."

"멀었어 임마. 어디 자기 위에 고참도 두줄인데 건방지게..."

건너편에서 잠자리에 들어 있던 샨티 일등병이 핀잔을 주었다. 고개를 돌려 샨티 일등병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베일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우리 쌴티 일등병님은 진급하면 그쪽 사이즈도 진급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아니 이자식이."

샨티 일등병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우리가 있는 반대 편 침상으로 건너 뛰어와 베일을 덮쳤다.

"아아아. 아픕니다. 폭력이 웬말입니까."

"왕국 법상 널 두들겨패는 건 합법이야 짜샤."

그러면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두 고참이었다. 그 모습이 꼭 티격태격하는 한두살 차이의 친남매 같았다.

처음 생각했던 위엄 있는 고참들의 이미지가 깨지는 데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는데 뭐랄까, 신선하면서도 웃겼다.

"너네 또 싸우냐?"

"사겨라 그냥."

생활관으로 돌아와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던 칼라 병사장이었다. 둘에게 다가가선 샨티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끼악. 분대장님... 숨막혀요."

둘의 키차이가 컸기에 목덜미를 붙잡혀 허공에 떠오른 샨티 일등병이 목을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칼라 병사장은 이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어서들 자라. 내일도 할 일 많다."

"네."

"막내...아니, 라만은 빨리 소등하고."

"알겠습니다."

고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라만의 손이 생활관 문 옆의 단추를 향했다.

'그러고보니 마법등은 여기서 처음 보네.'

워낙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훈련소에서 대대본부까지 올 때만 해도 호롱불로 어둠을 밝혔었는데 마법등은 밝기의 질이 달랐다. 과연 최전방 소초가 다르긴 다른가보다.

"소등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잘자요, 사랑하는 우리 선후임들."

가지각색의 말이 오가는 걸 들으며, 눈을 감았다. 저절로 졸음이 밀려왔다.

짧으면서도 긴 하루였다.


작가의말

깨알설명 - 분대인원.

제가 복무했던 당시 부대의 평균적인 분대원 수는 6~8명이었는데

GOP를 처음 교대해서 올라갈땐 꽉꽉 눌러담아 분대원10명 맞춰서 올라갑니다.

그뒤엔 전역자 생기고 전출자 생기고 하면서 비번은 꿈도 못꾸는 상황이 되고, 결국엔 페바에서 근무지원되는 식으로 운용됬던 것 같네요. 블가에선 인원이 풀차지로 유지된다는 설정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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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ep18. 뜻밖의 조우[4] +1 20.04.29 126 6 8쪽
92 ep18. 뜻밖의 조우[3] +2 20.04.22 137 6 10쪽
91 ep18. 뜻밖의 조우[2] +1 20.03.31 162 8 9쪽
90 ep18. 뜻밖의 조우[1] +3 20.03.23 171 12 9쪽
89 ep17. Vigilance Date[4] +2 20.03.10 181 10 13쪽
88 ep17. Vigilance Date[3] +2 20.03.01 181 8 8쪽
87 ep17. Vigilance Date[2] +3 20.02.20 204 11 8쪽
86 ep17. Vigilance Date[1] +1 20.02.10 231 10 9쪽
85 ep16. 장마전투[6] 20.02.05 213 11 9쪽
84 ep16. 장마전투[5] 20.01.28 224 9 10쪽
83 ep16. 장마전투[4] 20.01.20 232 10 10쪽
82 ep16. 장마전투[3] +1 20.01.14 234 9 8쪽
81 ep16. 장마전투[2] +2 20.01.08 232 9 11쪽
80 ep16. 장마전투[1] +1 20.01.08 246 11 11쪽
79 ep15. 0번 척살병[4] +1 20.01.06 248 10 11쪽
78 ep15. 0번 척살병[3] +1 20.01.01 265 12 13쪽
77 ep15. 0번 척살병[2] +1 19.12.30 245 9 7쪽
76 ep15. 0번 척살병[1] +3 19.12.27 282 11 9쪽
75 ep14. 싱그러운 봄의 급수장에서.[4] -1부 1막 완- +3 19.12.23 272 13 15쪽
74 ep14. 싱그러운 봄의 급수장에서.[3] +3 19.12.23 263 8 10쪽
73 ep14. 싱그러운 봄의 급수장에서.[2] +1 19.12.20 262 9 13쪽
72 ep14. 싱그러운 봄의 급수장에서.[1] +2 19.12.17 287 9 10쪽
71 ep13. 격전. 그 직후.[4] +2 19.12.16 296 13 9쪽
70 ep13. 격전. 그 직후.[3] +4 19.12.14 316 11 9쪽
69 ep13. 격전. 그 직후.[2] +3 19.12.10 289 12 11쪽
68 ep13. 격전. 그 직후.[1] +1 19.12.09 305 10 9쪽
67 ep12. 하얀 설인[8] +5 19.12.05 299 14 8쪽
66 ep12. 하얀 설인[7] +3 19.12.03 292 13 10쪽
65 ep12. 하얀 설인[6] +3 19.11.27 308 10 10쪽
64 ep12. 하얀 설인[5] +2 19.11.26 285 11 8쪽
63 ep12. 하얀 설인[4] +2 19.11.19 280 9 11쪽
62 ep12. 하얀 설인[3] +1 19.11.13 276 12 9쪽
61 ep12. 하얀 설인[2] +1 19.11.11 294 10 8쪽
60 ep12. 하얀 설인[1] +1 19.11.06 306 10 9쪽
59 ep11. 혹한의 계절[7] +3 19.10.25 309 8 10쪽
58 ep11. 혹한의 계절[6] +1 19.10.25 286 8 9쪽
57 ep11. 혹한의 계절[5] +3 19.10.21 300 11 11쪽
56 ep11. 혹한의 계절[4] +2 19.10.16 296 12 10쪽
55 ep11. 혹한의 계절[3] +1 19.10.14 297 9 11쪽
54 ep11. 혹한의 계절[2] +1 19.10.12 296 10 10쪽
53 ep11. 혹한의 계절[1] +1 19.10.11 312 11 8쪽
52 ep10. 괴담 이야기[6] +3 19.10.10 310 13 12쪽
51 ep10. 괴담 이야기[5] +4 19.10.09 304 11 10쪽
50 ep10. 괴담 이야기[4] +2 19.09.27 354 15 8쪽
49 ep10. 괴담 이야기[3] +1 19.09.25 311 10 9쪽
48 ep10. 괴담 이야기[2] +1 19.09.24 334 12 8쪽
47 ep10. 괴담 이야기[1] +2 19.09.23 366 11 9쪽
46 ep9. 탈영병[4] +5 19.09.21 355 11 11쪽
45 ep9. 탈영병[3] +1 19.09.20 328 10 8쪽
44 ep9. 탈영병[2] +2 19.09.19 341 10 10쪽
43 ep9. 탈영병[1] +1 19.09.18 339 11 10쪽
42 ep8. Diary of Dead[4] +2 19.09.17 365 10 15쪽
41 ep8. Diary of Dead[3] +1 19.09.16 353 10 11쪽
40 ep8. Diary of Dead[2] +1 19.09.12 358 9 11쪽
39 ep8. Diary of Dead[1] +1 19.09.11 360 11 8쪽
38 ep7. 라마스칸 게이트[5] +1 19.09.10 352 10 10쪽
37 ep7. 라마스칸 게이트[4] +1 19.09.09 367 8 9쪽
36 ep7. 라마스칸 게이트[3] +3 19.09.08 371 10 10쪽
35 ep7. 라마스칸 게이트[2] +3 19.09.07 389 12 10쪽
34 ep7. 라마스칸 게이트[1] +1 19.09.06 408 10 10쪽
33 ep6. 종교행사[4] +3 19.09.05 411 10 13쪽
32 ep6. 종교행사[3] +1 19.09.04 393 10 10쪽
31 ep6. 종교행사[2] +1 19.09.03 388 10 12쪽
30 ep6. 종교행사[1] +1 19.09.02 417 12 15쪽
29 ep5. 한밤의 추격자[4] +1 19.09.01 421 11 13쪽
28 ep5. 한밤의 추격자[3] +1 19.08.31 422 13 12쪽
27 ep5. 한밤의 추격자[2] +1 19.08.30 442 12 12쪽
26 ep5. 한밤의 추격자[1] +1 19.08.29 465 11 9쪽
25 ep4. 실전[6] +1 19.08.28 456 11 12쪽
24 ep4. 실전[5] +3 19.08.27 453 11 8쪽
23 ep4. 실전[4] +1 19.08.26 478 10 11쪽
22 ep4. 실전[3] +3 19.08.25 477 13 14쪽
21 ep4. 실전[2] +3 19.08.24 506 13 10쪽
20 ep4. 실전[1] +1 19.08.23 484 13 10쪽
19 ep3. 경계[5] +2 19.08.22 472 16 10쪽
18 ep3. 경계[4] +1 19.08.21 476 11 12쪽
17 ep3. 경계[3] +1 19.08.20 482 14 11쪽
16 ep3. 경계[2] +1 19.08.19 552 13 12쪽
15 ep3. 경계[1] +2 19.08.18 551 15 13쪽
14 ep2. 첫눈, 그리고 제설[4] +6 19.08.17 553 15 9쪽
13 ep2. 첫눈, 그리고 제설[3] +3 19.08.16 555 14 11쪽
12 ep2. 첫눈, 그리고 제설[2] +3 19.08.15 583 16 12쪽
11 ep2. 첫눈, 그리고 제설[1] +1 19.08.14 592 16 10쪽
10 ep1. 훈련[5] +3 19.08.13 640 17 16쪽
9 ep1. 훈련[4] +1 19.08.12 622 15 11쪽
8 ep1. 훈련[3] +1 19.08.11 774 15 14쪽
7 ep1. 훈련[2] +1 19.08.10 740 18 11쪽
6 ep1. 훈련[1] +6 19.08.09 820 20 9쪽
» ep0. 아르펜 헤임달, 입대하다[4] +5 19.08.08 922 25 18쪽
4 ep0. 아르펜 헤임달, 입대하다[3] +4 19.08.07 931 21 9쪽
3 ep0. 아르펜 헤임달, 입대하다[2] +3 19.08.06 979 25 8쪽
2 ep0. 아르펜 헤임달, 입대하다. +3 19.08.05 1,243 31 12쪽
1 1부 서장 : 눈보라가 쏟아지는 철책선 아래에서. +6 19.08.04 1,635 2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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