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줘도 못 먹은 칼카이저
026. 줘도 못 먹은 칼카이저
의외였다.
경매에서 물약 세트를 낙찰 받은 사람이 칼카이저일 줄은 몰랐다.
나도 여러 개로 나눠진 작은 서버에서 놀다보니, 해창 길드나 고동호의 어비스 정도만 생각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국가 서버면 우리나라 유저가 전부 모이는데, 그걸 깜빡했다.
아무튼!
칼카이저, 이놈은 해창보다 윗급으로 평가받는 성명 그룹의 3세다.
성명 그룹 회장의 세 번째 손자란 말씀.
그런데 이 새끼가 아주 씨발라먹을 씨베리안 씨감자 같은 새끼다.
아, 아직은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될 놈이란 소리다.
뭐랄까 미래의 매국노에 역적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되는 놈인데, 이 새끼가 내가 올린 물약 세트를 가져 갔는데, 그로부터 하루 반나절 후에 졸업 시험에 도전했다.
- 급보다! 리퍼 쉑아 급보라고!
- 소용없음. 리퍼 쉑, 빡겜할 때는 채팅창 닫아 둠.
- 그런데 무슨 일임?
- 카이저 길드, 망했음.
- 잉? 미쳐, 카이저 길드 졸업시험 본다는 시간이었음? 이걸 놓치네.
- 글게? 카이저 졸업시험인데 왜 리퍼 쉑 시청자가 줄지를 않았지? 시청자 줄었음 알았을 텐데?
└ 지금 이 방송 시청자들은 ASMR을 즐기는 이들이다.
└ 그래서 그냥 방송만 켜 두고 자거나, 쉬거나, 다른 일을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지.
- 그마네, 전투 소음이 어떻게 ASMR이 될 수 있어! 그게 가능한 놈들이 이상한 거라고.
└ 가만히 듣고 있으면 중독성 있다.
└ 뭔가 시원하고, 익숙하며, 불안감이 사라지지.
- 미친!
- 아니, 그 이야기 말고. 카이저 길드가 망태크를 탔다고?
- 맞다. 그거 이야기하던 중이었지.
- 한줄 요약(성공할 뻔, 마지막에 회피탱 실패가 레이드 실패로 이어짐.)
- 애미야! 한 줄 요약이 길다!
- 실패? 실패? 실패? 들어간 돈이 얼만데 실패를 해!
- ㅋㅋㅋㅋ 리퍼 쉑만 노났음. 물약 세트 그거 자그마치 11억에 팔렸는데, 칼카이저가 말아먹음.
- 설마 마지막 회피 실패가 칼카이저였음?
- ㅋㅋㅋㅋ 그래서 말도 못하고 어금니만 깨물고 방종함.
- ㄹㅇ 꿀잼!
- 곡소리 나겠다. 칼카이저 성명 그룹이자네.
- 지가 말아 먹었는데 누구한테 화냄?
- 인성질이 어디 잘잘못을 따지나?
- 그건 그렇지. 그런데 리퍼 이 쉑! 채팅창 읽고 있지? 너 사냥 리듬이 달라졌자네.
└ 그게 사실이면, 그걸 알아차린 이 새끼가 더 대단한 거다.
└ 별로 대단한 거 아니다. ASMR은 흐름이 달라지면 금방 알 수 있다.
└ 전투소음(비명, 괴성, 단발마, 뚝배기 깨지는 소리, 고통의 신음) 따위가 ASMR일때부터 알아봄. 미친 것들.
- 개취존! 씨바라!
- 쯧, 시청자 수준하고는.
하아, 또 싸운다.
암튼 내가 채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면, 트수 새끼들이 저희끼리 저러고 논다.
그러면서 묘하게 시청자는 자꾸 늘어난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자동사냥화면을 켜 놓고 지켜보던 그런 심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칼카이저 이 새끼!
레이드 실패?
졸업에 실패했다고?
크크크, 왜 이렇게 웃음이 나고 흥겨운지.
그것 때문에 ASMR에 잡음 생겼다는 소리까지 들었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빨리 후발주자들이 Kor 마을에 들어와야 하는데.
경쟁자가 안 생겨서 좋지 않냐고 하지 마라.
코월을 우리나라만 즐기냐?
다른 나라 놈들이 팍팍 치고 올라오면 나중에 진짜 곤란해진다.
일단 우리가 선점을 해 두고, 그 뒤에 우리끼리 싸우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다른 경쟁 국가들을 밀어낼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라고.
쯧, 칼카이저 이 병신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졸업시험에서 실패를 해?
“야, 트수들. 나 지금 마을로 귀환 탄다. 가서 칼카이저가 어떻게 실패했는지도 좀 보고, 졸업시험에 도움이 될 장비들 경매에 세트로 묶어서 다시 올릴 거다.”
- 뭠? 갑분?
- 카이저 길드 실패에 빡친 거?
- 역시 채팅 보고 있었네. 새꺄, 빡겜! 응? 게임에 집중하라고! ASMR깨지 말고.
- 맞다. 방송제목이 ASMR이면 그걸 지켜야지!
“하아, 이제부터 채팅 조심해라. 내가 지금 심기가 불편해.”
- 심기 불편! ㅇㅈㄹ
- 진짜 시청자와 싸우자는 거?
- 점점 버릇이 나빠지고 있다.
- 그래서 심기가 불편하신 이유가 뭔데?
└ 그걸 또 받아주냐! 버릇 나빠진다고!
트수들이 떠드는 사이에 귀환을 탔다.
이 국가 통합 서버에서는 마을로 귀환할 수 있는 스크롤이 있다.
정확하게는 마을을 선택해서 옮길 수 있는 스크롤인데, 사냥터에서 써도 발동된다.
그러니까 Kor001 마을 사냥터에서 스크롤을 써서 다른 마을을 선택하면, 선택한 그 마을로 접속되는 거다.
이걸 이용해서 사냥터에서 마을로 귀환할 때에 쓴다.
지금은 선택할 수 있는 마을이 Kor001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선택하면 사냥터에서 마을로 곧바로 올 수 있다.
취지와는 다른 스크롤 사용이지만, 이것도 패치가 되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잘 쓰라고 두는 거다.
어차피 사냥터가 멀어서 귀환 주문서가 필요하기도 했으니, 귀찮은 김에 그냥 겸용으로 쓰게 둔 것 같은.
뭐 그런 아이템이다.
“지금 내가 빡친 이유는! 내가 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한 몸 바쳐 희생하는데, 카이저 길드가 그걸 말아먹었기 때문이야.”
- 뭔 개솔?
- 니가 무슨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희생해?
- 그야 코스모스 월드 안에서는 그렇게 봐 줄 수도 있지.
- 그런가?
- 그렇지. 코월에서 앞으로 국가전 벌어질 건 안 봐도 비디오고, 그럼 리퍼 저 쉑이 고생해서 후발주자들 끌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님?
└ 장문이지만, 이게 맞다.
└ 지금 외국 방송 채널들도 졸업 시험에 도전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 발 뒤쳐진 느낌이다.
- 그건 아니다. 주요 국가들 선두 그룹은 졸업 시험 통과 가능성 있다. 실패 시에 접속 제한이나 경험치 다운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거지.
- 무지성으로 도전했다가 접속 제한 당하고 거기에 경험치 다운에 장비 드랍까지. 솔직히 그렇게 되면 회복하기 쉽지 않지.
- 돈이면 다 된다. 접속 제한이야 잠시 쉬면되는 거고, 장비야 돈 처바르면 복구 쌉가능.
└ 그 장비도 리퍼 쉑이 올리는 게 제일 좋은 장비잖아. 마을이 다르니까 장비 수준도 다르다고.
└ 이 말은 리퍼 쉑이 돈을 갈퀴로 긁고 있다는 소리지.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정말 이러다가 다른 나라에서 먼저 국가 마을로 올라오면 피곤해진다.”
- 돈이 문제가 아닌 건, 니가 풍족하게 벌고 있기 때문이지
- 기만자 쉑. 우엑!
“너, 밴.”
- 엌!
- 뭔가 건드렸다. 리퍼 쉑 발끈!
- 멈춰! 키보드에서 손떼!
- 채팅멈춰!!
- 복.지.부.동!
“뭐, 다들 아는 분위기지만, 솔직히 내가 우리나라 유저들을 위해서 고생이 좀 많잖아. 하루에 열네 시간씩 빡겜하고, 거기서 나온 장비들 추려서 경매장에 올리고.”
- 추려서!
- 상급품은 쟁여뒀다는 다른 표현.
- 은근 경쟁자 견재.
- 딱 졸업시험 선 넘을 정도로만 지원!
- 그래도 리퍼 덕분에 우리나라 유저들 장비 수준이 제일 높아. 평균적으로.
- 그건 사실임.
“아무튼 그래서!”
- 응. 조횽히 듣자!
- 아갈뚝!
“니들 말대로 쟁여뒀던 장비들 푼다. 이번에는 다섯 세트다.”
- 잉? 다섯 세트?
- 그렇게나 마니?
- 아니 왜에에?
- 그럼 진짜 손해 아님? 하나씩 풀어서 경쟁을 시켜야 돈이 되는 거라고!
- 정말 이 새끼는 대인배인가?
“그러니까 졸업시험 준비 중인 팀은 내가 올린 장비로 한 번 제대로 해 봐라. 이러다가 다른 나라가 국가 서버 뚫으면 니들 피곤해진다.”
이건 지금 할 말은 아니지만, 나중에 MMC에서 각성 코쿤들 쏟아지고, 그 다음에 코스모스 월드에서 리얼월드 패치하면.
응, 그렇게 되면 정말 코스모스 월드의 유저 전력이 국력을 좌우하게 되는 때가 온다.
그 코스모스 월드의 패치가 진짜 이계로 넘어가게 하는 거거든.
그 때부터 진짜 각성자의 시대가 시작되는 거지.
코스모스 월드의 아이템은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없지만, 코스모스 월드에서 진입하는 리얼 월드의 획득물은 지구로 가지고 올 수 있다.
말 그대로 리얼 월드는 진짜 세상이니까.
아, 그곳에선 죽음도 리얼이라 그게 함정이지만.
아무튼.
지금 내가 하는 유저 육성은 말 그대로 국가를 위한 장기 계획이란 말씀.
물론 칼카이저 새끼의 실패는 정말 깨춤을 추고 싶은 일이지만.
아, 그러는 동안 경매 물건 다 올렸다.
여덟 명, 풀파티가 착용할 장비로 다섯 세트.
그러니까 40명이 착용할 장비들을 모두 올렸다는 거다.
묶음 기능을 이용해서 준비해 뒀던 거라서 경매장에 올리는 건 금방이다.
자, 이러면 반응들이 오겠지?
- 리퍼를 대인배라고 했던 내 주둥이를 찢고 싶다.
- 경매 시작가 보소!
-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고?
- 배짱!
- 즉구가는 더 미쳤다. 시작가 두 배.
- 시작가가 15억!
- 씨발 게임 머니, 골드도 아니고. 현금 15억? 이걸 다섯 개?
- 현기증 난다. 그런데 즉구 하려면 두 배? 30억.
- 그럼 얼마야? 150억이네? 세금 뜯겨도 절반은 남지 않음?
- 경매장 5%, 세금 최대치로 45%니까. 대충 절반 맞음.
- 아, 진정한 승자는 국가였노? 뺑이 쳐봐야 이렇게 뜯기면 일하고 싶지 않지.
그래, 솔직히 세금 미쳤지.
하지만 나중에 각성자들 나오기 시작하면 코스모스에서의 수익은 세금 20%로 고정된다.
고수입에 붙는 최대치 45%에 반발해서 각성자들이 화끈하게 들이받은 결과다.
물론 어떻게 들이받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그랬다고 들었을 뿐.
아,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는 모르겠다.
“마,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 밀어주는 걸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게 짜증나서 이러는 거지.”
- 칼카이저 의문의 일침?
- 칼카이저가 잘 했으면 이런 경매장 입찰가 폭력은 없었을 거라는 말?
- 칼카이저 까는 분위기?
- 칼카이저 때문이다! 칼카이저 때문이다! 칼카이저 때문이다!
└ 위에 조심해라. 칼카이저 인성 ㅈ이란 소리가 들리더라.
└ 괜찮음. 여기 채팅은 익명이고, 이건 국정원도 못 찾음.
- 코스모스 월드가 그건 좋아. 유저 정보는 절대 공개를 안 하거든.
- 하지만 리퍼 쉑은 이미 정체가 다 까발려져 있다는 게 함정.
- 저 새끼는 리퍼83이란 이름을 쓰는 순간 개인정보 공개한 거임.
- 넷에서 찾아보면 저 새끼 정보가 한가득.
- 방송하는 놈이니 감수해야지.
- 그렇긴 하지. 아무튼 이번 리퍼 경매장 폭력 사태는 칼카이저 탓인 걸로.
그래, 이렇게 칼카이저 새끼한테 작게 한 방 먹여두고.
경매야 뭐, 생각 있는 놈들이면 입찰을 할 거고.
할 수밖에 없지.
15억에 세계 최초 길드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데.
그건 아직 남아 있거든.
“자, 그럼 나는 이만 쉬러 간다. 게임도 규칙적으로 해야 오래 하는 거다. 너희도 트수 짓을 해도 몸 챙겨가며 해라. 트바!”
- 리바!
- 흐흐흑. 몸 생각 해 주는 거냐곸
- 내일 봐! 리바!
《채널 :《코스모스 월드에서 만납시다! (feat:리퍼83)》방송 송출이 중단되었습니다.
* * *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아, 씨바.
방송 끝내고 나오자마자 울리는 벨소리 극혐인데!
“누군데 방송 끝나자마자 전화를 하고 그러십니까?!”
반응 까칠한 건 내 탓이 아니지.
“안녕하십니까. 성명그룹 비서실입니다.”
“뭐? 어디? 지랄 보이스피싱도 지랄이네. 끊어 새꺄!”
그래, 이거 보이스피싱 아닐 거다.
진짜겠지.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성명 새끼들한테 공식적으로 욕을 박아 주겠냐고.
어디, 자동 녹화 기능은 확실히 살아 있지?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새꺄! 전화하지 말랬지! 하여간 보이스피싱충들은 박멸이 안 되요. 박멸이!”
끊고, 이번에는 차단까지!
아, 그리고 잠시 전체 수신 차단도 걸어 놓자.
다른 번호로 전화할 게 뻔하니까.
나도 좀 쉬어야지.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