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개구리 잘 키워 봐(도자기 인형인 건 함정)
020. 개구리 잘 키워 봐(도자기 인형인 건 함정)
철컥!
“들어와라.”
집에 뭔 짓을 해 놨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리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조심하면 그만이고.
그런데 초여름의 날씨에 잘 어울리는 시원한 차림새긴 하네.
얇은 셔츠 하나에 타이트한 반바지에 운동화.
“쯧, 사는 꼴이 그리 대단치는 않네?”
어라? 대뜸 시비?
뭐, 저 눈동자 떨리는 거 보니까 나름 최선을 다한 허세인 거 같네.
불쌍한 새끼.
“줄 게 없는데 생수라도 마실래?”
그래도 손님인데 물 한 잔은?
“됐다.”
“됐음 말고.”
안 줄 수 있으면 나도 좋고.
“거기 앉아. 보다시피 의자도 변변찮아서.”
투룸 오피스텔 거실은 부엌과 겸용이다.
그래서 있는 것이 식탁을 겸한 탁자와 거기에 맞춘 의자.
소파처럼 편한 자리는 아니라는 거지.
“됐······. 아니다. 앉자. 앉는 게 좋겠네.”
고동호는 거절을 하려다가 얼굴 표정이 무너지며 맥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용건은? 협상? 아니면 무조건 항복?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선전포고?”
살짝 비웃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아마 고동호 저 새끼 속에서 불이 끓어오르고 있을 거다.
“무조건 항복. 그래 그거다.”
어라, 정말?
이렇게 쉽게 항복이라고 한다고?
이 새끼가 이럴 새끼가 아니지 않나?
게임에서 그렇게 끈질기던 놈인데, 고작 밤방문 한 번에 이렇게 무너져?
“그렇게 보지 마라. 너는 모르겠지만 나, 보기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지랄, 그런 새끼가 깡패 새끼들을 집에 보내?”
“그런 적······. 아니 됐다. 무조건 항복이라고 왔는데 변명 따위는 필요 없겠지.”
“펙트를 말하는 건 변명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변명이 아니지. 그래서 깽패 새끼들 안 보냈다고? 아, 나도 녹취나 촬영은 안 하고 있다.”
“하아, 내가 보낸 사람에게 니가 피해를 본 적은 없잖아. 예전에 두어 번 보냈던 놈들도 도리어 손해만 봤고, 이번엔 그거 겁만 주려고 했던 거였고.”
이렇게 깔끔하게 인정을 한다고?
그 새끼 참 새롭게 보이네.
“그래서 무조건 항복이면, 내 요구 조건도 무조건 수용한다는 소리지? 원래 무조건 항복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씨발, 무조건, 그 소리 좀 그만하지?”
“그래서 무조건 수용은 못한다는 거야? 그럼 그건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협상인데?”
“하아, 들어줄 수 있는 건 모두. 그래 모두 수용하겠다.”
짜식, 아주 속 깊은 곳에서 박박 긁어서 나오는 소리네.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억지로 누르고 있는데, 그게 또 두려움 때문이란 말이지?
지난 밤에 자신의 침실에 다녀간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거. 개구리 인사가 좀 강렬했나?”
피식 웃으며 고동호을 쳐다본다.
얼굴이 붉어지는 고동호.
여기서 나는 무슨 요구를 해야 할까?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
하지만 이런 일을 질질 끄는 건 별로 좋지 않다.
내 경험상, 깔끔하게 끝내고 마무리 짓는 게 좋지.
그러니까 내가 요구할 건?
“앞으로 내 앞에 나서지 마라.”
“뭐?”
“현실이든, 게임이든.”
“그게 무슨······.”
“게임에서 내 앞길 막지 말라는 거고, 현실에서는 서로 얽히지 말자는 거다. 그거면 된다.”
“하지만 게임에서······.”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으면 그냥 어비스 해산하고 게임 접어. 니네 아버지 돈 많잖아. 그 돈이면 죽을 때까지 탱자탱자 놀고 먹어도 남을 거고.”
“어비스는······.”
“그럼 그걸 조건으로 할까? 어비스 해체, 게임도 안 하는 걸로? 물론 그렇게 되면 현실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어지겠지?”
“아, 아니다. 어비스, 어비스는 계속 하게 해 줘. 대신에 우리가 너의 편에 설 테니까.”
“지랄.”
“뭐?”
“지랄하지 말라고. 내가 왜 너희와 엮여? 서로 섞이지 말자는 소리 못 들었어? 게임에서도 마주치지 말자는 거잖아. 나 같으면 게임 접을 거 같은데?”
“제, 제발 그건 봐줘. 그래, 앞으로 절대 리퍼83과 엮이지 않도록 조심할게. 그러니까······.”
와, 이 새끼.
게임에 진심인 편인 건가?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무조건 항복을 하겠다고 왔으면서 어비스와 게임은 포기를 못한다고?
하긴, 내가 조건에 여지를 주긴 했지.
처음부터 어비스 해산과 게임 포기를 조건으로 걸었으면 그냥 수긍했을 수도?
그런데 앞길 막지 말라고 했더니, 어비스와 게임은 계속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걸 테고.
어쩌나?
“쯧, 좋다. 그거야 니가 알아서 하면 되겠지. 너도 머리가 있다면 나와 엮이는 건 피할 테고.”
“다, 당연하지.”
와, 표정 밝아지는 거 봐.
게임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으냐?
“알았으면 가 봐라. 우리 사이에 더 있어 봐야 할 말도 없잖아?”
보내자.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거지.
“으, 으응.”
뭔가 속이 시원해 보이지 않는 고동호.
왜 저럴까?
아, 내가 약속을 안 해 줘서 그런 건가?
“니가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 앞으로 개구리랑 면담할 일은 없을 거야. 아, 잠깐.”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부엌 싱크대 선반을 뒤적여 개구리 도자기 인형을 하나 꺼낸다.
원래 한 쌍이었는데 어젯밤에 쓰고 남은 거다.
“이거 가지고 가라. 혼자 있으면 외로울 거 아냐?”
“그, 그걸 왜?!”
“놀라긴, 새벽에 영상 보니까 이거하고 비슷한 도자기 있던데, 짝지어 주면 좋잖아.”
“하, 하지만······.”
“뭐?!”
“그, 그게······.”
“설마 깨버렸냐?!”
“미, 미안.”
“아니, 나한테 미안할 건 없는데, 그거 주인이 그 사실을 알면 화를 많이 낼 텐데?”
“응? 그, 그래? 그럼 어떻게······.”
“이거 가지고 가서 잘 키워. 그 녀석도 그걸 보면 마음이 풀릴지도 모르니까.”
“아, 고, 마워.”
받아들면서도 좀 이상하긴 하지?
어째서 자기가 개구리 인형 따위를 들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고.
하지만 내 선물이니까 잘 키워 봐.
“그만 가라.”
“으응.”
떨떠름한 표정으로 현관을 나서는 고동호.
음, 저 개구리 도자기 다기 세트는 이렇게 처리를 하게 되는군.
남은혜 그 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사 왔을까?
잠깐 보이다가 안 보이더니, 이혼 후에도 안 가지고 가고.
뭐, 내 입장에선 재활용 잘 한 셈이네.
자, 그럼 좀 쉬자.
내일을 위해서.
* * *
《채널 :《코스모스 월드에서 만납시다! (feat:리퍼83)》방송 송출을 시작합니다.
“트하!”
아, 아무도 없구나.
- 방송 시작? 개꿀!
- 하아, 이 게으른 쉑!
- 이제 열다니!
- 처음엔 멋모르고 그냥 방송만 끄고 채널은 열어 두더니.
내가 첫날 그런 실수를 하기는 했지.
그랬더니 사람도 없는 빈 화면에 트수 쉑들 채팅만 가득했고.
나야 뭐, 트수들이 뭔 소릴 했는지 안 보고 싹 닫아 버렸지만.
왜냐고?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이것들 지들끼리 놀다보면 꼭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면서 싸우거든.
그래서 괜히 봐봐야 머리만 아파서 아예 안 봤던 거다.
“내가 그래서 첫날 이후로는 채널은 꼭꼭 닫아두고 있는 거다.”
- 까비.
- 뒷담하면서 노는 것도 재미 있는데.
“니들은 선을 안 지키잖아. 아주 난장판인 거 같던데. 물론 첫 화면 이외엔 보지도 않았지만.”
- 쳇!
“그러니까 적당히들 해라. 정말 채팅창 더러워지면 채팅명 만들게 한다.”
지금은 따로 채팅 하는 놈들 이름이 없다.
하지만 설정에 따라서는 다들 개인 채팅명을 설정하게 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그건 계정 귀속이라 한 번 정한 채팅이름은 쉽게 바꾸지도 못한다.
아마 과금을 해야 바꿀 수 있을 거다.
- 지금도 가끔 밴 시키고, 영정 먹이고 하잖아!
어우야 영구정지 먹은 놈은 아닐 테니까, 이건 밴 당했던 놈인가?
밴은 분 단위에서 시간 단위, 날짜 단위로 시킬 수 있는데, 영정을 시키지 않을 거면 나는 한 시간은 넘기지 않는다.
가벼운 경우엔 십 분 내외로 하고.
“채팅 수질 관리를 위해서 밴이나 영정은 꼭 필요한 거다. 그러니까 이해하고, 어쨌거나 영정은 당하지 말자.”
영구정지.
내 채널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수단.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영정 때린 놈이 몇 된다.
솔직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더러운 소리 하는 놈들이 간혹 있거든.
- 솔직히 이 채널 못 보면 손해긴 하지.
- 그건 맞다. 알게 모르게 코스모스 월드에 대한 정보가 충실하다.
- 다른 게임들과 통합 이야긴 나도 깜놀!
└ 업계 관계자?
└ 노코멘트!
└ 사실상 인정?
“업계 관계자가 있어? 코스모스 월드 운영이야 인공지능이 하는 거고, 프로그램도 대부분 이젠 손댈 수 없는 영역으로 간 거 아닌가?”
- 뭔 소리?
“아냐, 그냥 들은 소리야. 자, 그럼 이제 어제 이야기했던 그거에 이어서.”
- 어제?
- 뭔데?
- 오늘 온 놈들은 어쩌라고? 킹시보기 하라고?
- 채널 시청 전에 알아서 보고 왔어야지. 뉴비면!
- 뉴비면은 새로운 비빔면임?
└ 리퍼야! 쳐 내! 아재냄새난다!
└ 이게 맞다!
- 않이······ 개그 한 번 했다고 밴?
“자, 얼음! 채팅 3분간 얼린다!”
뭔 진행을 못하게 해?
“어제 채집 던전에서 노잼 시간 보냈다고 불평하던 트수들 많았는데, 오늘은?”
“아참, 채팅 얼렸지? 그냥 들어. 오늘은? 그래 여전히 노잼 컨텐츠다. 뭐냐하면, 약 만드는 거.”
이야, 채팅이 오디오는 아니지만 그게 빠지니까 허전하긴 많이 허전하네.
다음부턴 채팅 얼리는 건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봐야겠다.
경험이 없으니까 이런 실수도 하네.
- 왓씹새끼!
- 엌! 이게 왜 쳐지지?
└ 지가 치고 왜 쳐지냔다. ㅂㅅ
- 위엣놈 밴해라.
“뭐, 없는 데선 미국 대통령 욕도 하는데, 저 정도야 봐 주지.”
- 대인배!
- 그게 문제가 아냐. 왜 노잼 컨텐츠? 사냥 안 감?
- 그보다 다른 맵 밝히기도 해야지.
└ 이건 사심이 있다. 정보 획득을 위한 발언이다.
└ 킹리적갓심이다. 다른 길드 첩자다.
- 그렇다고 첩자는 아니지. 그냥 모니터링 요원.
- 아, 그렇구나. 직장인이었누.
- 첩자는 직장인 아닌 것 같고, 모니터링 요원은 직장인?
- 뭐, 점점 리퍼 쉑 방송에 정보 수집을 위해서 들어오는 놈들 늘어나는 거야 예상했던 일 아닌가.
- 쳐 내! 나만의 작은 소중이로 남아 줘.
- 이미 작은 소중이 아님. 머기업!
- 머기업이라기엔 도네도 심심찮게 막아 두고, 미션에도 시큰둥하지 않음?
- 그래도 미션 걸고 준다는 건 마다하지 않지.
- 마다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던데?
- 그래도 한 가지는 있다. 리퍼 쉑, 고집있다. 우리가 떠들어도 방송 내용 안 바꾼다.
- 아!(머리를 치는 깨달음을 얻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짖고 있었던 건가?
- 엄마, 저는 개가 됐어요. 엄마, 저는 개가 됐어요. 엄마, 저는 개가 됐어요.
“야, 개 드립은 아니지. 내가 뭘 어쨌다고?”
- 그래서 방송 컨텐츠 바꿀 거임?
“그건 아니지.”
- 거봐, 우리는 짖고 있었던 거라니까.
“그러니까 컨텐츠 바꾸란 소리 안 하면 되는 거.”
- 지금 이거 우리가 짖고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이지?
“또 말 이상해진다. 이 정도로 하자. 대신에 방송 끝날 즈음에 선물 준다.”
- 선물?
- 착석?
- 이러면 못 나가는 거 아님?
- 그래서 뭔 선물인데?
└ 이게 중요하다.
- 오오오오 선물?
- 트수들에게 바치는 조공임?
- 선물로 시청자를 사려는 스트리머가 있다? ㅃㅅㅃㅅ?
“오늘 약 만들 건데, 그 약들 중에서 성공한 레시피 하나 공개한다. 그러니까 잘 따라와라.”
- 555 그거 괜찮다.
- 음, 가치가 있을 듯.
- 그냥 60초 후에 공개하면 안 되겠니?
“방송 중간 중간 출첵한다. 그래서 해당 안 되는 트수들은 밴 시키고 레시피 공개 할 거다.”
- 그래봐야 몇 분 안 돼서 퍼짐.
- 그래도 포상이잖음.
- 그런가아?
“방송 끝날 때, 계정별로 쪽지 보내 줄 테니까 퍼트리든 말든 그거야 각자 알아서 해라. 그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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