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히든 던전, 은밀한 사원
008. 히든 던전, 은밀한 사원
방송 끝.
트수들의 징징거리는 채팅창을 단호하게 닫아버렸다.
이러니 세상이 고요해 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겜 렙업을 해도 피와 엠피가 안 찼지? 그거 때문에 이렇게 피를 보는 거고.’
대부분의 게임들은 렙업과 동시에 컨디션이 모두 회복된다.
하지만 코월은 그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레벨 업이나 보상도 전투 상황이 해제된 후에야 들어온다.
그러니까 연달아 싸우다가 죽으면 그냥 개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재수 없이 전투 상황을 끊지 못하고 연달아 싸우게 되는 경우, 마지막에 죽게 되면?
피눈물이 나는 거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가자.’
휴식 모드 덕분에 MP도 가득 찼다.
‘어디보자, 녹화는?’
그래 잘 되고 있다.
방송은 꺼도 게임 상황은 항상 실시간으로 녹화를 해야 한다.
이래야 나중에 편집을 해서 올릴 수도 있고, 혹시 기습을 당해 죽더라도 상대를 포착할 수 있다.
나는 못해도 녹화 화면은 그걸 해 주니까.
‘뭐, 여기까지 들어올 유저도 없겠지만.’
벌써 고블린 숲, 깊은 곳까지 들어올 유저는 거의 없을 거다.
날고 기는 놈들이라고 고작 몇 시간 만에 여기까지 오는 건 말이 안 된다.
파티를 짰다고 해도, 어렵다.
그러니까 히든 컨텐츠를 내가 차지할 가능성도 있는 거지.
아! 일단 고블린 여섯 마리 잡으면서 10레벨이 되었으니 여유 스탯 두 개가 생겼다.
스탯 올려야지.
이번에도 당연히 마력을 올려서 17을 만들고, 그렇게 총 MP는 170이 되었다.
이거 아슬아슬 하겠다.
앞에서 미션 때문에 급발진하느라 여유 스탯 2를 민첩에 쓴 게 조금 아쉽다.
하지만 민첩도 언젠가는 올려야 할 스탯이었으니 망태크를 탄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정도 MP면 아슬아슬하겠지만 히든을 독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뭐, 안 되면 몇 트 하지 뭐.
‘가자, 고고!’
* * *
코월의 시작 마을은 단순하다.
상대하기 쉬운 토끼 같은 것부터 사냥을 시작해서, 수준을 올려가며 10레벨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다.
따지고 보면 굳이 고블린을 잡을 필요도 없다.
10레벨을 만들어 다음 마을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10레벨이 되면 2차 마을로 이동할 수 있고, 그곳에서 기본 직업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간단하게 설계된 시작 마을이지만, 코월의 설계자들은 유저들의 니즈를 잊지 않았다.
시작 마을, 그곳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기대감.
그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히든 플레이스를 만들어 뒀다.
‘문제는 그걸 정말 감쪽같이 숨겨 뒀다는 거지.’
위치는 너무도 뻔한 고블린 부락.
유저들도 당연히 그곳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시작 마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니 뭔가 있다면 그곳이다 싶으니까.
코월 설계자들은 유저들의 그런 심리까지도 받아 줬다.
하지만.
‘그걸 찾는데 앞으로 반 년 이상이 걸리지. 내가 코월에 들어오고 얼마 쯤 지나서야 밝혀졌으니까.’
내가 하던 게임인 아루비타가 코월에 통합 되려면 반 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그 때까지 시작 마을의 히든 플레이스가 들키지 않았다는 거지.
솔직히 아루비타에서 코월로 넘어온 후, 시작 마을의 히든이 깨졌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 때, 내가 그 히든을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꽤나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까놓고 말하면 존나 배아팠다는 말이다.
자, 그럼 도대체 히든을 어떻게 숨겼기에, 유저들이 모두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못 찾은 걸까?
이유는 단순했다.
‘마을에 소란이 일어나면 안 되는 거지.’
일단 마을에 있는 고블린들이 유저의 접근을 알아차리면 안 된다.
그러니까 유저들이 몰려와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무리 이 잡듯이 뒤져도 뭐가 안 나오는 거다.
절대 고블린들이 모르게 접근을 해야 하고, 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 시점에서 그게 가능한 놈은 나 밖에 없는 거지.’
마침 날도 저물고 있다.
기다리던 나의 시간이 도래했도다.
* * *
고블린 부락은 움막과 토굴의 결합 형태다.
토굴을 파고, 그 앞쪽에 나무와 풀을 엉성하게 엮어 공간을 넓혔다.
그 중에 촌장의 움집은 다른 것들에 비해서 조금 더 큰 편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촌장의 움집이 아니다.
그 옆으로 세 번째, 제일 작고 허름해 보이는 움집, 그곳이 목표다.
위치로 보면 마을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인데, 의외로 작고 허름한 움집.
그곳에 숨겨진 공간이 있다.
‘자, 단번에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도 들키면 안 되는 거고.’
어둠을 이용해서 움집과 50미터 이내로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도약 한 번이면 저 움집 앞까지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 즉시 고블린 경계병에게 들키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부락의 고블린 경계병이 촌장의 움막 좌우에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170엠피가 간당간당하다는 거지.’
먼저, 섀도우 스킨을 사용한다.
내 몸에 그림자들 덧씌우는 스킬, 그래서 몸이 반쯤은 그림자가 되는 스킬이다.
필요한 MP는 100.
이건 한 번 발동하면 해지할 때까지 유지된다.
유지에는 따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없지만, 이 상태로 휴식 모드를 쓰면 엠피 회복 속도가 느려진다.
어쨌건 섀도우 스킨을 쓴 상태로 목표 움막의 그림자 부분으로 도약!
마이너스 50MP.
스팟!
동시에 은신 발동!
섀도우 스킨을 쓴 상태로 어두운 곳에서 은신을 쓰면, 고블린 따위가 그걸 알아볼 수는 없다.
은신은 발동 즉시 MP가 소모되기 시작하는데 초당 1씩 떨어진다.
그러니까 20초 내로 움막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스스스슥! 스르르륵
움막의 입구는 허름한 가죽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어설프더라도 제대로 만든 문이었다면 이렇게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했을 텐데, 다행한 일이다.
‘아무도 없군.’
다행인지 불행인지 움막 안, 토굴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인내의 기다림만 남았다.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으로 가서 몸을 숨긴다.
그리고 엠피 회복을 위해 은신과 섀도우 스킨을 풀고 휴식 모드로 꼼짝도 않고 기다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만약 이게 방송이었다면 트수 새끼들이 온갖 지랄을 했을 거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어만 있으니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바짝 긴장하며 움집의 입구를 노려보는 중이다.
딸깍!
‘음? 뭐지?’
그런데 뭔가 문고리를 벗겨내는 것 같은 소리가 엉뚱한 곳에서 들렸다.
설마?
드르르륵!
불쑥!
‘와씹! 깜놀했네.’
바닥이 한쪽으로 밀려나며 그곳에서 고블린의 머리가 불쑥 솟아 올랐다.
지하에서 고블린이 올라오는 것이다.
키이 키이이! 키익!
고블린은 뭐가 좋은지 흥겨운 리듬을 타며 올라왔다.
‘어? 그 문 닫으면······.’
스팟, 스팟, 스팟!
콰직!
‘안 되지!!’
털썩!
마음이 급해서 도약을 세 번 연속으로 쓰면서 고블린의 뒷목을 찔렀다.
이걸 버티면 그건 고블린이 아니라고 봐야지.
도약이 연속 세 번이고 찌르기 행동에 데미지 중첩을 걸었으면 자그마치 네 배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두 번째 연속 도약부터 데미지 두 배 중첩이 붙으니까.
‘급소인 뒷목에 네 배의 데미지 증폭이 걸린 찌르기를 맞고 버티면 그게 고블린이냐? 폴리모프한 드래곤이지.’
어쨌건 아슬아슬하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지켜냈다.
이 문은 특이하게도 죽은 이 고블린이 아니면 절대 열지 못한다.
그런데 이놈은 마을이 습격을 당하면 곧바로 여기로 와서 지하로 내려가 숨어 버린다.
그걸 모르면 죽었다 깨어나도 여길 찾을 수 없다.
한 번 숨어 버리면, 마을이 리셋 될 때까지 절대 다시 나오지 않는 놈이기도 하고.
어쨌건, 일단 히든 플레이스 입구는 확보했다.
그럼 이제.
질질질.
죽은 고블린을 끌고 계단 밑으로 내려간다.
혹시라도 다른 고블린이 들어와서 죽은 놈을 발견하면 곤란해 지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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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한 사원』에 입장하셨습니다.
※※※ 숨겨진 공간입니다.
※※※ 종착지에 도착하여 보상을 획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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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히든 컨텐츠 은밀한 사원에 입장.
【업적】☆☆☆ 최초로 히든 컨텐츠를 개방했습니다.
와, 계단을 내려오니까 곧바로 알림이 뜬다.
게다가 이거 금별 세 개짜리 업적도 줬다.
완전 개꿀이네.
일단 들어온 것만으로도 금별 셋에 일반 별 셋이다.
금별 하나는 일반별 다섯 개와 같은 가치가 있고 스탯 하나와 바꿀 수 있다.
이것만 캬, 다네, 달아!
계단 아래는 『은밀한 사원』이라는 인스턴트 던전이다.
이 히든 공간은 수많은 시작 마을 모두에 있지만, 누군가 이곳에 들어오면 다른 마을에 있는 공간은 폐쇄된다.
내가 이곳을 클리어 하거나, 혹은 실패할 때까지는 나만의 공간이란 소리다.
“음음. 트수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하지?”
자, 이제부터 편집을 위한 오디오를 덧붙여야 한다.
3인칭 뒤통수 시점으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본다.
그래봐야 보이는 것은 직선으로 뻗은 통로뿐이다.
돌을 다듬어서 벽과 바닥, 천정을 만든 직선 통로.
딱 봐도.
“어때? 뭔가 있어 보이지? 여기가 어디? 음, 시작 마을의 히든 공간인데 은밀한 사원이라고 알림에 떴어. 그래서 그게 어디 있는 거냐고? 어디긴 다들 짐작하잖아. 고블린 마을. 거기야.”
나는 히든 공간의 위치를 알려준다.
하지만 지금 방송은 꺼진 상태.
녹화본에만 지금 상황이 저장될 뿐이다.
혹시라도 이번 도전에서 실패하면?
이 녹화본이 방송될 일은 없지.
절대로.
“내가 암살자 클래스잖아. 그래서 고블린 부락에 놀러 왔단 말이지. 아, 그렇다고 내가 고블린들과 싸우려고 온 건 아니었어. 내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마을 전체와 어떻게 싸워?”
조심스럽게 통로를 전진하며 시청자가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한다.
“그냥 마을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마침 움막 하나에 들어간 순간, 고블린 하나와 딱 마주친 거지. 그래서? 어쩌겠어? 들키면 뭣 되는 상황이라 파바박! 원샷원킬! 한 방에 눕혀 버렸지.”
나는 과장되게 큰 동작으로 허공에 단검을 내지르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3인칭에 뒤통수를 보이고 있으니 혼자 발광하는 모습이 찍혔을 것이다.
“그런데 고블린 놈을 죽이고 보니까, 이놈이 지하에서 올라온 거야. 캬아, 딱 감이 왔지. 뭔가 있다! 그래서 내려왔더니 여기야. 은밀한 사원이라는데, 인스턴트 던전이라네? 게다가 히든 컨텐츠고. 어때? 운빨 쥑이지? 하하하.”
나중에 보는 놈들은 약이 올라 죽겠지만, 뭐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이 던전, 솔직히 나한텐 껌이다.
내가 알기로 여길 클리어 한 놈들은 수십 번은 트라이를 했다고 하더라고.
그만큼 죽었다는 소리지.
하지만 10렙 이하에서 죽어봐야 뭐 별 타격도 없지.
그래서 결국 공략도 된 거고.
하지만 나는 죽을 수가 없지.
죽고 죽고 죽으면서 공략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자, 그럼 가 보자. 딱 봐도 감이 오지? 이런 곳엔 분명 트랩이 잔뜩 깔려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부턴 조심하자. 딱 봐도 여기서부터 돌의 종류가 다르잖아. 마감도 더 깔끔하고.”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트랩 구간이 시작된다는 소리지.
그렇다면?
눈을 똑바로 뜨고!
“아, 저기. 저기는 지금까지 지나온 곳과 같은 돌인 거 같지?”
이걸 찾으면 되는 거다.
중간중간 안전지대가 있거든.
다른 놈들은 갈 수 없어도, 나는 너무도 쉽게 갈 수 있는 곳!
【도약】!!
스슷!
“캬, 쉽다 쉬워.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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