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재칼, 고동호라고?
014. 재칼, 고동호라고?
“내가? 당신하고? 일을? 또?”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이다.
솔직히 남은혜, 얘가 나한테 다시 이런 제안을 하려면 텀이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등짝에 칼 꽂은, 아니 꽂으려 했던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함께 일을 하자고 와?
허허, 내가 그렇게 호구 보이나?
“재칼.”
어라?
이러면 좀 다르지.
그 씹새가 끼어 있는 일이면, 또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재칼?”
“응.”
“내가 아는 그 재칼? 어비스 길드?”
“맞아. 그 재칼이야.”
-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 거?
- 리퍼 쉑, 눈 뒤집힌 거 같은데?
- 아는 썰 풀어준다. 리퍼83이랑 재칼이랑 악연이 깊다.
└ 뭔데? 장문 허용할 테니까, 썰 자세히 풀어 봐라.
└ 니가 뭔데 허용하고 말고 해?
└ 그냥 들어보자. 궁금.
- 리퍼83 VS 재칼. 검색해 보면 몇 곳에서 나올 정도로 이쪽에선 유명하다. 톨로리스라는 게임 아는 사람?
└ 내가 안다. 재밌는 게임이었지. 지금은 섭종하고 없다.
└ 아, 기억남. 그 겜 문 닫은 게 리퍼83이랑 재칼 때문이었지?
└ 정확하게는 어비스 길드가 톨로리스 점령 계획을 세웠는데, 리퍼83이 끼어들어서 게임 자체를 엎었지.
└ 그게 가능함?
└ 어비스 길드가 톨로리스를 장악하고 나름 보이지 않는 손처럼 게임을 운영했었어. 아이템 시세도 조율하고, 보스몹 레이드 분배도 하고, 공성전 컨트롤도 하고.
└ 솔직히 그냥 즐겜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지.
└ 이런 개돼지를 어비스에서 사육했다는 거지. 슬슬 풀어주고 조여주고 하면서 현질 유도도 좀 하고. 그러면서 PK단도 운영해서 회수도 하고 그러면서.
└ 누구보고 개돼지래? 이런@#$@%@#
└ 됐고! 그러다가 리퍼83이랑 붙게 된 거야. 리퍼 쉑, 가는 곳마다 어비스가 나타나서 방해를 하고 그러니까, 직진으로 들이받아 버렸지.
└ 엄청나게 싸웠다. 아니 리퍼가 어비스만 보면 학살을 하고 다녔지. 컨트롤 지대로였지. 템차이를 컨트롤로 커버치면서. 캬아, 그 때가 리퍼 전성시대였지.
└ 무튼 결국 사태가 커졌는데, 톨로리스는 그 때, 한창 성장세였거든. 그런데 그 싸움이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면서 어비스의 뒷거래가 나온 거지.
└ 빠밤!! 하필 어비스 길드장이 그 게임사 사장 아들이었던 거. 그게 재칼이야.
└ 그걸로 톨로리스는 망테크 제대로 탔지. 게임사 사장 아들이 게임을 뒤에서 컨트롤 했다? 그걸로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뭐 이런 거로 끝장 난 거지.
└ 그 뒤로 재칼은 정말 입에 칼을 물고 리퍼83을 쫓아다닌 거지. 어비스 길드를 끌고 다니면서 리퍼83만 조지는데, 리퍼 쉑도 절대 양보가 없었지. 타협? 그런 건 개나 줘 버린 사이야.
하, 트수 쉑들 신났네.
맞다.
재칼하고 나는 이런 관계다.
처음부터 좀 이상하게 꼬였던 건데, 병신 새끼가 지 아버지 회사 게임으로 장난질을 쳤던 거지.
뭐, 그걸로 톨로리스가 망하긴 했는데, 병신같은 재칼과 달리 그 아버지는 유능했는지 곧 다른 게임을 출시해서 엄청나게 성공했지.
물론 RPG에는 학을 뗐는지 다른 장르로 갔지만.
아, 그게 또 문제는 문제야.
재칼 아버지가 엄청난 부자가 된 거잖아.
뭐 원래 있는 집안이기도 했지만 재칼 아버지가 몇 년 사이에 승승장구 하면서 떼돈을 벌었거든?
그런데 그 양반이 아들 바보라서 재칼을 엄청 밀어 준 거지.
재칼 새끼, 그렇게 받은 돈으로 어비스를 유지하고 성장시킨 거고.
하아, 씹새.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서 어비스 그것들이 법인을 세워서 지랄을 하는 상황까지 온 건데.
조만간 보겠지 싶었는데 남은혜 이것이 그 새끼를 끌고 왔네?
“무슨 일인데?”
상황이 이러면 안 낚여 줄 수가 없잖아.
어디 한 번 젖어 보자.
젖는, 젖는, 젖는 겁니······ 나 지금 뭐 하니?
이거 묘하게 중독성 있네.
“우리 해창에서 던전 하나 찾았거든?”
“전직 마을 던전이면······. 아니, 그래서 뭔데?”
던전이 세 개 있지.
그리고 모든 던전이 그렇듯이 필드보다 성장에 유리하다.
드랍률도 높고, 경험치도 많고, 몹 리젠도 빠르고, 보스 몹도 필드보다 자주 나오면서 보상도 좋고.
이러니 던전을 독식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개꿀이 된다.
하지만 이건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혼자서 던전 하나를 독식하는 방법은, 들어오는 놈들을 보이는 족족 썰어 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그래봐야 쓰는 시간 대비 이익이 별로 없다.
그러니 그냥 가끔 기회 봐서 보스 스틸 정도나 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지.
“뭐? 던전이 어쨌다고?”
“아냐. 그래서 던전을 두고 어비스 놈들하고 부딪혔다고? 하필 너희하고 어비스가?”
“전직 마을 오니까 알겠더라고, 코스모스 월드는 지역별, 국가별로 묶어서 피라미드처럼 올리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시작 마을에서는 따로 놀던 해창하고 어비스가 이곳 전직 마을에서 만났다?”
“그래, 그런 거지. 너하고 내가 시작마을부터 엉켰던 것도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그런 거였고.”
“됐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뭐래? 누군 좋을 거 같아?!”
- 멈춰!
- 부부 싸움은 둘이서만 해!
- 부부? 뭔?
- 쟤들 부부였다가 이혼했다 했잖슴.
- 신입들 많아지네.
- 방제에 낚인 거지. 아직 투기장 방제잖음.
아, 그러네. 투기장 켠왕 끝났는데, 아직도 방송 제목 그대로 두고 있었네.
“쏘리, 방제 바꾼다.”
《채널 :《코스모스 월드에서 만납시다! (feat:리퍼83)
방송명 : <어비스 조지러 감>
- 컥! 급발진?
- 리퍼의 역린은 돈이 아니라 재칼이었누.
- 그런데 이거 어비스에서 보고 있지 않을까?
└ 아, 이런 눈치 없는 새끼!
└ 그냥 나가 죽어!
“그래, 그래서 이제부터 방제만 남기고 방송은 끈다.”
- 아니, 잠깐! 멈춰어어어어!
- 킹받네!
- 여기서 방종? 이렇게 방종? 이런 방종한 놈을 봤나!
“기다리면 내가 어비스 썰어 버리는 영상 올린다. 그러니까 딱 기다려!”
- 어어! 정말 이렇게?
- 야, 이 쉑! 기달!
- 이러지 마. 이러지 마. 이러지 마! 이 씹새야!!!
- 네가 나를 버릴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너를 버려. 로그아웃!
쩝, 아주 난리네, 난리야.
아무튼, 방풀을 하면 곤란하니까 이건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의뢰 내용이 뭐야? 정확하게 해야지.”
“와, 태세 전환 보소. 의뢰? 지금 의뢰라고 했어?”
“용병으로 고용한다며? 그럼 의뢰지. 아닌가?”
“솔직히 이젠 널 고용할 필요가 없잖아.”
“뭔 개솔?”
“그냥 둬도 우리 리퍼83이 재칼을 찾아가서 썰어버릴 거잖아. 방제도 그렇게 바꿨고.”
“음.”
“아니야?”
“그렇긴 한데, 문제는 내가 어비스 썰면서 니들 해창은 안 썰 거 같냐?”
“뭐?”
“걸리는 것들은 모두 썰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너도 투기장 방송 봤으면 알텐데?”
“너! 그러고도 무사히 겜 할 수 있을 거 같아?”
“재칼 새끼가 현피를 몇 번이나 보냈어도 끝까지 싸웠던 나야. 그런데 내가 널 무서워 하겠니? 게임 안에서야 뭔 짓을 해도 무서울 게 없는 나야.”
“하여간 독불장군!”
“지랄말고, 내가 이럴 거 너도 대충은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가지고 온 거 제시나 해 봐.”
“던전 차지하게 해 주면 수익 5% 준다.”
“던전 수익 5%?”
“그래.”
“기간은?”
“보름치.”
“내가 할 일은? 구체적으로!”
의뢰의 범위를 정확히 하지 않으면 AS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다.
그러니까 확실하고 구체적인 의뢰 내용과 계약이 중요하다.
“어비스 놈들 좀 썰어주면 돼.”
“몇 놈이나?”
“스무 명?”
“총원이 몇인데?”
“스무 명?”
“죽을래?”
“농담이고, 사실은 어비스 전투단 전체가 다 왔어.”
“전투단 전체면 쉰? 재칼까지 쉰 하나?”
“맞아.”
“그 중에 스물을 썰어 달라고?”
“그래.”
“그 대가가 던전의 수익 5%를 보름 동안 받는다고? 보수가 좀 약한데?”
“뭐? 약해? 가만히 놀아도 보름동안 던전 수익의 5%가 떨어지는 일인데?”
“대신에 니들은 95%를 먹겠지.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훌쩍 클 거고.”
“그, 그럼 7%.”
“음, 거기에 첫 보스까지.”
“보스?”
“던전 보스 아직 못 잡았을 거 아냐?”
“그건······.”
“안 되면 말고. 그냥 나 혼자 들어가서 보스를 잡아도 되는데 뭐.”
“야!”
“왜? 원래 게임이 그런 거잖아. 강자독식!”
“하아, 코스모스 월드에 너하고 우리 해창하고 어비스만 있니? 응? 생각을 좀 하고 살아!”
“뭐래? 나 PvP 세계 랭킹 1위인 사람이야. 나한테 누가 뭐래? 억울하면 칼 들고 오라고 해!”
“와, 미친 또라이 새끼.”
“너도 그래서 나한테 재칼 새끼 재껴 달라고 찾아온 거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래?”
“하아. 잠시 기다려. 7%에 보스까지?”
“아, 8%에 보스까지로 하자.”
“이, 이, 이!”
“임플란트 상한다. 그리고 시간 끌면 8%가 9%, 10% 되는 건 금방이다.”
“자, 잠시 기다려. 결재 받아야 하니까.”
훗, 결재란다.
확실히 조직에 속하게 되면 번거로운 것이 많아.
음.
그나저나 재칼 만나기 전에 훼이니를 다시 만나고 가야겠네.
엠피 좀 팍팍 올려놔야지.
캬, 마력 40에 MP400이면 【도약】을 여덟 번 연속으로 할 수 있는 건가?
뭐 지금 숙련도로는 여섯 번도 아슬아슬할 거 같으니 만엠을 한 번에 다 쓸 일은 없겠지만.
어쨌건 늘어날 엠피는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네.
* * *
“리퍼!”
“와, 오랜만. 캐릭턴데도 딱 보니까 알아보겠네.”
“결국 왔냐?”
“올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방송 봤냐? 시청자야?!”
“이이익!”
“쯧, 너도 이빨 조심해라. 그거 한 번 나가면 다시 못 고친다.”
“후우, 그래서 결국 해창 놈들 편에 선 거냐?”
“아니, 그게 아니지. 그냥 니 반대편에 선 거야. 우린 원래부터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못 사는 사이잖아.”
“하아아, 미치겠네. 야, 리퍼!”
“쓰읍, 분위기 이렇게 만들지 말자. 지금 와서 서로 좋게좋게 지내보자, 뭐 이런 이야기를 할 단계는 아니잖아.”
“당연하지. 나도 그럴 생각은 일도 없어.”
“그럼 뭐 해? 남은 건 칼질 밖에 없는데? 시작하지.”
우리 사이에 혓바닥은 무슨.
그냥 썰고 보는 거지.
그래도 오랜만이라 이만큼 말을 섞은 거지, 예전 같았으면 벌써 뒤통수에 칼을 꽂았을 거다.
“리퍼, 아니 최영우. 정말로 죽고 싶냐?”
어라?
근데 이 새끼, 실명을 거론해?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 맞지?
“잘 생각해. 전과는 다를 거야. 이번에 시작하면 정말 끝장을 볼 생각이니까.”
재칼 이 새끼, 지금 협박하는 거다.
전과 다르다는 이야기는 전에 현피 했던 때를 말하는 거고, 정말 끝장을 본다는 건, 그 때보다 더 강력한 수단을 쓰겠다는 뜻일 거다.
와, 미친 새끼.
이렇게 협박을 한다고?
물론 지금 이야기를 녹화해 봐야 게임에서의 이야기라고 우기면 그만이긴 하지만.
저 놈이나, 나나, 이게 무슨 뜻인지는 뻔히 아는 이야기다.
“재칼, 아니 고동호.”
“왜? 등골이 짜르르 하냐? 이 와중에 진지 빨기는.”
“풋, 해 볼 테면 해 봐. 그런데 니가 하는 걸 나는 못할 거 같으냐?”
내가 겁먹을 이유가 있나?
새꺄, 내가 지구 유일의 각성자야.
그것도 암살자 클래스로 각성한 각성자.
음, MMC 코쿤으로 각성한 다른 놈이 없다면 확실히 지구에 나 하나 밖에 없겠지.
“뭐?”
“내가 암살 전문가야. 이런 내가 너보다 못할 거 같아?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뒷 책임은 니가 지는 거다.”
새끼, 이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할까?
까불어 봐라,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줄 테니까.
뭐 당장은 내 말을 뒷등으로도 안 듣겠지만.
“리퍼 이 새끼! 뭘 믿고!”
“됐고! 말로 할 때는 지난 거지? 시작하자!”
파파팟! 푸욱!
“커억!”
“이건 인사야. 공격력 네 배짜리. 어때? 맞을 만 하냐?”
“씨, 씨발!”
“욕 나오지. 어떻게 막아볼 방법도 없이 당하고 나니까. 그러게 왜 까불어? 게임에서는 강한 놈이 법인 거야. 새꺄!”
“자, 잠깐! 거래······.”
“지랄! 그럴 거였으면 협박은 하지 말았어야지?!”
푸푸푸푹!
“읔!”
털썩!
햐, 운이 좋았네.
한 방에 죽어 버렸으면 이런 대화도 못했을 텐데, 급소에 네 배 짜리 공격을 맞고, 실피라도 남았단 말이지?
다음엔 여덟 배 짜리로 확실히 보내야겠네.
“자, 다음!”
코스모스 월드는 두 번째 마을부터는 사망 패널티가 있다.
사망시, 18시간 접속이 제한되는 패널티다.
물론 경험치 5% 하락은 덤이고.
저렙이서 경험치 5%는 별 게 아니지만 18시간 접속 제한은 크지.
하하하.
“딱 대라. 20명만 죽으면 된다.”
“씨발, 쳐!”
“죽여!”
“쳐라!”
“죽어라!”
그래, 옛날 생각 나네.
새끼들 익숙한 안면이 많아서 그렇겠지?
자, 붙어 보자!
아자자자자자자자!
파파팟! 퍼벅!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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