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어라 니들이 여기에?(Feat:꺼억!)
005. 어라 니들이 여기에?(Feat:꺼억!)
와글와글, 와글와글, 웅성웅성!
“그래, 이게 오픈 첫 날, 스타트 지점의 본 모습이지. 아주 가만히 있어도 몸이 제 멋대로 떠밀려서 움직이네.”
코스모스 월드에 접속을 하자마자 느낀 것은 출근 시간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캐릭 생성에 별로 시간을 쓴 거 같지도 않은데, 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이건 뭐 팔만 들어도.
“누구냐? 누가 더듬어?”
“씨파, 더듬어도 너 같은 덜렁이를 더듬겠냐?”
“어떤 새끼야? 덜렁이?”
“아, 미안하다. 아스팔트에 붙은 그거였냐?”
“뭐, 이 새끼가!”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난리도 아니다.
참고로 나는 덜렁이든 아니든 누굴 더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이거 어쩌나?
마을에서 받을 퀘스트를 포기한다고 해도, 나가서 사냥은 해야 하는데, 꼼짝을 못하겠네.
코스모스 월드의 인공지능은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방치하겠지?
잠깐, 그런데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있을 이유가 있나?
스킬을 쓰면 그만인데?
【도약】은 한 번에 최대 50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
물론 시야가 확보된 곳이어야 하고, 중간에 장애물이 없어야 하며, 도착점에 내가 안전하게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거야 뭐.
스팟! 차작!
이렇게 건물 지붕 위로 올라오면 그만이다.
『운명의 갈림길 나침반』의 효과로 도약을 쓰는 순간 이동할 곳을 내가 정할 수 있으니까 이게 되는 거다.
그것도 도착할 때에 어느 방향을 보고 있을 것인지 까지 설정할 수 있다.
그래서 적의 등 뒤에서 놈을 보는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순식간에 그런 계산을 하고 이동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나야 뭐, 과거에 쌓은 경험치가 넘치도록 있으니까.
캬아, 그나저나 경치 좋으네.
높은 곳이 좋기는 좋아.
저기 밑에서 바글거리는 유저들 좀 보라지.
퀘스트 한 번 받아 보겠다고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구만.
그런 중에 퀘스트를 발견한 곳에는 사람이 미어터지고.
저러니 내가 퀘스트를 포기하고 사냥부터 하겠다고 결심한 거지.
자, 그럼 다음 이동은 저기 목책 위로 할까?
시작 마을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코스모스 월드의 인공지능은 같은 모양의 마을들을 카피해서 유저를 분산시켰다.
안 그랬으면 지금 이 마을은 건물이나 목책까지 유저들 때문에 터져 나갔을 것이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이 작은 마을에 수 십 만의 캐릭터가 소환되면 마을이 터진다.
그건 과거 어떤 가상현실 게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시작 지점을 여러 곳으로 만들지 않은 그 게임은 오픈과 동시에 접속한 수 천 명의 유저들 때문에 마을이 한 순간에 쓸려나가 버렸다.
그 사건이 유명세를 탄 후로, 거의 대부분의 게임에서 스타트 지점에 인스턴트 공간을 도입해서 유저들의 복잡도를 낮추곤 했다.
동일한 시작 마을을 01에서 9999까지, 뭐 이런 식으로.
“코스모스 월드의 통합 필드에 가려면 아직 멀었지. 그런데 이제 보니까 내가 엠피가 조루네?”
지금 나는 렙1에 엠피 100짜리 캐릭이다.
그래서 도약 한 번에 엠피가 50이나 훅 하고 날아가니 남은 엠피가 50이다.
이러면 도약을 연속으로 쓰고 싶어도 두 번 쓰고 나면 엠피가 오링이라는 소리다.
그 말은 연속 도약을 이용한 공격력 상승효과를 보려고 해도 고작 두 배 까지 밖에 못 먹는다는 거지.
“내가 응, 예전엔 말이야 도약을 연속으로 여덟 번까지 했던 사람이야 응? 그런데 엠피 때문에 두 번 밖에 못하는 게 말이 되냐? 응?”
욱하는 기분에 헛소리를 해 보지만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여덟 번의 연속 도약.
그건 과거의 내가 죽기 전, 아니 회귀 전에 닿은 경지였다.
여덟 번 연속 도약을 하면 첫 도약에서 시작한 공격을 128배의 위력으로 터트릴 수 있다.
무시무시하지.
그래서 그런지 그 쯤 되니까 나를 건드는 놈들도 많이 줄어들더라.
간단한 공격이라도 128배의 증폭 효과가 터지면?
한 방에 상대를 보내버릴 수도 있는 위력이다.
그래서 여덟 번의 도약 숙련도를 지닌 것이 확인된 후로 내 삶도 조금은 편해졌었다.
같잖은 이유로 시비를 걸던 놈들이 꽤나 줄었으니까.
물론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막나가는 놈들도 많았다.
확률상 내 여덟 번째 도약이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곳에 떨어질 확률은 무척 낮았으니까.
그 때는 나침반이 내 손에 없었거든.
하지만 나침반 효과가 있는 지금은?
말해 뭐해?
엠피만 있으면 갑중 갑이 되는 거지.
“레벨 오를 때마다 일단 엠피부터 올려놓아야 하나? 엠피 400만 되어도 도약을 여덟 번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 쉬워 엠피 400이지, 그건 마력 스탯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레벨 오를 때 받는 자유 스탯을 모두 마력에 쏟아 부어도 렙 30은 되어야 그만한 엠피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함정이긴 하네. 뭐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어찌 되겠지.”
그래도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아무리 『운명의 갈림길 나침반』 덕분에 도약 스킬이 개사기 스킬이 되었다곤 하지만, 렙1에 공격력 128배 뻥튀기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좀······.
응? 솔직해 지라고?
뭐, 아쉽다는 거지.
뻥튀기를 할 수 있어서 나쁠 게 어딨더?
여튼, 자, 그럼 다시 한 번 도약.
스팟, 차작!
으으, 역시 도약 한 번 더 썼더니 그대로 엠피 오링이네.
코스모스 월드에선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자연 회복이란 게 없는 시스템이다.
특별한 옵션의 아이템이나 스킬이 없는 경우라면 말이다.
그럼 마을을 나가기 전에 일단 엠피부터 회복을 해 볼까?
자연 회복량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을 해 둬야지.
필드에 나가서 허둥거리지 않으려면.
“야, 퀘스트다. 토끼 가죽.”
“그래? 난 너구리 가죽인데?”
“너구리? 그거 토끼보다 강한 놈 아냐? 너 렙이 얼만데?”
“렙이 얼마긴, 지금 막 시작했는데 당연히 1이지.”
“근데 왜 나는 토끼고, 너는 너구린데?”
“그야 내가 잘나서?”
“지랄, 니가 너구리를 잡을 수는 있고?”
친구인 듯한 유저 둘이 서로를 디스하며 떠들며 지나간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유저가 고함을 지른다.
“아, 씨발, 늑대를 어떻게 잡으라고?”
“어? 저 사람은 늑대 가죽 퀘스트를 받은 모양인데?”
발밑으로 지나가던 유저 둘이 걸음을 멈추고 늑대 가죽 퀘스트를 받은 유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난다.
퀘스트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아는 코린이(코월 어린이)들.
퀘스트 안 받아도 가죽은 잡화점이나 가죽 공방에서 제 값을 쳐 준다.
그러니 굳이 저런 퀘스트를 미리 받을 필요는 없는 거다.
어차피 가죽을 가지고 가면 보상으로 돈을 주는 퀘스트일 뿐이니까.
뭐, 돈을 주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코린이들은 퀘스트를 해서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물론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돈이 있으니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그러니까 퀘스트를 받지 않은 상태로 가죽을 모아도 제 값에 팔 수 있고, 또 그렇게 돈이 생기면 마을의 상점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간단한 이야기지.”
그러니까 나도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몸이 토끼나 사슴, 너구리, 들개 따위를 잡고 있을 수는 없겠지?
그럼 뭘 잡느냐고?
그야 당연히 고블린이지.
이족 보행을 하는 소형 몬스터.
부족을 이루어 사는 무리형 몬스터이며 간단한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머리 좋은 몬스터.
“어디 보자. 게임에 접속을 했으니까 기본 아이템은 줬을 텐데?”
불친절한 코스모스 월드 같으니라고.
게임 서비스 초기에 유저들은 캐릭터 생성 후, 게임에 접속하면 기본 아이템을 지급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이템 지급에 대한 알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태창은 이미 접속 대기 화면에서 확인을 했기 때문에 다시 살펴보는 사람이 드물었지. 하지만 시작 아이템은 이미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지.”
∋인벤토리∈
《소모품》
- 소형 HP포션ⅹ5
《무기》
- 초보자의 목검ⅹ1
《방어구》
- 초보자의 일상복(상하)
《액세서리》
- (비어있음)
이렇게 기본은 있다는 말이지.
자, 그럼 가 보자.
* * *
시작의 마을 목책 밖은 게임 스타트 포인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는 기본적인 사냥감들이 있다.
토끼, 다람쥐, 너구리, 여우, 들개, 돼지, 멧돼지, 늑대 따위.
물론 사냥이 어려운 놈들일수록 마을에서 먼 곳에 배치되어 있고, 멧돼지나 늑대, 큰여우 따위는 숲과 들판의 경계까지 가야 있다.
“야, 잡아!”
“뭐 해? 막아!”
“아욱! 토끼가 몸통 박치기를!”
“조심해, 한 방에 피가 15나 빠진다고!”
“도망쳐어! 나 무서워!”
“이러다가 우린 다 죽어어어! 따위는 하자 말라고! 그게 언제건데!”
북적거리는 유저들.
벌써 무리를 지어서 파티 사냥을 하는 이들도 많다.
쯧, 가소롭기가.
싹 무시하고 숲으로······, 어라?!
저건?
하필 여기서 저것들을 만난다고?
시작 마을이 수 백 개는 될 텐데?
하필?
“자자, 모두 무기 장착을 했죠? 그럼 탱커와 전사 지망인 분들은 앞으로 나서서 전위를 맡아 주시고.”
남은혜?
게임 캐릭터라 본래 얼굴은 아니지만 내가 못 알아볼 수는 없지.
앞으로 5년 동안 저 얼굴로 엄청난 활동을 하는데 어떻게 모르나?
게다가 아루비타가 코월에 통합된 후로, 저 년이 나를 『운명의 갈림길 나침반』으로 살살 꼬셔서 얼마나 부려 먹었는데.
하, 솔직히 『운명의 갈림길 나침반』을 사용하면 정말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거 대여해 준다고 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달려갔었지.
이혼한 전처가 내 뒤통수를 쳐서 가져간 아이템 대여로 나를 부려 먹는 지랄 같은 상황에서도 ‘일’이니까 ‘프로’의식을 가지고 ‘거래’를 했었단 말이다.
아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자, 그럼 이제 출발하죠. 우리는 곧바로 여우 사냥으로 시작합니다. 토끼나, 다람쥐 따위를 잡고 있을 수는 없죠.”
남은혜가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이끌고 있다.
남은혜 말고도 여자 플레이어가 하나 더 있다.
남은혜는 앞쪽에 세 명의 플레이어를 두고, 중간에 한 명의 플레어를 뒀다.
그리고 제일 뒤에 자신과 또 다른 여자 플레이어가 섰다.
전위, 중위, 후위.
그 중에 제일 안전한 곳에 자신이 선 셈이다.
이런 필드에서 뒤쪽에서 기습을 하는 몬스터는 없다고 봐도 되니까.
뭐, 내가 사냥하려는 고블린이라면 좀 다르겠지만.
그런데, 중간에 있는 놈, 저게 백경민이지?
목검을 들고 주위를 경계하는 놈.
원래 검과 방패를 동시에 쓰는 기사 클래스를 주로 하는 놈인데?
아루비타에서도 기사였고.
그럼 전위에 서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중간에 세웠어?
그러면서 은근히 남은혜를 호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지?
아, 배알 꼴리네.
“호호호. 자, 다들 준비 되셨죠? 방송 시작할게요.”
“트하! 안녕하세요. 코스모스 월드의 모험가 엔디입니다. 어머나, 우리 엔디랑 님들 많이 오셨네요. 네? 아, 지금 접속 대기열이 길다고요? 그렇군요. 그럼 접속하시기 전까지 저하고 놀아주시면 되겠네요.”
혼자 뭐라고 떠들기 시작하는 남은혜.
코월의 개인 방송을 시작한 모양이다.
저 엔디랑이라는 게, 저 년 방송 구독자들이지?
엔디 신랑인가 뭔가 하는.
우엑!
이건 못 참지!
음, 저 상황에서 뒤통수 한 방 거하게 때리면 어떻게 될까?
한 번 해 봐?
으음, 인생 뭐 있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사는 거지.
키키키키.
자, 그럼 엠피도 채워 나왔겠다.
도약으로 날아가서 한 방 때리고 다시 도약으로 빠져 나오는 걸로!
가즈아!
“······ 네네, 응원 감사합니다. 저희는 해창 길드의 길드원이구요. 지금 함께 모여서 여우 사냥을 하려고······.”
스슷!
따악!
키야 소리 좋고.
“꺄악!”
철퍼덕!
이건 남은혜 개구리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고!
“크하하하핫! 즐겜해! 필드에서 만납시다! 아디오스!”
스슷!
“은혜, 아니 엔디 씨, 괜찮습니까?”
“아아아, 뭐, 뭐였어요? 뭐가 저를 공격한 거죠?”
“그게······. 플레이어 같았는데······. 순간 이동으로 다가와서 공격하고 또 순간이동으로 사라진······”
“아이 씨! 잠깐만요. 이건 못 참죠. 어떤 새낀지 녹화된 거 돌려 볼게요. 화면 옆으로 띄우고, 이렇게 하면······ 어? 어라?”
“어? 이거······.”
캬, 좋네.
딱 봐도 내가 누군지 알 것 같지?
캐릭터라서 좀 달라지긴 했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하지만 니들이 녹화된 장면에서 나를 확인한다고 뭐가 달라져?
왜?
남은혜 전남편이 뒤통수 후리고 갔다고 방송에서 까발려 볼래?
그게 되냐?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하지?
그럼 정말 수고해라.
아, 시원하다 꺼억!
잠시 들어갔던 남은혜의 개인 방송을 미련 없이 꺼버렸다.
저것들은 앞으로도 만날 일이 많겠지.
언제까지나 사사로운 일에 매달려 있을 수 있나.
나도 이제 숲으로 들어가서 내 방송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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