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삼절칠환창은 환장이지요?
009. 삼절칠환창은 환장이지요?
히든 던전이라고 해서 레벨 밸런스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
이곳은 시작 마을 맵이고,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니 아무리 높게 잡아도 레벨 12 혹은 13정도, 그것도 직업은 없는 상태의 유저를 위한 던전이다.
그런 곳이 어려우면 얼마나 어려울까.
더구나 침입자를 막는 수단이 트랩인 곳에서 도약 스킬을 쓸 수 있는 나를 어떻게 막아?
안전한 쉼터 구간을 찾아서 도약으로 이동, 휴식 모드로 엠피를 회복하고, 다시 이동.
이 단순한 패턴의 반복으로 나는 끝내 던전의 끝에 도착했다.
직선 통로 끝에 있는 상자와 그 뒤로 보이는 계단.
하지만 계단은 무너져 막혀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 상자의 보상만 챙겨서 되돌아 가면 된다.
그래, ‘되돌아’가야 하는 거다.
“일단 챙겨 보자고. 내가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는 수고 따위는 나중에 생각하고.
딸깍!
거침없이 상자를 연다.
왜?
여긴 마지막 함정 따위는 없으니까.
이 상자가 있는 곳이 지름 10미터 정도 되는 반원형 공간인데, 상자 앞쪽의 사각 발판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 함정이다.
그 정도 했으면 상자에 마지막 함정 따위는 맞는 거다.
여기서 상자까지 지랄을 하면 그건 그냥 죽으라는 거니까.
“와아, 이게 바로 그 삼절칠환창!”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세 개의 금속 막대.
하나가 대략 1미터 정도 되는 막대는 딱 봐도 결합 가능하게 생겼다.
중간에 들어가는 것은 그냥 봉이고, 다른 두 개는 한쪽 끝이 뾰족한 단창이다.
이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양쪽 끝에 찌르기용 날이 달린 창으로 만들 수도 있고, 한쪽 날을 숨겨서 결합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끼릭! 끼릭! 끼릭!
결합하면 3미터가 약간 안 되는 밋밋한 창이 된다.
이래서 삼절, 세 개로 나뉜다는 소리고.
그럼 칠환은 뭐냐?
일곱 개의 환, 고리를 뜻하는데.
『삼절칠환창☆☆☆☆☆』
공격력 : 40
내구 : 200/200
스킬 : 【칠환 관통】(5/5)
※ 일곱 개의 환을 관통하는 찌르기는 태산을 뚫는다.
※ 환을 하나 관통할 때마다 공격력이 두 배씩 증가한다.
캬, 미친 거지.
별 것 없어 보이는 분리형 창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 【칠환 관통】이 붙어서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물건이다.
일단 【칠환 관통】 스킬을 사용하면 전면에 일곱 개의 환, 그러니까 고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창으로 고리를 관통해서 목표를 찌르면 그 공격력이 두 배로 늘어는 거다.
그런데 찌르기를 하면서 매번 고리 일곱 개를 모두 관통해서 찌르기는 어렵지.
당연히 직선 찌르기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그래서 창 끝이 고리를 따라서 제 멋대로 허공을 누비며 상대를 찌르게 되는데, 이게 또 상대하는 쪽에서는 뒷골이 땡기는 일이다.
이를테면 창 끝이 뱀처럼 휘어지며 찔러 들어오는 꼴이니까.
어쨌건 그렇게 고리를 몇 개나 관통해서 상대를 찌르느냐 하는 것이 문젠데.
캬, 이게 연속도약하고 결합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나는 그냥 직선 찌르기만 하는데, 고리를 관통하는 경로를 따라서 연속 도약을 펼치는 거지.
감이 와?
일단 삼절칠환창으로 찌르기를 해, 그러면서 고리 하나나 둘 정도를 관통하지, 그 다음에 도약으로 관통하지 못한 고리에 창날이 들어가게 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고리 하나에 공격력 두 배, 거기에 연속 도약으로 또 두 배씩 늘어나.
간단하게 두 번의 연속 도약으로 두 배, 고리 두 개를 관통해서 네 배, 그럼 여덟 배가 되지?
여기에 고리 하나나 도약 하나를 더하면?
아니 하는 김에 도약으로 고리 하나를 더 꿰면?
그걸로 여덟 배가 서른 두 배가 되는 거야.
미친 곱연산이지.
“이런 게 시작 마을 히든에서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줫같이 배가 아팠던 이유가 다 있었던 거라고. 나만큼 이걸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엉뚱한 놈이 가져갔으니까.”
물론 내가 이걸 가장 잘 쓸 수 있을 때는 당연히 남은혜 그 년이 가지고 있던 『운명의 갈림길 나침반』이 내 손에 있을 때의 일이다.
솔직히 과거엔 나침반도 없고 이 삼절칠환창도 없었다.
그러면서 ‘둘 다 내 손에 있으면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망상만 하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이제 그 두 개가 모두 내 손에 들어왔네?”
크하하하하하.
씨발 다 죽었어!
* * *
쾅! 쾅! 쾅! 쾅쾅쾅!
“문 열어! 최영우! 문 열라고!”
하아, 코쿤에서 나오자마자 이게 무슨 악몽이냐.
왜, 저 년의 목소리가 들려?
“뭐야? 꺼져!”
“야, 최영우! 너지, 분명 너였어!”
“뭔 개소리야?!”
“너였잖아. 코스모스 월드에서 나 때리고 간 거!”
“오, 그래서요? 지금 게임을 현실로 가지고 오셨어요? 우리 남은혜씨 아주 바닥까지 가신겁니까?”
아니 게임을 왜 현실에서 따져?
설마 현피라도 해 보자는 거야?
내가 리퍼83이야.
리퍼83이 암살자로 유명했으면 얼마나 많은 유저를 썰고 다녔겠어?
그리고 그랬으면 또 얼마나 많은 미친 새끼들과 엮였겠냐고.
당연히 그 중에는 현피를 뜨겠다고 찾아오는 놈도 수두룩했지.
그런데도 멀쩡한 이유가 뭐겠어?
나도 제법 친다는 소리지.
그래서 어느 정도 소문이 난 후에는 현피 뜨겠다고 찾아오는 놈들도 싹 없어졌는데, 남은혜 저게 지금 그 불문율을 깨겠다는 건가?
게다가 지금 나, 각성까지 했는데?
“아씨, 날 어떻게 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병신같은 년으로 보여?”
“응, 그래.”
“뭐? 야! 최영우!”
“시끄럽고! 왜 왔어? 우리가 서로 얼굴 봐서 좋을 거 없는 사이 아니었어?”
오피스텔 문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
솔직히 과거의 이 때였으면 저 년의 얼굴만 봐도, 저게 백도민 그 새끼하고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 상상 되서 미칠 것 같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안 들고, 진짜 내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덤덤할 거 같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적어도 나의 시간은 꽤나 많이 흘렀다.
“너, 그거 도약 스킬이지? 그렇지!”
와, 대뜸 남의 밑천을 까 보려고 해?
“그거야 니가 그런 거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민폐를 끼치고 그러실까?”
“야,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시작 마을에서 스킬을 썼냐고!”
“에에이, 남은혜, 너 같으면 그걸 알려주겠냐? 응?”
“최영우! 자기야.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나는 할 이야기 없고요! 거기서 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고요!”
“야, 최영우!”
“언제 봤다고 최영웁니까? 서로 매너는 지킵시다?”
“하아, 자기야, 우리 이제 남남인 건 맞지만 그래도 일은 같이 할 수 있는 거 아냐? 응?”
“와, 달가로 내 등을 찌른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너, 얼굴 두껍다?”
“그것도 비즈니스지. 자기 뒤통수는 자기가 간수하는 거 아니었어?”
“네네. 그러니까 나는 통수 칠 년하고는 일 같이 안합니다. 그러니까 꺼지셈!”
“하! 애도 아니고 그게 뭐야? 그러지 말고 우리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하자. 내가 우리 엔디랑들 데리고 영우씨 방송에 출연해 줄게.”
이게 남은혜.
이익이 된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찾아와서 협상을 할 정도로 뻔뻔하면서 이성적이다.
솔직히 찢어진 부부 관계만 빼면, 남은혜와 손잡는 것이 나쁠 건 없다.
더구나 남은혜의 뒤에는 해창 엔터가 있다.
해창 엔터의 계약자들은 이제 곧 길드를 만들 거고, 큰 세력으로 성장할 거다.
그걸 생각하면, 그런 길드의 얼굴마담인 남은혜와의 합동 방송은 나에게 절대 손해가 아니지.
“합방?”
내 목소리도 은근해진다.
“그렇지. 영우씨도 코스모스 월드 방송 시작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우리 엔디랑들 데리고······.”
그 사이에 내가 만든 채널도 확인을 한 모양이네?
하지만.
“됐거든? 너 없어도 시청자 끌어 모을 컨텐트는 넘치거든?!”
굳이 지금 남은혜와 뭔가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게임에서 볼 때마다 한 번씩 뒤통수나 때리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한동안은 남은혜가 도약을 이용한 내 기습을 피하거나 막기는 어려울 거다.
내가 매 번 저 년의 뒤통수를 때리고 가는 것은 재미 요소의 하나 아니겠어?
그러다가 우리가 부부였다가 갈라졌다는 이야기도 퍼지면 더 재밌어 지는 거고.
뭐 거기에 대고 불륜이나 바람이니 하는 양념은 치지 않는 것이 좋다.
그저 흔하디 흔한 성격 차이 정도로 가는 게 좋겠지.
그러면서 방송에서는 나름 찌질한 복수의 리벤지의 티키타카.
뭐 이런 컨셉으로 가면 되겠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남은혜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리 손해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겠지.
“그냥 가라. 그리고 우리 이혼 사유는 대외적으로 성격 차이 뭐 그런 걸로 하자. 니가 백도민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건, 이혼 후부터로 하면 되겠네. 이혼 후, 너를 위로해주고 뭐 보살펴주고 그런 거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그렇다고. 구질구질하게 너와 백도민의 지저분한 관계를 드러낼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아니 왜 갑자기······.”
“해창에서 준비하고 있는 건 하지 말라고 하고. 괜히 이혼의 귀책사유가 나한테 있다느니 어쩌느니 소리 나오면 나도 못 참으니까.”
“으, 으응.”
“그렇게 알고 가라. 어차피 내가 당장, 너하고 합방하고 그러지 않을 거란 건 너도 알잖아?”
“아니 왜?! 시작부터······.”
“해창에서 준비하고 있는 거 있잖아. 그거나 해. 그러다가 나랑 엮이게 되면, 그건 뭐 감초같은 재미거리로 두고.”
“아,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런데, 자기.”
“뭐? 왜 갑자기 목소리는 깔고 그러냐?”
“병원에서도 느낀 거지만, 자기 많이 변했네?”
“변해?”
“감정,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거 같아. 뭔가 뜨거웠던 것이 차갑게 식은 거 같은.”
“그럼, 내가 너 때문에 속이라도 끓고 있어야겠냐?”
“아니, 안 그래서 다행이네. 마음의 부담이 많이 줄어서.”
“마음의 부담? 지랄을 해라. 도장 찍기 전부터 니 마음이 돌아선 건 나도 알고 있었거든?”
“그래?”
“그래. 그러니까 남은 건 비즈니스뿐인 거지.”
“그래서 퀘스트도 함께 했던 거구나?”
“그 때는 솔직히 좀 정리가 안 되고 있었는데, 달가로 찔리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아, 달가 아까웠지. 제대로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그 때부터 우리 운명이 크게 변했지. 크크크크.”
“뭔 소리래?”
“뭐, 내가 그 자리에서 널 찔러 죽이면서 마음 정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었다는, 뭐 그런 소리지.”
“그래, 알았어. 잘 됐네. 그리고 축하해. 나같은 년에서 벗어난 거.”
“됐고! 가 봐라. 필드에서 보자.”
“후우, 그래. 필드에서 봐. 조심하고.”
“와, 무섭네. 남은혜.”
“내 뒤에 해창 엔터가 있어. 잊지 마.”
“오케, 오케! 너도 잊지 마. 내가 리퍼83이야.”
“응. 그래.”
복도를 걷는 남은혜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단단하다.
그래, 그렇게 살아라.
어차피 헤어진 마당인데, 끝까지 악연을 쌓을 이유는 없겠지.
과거에도 게임에서 그렇게 나를 이용해 먹었지만, 그래도 공짜로 부려먹진 않았지.
나도 내가 필요해서 함께 어울렸던 거고.
뭐, 몇 년 흐르는 사이에 나는 점점 뒤처지고, 저 년은 승승장구 했을 뿐.
그게 저 년의 잘못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한 번 뒤엉켜보자고.
철저하게 밟아줄 테니까.
“아, 그래도 콩라인 정도는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줄게. 매번 리퍼83에게 밟히는 콩라인! 컨셉 좋네. 하하하.”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