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도로다!
향이 두 손가락을 폈다.
“두 가지 방도가 있나이다. 첫째는 혼회(混灰)를 사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쇄석(碎石)을 사용하는 것이옵니다.”
“둘 다 짐작이 가지 않는구나. 혼회부터 차근히 설명해 보거라.”
혼회는 시멘트다.
향이 체육관을 지을 때 석회에 여러 재료가 섞였다고 하여 혼회라고 이름지었다.
“땅을 파고 다진 다음 그 위에 큰 돌과 자갈을 깔아 배수를 쉽게 하고, 마지막으로 혼회를 부어 도로를 마감하는 것이옵니다.”
세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혼회를 사용하면 튼튼한 도로를 만들 수 있고, 도로가 망가지더라도 쉽게 고칠 수 있겠지. 허나 혼회는 비싸지 않느냐. 어반저수와 학생당을 지을 때 쓸 혼회도 모자란 판에 도로를 깔 때 쓸 혼회를 어디서 구한다는 말이냐?”
향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마마의 말이 옳지. 지금의 조선에서 시멘트는 비싼 물건이다.’
사실 현대인에게는 납득이 잘 안가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한반도에 널리고 널린 게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 산지다.
재료가 온 사방에 있는데 시멘트값이 비싸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향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원이 부족하다는 현대 한국에서조차 시멘트에 쓸 석회석만큼은 완전히 자급자족할 정도니까 조선에서 시멘트 걱정을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셋이었다.
첫째, 석회석 광산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다.
15세기 조선에서 석회석은 쓰이기는 하나, 현대 한국처럼 대규모로 필요한 자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철장도회까지 만들어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철과 달리 석회석 광산은 제대로 관리되어 있지 않았다.
한마디로 없던 광산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향이 화장품, 연필, 등사기 따위의 잡기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상금을 건 덕에 광산 자체는 많이 발견됐으나 아직 인력이 배치되서 본격적인 생산에 나서려면 수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석회 자체가 비쌌다.
둘째,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고비용이었다.
향이 만든 시멘트는 석회석에 점토를 섞어 구운 초기형 시멘트인 로만 모르타르였다.
이를 위해서는 약 900도의 고온에 석회석과 점토를 구워야 했다.
한마디로 연료값이 꽤 나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석탄 산지에서 공급되는 석탄의 수량이 충분해져야 하는데..
석탄 광산 역시 이제 막 가동을 시작한 참이고, 석탄 산지와 이어지는 도로의 수준이 조악하다보니 한성까지 오는 석탄의 수량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석회석 가격에 석탄 또는 목탄의 가격이 더 해지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셋째, 시멘트 자체의 수준이 떨어졌다.
향이 만든 로만 모르타르는 말 그대로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시멘트 제조법이다.
만들기는 쉬웠으나 현대의 콘크리트에 비하면 강도가 형편없이 약했으며 너무 빨리 굳어 대규모 건축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향은 체육관을 만든 뒤, 곧바로 현대식 시멘트인 ‘포틀랜드 시멘트’의 제조법을 찾았다.
‘치지야. 포틀랜드 시멘트는 어떻게 만들어?’
-석회와 점토를 넣어 1,400~1,450도로 가열한 뒤 나온 덩어리인 ‘클링커’를 분쇄합니다. 그 뒤 응결시간을 조절하는 첨가제인 석고를 넣어 혼합하면 포틀랜드 시멘트가 완성됩니다.
“!”
향은 정말 깜짝 놀랐다.
1450도면 철광석을 녹일 수 있는 온도다.
향이 정말 개고생해서 만든 연철로나 도가니로나 되야 그런 온도를 만들어내고 견딜 수 있다.
그러니까 현대식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철을 만들 때나 쓸 귀한 역청탄을 퍼부어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도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다.
‘야, 그럼 현대에는 시멘트가 왜 싼 건데? 대체 어떻게 만들길래!’
-현대에는 길이가 수십 미터가 넘는 회전가마(Rotary Klin)를 사용해 시멘트를 소성하기에 대량생산이 가능합니다.
‘그게 뭔데 씹덕아!’
-너 내 누인 줄 모르니?! 나도 몰루!(공학 레벨 5)
‘..’
이런고로 혼회(시멘트)는 필요에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모자랐고 그나마도 학교 건설에 전부 투입됐다.
세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 게 당연했다.
“예, 혼회는 비싼 물건이니 지금 당장은 오히려 포석보다 비쌀 것이옵니다. 하지만 견고해 수십 년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고 미끄럽지 않으니 장차 나라의 도로는 전부 석혼회(포틀랜드 시멘트)로 만들어야 할 것이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으니 단양이나 제천 같은 석회 산지에서만 생혼회(로만 모르타르)로 도로를 깔게 하소서.”
다시 얼굴을 편 세종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흐음.. 확실히 석회 산지에 한해, 만들기 쉬운 생혼회를 쓴다면 쉽게 도로를 포장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다른 곳은 혼회를 쓸 수 없지 않느냐. 다른 곳에서는 어찌할 것이냐? 아무래도 네가 이야기할 두 번째 방도에 답이 있을 것 같은데 서둘러 풀어보거라.”
“말씀드린 대로 쇄석을 사용하는 것이옵니다. 땅을 수십 소도(cm)로 파 큰 돌로 지반을 다진 다음, 그 위에 자갈이나 그와 비슷한 크기의 돌을 깔고 마지막으로 돌을 으깨 만든 작은 쇄석을 깔아 도로를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시멘트의 대량생산법을 알아내는 데 실패한 향은 조선에 적합한 도로건설법을 찾기 위해 빡대가리 AI와 씨름을 벌였다.
그 씨름의 결과 찾아낸 도로 포장법이 방금 향이 설명한 ‘매캐덤 도로’였다.
매캐덤 도로는 18세기 영국인 존 매캐덤이 만든 혁신적인 포장도다.
그냥 자갈길 주제에 뭐가 혁신적인 도로냐 싶을 수도 있다.
실제로 좋은 도로는 아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까지 매캐덤 도로보다 좋은 도로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가 자리 잡기 전까지 근대 유럽의 포장도로는 매캐덤 도로였다.
왜냐.
일단 만들기가 쉽다.
좋은 비교군이 바로 로마식 도로다.
로마식 도로는 수천 년이 지나도 멀쩡할 만큼 잘 만들어져 있다.
땅을 한참 파고 들어간 뒤 이것저것 설치하고 그위에 포석(鋪石)까지 깔아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로를 만들면 한 세월이 걸리고, 그 시간만큼 건설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당장 저렴하고 쓸만한 도로가 필요한 조선에서는 매캐덤 도로가 훨씬 나았다.
하지만 세종은 만족하지 못했다.
“고작 그 정도로 튼튼한 도로를 만들 수 있겠느냐? 혼회 도로에 비해 너무 부족한 것 같구나.”
“부족하기야 부족합니다만 그렇다고 못 쓸 정도는 아닙니다. 잡석을 깔아 울긋불긋한 도로가 뭐가 좋은 도로냐 싶으시겠사오나 비온 뒤나 눈이 녹았을 때 도로가 진창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로의 가치는 충분하지요.”
향도 세종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했다.
이왕 도로를 지을 것 로마 가도처럼 튼튼한 도로를 짓는 게 장기적으로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향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순한 마음으로 한반도에서 도로를 지으려했다가는 헬조선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동결심도 문제 때문이다.
동결심도란 땅이 얼어들어가는 정도를 뜻한다.
동결심도가 1m라면 땅이 1m 깊이까지 꽝꽝 얼어붙는다고 보면 된다.
이 동결심도가 깊을수록 도로를 만들기가 아주 더러워진다.
왜냐.
당연한 말이지만 땅에는 수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수분은 얼어붙어 얼음이 되면 부피가 팽창된다.
그리고 부피가 팽창된 땅은 위로 치솟는다.
그럼 그 위에 있는 도로는 어찌 될까.
슬프게도 기껏 단단히 다져놓은 도로가 얼어붙어 치솟아 오른 땅과 부딪혀 엉망이 된다.
멀쩡하던 포장도로에 금이 쩍쩍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동결심도 때문이다.
그리고 헬조선의 동결심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깊은 편이다.
로마식 가도 같은 튼튼한 도로를 지으려면 로마인들보다 훨씬 많이 삽질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냥 로마식 도로도 돈이 없어서 못 만드는 거지 조선에서 더 깊고 튼튼한 도로를 지어야 한다? 될리가 있나!’
이에 비해 매캐덤 도로는 천사다.
그냥 돌을 쌓아 만든 도로기 때문에 도로가 갈라질 염려가 없다.
땅이 솟아봤자 수레로 몇 번 밟고 지나가면 다시 평평해진다.
그래도 망가졌다?
근처에서 돌무더기 좀 부숴 넣으면 복구 완료다.
싸고 튼튼하며 고치기 쉬운 도로.
그야말로 조선을 위한 도로였다.
“으음..”
세종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정 걱정이 되옵거든 쇄석도로의 시험 결과를 보시고 결정하시지요.”
“시험?”
“예. 일거리 없는 백성들을 모아 후원과 어반저수 사이에 쇄석으로 된 포장도로를 깔고 있사옵니다. 한 100미도(m) 정도 깔았는데 소자가 만든 큰 마차가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었사옵니다.”
세종이 의외라는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효험이 있느냐?”
“예. 운동도 끝났으니 함께 후원으로 가셔서 마차에 타보시지 않겠사옵니까? 마차에 올라 어반저수의 건설현장까지 가보시면 차이를 느낄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
“오, 좋은 생각이구나. 한번 가보자!”
******
후원에 도착한 세종은 향과 장영실이 만든 마차를 보자마자 찬사를 쏟아냈다.
“제갈량이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를 만들었다며 중국인들이 자랑하나, 너와 장영실이 만든 수레에 비하면 달빛 앞의 반딧불이와 같겠구나!”
마차에 올라 자리에 앉은 세종은 몇번 뒤척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선언했다.
“승차감이 아주 좋구나. 내가 탈 안여(安輿)를 이와 같은 것으로 새로 만들도록 하라!”
“예, 아바마마!”
새 차(?)를 주문한 뒤 즐거운 표정이 된 세종이 향과 장영실에게 덕담을 늘어놨다.
물론 그렇다고 일을 등한시 하지는 않았다.
세종은 마차를 타고 어반저수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서 쇄석도로와 비포장 도로의 차이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불룩 튀어나온 돌무더기를 지나야 할 테니 불편하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구나. 비와 눈이 내렸을 때는 오히려 낫겠어.”
“쇄석 위에 땅을 파고 남은 흙을 덮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도로 자체가 땅보다 높으니 비가 오더라도 도로가 물에 가라앉을 염려가 적사옵니다.”
“눈으로 보아하니 더 확실히 알겠다. 도로를 전국에 깔아야 중앙의 명령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닿으리라는 네 이야기도 더욱 공감이 가고.. 그래서 결정했다.”
세종이 근엄한 얼굴로 향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공조판서 이맹균, 호조판서 이지강과 함께 도로를 만들 계획을 세워보거라. 네게 전권을 주겠다.”
“예..? 소자가 계책을 올리는 게 아니라 직접 일을 처결하라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네 손으로 네가 원하는 대로 이 나라를 바꿀 기회를 주겠다. 어떠냐. 하겠느냐?”
향의 눈이 잘게 떨렸다.
‘게장을 좋아하거나 도망치기를 즐겨하는 임금이었다면 아들에게 권한을 주는 척 아들이 권력 욕심이 있나 확인하는 수작질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향이 고개를 저어 의심을 떨쳐냈다.
‘아바마마의 성정을 고려하면 정말 일을 맡기시려 하는 거겠지. 이건 기회다!’
향이 화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온 조선을 포장해드리겠나이다!”
“네가 그리 단언하니 권한을 내리는 내 마음도 편하구나. 어디 한번 잘해보거라! 하지만 국용을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될 것이야.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도로를 닦을 방도를 마련해보거라.”
향이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 재원을 확보할 방도를 여럿 구상해뒀사옵니다.”
“그게 무어냐?”
“작게는 사대부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요. 크게는 나라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옵니다.”
“오, 다른 방도도 궁금하나 사대부의 힘을 빌린다는 게 더 궁금하구나. 그 구두쇠들의 힘을 어찌 빌린다는 말이냐?”
“백부에게 마차 한 대를 장만해주려 하옵니다.”
“?”
- 작가의말
1.시멘트 제조공정
향과 격물치지는 모르지만 저는 압니다.
(Youtube) 뒤탈 없는 레미탈, ‘4분 안에 이해되는 시멘트 만드는 과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매캐덤 도로.
(Youtube) TimeFrame Tales, ‘Macadam Roads(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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