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빵야빵야?! 너 감옥!(2)
2,110포인트.
처음으로 천 단위가 넘는 포인트가 모였다.
“100포인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던 시대는 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상태창을 켰다.
“일단 화학과 관련해 할 일이 많으니까 자연과학을 5렙으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야!”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3레벨에서 4레벨로 올라가는데 500포인트가 필요하다고?!”
0Lv->1Lv 100 포인트
1Lv->2Lv 150 포인트
2Lv->3Lv 200 포인트
가 들었다.
“상식적으로 다음은 아무리 높아야 300포인트 아닌가.”
2,000포인트를 이용해 단숨에 AI를 업그레이드하려던 향의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다시 자리에 앉아 서안을 톡톡 두들기며 고심에 빠졌다.
2,000포인트로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최대한의 이익을 낼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일단 하나만 확인해보자.’
“격물치지, 세종실록 지리지에 석탄 산지가 나와?”
-세종실록 지리지는 세종특별시에서 열리는 토론대회입니다. 주요 참가자는 악성 민원인과 9급 공무원이며..(인문학 레벨0)
향은 격물치지의 헛소리가 끝나자마자 곧장 인문학 레벨을 올렸다.
“다시 알려줘.”
-세종실록 지리지는 세종대왕시절 만들어진 지리서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몰루?
“오.”
인문학 레벨을 하나 더 올렸다.
“다시!”
-세종실록 지리지는 1432년 ‘신찬팔도지리지’로 완성되고 1454년 ‘세종장헌대왕실록’을 통해 보완된 지리지입니다. 1424년 11월 세종이 변계량에게 지시하여 만들었으며.. 석탄에 관한 내용은 없습니다.
“아바마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조선에서 석탄이 나는 줄 몰랐다는 이야기인데..”
달리 말하면, 조정에서 상금을 걸어도 석탄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상금을 걸어야겠어. 한 1천 섬쯤 걸면 어디서든 석탄이 나오겠지.”
아마 검은 돌만 보면 환장하며 관아로 가져오리라.
“아, 이왕 올린김에 다른 것도 테스트 해봐야지. 치지야.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설명해줘.”
해례본을 이용해 세종이 한글을 빨리 창제하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뜌땨.. 뜌우땨이 뜌땨땨 우땨야!
“..”
아무래도 AI의 지능이 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AI 지능을 1레벨에서 4레벨로 단숨에 올렸다.
850포인트가 한 방에 날아갔으나 개의치 않았다.
‘계속 레벨을 올리다 보면 넷지피티 3.5 수준이라는 지능을 윗 단계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거야.’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치지야. 다시 대답해줘.”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3년 만들어진 책입니다.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몰루?
향의 눈길이 절로 인문학 레벨로 향했다.
“아니지!”
한글의 발명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다음 일을 생각할 때 다른 레벨을 올리는 게 더 급했다.
‘자연과학 레벨을 4로, 질문회수 레벨을 3으로 올린다!’
다시 한번 850 포인트가 빠져나갔다.
남은 포인트는 단 160.
혹시라도 설계도를 뽑아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걸 감안해야 하니, 정말 최소 포인트만 남은 것이다.
‘허무하네.’
포인트 부자의 꿈은 한밤의 꿈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강해졌다!”
발전된 AI와 함께한다면 초중전차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리라.
당장 연철로만 따져봐도 그렇다.
연철로의 개발은 조선의 철기문명을 한 단계 진보시킨 대혁신이었다.
그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승자총의 가격.
처음 승자총이 만들어졌을 때, 향은 승자총 1정의 가격을 듣고 두 귀를 의심했다.
“4섬? 총 한 자루를 만드는 데 백미가 4섬이나 들었다고?”
“아이고, 이것도 구리를 쓰지 않아서 값이 헐하게 나온 것이옵니다. 만약 다른 총통처럼 구리를 썼으면 가격이 더 올랐을 것이옵니다요.”
장인 여럿이 달려들어 낑낑댄 데다 원자재인 철의 값이 비싸니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연철로가 이런 상황을 뒤집었다.
연철로에서 연철이 쏟아져 나오고 분업으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조총의 가격은 획기적으로 떨어졌다.
“1자루에 1석(石-섬과 같음) 5두(斗)!”
일반적으로 1섬이 15두라는 것을 고려할 때, 총의 생산단가가 3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후후.. 조총은 시작에 불과하지.”
철의 대량생산은 철의 가격 하락시킨다.
값이 헐해지니 철제 농기구 같은 철제 도구의 수요가 늘고, 그만큼 공급도 많이 늘어난다.
장비가 좋아지니 효율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결론적으로 모든 분야의 생산성이 개선되고, 발전에 속도가 붙는다.
초중전차 개발을 위한 인프라 발전의 효시(嚆矢)가 쏘아진 것이랄까.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초중전차를 만들 수 있는 고도화된 산업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서는 개발해야 할 물건이 차고 넘쳤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지. 우선은 업그레이드다!”
******
수 주가 흘렀다.
그동안 향은 대장간의 인원을 확충하고 조총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에 매진했다.
그 결과, 대장간의 인원은 어느새 40여 명으로 늘었다.
새로 들어온 이들은 조정에 갑주를 만들어 바치던 갑옷장과 군기감에서 작은 총통을 만들던 총통장이었다.
“제작은 순조로운가?”
향의 질문에 장영실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이옵니다. 전하께서 입으실 갑옷은 이미 완성되었고, 무관들에게 팔 한정판 갑옷도 순조롭게 생산 중이옵니다.”
“역청과 아세돈을 만들 건류장비는 어떻게 됐나.”
“통나무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무쇠 통의 주물을 뜨고 있사옵니다.”
“순조롭군. 그럼 이천 장군은 언제 온다던가. 미뤄뒀던 총통 실험을 서둘러 하고 싶은데.”
“아, 동지총제는 사격장에서 저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래? 그럼 총통들도 이미 다 설치가 끝나 있겠구만?”
“예.”
“어서 가지! 오늘 시험은 특별한 날이 아닌가.”
“오셨사옵니까.”
이천이 총통수 여럿과 함께 향을 맞이했다.
“준비는 다 끝났소?”
“예.”
이천이 사격장을 가리켰다.
다섯 자루의 승자총이 거리를 두고 탁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1번이 총열의 두께가 가장 얇고 5번이 가장 두껍사옵니다. 전부 90발 이상의 사격을 견뎌낸 총통들이옵니다.”
지난 수 주 동안 향은 총열의 두께를 최대한 얇게 만드는 시험을 했다. 총기의 무게를 줄이면서 재료값도 낮추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바로 쏴보지.”
고정된 총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목책 뒤로 몸을 숨겼다. 총통수들이 승자총의 방아쇠에 연결된 노끈을 세게 잡아당겼다.
탕-!
다섯 자루의 총통이 무사히 발사됐다.
“좋아. 다시 장전하고 쏴보거라!”
향의 지시에 총통수들이 승자총으로 가 총강을 청소하고, 탄을 잰 뒤 목책으로 돌아왔다.
“쏴라!”
탕-!
쾅-!
다섯 자루 총 중 한 자루가 폭발했다. 총열이 찢어지고 충격을 받은 나무 몸체가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런.. 1번 보다는 두꺼워야겠군. 좋아. 다시 쏴보거라.”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격노한 표정의 세종이 향과 이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
“세자가 석탄을 찾는 자에게 상금을 걸었다고.”
박 내관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가장 좋은 검은 돌을 찾는 자에게 백미 300섬을 주고 그보다 못한 자들에게는 200섬, 100섬을 내리기로 했사옵니다.”
“석탄이 아니라 검은 돌이라고?”
“예. 세자가 궁구해보니 석탄 외에도 쓸모가 있는 검은 돌이 있을지 모른다 하옵니다. 그래서 타지 않더라도 검은 돌이면 일단 바치라 하였사옵니다.
“그렇구나. 아무튼 세자가 벌어들인 재물을 나라에 보탬이 되는 데 쓰니 기껍다.”
박 내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자의 평판이 오를수록 자신의 출셋길도 단단해지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자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동지총제와 함께 총통을 시험하고 있사옵니다.”
세종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총통을?”
“예. 총통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총열을 얇게 만드는 시험을..”
현명한 세종은 시험의 목적과 결과를 단숨에 꿰뚫었다.
“그럼 터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그건..”
박 내관이 말을 흐렸다.
향의 곁에 있으면서 승자총이 깨어지는 걸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름 안전을 지키니 괜찮다고 했다간 목이 달아나겠지?’
박 내관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심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세종이 박 내관을 지나쳐 밖으로 나섰다.
내시와 궁녀들이 갑자기 움직이는 세종을 쫓아 황급히 움직였다.
잰걸음으로 뛰듯이 걷던 세종이 후원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총성이 울렸다.
마음이 불안해진 세종이 황급히 내달려 후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쾅-!
세종의 눈앞에서 총이 화려하게 폭발했다.
총몸에서 분리된 나무 파편이 목책을 거세게 때렸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목책 위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던 향의 모자에 틀어박혔다.
식겁한 세종이 황급히 사격장으로 나아갔다.
향은 멀쩡했다.
세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세종의 노호성에 향과 이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종을 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성상(聖上)을 뵈옵니다.”
세종이 격노했음을 파악한 이천이 깍듯이 예를 차렸다.
그러나 제멋대로 사느라 눈치를 밥 말아 먹은 향은 세종의 분노를 눈치채지 못한 채 방긋방긋 웃었다.
“아바마마, 여기는 어쩐..”
“네놈은 목숨이 아홉이냐?”
“예? 그게 무슨..”
“네 사모(紗帽)를 보아라.”
향이 모자를 벗어 살폈다.
꽤 큰 나무조각이 모자에 박혀 있었다.
“아..”
향은 그제야 세종이 왜 화가 났는지 눈치챘다.
“아? 머리에 나무판자를 박고 한다는 말이 그것이냐!”
“오해이시옵니다. 소자는 안전을 철저히 지켜..”
찌익-.
향이 움직이자 모자에 꽂혀있던 조각이 사모를 찢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너덜너덜해진 사모를 본 세종이 크게 외쳤다.
“이놈을 당장 하옥하라!”
******
“이건 쬐끔 억울한데.”
옥에 갇힌 향이 황망한 표정으로 옥의 창살을 바라봤다.
상선이 그런 향을 한심한 눈길로 바라봤다.
“전하께서 이르시길, 효경을 세 번 쓰기 전까지 옥에서 내보내지 말라 하셨사옵니다.”
“그건 좋은데 효경은?”
“이미 외웠을 테니 문방사우(文房四友)만 챙겨주라 하셨사옵니다. 그럼 소신은 이만.”
상선이 자리를 떴다.
“..”
향이 조용히 고개를 돌려 효경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깜지는 싫은데..”
하지만 세종의 분위기로 보아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여럿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미리 대비를 해놔야겠어.’
‘깜지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빅플랜을 짜며 열심히 효경을 베껴 적었다.
“저하, 괜찮으신지요!”
“장 별좌?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나. 바깥 상황은?”
“다행히 전하께서는 진노를 거두셨사옵니다. 하지만 사헌부 지평 조극관을 필두로 한 대간들이 대장간을 닫고 동지총제를 벌해야 한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사옵니다.”
“이것들이!”
이슈가 생기면 득달같이 몰려들어 개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상대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참자 참아.. 민주주의의 기본이 언론의 자유잖아? 유일한 현대인으로서 넓은 마음을 갖고..’
향이 붓을 집어던졌다.
“꼴 받게 하네 증말!”
아무래도 간관들의 입을 다물게 할 새로운 성과를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장 별좌. ‘선반(旋盤)’은 준비됐나?”
장영실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설계대로 완벽히 만들어졌사옵니다. 이제 시험만 하면 되옵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좋아. 내일, 반격의 봉화를 올린다!”
“알겠사옵니다! 헌데..”
“?”
“내일까지 나오실 수는 있으신지..”
장영실이 쌓여있는 종이 뭉치를 슬쩍 쳐다봤다.
먹이 묻은 종이보다 새하얀 종이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향이 헤실헤실 웃으며 코를 쓱 닦았다.
“조졌네.”
- 작가의말
1.조총의 가격
초기 조총의 가격은 3석 5두(전쟁사를 다시 쓰게 한‘조총-박재광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였습니다.
그러다 인조 무렵, 승정원일기 인조 3년, 11월 10일 기사에서는 조총의 생산단가를 면포 15필에서 10필로 낮출 것을 이야기했고, 1808년 저술된 만기요람에서는 2석 10두(만기요람)로 줄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시제품 조총의 가격을 4석으로 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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