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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개망나니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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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운전사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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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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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 빅플랜(2)

DUMMY

“60만 근? 지금 60만 근이라 하였느냐.”


“예.”


세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이 태산같은 덩치와 맞물려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했다.


어른의 정신을 가진 이향조차 그 기세에 풀이 죽을 정도였다.


‘덩치가 장군감이시라 그런가. 곰이 앞에 앉아있는 것 같네..’


“지금 이 자리는 부자간의 정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군주가 신하를 책(責)하는 자리다. 허언으로 군주의 눈을 가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허언이 아니옵니다.”


“허언이 아니다. 그럼 한 해에 60만 근의 쇠를 만들 수 있는 가마를 네가 지을 수 있다는 말이냐?”


“예, 그것도 그냥 쇠가 아니라 시우쇠(연철)를 무쇠(주철)처럼 곧바로 뽑아낼 수 있사옵니다.”


“시우쇠를 무쇠처럼?”


평생을 서책만 껴안고 산 세종은 유학뿐 아니라 잡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게다가 임금이 된 뒤에는 군기(軍器)를 점검할 일이 많았고 쇠를 다루는 일도 많았기에 쇠의 종류와 생산법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세종이 아는 시우쇠를 만드는 순서는 크게 셋이었다.


첫째, 쇠부리가마(제련로)에서 철광석을 가열해 잡쇠덩이를 얻는다.


둘째, 얻은 잡쇠덩이를 강엿쇠둑(정련로)에서 다시 가열하고 파쇄해 정련한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엿가락 같은 쇳덩이가 생긴다.


셋째, 판장쇠둑(단조로)에서 두들겨 철괴로 단조한다.


그 과정에서 쇠를 여러 차례 녹였다 굳히기를 반복해야 하고, 쇠를 한참 동안 두들겨야 하니 많은 품이 들어간다.


반면, 무쇠는 그에 비해 만드는 법이 간단했다.


무질부리가마(주물로)라 불리는 뜨거운 가마에서 쇠를 쇳물로 녹여 뽑아낸 뒤 굳히면 그게 바로 무쇠였다.


심지어 무쇠는 틀에 붓기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찍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쓰는 농기구는 도구를 만들기 쉬운 무쇠를 사용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품이 많이 드는 시우쇠보다 무쇠를 쓰는 게 좋아 보인다.


하지만 무쇠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나 무쇠로 찍어낸 도구들은 강한 충격을 받으면 도자기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서 병장기를 만들 때는 시우쇠를 다시 한번 두들겨 만든 참쇠를 쓰거나 화덕에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뽕쇠와 시우쇠를 섞어서 만들었다.


그래야 충격에 깨지지 않으면서 쉽게 구부러지지도 않는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두정갑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쇠판은 모두 시우쇠를 사용한다.


한마디로 무구(武具)를 갖추려면 시우쇠가 꼭 필요했다.


그런 시우쇠를 무쇠처럼 뽑아쓸 수 있다? 그야말로 대혁신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내심 허황된 이야기라 생각했음에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 가마의 구조가 어떻게 되느냐?”


“열을 반사하는 반사로를 만들려 하옵니다.”


“열을 반사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물을 끓였을 때 생기는 뜨거운 김이 위로 흐르잖사옵니까?”


“그렇지.”


“그때 천장을 막고 옆으로 구멍을 내면 김이 어디로 흐르겠사옵니까.”


“당연히 구멍이 난 쪽으로 흐르겠지.”


“그 이치를 이용해 목탄을 태운 연기만으로 쇠를 녹여 시우쇠를 만들 수 있사옵니다.”


“연기만으로 쇠가 녹는다는 말이냐?”


향의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궁구한 바에 따르면 그렇사옵니다.”


“..”


세종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슬쩍 튀어나온 입술에서 고심이 묻어났다.


‘만약 다른 이가 말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으리라. 허나..’


하지만 세자는 이미 방구석에 앉아 얻은 지식(세종의 입장에선 그렇게밖에 안 보였다.)으로 세상에 다시 없을 갑옷을 만들었다.


보여준 실력이 있으니,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없었다.


‘허락하는 게 맞다.’


결단을 내린 세종이 서안의 탁하고 내리쳤다.


“좋다. 대장간을 짓는 것을 허하마. 단! 내 뜻대로 국고나 내탕금을 꺼내 쓰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향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따졌다.


“아니, 그럼 어떻게 대장간을 짓사옵니까.”


“그거야 네가 할 일이지. 검증되지 않은 일에 국용을 낭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 하다못해 옥에 갇힌 박 내관과 장 별좌라도 빨리 풀어주시지요.”


“그래. 주인을 잘못 만났을 뿐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풀어주마. 더 필요한 게 있느냐?”


“없사옵니다.”


“그럼 이야기는 끝났다. 이만 물러가거라!”


향이 불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뒤 강녕전을 빠져나갔다.


세종이 조용히 읊조렸다.


“재물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함부로 낭비하지 않겠지.”


세종은 향이 재물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지학(15살)이 될 때까지 대장간을 짓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철이 들기 전에 국용을 마구잡이로 쓰는 버릇이 든다면 송 휘종처럼 나라의 곳간을 제 주머니처럼 빼 쓰는 암군(暗君)이 될지도 모른다.”


송 휘종은 예술품 수집과 정원 꾸미기를 좋아했다.


그냥 들으면 황제치고는 참 소소한 취미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예술로 나라를 파탄 냈다.


황제에게 예술품을 바치고자 간신들이 부호의 예술품을 강탈했다.


정원을 꾸밀 커다란 기암괴석을 모은다고 백성에게 돌을 끌게 했고, 돌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논밭과 집을 박살 냈다.


심지어 수도에 정원을 지을 공간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성벽을 허물게 했다.


백성은 도탄에 빠졌고, 무너진 성벽으로는 외적이 침입했다.


그렇게 송나라는 망했다.


세자가 무기에 빠져 국정을 등한시한다면 조선도 같은 꼴이 날 수 있었다.


‘왕조의 정통을 생각했을 때는 첫째가 왕위를 잇게 하고 싶으나 난행을 일삼는다면 아바마마가 형님을 몰아내고 날 용상에 앉힌 것처럼 결단을 내리리라!’


세종은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제발 그런 일이 없게 해다오..”


******


“이런 젠장!”


동궁으로 돌아온 향은 곧바로 모자를 집어 던졌다.


“돈도, 사람도 없이 어떻게 대장간을 만들라고!”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칭얼댈 수는 없었다.


“살아생전에 초중전차를 보려면 어떻게든 제철산업을 키워야 해!”


15세기 조선의 철강 생산량을 21세기 한국에 비하면 딱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0.’


2021년 한국에서는 7,100만여 톤의 강철이 생산됐다.


반면 조선은?


1450년대, 조선 조정이 공납으로 받은 공철의 양이 한 해 15만 근이었다.


톤으로 환산하면 90톤.


이것도 참쇠(강철)가 아니라 무쇠와 시우쇠 등을 전부 합친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초중전차?


향이 기준점으로 삼는 독일제 초중전차 마우스를 만들려면 ‘강철’ 200톤이 필요하다.


매해 얻는 강철을 다 모은다 쳐도 살아생전에 200톤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강철의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강철을 잔뜩 뽑아내려면 어떻게든 퍼들법(Puddle Process)을 쓸 수 있는 반사로를 지어야 하는데..”


돈도 인력도 구할 방법이 없다.


그 사실이 향을 답답하게 했다.


엄지손톱을 짓씹고 방을 서성이며 고심에 잠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향이 손뼉을 쳤다!


“그래, 그거야!”


“저하, 무슨 일이신지요?”


“병조판서를 이곳으로 불러오라!”


******


“저하, 소신을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병조판서 조말생은 향의 뜬금없는 호출이 당황스러웠다.


‘안 그래도 세자가 만든 갑주를 양산하라는 주상의 명으로 바빠 죽겠는데 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가!’


향은 말없이 조말생을 빤히 쳐다봤다.


‘이 양반이 세종의 노예 조말생인가.’


조말생.


태종 1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태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엘리트 중 엘리트로 출세가도를 달린 인재다.


지금까지는.


3년 뒤, 조말생의 인생은 비틀린다.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뇌물 수수.


김도련이라는 자가 불법으로 얻은 노비를 받은 것이 걸려 참형의 위기에 처한다.


그야말로 절체절명.


그 순간, 세종이 나서 그를 구한다.


그리고 죄를 감싼 대가로 그를 노예처럼 부리기 시작한다.


일을 주고 또 주며 사람을 갈아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심했는지 조말생은 사직을 ‘13번’이나 청한다.


세종은 사직을 윤허치 아니하는 것으로 맞섰다.


일흔이 다 되어 은퇴를 간청하는 그에게 궤장(지팡이와 의자)를 주며 일을 시켰다.


심지어 말년에는 풍질이라는 병에 걸려 오늘내일하는 상황에서 사직을 구걸했으나, 그조차 거부당했다.


결국 그는 끝끝내 퇴직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었다.


“저하..?”


“아, 미안하오.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 내가 그대를 부른 건 병조의 자금을 얻고자 함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바마마께서 궁 안에 대장간을 짓는 것을 허하여 주셨는데 대장간을 지을 돈이 없소. 하여 병조의 도움을 받아 대장간을 짓고자 하오.”


조말생은 예법도 잊은 채 고개를 올려 세자를 쳐다봤다.


‘세자가 돌았나?’


궁궐에 대장간을 짓겠다는 것도 어이가 없으나, 사사로운 일에 병조의 예산을 끌어다 쓰겠다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불가하옵니다! 병조에 쓰이는 국용은 이 나라 조선의 안위를 위해서 쓰여야 하옵니다. 저하께서 쇠를 다루고 싶으신 마음은 이해하오나, 청을 들어드린 것은 어렵겠사옵니다.”


“내 대장간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꼭 필요한 곳이오.”


“그럼 주상전하께 병조의 국용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주시지요.”


“흐음.. 어쩔 수 없지. 그럼 이 일은 없던 일로 합시다.”


“감사하옵니다.”


“아, 그런데..”


“?”


“그, 김도련이라는 자를 아시오? 그가 노비 모으기를 참 좋아한다는데..”


흠칫.


조말생이 어깨를 떨었다.


“송구하오나 처음 듣는 이름이옵니다.”


“그럴 리가. 내 듣자 하니 그대가 김도련에게 노비를 여럿 받았다 하던데..”


“그걸 어찌.. 헙!”


조말생의 낯빛이 희게 질렸다.


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디보자.. 노비를 열 구만 받았다 쳐도.. 그 값을 더하면.. 어이쿠! 참형을 면치 못하겠구려.”


쿵-.


조말생이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절규했다.


“살려주시옵소서!”


부들부들 떠는 조말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들겼다.


열 살 꼬맹이가 어른의 등을 두들기는 모습이 퍽 우스웠으나, 당사자인 조말생은 혼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이제 갓 열 살이 된 이가 임금도 모르는 일을 어찌 알아냈다는 말인가!’


“걱정 마시오. 그대가 내 대장간에 국용을 쓰도록 허한다면 이 사실은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오.”


‘어차피 3년 뒤에는 밝혀지겠지만.’


쿡쿡.


향이 웃음을 참으며 조말생을 다독이자 공포에 질렸던 조말생이 안정을 되찾았다.


“저하의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사옵니다!”


조말생이 임금에게나 할법한 말을 하며 세자에게 깍듯이 예를 표했다.


“좋소. 그럼 내일 상참에서 병조의 국용을 대장간에 쓴다고 말하시오.”


조말생이 향의 눈치를 흘깃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송구하오나 한 가지 문제가 있사옵니다.”


“뭐요?”


“소신이 주청한다고 하여도 다른 대신들과 대간(臺諫)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럼 전하께서 윤허치 아니하실 것이온데.. 어찌 해야 할런지요?”


간단히 말해 ‘신하들이 돈지랄이라 반대하면 니가 어쩔 건데?’라는 뜻이었다.


“음.. 그건 좀 문제군.”


향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말생이 반색했다.


“그럼 대장간은 없던 일로..”


“그건 안되지! 내 대장간은 반드시 지어져야 하오.”


향의 단호한 표정을 본 조말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이렇게 합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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