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똑바로 서라 최해산!(2)
향의 차가운 한마디에 최해산의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뭐해. 어서 먹지 않고.”
“으으-.”
최해산이 부들부들 떨며 교수가 내민 함에 다가갔다.
교수가 함을 열자 황금빛 덩어리가 요사하게 빛났다.
피가 빠져 새하얗던 최해산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최해산의 다리가 호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벌벌 떠는 최해산의 곁으로 전중의가 다가왔다.
그가 부처처럼 자애로운 미소로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처음이 어렵지 계속 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으으-.”
전중의가 함을 내밀었다.
슥슥-.
[춘추오패의 오왕 부차조차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월왕 구천에게 똥을 먹으라 지시하지 않았다. 세자의 기행이 날로 기괴해지니 이는 폭군의 징조라. 나라의 명운이 실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게 패해 포로가 됐다. 구천은 포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차의 노비로 살며 부차의 건강을 살피겠다며 그의 변을 핥았다.
그러니까 구천은 자의였다.
그에 반해 최해산은 겁박에 못 이겨 억지로 행하는 것이니 차이가 심하긴 했다.
“아잇 싯팔! 꼴 받게 할래? 죽든가 먹든가. 하나만 하라는 게 그리 어렵나?!”
최해산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된장을 푸듯 푹 찍어 한입에 삼켰다.
그 모습을 본 전중의가 크게 당혹했다.
“아니 그냥 맛만 보면 되는데 그걸 왜 퍼먹어..”
최해산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역겨움을 참지 못한 최해산이 뒤로 돌았다.
황급히 도는 최해산의 팔에 맞은 함이 날아가며 내용물을 흩뿌렸다.
가까이 있던 전중의와 향이 그 내용물을 정면으로 맞았다.
향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선넘네..”
최해산은 그 꼴을 보지 못하고 구덩이로 다가가 토악질했다
“우웩-!”
몇 번을 반복해 토악질을 한 최해산이 지쳐 쓰러졌다.
바로 그 순간.
“야악-!”
향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귀한 초석밭에 토를 해? 그러다 밭이 망가지면 니가 다시 쌓을 거야!”
다시 쌓는다는 말에 식겁한 최해산이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니옵니다!”
“너는 맛만 보면 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장인들은 매일 똥을 헤집고 뒤집어써야 한다. 죄인이 그 정도 일도 못 하나? 오늘 목을 쳐줄까!”
쓰러져 있던 최해산이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억울함, 후회, 반성이 섞인 실로 복잡한 눈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향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똑바로 서라 최해산! 조정의 녹을 먹은 자가 수십 년에 걸쳐 백성이 피땀 흘려 바친 재물을 훔쳐 놓고 편하게 살 줄 알았나?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죄는 벌을 받게 돼 있다. 의학교수!”
똥이 온몸에 튀었음에도 담담한 표정의 전중의가 고개를 숙였다.
“예, 저하.”
“이놈이 제대로 일어설 때까지 매일 매화를 먹이게.”
“!”
향의 충격적인 선언에 최해산이 벌떡 일어나 빳빳이 섰다.
“일, 일어났사옵니다!”
“흐음..”
향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최해산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좋아, 기본은 됐군. 전 교수, 아까 지시는 잊게. 그냥 일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가르치게. 쑥물과 면마근(綿馬根)을 꾸준히 먹이되 양에 주의하고.”
쑥물과 숫고사리의 뿌리인 면마근은 구충 효과가 있다.
최해산이 오래오래 초석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아야 했다.
“예, 저하.”
향이 다시 최해산을 노려봤다.
겁에 질린 최해산이 몸을 바싹 세웠다.
“익위사의 병졸과 장인들, 그리고 전 교수가 네가 매일 맛을 보는지 확인할 거야. 그러니까 처신 똑바로 하라고!”
최해산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사옵니다!”
슥슥-.
[세자가 국용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옳다. 그러나 그를 명분으로 신하를 핍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자기 똥을 신하에게 먹이는 군주라니. 고금을 통틀어 들은 바가 없다.]
“야, 사관. 너 또 내 악담 적지?”
슥슥-.
[세자가 사관에게 악담을 적냐 물으니 이는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역시 세자는 금수..]
향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 마음대로 적어라. 평가는 역사가 하겠지. 어? 최해산, 똑바로 서라고 했지! 똥물에 튀겨줘야 정신을 차릴래?!”
향의 일갈과 함께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똥장군’ 최해산의 전설이 이제 막 시작됐다.
******
세종의 기묘한 표정으로 고심에 잠겼다.
“그러니까 세자가 최해산에게 똥을 먹였다..?”
“그냥 먹인 것이 아니오라 초석밭의 관리를 맡기기 위해 일을 맡긴 것이옵..”
“결국 똥을 먹인 건 먹인 것 아닌가. 최해산이 한 일이 괘씸한 것은 사실이나 국법에 없는 벌을 사사로이 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세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걸주도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었을지언정 사람을 똥물에 튀겨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대간들이 또 난리를 치겠구나.”
얼마 전까지 세종은 하루하루가 편안했다.
향 덕분이었다.
향이 만든 새 기물들은 하나하나가 백성을 위한 마음이 묻어나는 좋은 기구들이었다.
농서를 편찬하자는 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농서를 편찬하자는 향의 이야기를 듣고 향이 드디어 민본에 관심을 뒀다고 생각해 크게 기뻐했다.
그 절정은 온도계였다.
향의 기준에서 온도계는 진공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300도 정도까지만 올라가도 빵하고 터져 버리는 반쪽짜리였다.
그럼에도 세종에게 온도계는 기적이었다.
온도계 자체만 놓고 봐도 좋지만, 여기에 새로운 기능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바로 습도계.
향은 AI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다 온도계로 습도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방법은 간단.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구 온도계와 온도계를 젖은 면직물로 둘러싼 습구 온도계의 온도 차로 습도를 계산하면 된다.
물론 이 역시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정확한 기압을 측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대략적인 습도를 유추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냥 ‘온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습도가 높고 온도 차이가 크면 습도가 낮다.’라고 알 수 있는 정도랄까.
간단하고 직관적이되 한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온도와 습도를 알고 이를 꾸준히 기록한다면 비와 가뭄을 예견할 수 있다!”
농사일에서 비와 가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이라면 이 사실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농서를 제안하고 이런 기물을 만드는 걸 보아하니 세자가 초중전차라는 삿된 꿈보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구나!”
세종은 그리 믿으며 기뻐했다.
하지만 최해산에게 똥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동안 세자에게 쌓였던 좋은 생각이 단박에 날아갔다.
세종은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며 중신들에게 똥을 먹이는 폭군의 모습을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이야. 걱정..”
“..”
지난번에 향의 편을 들었던 상선 역시 이번에는 이향의 편을 들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똥은 좀..’
박내관은 침중한 표정의 두 사람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자칫 잘못하면 폐세자가 된다!’
그럼 박내관은 차기 상선이 아니라 세자를 잘못 보필한 죄로 목이 달아나리라.
어떻게든 세종을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무리를 했다.
“그, 그래도 세자는 백성을 아끼옵니다.”
상선이 눈을 부라렸다.“
“어느 안전이라고 먼저 입을 놀리느냐!”
“되었다. 박 상호(尙弧)는 하려던 말을 하라.”
“예. 세자가 최해산에게 이르길 ‘백성의 피땀인 국용을 함부로 쓰는 것은 대죄라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사옵니다. 이 한마디에 백성을 아끼는 마음과 사감에 얽매이지 않고 처결을 내릴 수 있는 단호함이 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고 하겠사옵니까?”
‘최해산이 나쁜 짓을 하니 혼낸 것뿐 세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는 항변이었다.
“으음.. 네 말대로 행동은 과하나 뜻에 고아함이 있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세자에 대한 네 충심도 알겠고.”
세종이 고개를 주억이다가 박 내관을 노려봤다.
“그렇다고 세자를 지키자며 임금을 기망(欺罔)하는 것이 옳으냐?”
“예..?”
세종이 서안을 쾅하고 내려쳤다.
“너는 세자가 초중전차라는 삿된 꿈을 꾸고 있음에도 이를 내게 알리지 않았다. 이는 기군망상(欺君罔上)의 중죄다!”
박 내관은 세종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향과 장영실이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고, 향에게 초중전차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허, 고얀 것. 다 알면서 발뺌하는구나! 네가 그리 세자를 감싸다 세자가 잘못된 길에 빠져들면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박 내관은 울고 싶어졌다.
‘대체 초중전차가 무엇이기에 성상께서 이리 화를 내시는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솔직히 말할 수밖에.
박내관이 후달달 떨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소, 소인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모르는 일이라고!”
세종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겁에 질린 박 내관이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저, 정말 모르옵니다!”
“..”
세종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끔찍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잠시 뒤.
“하하!”
세종이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세자가 좋은 신하를 얻었구나!”
“?”
박 내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종을 보다가 상선의 예리한 눈빛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임금은 모든 것이 공사(公事)라 비밀이 없어야 한다지만 내밀한 이야기까지 모두 밝혀서야 어찌 살 수 있겠느냐. 그러니 임금에게는 입이 무겁고 팔과 다리가 되는 이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세자에게 너와 같은 충신을 얻은 것을 보면 인군(仁君)의 자질이 있는 것 같구나!”
호탕하게 웃은 세종이 손을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네 충심을 보아서라도 이번에는 세자가 하는 대로 두고 보겠다. 돌아가라. 그리고 앞으로는 세자의 일을 내게 보고치 않아도 된다.”
박 내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강녕전을 벗어났다.
******
향이 강철을 쇳물로 뽑아내겠다고 장담한 지 석달이 지났다.
그동안 향은 쇳물을 뽑아내는데 필요한 여러 재료를 모으고 공정을 점검했다.
“백토와 흑연은 충분히 준비됐나?”
장영실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가니를 꾸준히 만들 만큼은 되옵니다. 다만..”
“다만 뭐?”
“시험 삼아 도가니를 만들어봤는데 너무 쉽게 깨지옵니다. 무언가 조처가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끄응-.”
향이 짧게 신음을 토했다.
“역시 백운석이 필요한가.”
AI에 따르면 백운석은 반죽의 결합력을 높여 구조적 강도를 올려준다.
또 화학적 안정성을 높여 도가니가 강철과 반응하는 것을 막아 강철의 순도도 높여준다.
없어도 어떻게든 도가니를 만들 수는 있으나 있으면 좋았다.
‘나중에 전로를 만들 때도 반드시 필요해.’
선철을 강철로 바꿔주는 마법의 항아리 전로에 꼭 필요한 물질이 백운석이었다.
“어떻게든 구해야 할 텐데..”
향이 고심에 빠져있던 그때.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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