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서라 최해산!(1)
대장간에 도착한 향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아무도 안 나오지?”
자신이 대장간에 도착했음에도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순간 대장간에서 고성이 터졌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의아한 얼굴로 대장간의 안을 살폈다
장인들과 관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향이 시선의 중심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이천이 누군가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사사로이 대장간의 물건을 빼돌리려 해? 그러고도 네놈이 관원이냐!”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화장품을 빼돌려 궁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본 이가 셋이나 된다. 이래도 발뺌을 할 테냐?”
“그건.. 맞사옵니다. 마누라가 분과 연지가 너무 가지고 싶다고하여 그만..”
“허, 이놈이 아직도 거짓을 입에 담는구나. 야장 별좌 장영실이 기록한 장부에 따르면 네가 빼간 물목은 로선과 액연지가 각 10병, 백분 10개, 비누 10장이다. 네 처가 화장품이 이리 많이 필요하더냐!”
장영실은 향을 도운 공으로 상의원에서 대장간으로 직을 옮겼다.
형식상이나마 하던 상의원의 잡무에서 해방된 장영실은 곧바로 대장간의 기물 생산을 관리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장영실의 장부에서 품목이 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해산이 장영실을 노려보았다.
‘다 저 노비 놈 때문이다!’
******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최해산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이 땅에서 처음 화약을 개발한 아버지 최무선 덕에 군기감에 자리를 얻었다.
아버지에게 배운 화약 제법만으로도 그의 화약 다루는 실력은 조선 제일이었기에 태조부터 지금의 임금까지 모든 임금이 그를 아꼈다.
군기감승 시절 태종의 앞에서 화차를 만들어 선보인 이후, 이러한 총애는 더 깊어졌다.
그때부터였다.
최해산은 군기감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 나갔다.
야장들을 겁박해 필요한 재료보다 많은 재료를 요청하게 한 뒤 재료를 빼돌려 부를 일궜다.
그렇게 얻은 부중 일부를 이용해 상관을 구워 삶아 비리를 감췄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자 군기감에서는 최해산을 막을 이가 없어졌다.
이런 사실은 알음알음 퍼져나갔으나 임금이 그를 옹호했기에 그의 부정은 계속됐다.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할 것 같은 세월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온하던 최해산의 삶에 태산같은 장애물이 나타났다.
세자였다.
갑자기 세자가 군기감에 찾아와 최고의 갑옷을 만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저 어린 세자가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군기감을 헤맨다고 여겼다.
되려 세자에게 잘 보여 다음 대까지 편히 놀고먹을 생각에 들뜨기까지 했다.
오산이었다.
세자가 입지를 넓혀갈수록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최해산의 왕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인들이 빠져나가면서 그가 착복할 수 있는 물목의 숫자가 줄었다.
팔아치울 물건이 주니 주머니 역시 비어갔다.
불안이 엄습했다.
가장 큰 걱정은 화약이었다.
처음 세자가 화기를 만든다고 할 때는 비웃었다.
쇠 좀 만져봤다고 모든 병기 중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무기인 화기를 다루려 한다니 가소롭다고 봤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자는 마치 보란 듯이 승자총을 만들고 화약을 개량했다.
세자가 개량했다는 화약을 써본 최해산은 깜짝 놀랐다.
성능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최해산이 가진 화약 비법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군기감의 관리들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러자 소문이 돌았다.
새로운 화약 제법이 나온 이상 최해산이 임금의 총애를 잃으리라는 이야기였다.
믿을 게 화약뿐이던 최해산으로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자가 그를 대장간으로 불렀다.
“세자께서 나를 콕 집어 대장간의 야장에 들이기로 하셨다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세자만 잘 구워삶을 수 있다면, 대장간에서도 군기감에서처럼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으리라.
그리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대장간에서의 생활은 군기감과 딴판이었다.
일단 뇌물이 안 먹혔다.
꼬장꼬장한 야장총제 이천은 뇌물을 건네려던 최해산을 크게 야단쳤다.
“화약의 대가라 하여 참 기술자일 것이란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던 것인가? 이런 짓으로 잘 보일 생각을 하지 말고 좋은 화약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쓰게!”
최해산에게 크게 실망한 이천은 그에게 최상의 화약 배합비 등 화약과 관련된 업무만을 맡겼다.
대부분의 업무에서 배제된 최해산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자기 할 일에 매진했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말처럼 최해산은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군기감에서 재료를 빼돌려 돈을 벌었던 것처럼 대장간에서도 착복을 시도한 것이다.
‘승자총이나 화약은 일단 제외. 팔 곳도 없고, 팔았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중갑은. 빼먹으면 너무 표가 나고. 그냥 쇳덩이를 가져가자니 무겁고 큰 돈도 안되는데..’
그런 최해산의 눈에 화장품이 눈에 띄었다.
가볍고 작은 데다 값비싼 화장품들이라면 돈이 될 것 같았다.
“화장품에 더해 중전마마와 비빈들만 사용한다는 비누라는 물건을 떼다 팔면 돈 좀 만지겠는걸?”
물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큰돈을 만지기 위해서는 화장품을 만드는 장인들과 그를 관리하는 장영실을 꼬드겨야 했다.
그래서 최해산은 장영실을 기방으로 불러 그의 의중을 떠보았다.
“장 별좌, 우리 같은 빈한(貧寒)한 처지인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비누라는 물건이 그리 귀하다던데.. 돈을 아무리 줘도 못 구한다지? 그런 물건이 시중에 풀리면 얼마나..”
“못 들은 걸로 하겠소.”
“..”
“한 번만 더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면 고변할 터이니, 괜한 생각 말고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시오.”
최해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한 노비 놈이 관직을 얻었다고 양반인 양 행세하는구나!’
장영실에게 소박맞은 뒤 최해산은 장영실과 야합하는 걸 포기하고 장인들을 설득하려 했다.
생산과정에서 여분의 물품을 만들어 그를 빼돌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불발됐다.
향의 대우에 감격하고 장영실의 서릿발 같은 기세에 눌린 장인들은 최해산과 손을 잡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최해산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최해산은 이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자가 뭐라고 다들 돈을 마다한단 말인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이라면 이쯤 되면 욕심을 내려놓기 마련이었다.
최해산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이래서야 시전의 최가놈에게 빚진 돈을 갚을 수 없다!’
도박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돈 벌 구석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무리수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도적질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
항시 물품의 재고를 철저히 관리하는 장영실에 의해 물목에 모자람이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밝혀졌고, 평소에 그를 의심하고 있던 장인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이천이 대장간의 인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최해산을 말로 후두려 팬 이유였다.
그럼에도 최해산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다른 관청에서는 다들 하는 일이거늘. 어찌 이런 일로 이리 사람을 욕보인다는 말인가!’
먼발치에서 최해산을 바라보고 있던 향조차 최해산이 반성의 기미가 없음을 알아챌 정도였다.
“허, 그래도 이자가!”
열이 뻗친 이천이 최해산에게 다시 폭언을 쏟으려던 그 순간.
향이 나섰다.
“그만하게.”
“저하..?”
“이쯤 하면 되었네. 최 별좌가 자기 죄를 뉘우치는 것 같으니, 그만 나무라게.”
“하오나..”
“최 별좌는 ‘화약’을 만들어야 할 사람일세. 자네가 ‘화약’을 만들 건가?”
향의 일갈에 이천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아, 아니옵니다. 뜻대로 하소서.”
“그럼 최 별좌는 내가 ‘밭’으로 데리고 가겠네. 최 별좌, 따라 나오게.”
“예, 저하!”
최해산이 밝은 표정으로 향을 따라나섰다.
이천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최해산..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가? 욕심의 대가를 치르겠군.”
******
대장간을 벗어난 향은 궁궐의 끝자락으로 최해산을 이끌었다.
최해산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에 뭐가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왠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은 게 이유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자네 춘부장(春府丈)이 이 나라에 세운 공은 지대하네. 화약을 굽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지.”
향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자네 실력도 꽤 괜찮고. 이천이 고하길 화약을 배합하는 솜씨가 훌륭하다고 하더군.”
“과찬이시옵니다.”
향이 멈춰서더니 진지한 얼굴로 최해산을 바라봤다.
“내가 이번에 자네에게 맡기려는 일은 초석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제법의 연구일세.”
향의 한마디에 최해산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초석을 대량으로 만들 방법을 찾으신 것이옵니까?”
초석.
화약의 주원료로 화약의 6~8할은 초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석을 확보하는 게 곧 화약을 확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초석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
담벼락 밑, 화장실의 흙 등을 긁어모으는 취토(聚土)를 한 뒤, 그 흙을 끓여 초석을 얻는데, 그 양이 정말 적었다.
그래서 태조부터 세종까지 모든 임금이 화약 확보에 열을 기울였음에도 쌓여 있는 화약의 양은 필요한 화약의 양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었다.
큰 전투 몇 번이면 나라 전체의 화약이 고갈 될 정도랄까.
그런 초석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이라니, 사실이라면 혁신이었다.
“아직은 짐작에 불과하네. 허나, 자네가 이 제법을 증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어떤가, 이 일을 맡겠나?”
“물론이옵니다!”
최해산이 열성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세가 마음에 드네. 그 기세를 잃지 않는다면, 내 자네를 반드시 중하게 쓰겠네. 장군 소리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장군.. 말이옵니까..?”
“그래. 자네가 초석을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한다면 내 자네를 반드시 장군으로 만들어주겠네. 따르겠나?”
최해산이 엎드려 땅에 머리를 처박고 외쳤다.
“성심을 다해 따르겠나이다!”
“아주 좋아! 그래서 대장간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나?”
“저하의 보살핌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사옵니까? 별래무양(别來無恙)하옵니다.”
“괜찮을 리가 있나. 자그마치 20년이 넘게 일하던 군기감을 두고 대장간으로 왔으니, 불편한 점이 한둘일까. 다 이해하니 마음 편히 말하게.”
“크흡-.”
최해산은 울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직전까지 모욕을 듣다가 향에게 따듯한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 모습을 보며 향이 최해산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두들겨 줬다.
“지나간 일은 잊게. 이제 새 일을 해야지. 자, 조금만 더 가면 자네의 새 일터가 나올 걸세!”
“?”
최해산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향이 당당한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해산은 영문도 모른 채 향의 뒤를 쫓았다.
“윽-.”
점점 심해지는 악취에 소매를 들어 코를 가렸다.
잠시 뒤.
궁궐 모퉁이에 거대한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곳엔 똥무더기와 썩은 짚더미가 쌓여 있었다.
“소개하네. 화약을 만들 자네의 새 일자리야!”
“예?”
“아, 아직 내가 설명을 안 했군. 왜, 초석을 만들 흙 중 가장 질 좋은 흙이 변소에서 채취한 흙이지 않나.”
“그렇사옵니다..”
“그걸 가만히 따져보니 사람의 똥오줌에 초석의 성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똥오줌을 삭히면 초석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네.”
“그럼 짚은 왜..”
“아, 짚단이 있어야 온도가 유지되지 않을까 싶어서 넣어 봤네. 넣어 보니 똥오줌을 겹겹이 쌓을 때 층을 나누는데도 좋고, 여러모로 있는 게 낫겠더군.”
구라였다.
사실은 16세기에 만들어질 초석밭을 향의 기억과 AI의 조언을 통해 구현하는 과정에서 짚더미가 필요하길래 넣었을 뿐이다.
“그럼 소인이 할 일이라는 게, 이 밭을 관리하는 것이옵니까?”
“맞네. 아, 추가로 밭이 썩지 않는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하네. 초석의 맛인 짠맛과 감칠맛이 나고, 초석의 하얀 결정이 올라올 때까지 매일 확인을 해야 하지.”
최해산은 향의 말에서 큰 불길함을 느꼈다.
“저하, 저 밭..에서 맛이 나는 것을 어찌 확인하는지요..?”
“응? 당연한 걸 묻는군 당연히 맛을 봐야지.”
“예?”
“맛이 어떻게 변하고 언제 초석을 수확할지 기록을 남기려면 맛을 봐야 하지 않겠나.”
“..”
최해산의 얼굴이 푸르뎅뎅해졌다.
향이 그런 최해산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장군 한다며. 이 정도는 해야 내 물건을 도둑질한 자가 장군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사색이 된 최해산이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송구하옵니다! 백번 죽어도 마땅한 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옵소서!”
“아직 이해가 덜 된 모양인데.”
향이 껄렁껄렁한 얼굴로 짝다리를 짚었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둘중 하나야. 장군이 되던가. 아니면 내탕금이 들어간 내명부의 물건을 손댄 죄로 참형을 당하던가.”
그제야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음을 알게 된 최해산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말게. 똥을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건 나도 알아.”
최해산의 눈에 일말의 희망이 섞였다.
“그럼..”
‘똥을 먹지 않아도 되느냐.’는 질문이 담긴 짧은 한마디에 향이 해사하게 웃었다.
“그래서 자네를 도울 똥믈리에.. 아니, 선생을 준비했네.”
“선생이요..?”
“그래. 소개하지, 전의감(典醫監)의 의학교수 전중의이네.”
향의 뒤를 따르던 무리에서 관원 하나가 튀어나왔다.
“내 변을 관찰하는 이일세. 변의 색과 맛에 대해 조예가 깊으니 자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걸세.”
전중의가 최해산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세자 저하의 매화(똥)를 담당하는 상분직(嘗糞職) 의학교수 전중의입니다.”
“전 교수. 오늘 수업에 쓸 물건은 가져왔는가?”
“예, 저하께서 일을 치르고 나온 매화를 가져왔사옵니다.”
전중의가 품에서 작은 함을 꺼냈다.
최해산의 얼굴에서 핏기가 쫙 빠져나갔다.
향이 그런 최해산을 보며 밝게 웃었다.
그러나 밝은 웃음에도 북풍한설(北風寒雪)같은 싸늘함이 묻어났다.
“먹어.”
- 작가의말
1. 상분직(嘗糞職)
실제로 임금의 변인 매화를 매일 맛보는 상분직(嘗糞職)이라는 직책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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