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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나는 누구인지 모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TYE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2
최근연재일 :
2021.07.15 18:05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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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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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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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희생자 3

DUMMY

쓰레기를 구별하는 방향성 여전히 잘못되지 않았다. 이 역시 쓰레기라는 걸 만인이 알고 있음에 집행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모든 건 계획대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하는 쓰레기는 필요 없다.

설령 쓰레기라 해도 주제를 알 줄 아는 쓰레기라면 자비라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분수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민폐라는 걸 자각 못하는 쓰레기일 경우에는 폐기시키는 게 순리에 옳다.

순리대로.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악이다.

정해진 길을 따르는 것, 이미 계획된 역사를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길이다.

미리 준비한 두꺼운 비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쓰레기를 놓는다. 피가 넘쳐서 바닥에 튀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비닐 위에 고스란히 널린 걸 본 뒤에야 박아두었던 송곳니들을 차례차례 뽑는다. 혈압이 높은 부분은 찌르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피가 살갗을 타고 흐르는 걸 지켜본다.


"아직 덜 됐나?"

"덜 됐으면 소리라도 났겠지.'

"농담이다. 못 처리하면 퇴물이지."

"아무리 눈을 가렸다고 위협이 될 능력은 아니니."


문마다 구조는 다를지라도 여는 일은 간단하다. 웬만하면 도어락으로 된 세상이라 참 편하다. 버튼 하나만 능력으로 누르게만 하면 열 수 있는 능력자 편애적인 세상이다.

비닐로 전신을 랩핑한 후에 스포츠 백에 싣는다. 어떻게 해도 안 들어갔으면 접히도록 부분 절단할 참이었는데, 이럴 때는 쓰레기가 작은 편이 도움이 된다. 손쉽게 지퍼까지 닫힌다.

문 앞에 차는 준비되어 있다. 싣기 좋게 중형차가 트렁크 쪽을 입구에 내밀고 있다.


"센스는 좋은데, 매너는 좋지 않아?"

"그러니까 빨리 실어."


집주인 없는 집은 어떻게 되는지는 알 바는 아니다. 우리에겐 환경 미화가 급선무라서 그런 것 따위 알 필요는 없다. 세속적인 것에 불과한 요소다.

이 모든 것은 순리대로.

필연적인 희생이다.

하지만, 순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악마놈'은 어떻게 하지?"

"오늘은 이쯤에서."

"언젠가 찾아야 하겠네."


거역하는 쓰레기, 라지만 얕볼 놈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역시 순리에는 시련이 따르는 법.

살생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내리는 시련이다.

순교자로써 거부할 마음은 없다.

때가 늦더라도 이루리라.


- - - - - - - - - -


제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청결은 건전한 육신에 건전한 정신을 깃들게 한다. 환경을 청결해 하는 것도 중요하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육신 자체를 신경 쓰는 일이다.

입욕제 1회 분량. 수온은 35도. 욕조의 6분의 5만 찰 때까지.

일반적이라면 입욕제는 없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피는 쓰레기든 아니든 오물의 상징이다. 소변, 대변 등으로 동물의 신체에서 나올 수 있는 대표적인 노폐물이라고 생각하지만 큰 오산이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신의 큰 뜻이 반영된 것인지 오염될 여지는 대변보다 피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암살자다. 대변이야 겉보기에도 스스로 더러움을 표방해서 피하라고 하지만 피는 어떻게 봐도 피다. 탁할 때에야 비로소 검붉게 빛나기라도 하지 새빨간 피라도 망자의 원한처럼 우리 죽이려는 욕망이 가득하다.

잠깐, 까먹은 게 있다.


"잘 먹었습니다."


다시 사념으로 들어간다.

'멘데이트'. 당장 떠오르는 호칭은 이것뿐이다.

실명은 없다. 있을 법도 한데,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경우도 처음이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확고하게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신기하다. 바로 이전과 달리 모든 의식을 나한테 전담한 게 아니라-


쓰레기들에 대해서


···한 마리는 처리했다. 저항도 없이 가축처럼 죽었다는 게 차마 사람을 죽였다는 인상이 안 든다. 발악하면서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지도 않고 성만 내면서 죽는 게 살고 싶기만 했던 불한당의 전형적인 모습과 똑같다. 그대로 우리와 같은 편만이 아니었으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백수의 처절한 죽음이라 여길 텐데, 분수를 몰랐던 모양이다.

'데몬', 그 이명은 겉멋이 아니지.

지옥이 있다면 그곳이 불만 번지르르하게 장식되어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놈'은 있을 법하다.

뜻만 같았으면 올바른 집행자일 거다.

그러나 이단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재능이 아깝다.

아까워도 순리에 벗어나면 사라져야 하는 게 올바르다.

물들여질 여지가 아니다.

이미 물들인 이상 선처란, 자비란 없다. 면죄부도 없다.

기관의 앞잡이, 그러한 수준이 아니라 기관의 수호자가 되어 있다.

변질의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마음이 돌아선 거면 처단할 수밖에 없다.

처단해야 한다.


'아프로디테'에 대해서


때로는 순리의 길에 있는 동료들이 못 미덥다.

약자는 아니라도 그 떄문에 철두철미한 계획이란 게 전혀 없다.

빛을 사용하는 능력과

얼음을 발현하는 능력.

수많은 얼음 능력 중에서 나는 에너지 계열이다.

대량으로 얼음을 만들지는 못해도 매우 차갑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갑게 만드는 것에서 그친다. 섭씨 0도 이하의 물, 그게 얼음을 만드는 능력의 진실이다.

절대 온도는 어림도 없다.

적어도 그래야 공평한 싸움이다.

어마어마한 겁화 앞에서 절대 온도가 아니고서는 비빌 수 없다. 한낱 맹물일 뿐.

그에 비해서 '아프로디테'는? 빛을 다루는 능력? 눈을 멀게 하는 것까지는 좋다.

간접적인 살생에는 굶기거나 숨을 못 쉬게 하는 등이 있지만, 이걸로는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가혹한 시련이다. '데몬'을 어찌할 방도를 모르겠다.

최소한 순례자가 한 명이 더 필요하다. 그런 길만 생각이 난다.


빨래에 대해서


···청결을 말하면서도 잊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빨래를 쌓아두고 있다. 목욕만 끝나면 빨래방에 가는 걸 우선으로 해야겠다.


식사에 대해서


빨래 이후에는 밥을 먹는 게 관건이다.

그러니까··· 냉장고에 넣어둔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어서 6분 30초로 타이머를 맞춘 다음에 땅콩 버터를 나이프로 바르고 썰어서 한 조각씩 포크를-


작업에 대해서


······

그만해라 '이 년'아.


순리에 대해서


그렇다. 순리는 따라야 하니까.

하지만, 순리는 뭔가.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진리. 만인을 이상향으로 인도하는 참된 도리.

이해가 간다.

이해는 간다.

평소에 하던 일이랑 똑같다. 이 몸이든 저 몸이든 무엇을 하든 간에 순리에 따라 산 삶이 되는데, 이것도 순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성실하게 사느냐,

그 차이가 기로를 생성하고 삶을 붕괴시킨다.


"참 알기 어렵네."


그래서 이 규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인가. 그저 지시문으로 퉁치려는 무책임함은 뭐지? 차라리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재해석대로 살 수는 없는 건가.

어차피 재해석이라도 크게 다를 건 없을 텐데, 도대체 이 이상 무엇을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탈에 대해서


이탈···이라.

심각한 불신이다.

불신이 있을 수밖에 없긴 해도, 그만큼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다.

前前 몸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나는 굳이 규칙을 깨뜨리려고 '이곳'에 있지는 않다. 그럴 수가 없다. 이전의 모든 것들을 다 시체 안에 묻어두고 온 것인 벌거숭이의 침입자이기 때문에 다른 규칙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만들어진 규칙이란 게 말마딴 '순리'가 맞다고 한다면 그것에 맞춰 살아가는 게 최선이자 '멘데이트'의 삶이겠다.


자아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의 지식을 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중인격이라 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문제는 다른 정보도 아닌 하나의 정보를 공유한 채로 있다는 건 침입자이면서도 피해자인 위치에 있는 셈이다.

아까 말했듯이 쓰레기에서 튀어나오는 피 같은 그런 존재다. 살생의 시련?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동시에 순리를 따르는 순교자, 이 정보들은 내 것이 아니라 '멘데이트'의 것이거늘 아직도 의심하는 건 그만두면 좋겠다.

또 하나 예를 들자. 토스트기를 6분 30초 돌린다고 하는 정보와 똑같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목욕할 때는 욕조에 8~10분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 하면 욕조에 있을 때 타이머를 재는 것은 아니니까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정보 속에 있다는 건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것이었던 몸은 없다. 순전히 본능에 따를 뿐. 다시 말해서 몸의 기억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독립된 정보도 없는 채 이런 몸을 오랫동안 다른 원리로 길들일 수도 없다.


기억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나도 그렇다. 한 가지 의문인 건 이렇게 대화하지 않고 그 쪽이 '나'에게 있는 희미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슬슬 일방적인 물음보다는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러면 필요 없지.


왜지?


순리.


······그렇긴 하다.


감정은.


그렇긴 하다. 대화의 의미는 '이 몸'의 논리라면 필요 없다. 오직 존재하는 건 그 안에 깃든 '나'가 가지는 감정뿐이다. 몸을 조종하는 데에 있어 몸의 감정은 따로 돌아가더라도 정작 '나'의 감정은 이 의식 안에 있다.

의식이 가지는 감정과 따로 노는 감정. 의미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없다. 적어도 생활 패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순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는 무의미하다, 그런 판단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 - - - - - - - -


그래, 순리대로 다 이행했다.

토스트기부터 시작해서 방청소까지 깔끔하게 했다. 새로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청소기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완벽해졌다. 야밤에 청소기를 돌려도 이 집의 방음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이 되어있으니 마음 편히 돌렸다.

잠잘 때까지 말끔히 처리했다. 잠옷을 입고 이불은 정확히 가슴 위까지 놓는 디테일까지 모조리 이행했다.

이제 잠들기만 하면 된다. 매우 간단한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간단한 일이다. 근심을 다 내려놓고 마음을 깨끗이 비워 편안, 보다는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면 무의식되는 건 한순간이다. 의식을 완전히 없애는 일, 이것이 순리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만 된다면 아무런 근심이 없겠지.


잠은?


부정할 게 있다. 이 모든 것을 순리대로 행한다고 했지만, 간과했다.

잠을 든다는 게 위와 같은 행위라면 아무래도 오늘만큼은 무리라고 생각이 된다. 감정, 아무리 '멘데이트'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해도 이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인수인계 받았던 몸들의 경우에는 거의 잠을 잔다는 게 체력이 한계에 달해서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빠졌던 모양이다. 어렴풋이 그랬다는 체험이 있다.

이 멀쩡한 상황에서 잠을 잔다는 건 오랜만인가, 처음인가 모르겠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멘데이트'라는 주체는 잠을 자야 하는 게 맞더라도 '나'가 깨어있으면 잠을 못 드는 게 맞는 건가.


그만.


오늘만이라도 알아보고 싶다. 이 상태에서 사고라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그대로 잠을 못 자는 건지··· 그걸 확··· 인 하려고········· 이게 결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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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용병(1) 21.06.18 3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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