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희생자 1
서걱
"끄아아아아악!"
범죄자를 처단하는 건 즐겁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나 무자비하게 처리해도 범죄자라는 표식만 내세우면 이 사냥감이 난도질 당해서 죽든 알게 뭐냐.
정당한 사냥이다.
천연기념물을 건드리지 말라면서 사람을 죽여도 된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이 세계를.
이제 쓸모없어진 쓰레기의 왼팔을 걷어 차 버린다.
"야, 다음엔 어딜 잘라줄까?"
"죽여!"
너무 싱겁다.
"죽이라니, 아깝잖아. 오랜만에 잔혹한 범죄자를 만났는데 이제 20초? 22초인데?! 24초 만에?! 그럴 수 없지!"
서걱
"아아아아아아앜! 아아아아아아아!"
목이 쉬어라 울어댄다. 아무리 남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좋아해도 비명은 좋아하지 않는다.
죄책감이라는 개 같은 이유때문일 리는 없다. 아직도 나에게 일말의 인간성이 있다고 바라는 걸까나?
비명은 소음이다.
소음은 싫다.
그뿐이다.
그러나 고통을 주면 비명을 지른다.
비명은 소음이다.
소음은 싫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게 싫지는 않다.
난 답을 찾고 싶다. 고통을 줘도 비명을 안 지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저번에 실험했는데, 혀를 자르거나 하는 방향은 옳지 않다. 그러면 비명을 지르기 전에 금방 죽어버린다. 한 3명이나 그랬는데, 다 실패헀다. 혀는 어떻게 자르든 피가 많이 흐를 수밖에 없는 부위다.
그래서 항상 내게서 고통을 받는 사람은 비명을 지른다.
비명은 소음이다.
그러니까 때론 싫어한다고, 이 세계를.
기분이 나빠진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오늘도 술을 마시면서 행복한 척 잠이 들 수밖에 없는 건가.
"야, 이만 끝내자."
"죽여줘···."
아닌가, 이미 죽을 것 같기도 하다.
벌써 양팔을 잘라버렸고, 목이 쉬어대라 비명을 질러 이제 비명을 지르지도 않을 것 같다.
그치만 행복한 기분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잘 안다.
푹
오늘도 이렇다. 내 우울증은 가시질 않는다.
언제 나는 하루만이라도 행복할 수 있지? 왜 내가 상대하는 범죄자들은 이렇게 약하지?
난 서열 74위라고? 74위라서 범죄자들이 나한테 쪽을 못 쓴다?
무슨 소리! 강한 자라도 착하지 않을 수 있다! 약한 자라도 착하지 않을 수 있다!
약한 자라고 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쁜 놈들은 약하다! 왜일까!
그러니까 증오한다, 이 세계를.
"······."
"······."
아, 확실히 폐와 심장을 같이 찔렀으니 숨소리도 안 나오는 건, 뭐.
오늘 임무도 끝이다. 씨벌, 찾는 게 더 일이었어.
30초라고,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그에 비해 보수는 짜. 물론 보수를 많이 받더라도 난 행복하지 않겠지. 더 많은 술을 사는 것 외에는 돈이란 많아봤자 뭐 하나.
갑자기 엄마의 안부 전화가 걱정된다. 언제 결혼할 거냐, 사귀는 사람은 있는가,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딴 병신한테 넘어 올 사람이 있겠냐고, 안 그래도 남자도 안 기어들어오는 마당이라고.
강하기만 하고 개판 난 인생이잖아.
맞다. 그게 맞다.
서열 74위, 나름 큰 지위라고 해도 거지 같은 인생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미 환장한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다고.
고통을 즐기는 거야, 사지를 자르는 걸 즐기는 거야, 이제 무엇이 행복인지 모르겠다고.
남들 눈에는 환장한 것으로 보일 테고, 살인마라는 칭호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지만, 난 정의의 편으로 불리니까 '숙청자'일 테고,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아이러니지.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의는 아니고, 악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악은 아니지. 난 잘 알아. 난 많이 겪어봤어. 넌 진리에 가까워 진 상태야. 아주 훌륭해. 좋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너.
그러니까, 넌 누구냐?
보이지도 않아. 보이는 건 있지.
양팔이 잘린 시체. 그리고 양팔은 내가 잘랐고, 가슴팍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나오고 있지. 사후경직이 오기 전까지 그럴 건데, 저건 이제 사람이 아니라고.
넌 사람이 뭐냐고 생각하냐.
뭔가 교훈을 주려는 생각인가 본데, 그 말이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거? 데카르트?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
넌 누구냐?
글쎄? 난 누구든 될 수 있지?
넌 누구냐고!
누구냐는 질문이 의미가 있을까? 일단 질문을 바꿔 보는 게 어때?
뭐?
'누구냐', 'Who'라는 질문보다는 '어디냐','Where'이라는 질문이 낫지 않겠어? 그게 네 신변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어디냐'고 질문하라고.
어딘- 데엑-···
아, 좀 더 빨리 물었어야지. 사실 물어도 소용없긴 해. 어휴, 좆같은 일용할 양식을 줘서 고맙습니다.
니, 씨발···
역시 최후는 육두문자가 딱이지.
······
술에 쩔어있는 등신치고는 잘 버텼어. 서열 74위 성능 확실하구만.
자, 새로 태어난 기념을 위해서 육성으로 말해보자.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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